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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 (이사야 6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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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름휴가를 가족들하고 일본 북해도, 홋카이도, 사뽀로로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북해도에 일본인들이 들어가 살기 시작한 것은 1860년대 부터라고 합니다. 그 전에는 아이누 족이라는 원주민들이 살고 있었는데 일본 땅으로 편입된지 얼마 되지 않습니다. 

어제 지도를 보니 홋카이도는 러시아 사할린과 붙어 있고, 남쪽으로는 카잔열도의 이오지마섬, 오키니와. 

북해도는 일본으로 완전 넘어간 경우이고 우리 민족은 해방된 경우.

일본의 국민성보다는 오늘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올해는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서 벗어나 해방이 된지 72년이 

 되는 해이고, 이번 주 화요일은 일흔 두번째 맞이하는 광복절입니다.

광복절은 우리 민족이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서 벗어난 것을 기념하고, 

대한 민국 정부 수립을 경축하는 날입니다.

 

2차 세계대전 중인 1943년 11월 미국, 영국, 중국의 세 나라가 카이로에 모여 적당한 시기에 한국을 해방, 독립시킨다는 ‘카이로 선언’이 발표되었고 1945년 7월 미, 영, 소 참가의 ‘포츠담 선언’으로 한국을 독립시킨다는 것이 재확인되었습니다. 

그 후 1945년 8월 15일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 폭탄이 떨어짐으로 일본은 

무조건적으로 항복하였고 그 결과 우리나라는 36년간의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 통치 하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광복’(光復)이란 빛을 회복한다는 말입니다. 

어둠 속에 갇혀 있다가 다시 빛을 본다는 뜻입니다.

그 당시 우리 민족은 일본 사람들에게 무시를 받으면서 노예와 다름없는 

생활을 하였던 것이 일제 36년의 생활이었습니다. 

우리 민족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성도 빼앗기고 언어도 빼앗겼습니다. 

일본은 말로는 일본과 조선은 하나, 내선일체라고 하였지만 

실제로는 우리 민족을 식민지 노예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좋은 것들은 일본으로 다 가지고 갔습니다. 

그리고 많은 젊은이들을 일본 땅으로 데리고 가서 힘든 일들을 다 시켰습니다. 강제 징용, 어디 그뿐입니까? 수많은 여인들을 일본군의 위안부로 끌고 갔습니다. 군함도라는 영화. 

게다가 그들은 지금도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일본의 무서운 점은 치밀하게 준비를 한다는 점입니다. 

외교를 얼마나 잘하는지, 군함도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

 

사랑하는 새하늘 교회 교우 여러분!

진정한 자유가 무엇입니까? 이 시간 깊이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누가복음 13장을 보면 18년 동안 귀신들려 살아온 여자가 있었습니다. 

귀신들린 여자, 마음대로 돌아다닙니다. 마음대로 먹고 마음대로 뛰어다니지만, 그러나 그는 자유인이 아닙니다. 정신이 자유롭지 못합니다. 

본인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도 모르는, 그러한 속박 속에 살아가고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가장 무서운 노예 상태는 죄의 노예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도 요한복음 8:34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1945년 8월 15일, 일본인들의 속박에서 벗어났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72년이라는 자유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해방이 되자 우리는 비로소 자유라는 말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처음에는 정치적 자유만 있으면 다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천만에요, 굶어보니까 그것은 자유가 아니었습니다. 

경제적 자유가 없으면 정치적 자유도 소용없음을 알았습니다. 정치적 자유, 경제적 자유 그리고 사상적인 자유 다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참자유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은 어떻게 얻어지는 것인지, 그 대가가 얼마나 큰지, 자유에 따르는 책임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비로소 배워가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도 배우고 있고, 앞으로도 더 배워야 할 것입니다. 자유의 가치를 모르면 자유를 지키지 못합니다. 

그런데 공산주의자들은 투쟁을 통해서 자유를 얻으려고 합니다. 

이것을 변증법적 유물사관이라고 합니다. 

반면에 자본주의자들은 경쟁을 통해서 자유를 얻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공부도 더 열심히, 돈도 더 많이, 집도 더 좋은 집, 자동차도 더 좋은 자동차...

이 공산주의와 자본주의가 우리에게 가르쳐준 그 투쟁과 경쟁 때문에 

우리가 궁극적으로는 속박 받게 된다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했습니다. 

참자유는 오직 하나님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자유하고, 진리를 따라 삶으로 자유합니다. 

