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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득불 할 일 (고린도전서 9: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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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치료에 있어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M.D 앤더슨에서 활약하시던 김의식 박사라는 분이 계십니다. 그 분은 암치료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인을 좋은 인간 관계를 꼽고 있습니다.  

따뜻한 인간관계야말로 암 치료의 회복도 가장 빠르게 한다고 합니다. 

두 번째로 섭생. 

‘근주자적, 근묵자흑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붉은 것을 가까이 하면 붉게 되고, 검은 것을 가까이 하면 검게 된다는 말입니다. 

사람은 어떠한 환경에 있느냐에 따라 인격과 삶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전도 열심히 하는 분을 가까이 하면 전도하는 사람이 됩니다. 

봉사를 잘하는 분과 가까이 하면 봉사를 즐거워하는 성도가 됩니다. 

또 불평불만 하는 사람과 가까이 하는 사람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불평의 사람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좋은 믿음의 사람과 가까이 하는 것은 귀한 복입니다. 

그런데 믿는 우리들에게 사람사이의 교제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교제입니다. 

시편 73:28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그 자체가 복이라는 말씀입니다. 

성경에 축복을 받은 모든 인물들은 주께로 가까이 간 자들입니다.

우리가 비록 허물이 있을지라도 주께로 나아갈 때 하나님은 복을 주십니다. 야곱이 그랬습니다. 그는 실수 투성이였지만 하나님께 적극적으로 나아가다가 복을 . . 에서는 하나님을 멀리 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복도 멀어지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참으로 힘들고 피곤한 세상입니다. 직장이나, 학업이나, 사업이나. 무엇을 하든지 힘들고 어려운 것이 인생입니다. 

이런 피곤한 생을 사는 인간에게는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 도움도 사람의 도움 정도 가지고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성경은 복의 근원되시는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고 권면합니다. 

야고보서 4:7-8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순서를 잘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가까이 할 때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가까이 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과 친밀하다는 뜻은 하나님과 친구처럼 비밀을 주고 받으며 깊은 교제를 나눈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녀들에 대한 신앙 교육을 소중히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어릴 때부터 신앙의 사람으로 자라게 해야지만 그들에게 미래가 있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오마하의 현인이라는 워렌 버핏. 버크셔 헤더웨이의 회장인데 버크셔 헤더웨이라는 회사의 주식 1주가 1억이 넘어 세계에서 가장 비싼 주식이라고 합니다. 워렌 버핏과 식사를 하는데 몇 억씩 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와의 식사를 통해 그와 친밀해 지고 워렌 버핏으로부터 지혜를 얻고자 함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과의 교제는 거저입니다.

이사야 55:1,2절을 보면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마태복음 26장을 보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던 예수님은 군사들에 의해 체포되고 예수님을 따라 다니던 제자들은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했습니다. 베드로도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갔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완전히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가기가 민망했던지 예수님을 따라가기는 했는데 거리를 두고 “멀찍이”(58절) 따라 갔습니다. 

베드로가 안전거리를 두고 멀찍이 예수님을 따라갔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피해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 가운데도 하나님을 멀찍이 두고 신앙생활 하는 사람, 교회를 멀찍이 하고 사는 사람, 목회자와 거리를 두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너무 가까이 하다가 깊이 빠져서 골치 아픈 일 안 생기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예수 믿는 것 때문에 손해 보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손해 보지 않으려다가 결국은 복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놓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보다 더 큰 손해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사람은 더불어 사는 존재입니다. 사회적 동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남과 같이 더불어 사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현대인의 위기는 함께 살 줄 모른다는데 있습니다. 개인 이기주의가 만연하고, 남을 배려할 줄 모릅니다. 

교회의 존재 이유 중 으뜸은 복음 전하는 일.

복음을 전하는 기쁨과 보람을 잃어버린 교회와 교인은 절대로 좋은 교회와 교인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전도의 열정과 기쁨을 회복하여야 합니다. 

한 그리스도인 사회학자가 오늘날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의 95퍼센트는 벤치워머에 불과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교회에 와서 고작 기여하는 것이라고는 와서 한 시간 예배를 드리면서 자신이 앉아 있던 의자를 따뜻하게 데웠다가 나가는 것이 유일한 기여라는 것입니다. 

‘나만 조용히 예수 믿겠다’ 전혀 틀린 말입니다.

