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설교말씀

그 아홉 (누가복음 17:11-19)

Loading the player...
Loading the player...
Loading the player...

 미국은 청교도의 정신으로 세워진 나라입니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가 통일령을 내려 개신교 특히 캘비니즘을 억압합니다. 그러자 종교의 자유를 찾아 메리플라워호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 신대륙으로 죽음의 위협을 무릎쓰고 건나간 사람들이 청교도들입니다. 

그들은 잘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종교의 자유를 찾아 모든 고난을 헤치고 신대륙으로 건너 간 것입니다. 

그래서 최초의 청교도들은 돈이 생기면 첫 번째로 교회를 지었습니다. 

그 다음으로 학교를 지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지은 것이 자기 집이었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미국을 건설한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미국이 점점 무너져가고 있습니다. 

이 세 가지를 거꾸로 해서 그렇습니다. 

트럼프는 자국우선주의를 내세우면서 FTA 폐기, 무기 판매, 

세탁기 긴급 수입 제한, 철강, 화학, 등등. 

진짜 교회를 발견할 때 내 삶의 의미와 목적이 생깁니다. 

정말 교회가 천국과 같은 곳임을 알게 됩니다. 

내 생애에 만날 수 없는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곳이 교회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나의 출신학교, 나의 조국에 대해서 감사해야 하지만

오늘 여러분들은 새하늘 교회에 대해서 얼마나 감사하고 계십니까?

 

일본의 우찌무라 간조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저주하실 때 실패와 질병과 고난으로 저주하지 않는다. 그 마음에서 감사하는 마음을 빼앗아 간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신앙의 깊이를 잴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의 신앙의 깊이를 알 수 있는 기준은 ‘그 사람이 생활 속에서 얼마나 하나님께 감사하는가?’라는 것입니다.  

감사는 하나님의 능력이 내 삶에 임하게 하는 통로입니다. 

은혜가 하나님 파트의 일이라면 그에 대한 응답이 감사입니다. 

그래서 감사는 감동입니다. 

나의 나된 것은 다 하나님 은혜라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나를 지으신 이가 하나님, 나를 부르신 이가 하나님, 나를 보내신 분도 하나님, 나의 나된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라’라는 찬양입니다.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한 마을에 들어가셨습니다. 그 때에 문둥병자 열 명이 멀리 서서 예수님을 알아보고 소리 높여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라고 호소했습니다.

12절 “멀리 서서” 문둥병자들은 사람들 곁에 갈 수 없었기 때문에.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말씀하시기를 14절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고 하셨습니다. 

레위기 14장에 보면, 문둥병자가 병이 나으면 제사장에게 가서 자기 몸을 보이고 확인을 받아야만 비로소 정상인의 생활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문둥병자들의 부르짖음에 예수께서는 그 자리에서 화끈하게 고쳐주지 않았습니다. 증세는 그대로입니다. 

이것이 기도한 사람들의 느낌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를 해도 문제는 

그대로 있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 보입니다. 

이때 우리가 할 일은 믿는 것입니다. 영적인 세상에서는 일이 진행되고 있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일하심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세상에서는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정말 기도의 내용을 믿는다면 행동도 거기 맞추어서 해야 합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서 하는 일이 영의 세계에 영향을 준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마음의 자세로 기도하느냐가 기도 응답의 가장 큰 조건입니다.

기도해도 되지 않을 거야, 

성경에는 예수의 이름으로 구하면 들어주신다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4:14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나병환자들은 제사장에게 가다가 어느 시점인지는 몰라도 병이 나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얼굴을 만져보니 감각이 다시 돌아왔습니다. 

제사장에게로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요즘도 나병환자는 사회에서 소외당하지만, 과거에는 문둥병에 걸리면 가족과 함께 살지 못할 뿐 아니라 사회에서 완전히 격리되어 죽은 자로 취급받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문둥병의 흔적이 말끔하게 사라지고 깨끗해 졌으니 그들의 감격은 말로 다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고침을 받은 10명 중에서 아홉 명은 예수님께 돌아와서 감사하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한 사람 감사한 사람은 유대인이 아니라 사마리아인이었습니다. 

사마리아인은 B.C. 722년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 멸망되자 이스라엘 사람들은 끌고 가고 앗수르 사람들을 그 곳에 이주시킨 앗수르 사람들입니다.

나머지 사람들은 흔히 우리가 그렇듯이 “우리가 나을 때가 되어서 회복된 것인지 몰라”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고 하셨습니다.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아홉 사람한테 감사를 못 받아서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그 아홉 명의 영혼이 불쌍해서 하신 말씀입니다. 

여러분, 우리들이 찬양하지 않으면 돌들이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자연 만물이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열 명의 문둥병 환자들은 하나같이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전해 들었으며, 예수께서 그들의 문둥병을 고쳐주실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의 명령에 복종하여 제사장들에게로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았습니다. 