인간은 스스로 자유할 수 없습니다. 자기가 만든 함정, 자기가 만든 굴레에서 스스로 노예가 되었으나 그 속박에서 벗어날 재간은 없습니다. 

빠져나오려고 하면 할수록 더욱더 무서운 함정 속으로 깊이 잠겨버립니다.

예레미야 2:13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

요한복음 8:36 “아들이 너희를 자유하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

예수께서 자유케 하여야, 이에 뿌리를 두지 않는 한 자유함은 없다는 말씀입니다. 어느 사회, 어느 제도의 틀에서가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께서 자유케 하시는 그 자유 안에 참자유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 말씀은 이 문제를 잘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첫째, 빛을 발하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빛, 구원의 빛, 계시의 빛이 임했습니다. 어두움 가운데에는 자유가 없습니다. 빛 안에 깨달음의 자유가 있고, 식별의 자유가 있고, 행함의 자유가 있고, 지혜의 자유가 있습니다. 어두워지면 모든 지식, 모든 능력, 모든 소유가 다 무효로 돌아갑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오늘 말씀하십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왜 빛 안에 자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이렇게 영적으로 자유할 때에 회복케 하는 자유가 있습니다. 

관계성을 회복케 하시는 것입니다. 

4절 “네 눈을 들어 사방을 보라 무리가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흩어졌던 가족이 다시 모입니다. 다시 만나게 되고 반가워하게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유를 찾겠다고 집을 나가버립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리석은 판단입니다. 자유는 가출이 아닙니다.나가는 순간, 고독의 속박에 매이고, 

허무의 속박에 매이게 되는 것입니다. 

고독은 자유가 아닙니다. 분열은 자유가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오늘 이렇게 말씀합니다. 영혼이 자유할 때에 이산 가족이 다시 모이게 되고 다시 사랑하게 되고 다시 반가워하게 된다고 말입니다. 

증오하는 곳에는 자유가 없습니다. 사랑하고서야 자유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샬롬, 그 평화 속에 자유가 있는 것입니다. 

크리스찬들은 사람 만나는 것이 반가워야 합니다. 

자꾸 도망하고, 되도록 안 만나려 하고, 그래서는 안됩니다. 

내가 참으로 자유하다면 사람 만나는 것이 반가운 법입니다. 

반대로 사람을 만나다 보니 자유하게 됩니다. 

 

본문은 또 풍부함을 말합니다. 자유할 때 풍부해진다고 합니다. 5절 

“이는 바다의 부가 네게로 돌아오며 이방 나라들의 재물이 네게로 옴이라”

여러분, 참 이상한 것이 있습니다. 세계 여러 나라를 볼 때 천연자원이 풍부한 나라가 잘 살 것 같은데 실은 대체로 못삽니다. 

베네수엘라, 세계 제 1의 산유국, 카자흐스탄 니켈, 망간, 구리

잘 살고 못 사는 것은 결코 천연자원의 문제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신앙이 바로 될 때에 교육이 바로 되고, 사상이 바로 되고, 나아가 풍부함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유케 하시는 것은 마침내 물질에까지도 풍부하고 여유있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도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유케 하시는 마지막 단계는 “영화롭게 하리라”는 것입니다. 언제? 시편 50:15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이것이 바로 영화롭게 하시는 역사입니다. 

하나님께서 영화롭게 하시는 역사, 이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없습니다. 

 

사랑하는 새하늘 교회 교우 여러분!

예루살렘 유대인학살기념관 전시실에 이런 글귀가 붙어 있다고 합니다. 

“망각은 파멸로 이끌지만, 기억은 구원의 비결이다”

과거의 뼈아픈 역사를 기억하면 흥하고, 망각하면 망한다는 겁니다. 

오늘 우리도 광복 72주년을 보내면서 냉정한 반성과 다짐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제는 이만 이 비참한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야 할 때입니다. 

그러나 투쟁으로도 아니요 경쟁으로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깊이 감사할 때에, 바로 거기에 자유함이 있고 행복이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3:17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자유의 뜻을 모르는 사람은 자유할 수 없습니다.

받은 바 자유를 하나님께 반납할 때, 그리하여 하나님께 매일 때에 오히려 자유함이 있는 것입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광복 72주년을 맞이하여 우리나라를 일본의 압제로부터 해방시켜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그 하나님의 은혜에 매임으로 세상이 주지 못하는 

참자유를 누리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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