예수는 조용히 믿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제 발로 걸어서 교회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전도하니까 

마지못해 발을 들여놓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교회에 나오기를 기다리지 말고 잃어버린 자들을 찾아 나서야 할 것입니다. 그들을 위하여 눈물을 흘려 기도하고... 강권하여 주님께 인도해야 할 것입니다.

 

평생 건강한 교회가 어떤 교회인가? 연구해 온 윌로우크릭 교회의 빌 하이벨스 목사님은 지금까지 그는 균형잡힌 교회, 예배와 친교와 전도와 봉사가 잘 균형이 잡혀 있을 때 건강한 교회라고 설파해 왔습니다. 

그러나 최근 그의 글에서 건강한 교회는 영혼을 구원하는 교회가 건강한 교회라 말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부흥사 D.L Moody는 목사 안수도 거절하고 평신도 부흥사로 활동하였습니다. 여러 가지 에피소드들이 있지만, 

하바드 대학에서 강연회를 하는데 영문법 학자가 찾아와 철자가 틀린 곳이 200군데, 그거 세느라 다들 받는 은혜 받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무디에게 한 청년이 찾아 왔습니다. “선생님, 성경을 읽어도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라며 안타까움을 토로합니다. 

그때 무디는 ‘더 기도해 보시오. 계속해서 성경을 읽으십시오’ 라고 말하지 않고 ‘성경 읽는 것을 중단하고, 밖에 나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열심히 전도해 보십시오.’ 청년은 무디가 시키는 대로 전도하고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성경을 다시 읽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마음이 뜨거워지더니 성경이 믿어질 뿐만 아니라, 전도의 열매가 맺어지기 시작하면서 마음 속의 소원들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복음을 전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믿음도 주시고 기도 응답의 놀라운 역사도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이 기록될 당시 고린도는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교통의 중심지인 대도시여서 부유하고 풍족하게 살아가던 도시였습니다.

풍요가 무서운 것은 타락하기 쉽다는 것입니다. 

영국의 역사학자인 토마스 칼라일 “역경을 견뎌 내는 사람이 백 명이라면 

번영을 견뎌내는 사람은 한 명에 불과하다.” 

이런 타락한 도시에 살다보니 믿던 교인들조차도 자기 자신의 신앙을 지키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본문을 통해 복음 전파자로서 그리스도인의 삶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교훈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오늘 말씀에 보면 세 가지 중요한 교훈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것은 부득불 할 일이라고 했습니다.

본문 16절에서 이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16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여기에서 ‘부득불’이라는 말은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미로 반드시 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구원받은 성도들이 주의 복음을 전파하는 일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선택 사항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사람들이 전도 못하는 이유는 무한대입니다. 

그러면서 자기 할 일은 다합니다. 갈 곳도 다 갑니다. 

오늘 본문에는 생각을 완전히 바꾼 사람의 자기 고백이 나옵니다. 

그는 바로 사도 바울입니다. 바울은 예수를 믿기 전에 예수 믿는 사람을 앞장서서 핍박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그가 가장 복음을 열정적으로 증거했던 사도가 되었습니다. 가치관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영혼 구원이 다른 무엇보다도 귀한 것임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하늘나라를 전파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지상 최대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전도는 교회가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질 수 있는 영적인 무기입니다. 하나님은 전도하는 사람에게 건강을 주십니다. 전도하는 사람에게 풍성한 복을 주십니다. 

 

두 번째로, 우리가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화가 임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여기에서 ‘화’라는 말은 하나님과 관계가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내가 하는 일이 하나님과 아무런 관계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가장 무서운 말, 내가 너를 도무지 모르겠다, 네가 누구냐?

 

사도 바울은 세 번째로 우리에게 중요한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임의로 전도하면 상을 얻는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본문 17절의 말씀입니다. 17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내가 내 자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누구든지 자발적으로 기쁜 마음으로 복음을 전하면 하나님께서는 마땅히 받을 분량보다 훨씬 더 많이 넘치게 축복하여 주십니다. 결코 이 세상에서 버림당하거나 멸망하지 않습니다. 

 

영혼 구원은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제일순위의 일입니다. 

꼭 해야 되는 것이 전도입니다. 

그리고 영혼 구원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기도도 들어 주십니다.

전도를 향한 사도바울의 열정과 심정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죽어 가는 영혼을 구원하여,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켜 나가는 

그리고 각자들 가지고 있는 기도 제목들이 응답받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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