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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낸 사자 (마가복음 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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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대림절 셋째 주일입니다. 대림절은 성탄절까지의 준비기간.

여러분들은 어떤 마음의 자세와 준비를 가지고 성탄을 맞이하고 계십니까? 

성탄절의 핵심은 두말할 필요 없이 예수 그리스도 자신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왜곡된 문화에 휩쓸리지 말고 마음속에 예수님을 모시는 거룩한 성탄절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림절에 미리 예수님을 마음에 모실 준비를 잘 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마가복음 1장을 통해서 어떻게 예수님을 마음에 모실 준비를 하여야 할지 살펴보기로 합니다. 

 

예수님의 탄생 기사는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에는 예수님의 족보,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를 낳고,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가브리엘 천사를 통하여 동정녀 마리아에게 예수님이 탄생할 것을 알려준 사건,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께 경배한 사건 등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누가복음에는 양치는 목자들이 찾아와서 경배한 사건 등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한복음에는 사건 기록은 없고 대신 신학적으로 성탄을 설명합니다. 

요한복음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이를 가리켜 성육신, Incarnation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마가복음에는 예수님 탄생 기록이 없습니다. 

마가복음은 성탄의 기록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30세 이전까지의 모습에 대해서는 생략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은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직전에 등장한 세례 요한의 이야기부터 꺼냅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의 오심을 준비한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마가복음은 세례 요한을 통하여 예수님을 어떻게 영접해야할지 준비시켜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세례요한에 관한 이야기는 대림절에 꼭 읽어야 할 말씀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요한이란 이름은 아주 흔합니다. 동명이인이 수두룩합니다. 

철수와 영희, TOM & JUDY, 그래서 공생애 직전 예수님의 등장을 준비하는 세례를 베푼 사람이란 뜻으로 세례 요한 이렇게 구별해서 부르는 것입니다. 

그는 본래 제사장 사가랴와 엘리사벳 사이에 태어난 사람입니다. 엘리사벳이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사촌이니까 예수님의 육촌 형입니다.

세례 요한은 사가랴와 엘리사벳이 늙기까지 아이를 갖지 못하다 하나님의 은혜로 극적으로 태어난 사람입니다. 그리고 모태에서부터 성령 충만했던 

사람으로 일찍이 집을 떠나 광야에서 기도하며 살았던 선지자입니다. 

그가 대중 앞에 등장하기 전의 모습이 누가복음 1:80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이가 자라며 심령이 강하여지며 이스라엘에게 나타나는 날까지 빈 들에 있으니라” 

 

본문을 보면 그가 대중 앞에 등장해서 한 일이 무엇인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 마디로 표현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행차를 준비하는 일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옛날 임금님이 행차하실 때 어떻게 합니까? 미리 신하가 앞서 나가 준비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선포합니다. 상감마마 납시오! 

이와 마찬가지로 세례요한도 예수님이 오심을 미리 증거한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세례 요한이 한 일은 “구세주 납시오!” 이 말을 선포한 것입니다.

 

마가복음은 1:1부터 단도직입적으로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증거합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분이 인간으로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의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인데, 먼저 예수의 이름은 그 뜻이 마태복음 1:21에 나옵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자 즉 구원자(=구주, 구세주)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헬라어로는 그리스도, 히브리어로는 메시야입니다.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세례 요한이 예수님의 오심을 준비하는 것은 구약성경, 이사야에서 이미 예언되었던 일입니다. 2절 보라 내가는 하나님을 내 사자는(My messenger)는 세례 요한을, 네 앞에의 네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구세주이신 예수님이 오시는데 미리 길을 준비하는 것은 예수님을 영접하기 위해 먼저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광야에서 기도하며 지내다가 예수님의 공생에 직전 등장하는데 맨 처음 한 일이 회개의 세례를 베푸는 것이었습니다. 4, 5절 그러니까 백성들을 회개시켜 예수님을 영접할 수 있게 했음을 의미합니다.

회개는 방향 전환입니다. 하나님을 등지고 범죄하고 타락해서 사망의 길로 가고 있던 사람이 이제 돌이켜 하나님에게로 향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음의 길을 하나님께로 향해 닦아 놓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세례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풂으로써 백성들로 하여금 그 마음의 방향을 예수 그리스도께로 향하도록 한 겁니다.

누가복음에서는 세례 요한의 일을 길을 닦는 것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누가복음 3:4,5절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회개하고 정결한 마음으로 준비해야 합니다. 

 

팔복 중 제6복의 말씀 마태복음 5:8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마음이 정결해야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납니다. 

성탄을 준비하면서 우리 마음을 정결하게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예수님이 우리에게 임하시는 것입니다. 

