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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비밀 (골로새서 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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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신학교에서 가르치셨던 함석헌 옹은 대한민국 해방에 대하여 이렇게 설파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행하신 일이라고. 

“아무도 모른 것은 아무도 꾸민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이 꾸미지 않고 온 것은 하늘의 선물이다. 

아무도 여기 공로를 주장할 중간적인 자가 없다” 하였습니다.

 

통일을 소망하며 꿈을 꾸던 구약학자가 있었는데 늦봄 문익환 목사와 

봄길 박용길 장로님, 남편을 대신해서 1995년 김일성 주석 1주기에 방북해서 옥살이를 하기도. 

제가 두 분을 뵌 것은 제 국민학교동창이 전주에서 판사하던 시절 전주에 놀러가서 그 당시 코어호텔?인가 로비에서.

두 분이 한복을 입으시고는 들꽃 한 묶음을 들고 걸어가던 모습.

소년 소녀 같다. 

문익환 목사님은 윤동주와 명동은진학교 시절부터 절친한 친구사이.

중학생 시절 학교 문예지 편집 일을 맡았던 윤동주가 목사님에게도 시 한편을 써 내라 그래서 써 냈더니 “이게 어디 시야” 그때부터 시는 포기. 

공동번역을 쓰면서 시를 쓰게 되는데 만약 동주가 살아 있었으면 나는 성서를 번역하지 못했을 거라고, 왜 구약은 거의가 시로 되어 있으니까.

 

오늘 본문에는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여기서 비밀이란 헬라어로 ‘무스테리온’입니다. 이 말이 영어로 옮겨져서 ‘미스테리(mystery)’가 됩니다. 신비, 비밀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세계에서는 우리가 신비라고 하는 그 사실이 그대로 사실이요 

진리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바라보는 인간의 시선에는 모든 것이 신비롭습니다. 비밀스러운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비밀을 하나하나 깨달아 나갈 때 거기에 기쁨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말씀하실 때 신비의 세계가 우리에게는 마치 너울을 쓴 것과 같아보였는데 이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 너울이 벗겨지는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빌립보서, 골로새서에서 소위 ‘바울의 기독론’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골로새서 1장 15절을 보면 그리스도를 가리켜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라고 말씀합니다.

‘형상’이라고 하는 말의 헬라어 원어는 ‘에이콘’입니다. 

이 말에서 유래한 것이 ‘아이콘’입니다. 

그리스에 가면 그리스 정교회 교회의 내부는 온통 그림으로 가득 장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과 성모 마리아, 사도에 대한 그림들이 있는데 이런 것을 ‘아이콘’이라고 합니다. 컴퓨터 바탕화면에 있는 그림들도 ‘아이콘’입니다.

교회사적으로 설명을 드리면 로마제국은 AD 395년에 서로마제국과 

동로마제국으로 갈라지게 됩니다. 

서로마제국의 수도는 로마이고 거기서 발달한 것이 카톨릭교회인데 

거기서는 성상을 만들어 놓고 숭배합니다. 

성상이란 돌이나 석고로 만든 조각상입니다. 

반면에 동로마제국의 수도는 콘스탄티노플, 지금의 이스탄불인데 거기서 

발달한 것이 정교회입니다. 정교회에서는 성상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성상은 우상이다 하고 부정합니다. 대신 거룩한 형상에 대한 그림을 그려 놓았는데 그것이 ‘아이콘’입니다. 그런데 우리 신교에서는 둘 다 부정합니다. 

성상이든 그림이든 다 잘못된 것이다 하고 부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네덜란드 교회에 가서 보면 성당에 있던 성상들을 다 파괴하고 매끈하게 십자가도 없이 해 놓았다가 지금은 겨우 십자가만 장식해 놓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상을 인정하는 쪽은 카톨릭이고 화상을 숭상하는 쪽은 희랍 정교회이고 그 둘 다 안된다, 어떤 상이든지 상을 숭상할 수 없다 하는 쪽이 신교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말씀을 보면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이콘이라고 말씀합니다. 

성화나 석상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자신, 그의 말씀, 그의 역사성, 예수 그리스도 자체를 하나님의 아이콘으로 받아들인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신을 우리에게 보여주셨고,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하나님을 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합니다. 

예수를 통해서 하나님을 안다. 

이것이 기독교의 생명력이요 중심인 것입니다. 

 

453장

 

그런데 문제는 깨달음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2절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라”합니다.

‘깨달음’이라는 헬라어 ‘에피크노시스’는 보통 귀로 듣는 지식이 아닙니다. 

논리적 지식이 아닙니다. 이것은 체험적 지식입니다. 

인격과 인격의 만남에서 이루어지는 신비로운 지식을 가리킵니다. 

