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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게 구하시는 것 (미가 6: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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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rtFragment-->미가는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시대에 활동한 예언자로서 

호세아, 아모스, 이사야와 동시대의 예언자.

그 셋을 집대성한 예언자라고 하는데 특별히 8절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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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은 우리나라와 여러 가지 면에서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지정학적으로도 그렇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여러 측면에서 유사한 점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강대국들 사이에 낀 조그마한 나라로서 수없이 외침을 겪은 그 수난사가 비슷합니다. 

오늘의 말씀이 기록된 주전 8세기 무렵에도 북쪽에는 앗수르가 버티고 있고, 남쪽에는 애굽이 호시탐탐 침략의 기회를 엿보고 있었습니다.

강대국들 사이에 끼여서 툭하면 이 나라가 쳐들어와 짓밟고 저 나라가 들이닥쳐 노략질하고 늑탈하였습니다. 

그래서 오늘날도 본국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보다 세계 곳곳에 흩어져 살고 있는 유대인의 비율이 1:4 정도 된다고 합니다.  

오늘의 말씀을 기록한 미가 선지자가 활동하던 그때에도 남북 이스라엘은 안팎으로 다 무너져 가는 실로 어려운 형편에 있었습니다. 

밖으로는 시시각각 앗수르와 애굽의 침략의 위협이 다가드는데, 

안으로는 온갖 사회적인 부패와 부조리가 만연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이제 앗수르와 애굽 양쪽의 비위를 맞춤으로 이 위기를 벗어나고자 합니다. 그래서 나라는 앗수르에 속한 사람, 애굽에 속한 사람,  각자의 정치적인 배경을 업고 날뛰는 자들이 들끓었습니다. 

그런가하면 아무데도 속하지 말고 마지막 한 사람이 남을 때까지 싸워서라도 독립을 지키자는 극렬파도 있었습니다. 

이같은 정치적 혼란상을 보면서 미가 선지자는 외칩니다. 

‘앗수르를 두려워하지 말아라, 애굽을 의지하지 말아라,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라. 하나님 앞에만 바로 서면 이 나라는 지켜질 것이다!’

이것이 미가 선지자의 메시지였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 하나님만 온전히 의지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지켜주시는 것인데, 우리는 자꾸만 다른 것을 봅니다. 

8절의 마지막이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겸손이란 하나님께 모든 것을 의탁하는 것. 

2주 전에 무릎을 다쳐서 월요일에 병원감. 

수요일 밤에 안수 기도. 목요일부터 나아짐. 

     

혼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상인들이 저울눈을 속이고 관리들은 부패했습니다. 

종교는 거짓 선지자들이 설치는가 하면 제사장들은 형편없이 타락했습니다. 

미가 3:5 “내 백성을 유혹하는 선지자들은 이에 물 것이 있으면 평강을 외치나 그 입에 무엇을 채워주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전쟁을 준비하는도다”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회개 없는 제사만 성행하였습니다. 

하나님 앞에 이 제물을 드림으로 복을 받을 것이다, 많이 드렸으니 많이 주실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종교가 타락할 때에 돈 놓고 돈 먹기를 가르칩니다. 미가와 동시대에 활약한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외칩니다. 

이사야 1:13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회개는 없이 거창한 제사만 드립니다. 게다가 자신의 부정한 행위와 죄악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보상 심리의 발로로 더 열심히 제사를 드립니다. 이렇게 해서 자신의 그릇됨을 덮으려고 합니다. 

종교 개혁 당시의 카톨릭, 그래서 종교개혁. 

그 모두가 종교를 빙자해서 자기의 이익을 취하려는 자들. 

더욱이 오늘 말씀 가운데는 이교적인 제사 의식까지 빌어 와 하나님 앞에 제사 드리는 그런 망령된 모습마저 나타나고 있습니다. 

7절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로 말미암아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그 당시 주변 국가들에서는 맏아들을 끓는 기름 가마 속에 던져 넣는 우상숭배의 극치의 모습까지 보이고 있었습니다. 

이에 대한 대답이 오늘 읽은 8절의 말씀입니다.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이 말씀이야말로 이사야, 호세아, 아모스 세 선지자들의 외침을 요약한 것입니다. 주전 8세기 당시의 선지자들의 메시지를 종합해보면, 아모스는 정의를 외쳤고, 호세아는 무조건적인 하나님의 사랑을 외쳤으며, 이사야는 거룩을 외쳤고 미가는 의와 공의를 행하여 하나님과 동행하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호세아 6:6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아모스 5:24 “오직 정의를 물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여러분, 잘 믿는 사람이란 어떤 사람입니까? 