먼저 탐욕을 버려야 합니다.

세례 요한은 남에게 준비하라고 하기 이전에 본인이 구세주 영접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삶으로 실천했습니다. 6절 

그는 제사장 가문 귀족 집안의 자제였습니다. 

얼마든지 편한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광야로 나가서 살았습니다. 낙타털 옷에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고 살았습니다. 

탐욕을 버리고 검소한 삶을 살았습니다. 

 

며칠 전에 안식년을 마치고 돌아가시는 선교사님이 한국에 들어와서 지내다 보니까 그동안 짐이 얼마나 많아졌는지 떠나기 전에 짐 정리를 하느라 분주하다는 것입니다. 그 말을 하면서 그 선교사가 이런 말을 덧붙였습니다. 

“선교지에서는 이런 것들이 없이도 충분히 살았었는데 … ”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정말 욕심이 많아서 불필요한 것들을 너무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마음에도 군살이 얼마나 쪘는지 모릅니다. 마음의 다이어트를 해야 합니다. 

부디 이번 성탄절을 앞두고 심령의 다이어트를 해서 예수님이 우리 마음에 찾아 오실 수 있도록 준비하도록 합시다. 

 

예수님은 낮은 데 임하십니다.  

예수님이 탄생하실 때 수도 예루살렘에 오시지 않았습니다. 

왕족이 사는 왕궁이나 귀족이 사는 저택에 오시지 않았습니다. 

베들레헴 마구간에서 탄생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말구유에서 태어나신 것은 우리들의 매정하고 완악한 심령 때문이었습니다.   

누가복음 2:7에 “첫 아들을 낳아 강보에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여기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는 이 말이 영어로는 "No Room"입니다. 찾아오기는 했는데 방이 없으면 어떻게 합니까?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은 잠긴 문을 부수고 들어가시지 않습니다. 

요한계시록 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오늘 주님이 나를 찾아오셨는데 나는 문을 닫아 걸어놓고 아예 열어보지도 않고 “다른데 가보라”고 하는 것은 아닙니까? 

이번 성탄절을 맞이하면서 여러분의 마음 문을 활짝 여시고 주님과의 깊은 교제가 있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은 꿈, 비전이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성경만큼 미래에 대한 약속과 꿈을 말한 책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늘의 별처럼 바다의 모래처럼 많은 자손을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오시기 전 700년 전에 기록된 이사야에는 그 보다 더 큰 비전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예수를 세상에 보내시겠다는 약속입니다. 

6절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이게 복음입니다. 영어로는 good news.

이 복음을 받아들여 믿고 살아간 사람들이나 나라들은 하나같이 전향적인 삶을 살고 선진국을 이루었습니다. 기독교가 눈을 뜨게 하고 생각을 열게 하고 전향적 삶을 살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복음이 들어오면서 먼저 내 자신이 변화되었고 내 가정이 변화되었고 내 나라와 민족이 변화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그 변화를 누리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와서 조용히 도나 닦고 있지 않으셨습니다. 

아프고 문제 있는 사람들을 찾아다니시며 눈을 뜨게 하셨고 고치셨습니다. 

기독교의 기본은 절망 속에서 희망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이 바로 소망의 시작입니다. 

저도 그 분을 만나기 전에는 의미도 없이 목표도 없이 인생의 나락 가운데 떨어지고 있었지만 이제 빛 되신 그 분을 영접한 후로 전혀 다른 새로운 삶의 의미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 그 분은 세상의 소망이십니다.

 

91장

 

이사야의 예언은 어둠의 날이 오지만 기쁨의 날은 반드시 도래하고 말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확신이 어둠을 견디는 힘이 됩니다.  

믿는 사람은 기존의 세상에 길들여지는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 변화되어 

역사의 변혁을 꿈꾸는 사람입니다. 

‘가장 연약한 자가 세상을 구한다.’ 성경의 가장 큰 역설이 여기에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27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시며”

기독교는 동정녀 탄생이라고 하는 기적을 시작으로 해서 예수님의 부활이라고 하는 기적으로 끝을 맺습니다. 그리고 그 기적 속에 내가 구원받는 기적, 내가 변화되는 기적이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새하늘 교회 교우 여러분!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굿 뉴스, 복음이었습니다. 

대림절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대로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실 것을 기다리며 그 날을 기쁨을 묵상하며 보내는 기간입니다. 

이 기간에 더 깊은 영적 바다로 들어가는 은혜의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이 뜻깊은 대림절에 세례 요한의 “구세주 납시오!” 그 외침을 들으시고 

마음의 길을 준비하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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