깨달음, 아주 중요합니다. 깨닫지 못하면 아무 소용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들을 깨닫게 하시기 위하여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선포하시고, 가르치시고, 병 고치셨습니다, 

문둥병환자가 깨끗해졌다고 할 때는 그 사건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 사건 속에서 주님께서는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오늘도 실패하고, 낙방하고, 병드는 사건 가운데서 말씀하십니다.

지금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사건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배우고 깨달아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이 우리 일생의 과제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특별히 그 핵심인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을 봅니다. 십자가는 기독교의 상징이요 표지입니다. 

옛날 로마시대에는 십자가형이 죄인에게 행하던 가장 극악한 처형방법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십자가 형틀이 기독교에서는 영광의 상징으로 의

미가 바뀝니다. 여기에 기독교의 역설, 아이러니가 있는 것입니다. 

칼 바르트는 십자가 속에 더블 이미지가 있다고 합니다. 

십자가에서 우리는 두 가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 하나는 내가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내 죄의 무게를 생각합니다. 십자가의 값을 치르지 않고는 전혀 구원받을 수 없는 죄인, 내가 그토록 큰 죄인임을 보여주는 증거로 십자가를 말합니다. 

또 하나는 십자가가 하나님의 사랑의 증거라는 것입니다. 십자가 안에 내 생의 가치가 있습니다. 십자가의 값을 지불해서라도 구원해 낼만한 가치 있는 존재, 그 엄청난 값이 십자가에 계시되어 있습니다. 

 

백만 원짜리 물건이면 아깝지 않게 백만 원을 주고 그것을 가져옵니다. 

왜? 백만 원 가치가 있으니까요.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다는 사실은 우리가 그만큼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뜻합니다. 

여러분은 십자가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어떻게 이해하십니까?

내가 십자가와 어떤 관계를 맺고 사느냐에 따라 내가 기독교인이냐 비기독교인이냐가 가름됩니다. 신앙의 성장은 다른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십자가의 바른 의미를 깊이 깨닫는 데에 있습니다. 

십자가를 믿음 없는 눈으로 본다면 완전한 실패입니다. 

서른세 살의 아까운 나이로 억울한 누명을 쓰고 골고다 언덕에서 죽어간 예수, 남긴 것 하나 없이 그대로 죽어간, 한 개인의 생으로 말하자면 완전실패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면 십자가의 죽음은 승리입니다. 

죄와 사망과 율법을 뛰어넘는 승리요, 믿음의 승리, 하나님의 의의 승리, 생명의 승리입니다. 십자가는 승리입니다. 

 

십자가는 분명 구약에서의 오랜 예언이 성취된 것입니다. 그동안 상징적으로 벌어졌던 많은 제사, 그 예표가 오늘에 와서 실제로 드러난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여러 곳에서 수없이 힘있게 반복적으로 증거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응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응하여’

말씀이 성취되어서 오늘 이 사건이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6:54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리요”(열 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게 하면)

예수께서는 예언의 말씀을 상기하면서 십자가를 지십니다. 자원적입니다.

도망가다가 잡혀서 지신 십자가가 아닌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쓸개 탄 포도주도 거절하십니다. 

쓸개탄 포도주는 십자가를 지는 사람에게 베푸는 마지막 자비입니다. 

술기운으로 잠깐이나마 고통을 덜 느끼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도 예수님은 거절하십니다. 맑은 정신으로 십자가의 고통을 받아들이시겠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고통을 피하려 들지 마십시오. 

정신이 몽롱한 가운데 지는 십자가는 십자가가 아닙니다. 

원망과 불평을 가지고 지는 십자가도 십자가가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깨끗하고 맑은 정신으로 자원하여 십자가를 지십니다.

예수님은 모든 것을 하나님께 온전히 위탁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6:39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하신 이 기도대로 하나님의 뜻만을 생각하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온전히 맡겨 버리셨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사랑이 확증된 것입니다.

사랑은 말이 아니요 철학이 아니요 관념이 아닙니다. 사랑은 행동입니다.

특별히 자기 희생이라고 하는 행동입니다. 자기 희생이 없는 사랑은 가짜 사랑입니다.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리고 대신 죽으셨습니다.

죄인인 우리가 죽어야 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의인이 죄인의 모습으로 대신 죽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새하늘 교회 교우 여러분!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비밀이요 아이콘이며, 그 분 지신 십자가가 

크리스찬들의 능력의 원천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하나님을 알고, 나를 알고, 

이웃을 알고, 세상을 알아가는 것입니다. 

그 속에 지혜가 있고, 사랑이 있고, 희생적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 비밀의 베일을 하나하나 벗겨가면서 감격하고, 감탄하고, 감사하여 이 거칠고 힘든 세상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아내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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