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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 (디모데후서 4: 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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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일은 우리 민족의 명절, 추석입니다. 

추석은 음력 8월 15일로 한가위라고도 하는데 ‘한’이라는 말은 크다는 뜻이고 ‘가위’라는 말은 가운데라는 뜻을 가진 옛말로 8월 15일인 한가위는 8월의 한가운데에 있는 큰 날이라는 뜻입니다. 

추석은 아주 오래 전부터 조상 대대로 지켜 온 우리의 큰 명절로 일 년 동안 기른 곡식을 거둬들인 햇곡식과 햇과일로 조상들에게 차례를 지내고 ,이웃들과 서로 나눠 먹었다고 합니다. 

아무리 가난한 사람도 떡을 빚어 나눠 먹었다고 해서 속담 중에 “일 년 열두달 365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말도 생겼습니다. 

 

우리 나라에 추석이 있다면 미국에는 추수감사절이 있습니다. 

 

미국에서의 추수감사절

미국에서의 최초의 추수감사절은 1621년 가을에 플리머스 정착지에서 청교도들에 의하여 지켜졌습니다. 그들이 영국에서 가져온 씨앗들은 미국 땅에 적합하지 않았고 영국에서 쓰던 농사 기술 또한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혹독한 겨울을 보낸 다음 해 봄에 그들은 인디언들의 도움을 받아 옥수수, 콩, 보리 등을 재배할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좋은 수확을 거두자 윌리엄 주지사는 감사의 날을 정하여 인디언들을 초대하고 축제를 벌였습니다. 

초대받은 인디언들은 필그림 청교도들에게 크랜배리와 다른 여러 가지 요리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영국에서는 명절 때에 큰 거위를 구워 먹는 습관이 있었는데 신대륙에서는 거위 대신에 칠면조를 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추수감사절의 잔치 음식은 칠면조를 중심으로 해서 크랜배리소스와 호박 파이로 이루어집니다. 

이 추수감사절은 서서히 다른 지역들로 퍼져 나가기 시작하였고, 1863년에 링컨 대통령이 11월 마지막 목요일을 추수감사절로 공포하였고 지금까지  지켜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추석과 같아서 고향으로 감. 

 

한국에서의 추수감사절

한국에서는 1904년 제4회 조선예수교 장로회 공의회에서 서경조 장로의 제의로 감사일을 정해 지키기로 하였습니다. 그러다 1914년 회의를 거쳐 11월 마지막 수요일을 감사일로 정하여 예배를 드리다가 11월 셋째 주일을 추수감사절로 지키기로 하였습니다. 

 

 한가위는 설날과 더불어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가위는 온 가족이 한 자리에 모여서 조상들을 생각하며 지난 1년 동안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예배를 드리는 즐거운 날입니다.

하나님께 감사, 사람에게도 감사. 

추석을 맞이해서 감사해야 할 사람들에게 선물로 감사를 전하여야

얄미운 말, 하나님이 하신 거지, 하나님께서 갚아 주실 거예요.

 

감사 찬송

 

오늘 본문은 로마에 있는 바울 참수 교회에 적혀 있는 본문입니다.

바울은 지금 자신의 죽음의 날이 임박해 왔음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6절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라는 말로 자신에게 죽음의 때가 다가옴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제자인 디모데에게 마지막으로 서신을 보낸 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그런데 그 내용을 보면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는 바울에게서 전혀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인생에 대한 아쉬움을 찾아 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죽음 앞에서도 당당합니다. 바울이 죽음 앞에서도 이처럼 당당한 모습을 보일 수 있는 것은 두 가지 이유 입니다.

 

하나는 믿음의 경주에 최선을 다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천국을 향한 마라톤에 최선을 다했다는 것입니다. 

마라톤에서 완주를 하고도 힘이 남아 돌아 트랙을 계속 도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경주에 최선을 다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힘이 남은 사람은 뭔가 문제가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마라톤 경주에 참여하지 않는 것처럼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천국을 향해 달려가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어떻게 하면 더 재미있고 즐겁게 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더 많은 것을 누리며 살 수 있을까?’를 우선 순위에 두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믿는 우리들은 하늘 나라를 바라보며 살아가야 합니다.

하늘나라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생각이 달라야 하고, 관심이 달라야 하고, 가치관이 달라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이 세상의 가치관, 독을 빼는 작업.

 

오늘 우리들이 심신을 다 바쳐 추구하고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지금 무엇을 위해 그렇게 수고하고 있습니까? 혹시 가짜를 위해 전심전력을 하고 있지는 않는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모파상의 진주목걸이, 즉 인생의 우선순위를 점검해 볼 때입니다. 

신명기 6:5에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그리고 그 사랑의 표현에서 제일 중요한 부분이 예배입니다. 

그러므로 예배는 우리 삶의 우선순위가 되어야 합니다. 

아무리 분주하고 복잡해도 예배가 첫째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배는 은혜의 통로요 축복의 지름길이기 때문입니다. 

예배에 집중해야 세상에 나가서 승리합니다. 

세상 일에 집중해야지 인생의 문제가 해결될 것 같은데. 

사도 바울은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이 땅만 바라보고 사는 사람이야 말로 가장 불쌍한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고린도전서 15:19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그런데 천국을 향해 마라톤에 참여 한 사람들 중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런 저런 이유로 중도에 탈락합니다. 

초반에 탈락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중간 지점에 탈락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목표 지점을 얼마 남겨 두지 않고 안타깝게 포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6: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또 한 가지 바울이 당당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경주 후에 상급이 있음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바울은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천국에서의 상급을 믿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이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천국을 소망하며 천국을 향하여 경주하는 사람들입니다.

히브리서 11:6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사랑하는 새하늘 교회 교우 여러분! 

복음은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삼 일 만에 부활하셨다는 기쁜 소식, 복된 소식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이제 이 사실을 전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사람들은 자꾸만 다른 사람에게 자랑하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일 것입니다. 

2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들에게 바로 이것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하늘 나라를 바라보며 사는 자들답게 

이 땅에서 죽어가는 많은 영혼들에게 복음을 담대히 전하여 

의로우신 재판장 앞에 당당하게 서게 되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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