열심히 기도하는 것, 좋은 일입니다. 열심히 찬송하는 것도 좋습니다. 

또 봉사하는 것, 헌금 열심히 하는 것, 다 좋은 일입니다마는 

잘 믿느냐 못 믿느냐 하는 것은 그가 가정과 직장의 일원으로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거기서부터 평가받아야 합니다.  

남에게서 신뢰받고 존경받을 만한 신앙적 인격이 되었을 때에 그 사람이 예수 잘 믿는 사람입니다. 사람됨이 남들에게 예수 믿을 마음을 불러 일으킬 수 있어야 예수 잘 믿는 사람입니다. “저 사람을 보니 나도 예수 믿어야 되겠다” 이런 마음이 우러나게 해 준다면 그 사람이 참 믿음의 사람입니다. 

“저 사람을 보면 교회 갈 마음이 없어져” 남들이 이렇게 본다면. 

교회에 나오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혀 귀담아 듣지 않는 사람에게 예배가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내면적인 성화가 있을 때에, 그것이 진정한 예배가 아니겠습니까?

어저께까지 몸을 팔았지만 이제는 굶어죽는 한이 있어도 몸 팔지 않겠습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믿는다면. 

     

종교개혁자 캘빈은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예배를 통하여 우리들의 

회개를 보기 원한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회개와 변화에 예배의 진정한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는 미국과 중국이라는 강대국 사이에 끼어서 어쩔 줄 몰라.

근본적인 해결책은 하나님의 말씀뿐입니다. 

오늘 미가서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소원을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먼저 정의를 행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의를 외치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의를 행하라는 말씀입니다. 

본문을 좀 더 읽어 나가면 10, 11 “악인의 집에 아직도 불의한 재물이 있느냐 축소시킨 가증한 에바가 있느냐, 내가 만일 부정한 저울을 썼거나 주머니에 거짓 저울추를 두었으면 깨끗하겠느냐”

저울이라는 것은 공의의 상징입니다. 그래서 우리 나라 법원에 가면 조각상 저울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저울을 달 때에 다른 추를 가지고 있다가  바꿔치기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 나라 최저 임금 문제도 임금이 작아서만이 문제가 아니라 경제정의가 지켜지지 않아서 그런겁니다.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사정이 어려워서 다같이 배고픈 걸 참자고 하는 것이라면 얼마든지 참아낼 수 있습니다. IMF때 그러지 않았습니까? 정의가 지켜지지 않으니 사람들이 기분나빠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또 ‘인자를 사랑하며’ ‘인자’란 히브리어로 ‘헤세드’입니다. 

‘헤세드’는 인애라고도 표현되는데 이것은 절대적인 사랑이요 불변하는 사랑입니다. 탕자의 아버지가 아들을 그리워하고 기다리는 그런 사랑입니다. 

오래오래 기다려 주는 것입니다. 

너그럽게 너그럽게 용서하고 품어주는 사랑입니다. 

     

낮엔 해처럼 밤엔 달처럼.

     

이제 8절 말씀은 이렇게 맺고 있습니다.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겸손’의 뜻이 무엇입니까? 

오늘의 본문을 조금 더 읽어보면 9절 하반절에 “지혜는 주의 이름을 경외함이니라”고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겸손이란 하나님의 징계를 순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징계에 대하여 우리는 기쁜 마음으로 수락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달갑게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회개가 하나님 앞에서 ‘죄송합니다’하는 것이 회개입니다. 

또한 자신에 대해서도 늘 부족하다는 마음을 지녀서 듣는 자세, 배우는 자세, 온유한 자세로 임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새하늘 교회 교우 여러분!

우리는 부를 바라지만 하나님께서는 의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번영을 이야기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겸손을 바라십니다.

우리는 강한 힘을 바라지만 하나님께서는 온유를 바라십니다.

예레미야 5:1을 보면 “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만 있으면 인격이 굳게 서고 가정이 굳게 서고 사업이 굳게 서고 나라가 바로 설 것입니다. 

이런 주님의 크신 은혜가 함께 하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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