여기까지는 열 사람 모두 동일합니다. 

그런데 그들의 몸이 깨끗함을 받은 그 결정적인 순간에 사마리아 사람은 예수님께 찾아와 감사를 드렸으나 나머지 아홉은 감사를 저버리고 제 갈 길로 가버렸습니다. 아홉 사람은 이제 병을 고침 받은 마당에 더 이상 예수님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이 경우에, 예수님은 병을 고침받기 위한 수단에 불과할 뿐입니다. 

철학자 니체는 기독교인들의 믿음을 “지팡이(clutch)에 불과하다.”고 비판했습니다. 즉 기독교인들은 믿음을 지팡이처럼 필요할 때만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지팡이를 의지하듯 예수님을 의지하다가 더 이상 필요가 없으면 지팡이를 버리듯 예수님을 등한시합니다. 

감사는 우리 신앙의 초석과도 같습니다. 감사가 없는 신앙은 자기의 이익을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려는 것에 불과합니다. 감사가 없는 신앙이 기복 신앙. 감사가 터져 나오면 기도 응답에 대한 확신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50:23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라고 했습니다. 

16절 “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리어 사례하니” 이것이 예배입니다. 

감사가 없는 예배는 위선적이고 형식적인 예배가 되어 하나님께 열납되지 못합니다. 칭찬받은 사마리아 나병환자처럼 감사를 표시해야 합니다.

“그동안 하나님 은혜로 살았는데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이제는 대통령을 만나기 전에, 세상에 어떤 일을 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을 뵙겠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일을 시작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멀리서 문제나 해결 받으려 합니다. 그래서 예배에 감격이 없습니다. 

하지만 예배는 하나님께서 자녀들만을 위해서 만드신 축제의 자리입니다. 

예배는 신자에게 의무요 특권입니다. 기쁨입니다. 

“먹고 사느라 바빠서 못 옵니다.” “우선 급한 일부터 해결해야 합니다.” “멀고 시간 많이 걸려 못 옵니다.” 9명의 환자들이 한 말과 같은 내용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부류의 사람에 속하십니까? 오늘 본문에서 볼 때 확률은 10대 1입니다. 1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감사의 사람이 되십시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십니다. 그 부르심에 응답하면 문제만 해결 받는 게 아니라 우리 영이 구원받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열 사람은 육체의 문둥병을 고침 받았지만, 우리들은 영혼의 문둥병을 치유 받은 사람들입니다. 나병균은 외부 자극에 대한 감각을 마비시킵니다. 그리하여 뜨거운 것도 뜨거운 줄 모르고 만지고, 추운 겨울에도 손발이 어는 줄도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신체 부위가 망가지는 결과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영혼의 나균인 죄에 감염되면 영적 감각이 마비되어서 죄를 지으면서도, 주일 성수를 안하면서도 그것이 죄인 줄을 알지 못합니다. 나병균은 사람의 육신을 망가뜨리지만, 죄는 사람의 영혼을 파멸시킵니다. 열 명의 문둥이가 예수님을 만나 깨끗함을 받았듯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영혼의 문둥병에서 깨끗함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구원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행복은 언제나 감사의 문으로 들어와서 불평의 문으로 나간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을 때 즉시로 감사를 실천해야 합니다.

무슨 일이건 적절한 때가 있는 법입니다. 이는 감사하는데도 마찬가지입니다. 농부가 씨 뿌릴 때를 놓치면 농사를 망치듯이, 감사도 때를 놓치면 감사다운 감사를 드릴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비 나중에 오는 것 소용없슴.

먼저, 입술의 고백을 통해서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할 일이 있거든 즉시로 “하나님, 감사하나이다”라고 감사의 기도를 올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감사의 찬송을 부르십시오. 우리가 입을 열어 하나님의 은혜를 찬송할 때, 그 찬송이 하나님께 열납되는 감사의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자에게 더 큰 은혜를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사랑하는 새하늘 교회 교우 여러분!

사막에도 선인장이 자라고 그곳에는 맛있는 꿀이 있습니다.

캘리포니아에도 여러 종류의 새들이 살고 있는데, 다른 새들이 먹이를 얻지 못할 때라도 캘리포니아 벌새는 선인장 꽃에서 꿀을 찾아냅니다. 

지금 경제가 아무리 어려워도 쪽박집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가뭄 속에서도 살아 남는 식물이 있듯이 대박집은 분명히 있게 마련입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사람이 절망이라고 외쳐도, 믿음의 눈을 가진 사람은 감사의 조건을 찾아내며,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같은 감사를 통하여 주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해 드리고, 

주님으로부터 믿음을 인정받아 더 큰 은혜를 받게 되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