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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을 듣고 (마가복음 5:2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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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의 기도에 힘입어 경기도 이천에 위치한 에덴낙원에서 있었던 

곽선희 목사님과의 교리적 설교 세미나를 잘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남은 10년 동안의 목회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들을 많이 풀고 

돌아 왔습니다. 교회의 으뜸 의무, 소명은 예수를 믿게 해서 하늘 나라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면서 이 땅의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야. 

구원받아야지 율법 준수할 수 있다. 출애굽한 후 십계명이 주어졌다. 

무슨 말씀이냐하면 구원받지 않으면 율법의 의미를 깨닫지 못함. 

2026년이 제 은퇴. 그 전까지는 하나님께 충성하면서 목회하기로 결단.

제 묻힐 곳은 에덴 낙원. 많은 교회들이 자기 교인들만. 납골당.

 

성경, 특히 복음서들을 보면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면 구원을 받게 되고, 병이 낫게 되고, 새로운 삶이 시작됩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말 그대로 이적들입니다. 

그런데 그런 이적들을 소개하고 있는 기사들마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듣는다는 말과 믿는다는 말입니다. 

즉 ‘듣고’라는 단어와 ‘믿고’라는 단어가 반드시 등장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로마서 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오늘 본문에서 우리들은 불쌍하고 고독한 한 여인을 만나게 됩니다. 

이방인이었던 이 여인은 혈루증이라는 병을 12년 동안 앓고 있었습니다. 

이방인의 의미, 선민의식이 확실했던 유대인들. 

이 혈루증이 무슨 병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의학자들에 따르면 

부인병이었으리라고 짐작을 합니다. 

12년 긴 세월입니다. 

 

그런데 병을 앓고 있어도 고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만 있다면 얼마든지 견딜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인에게는 그 병이 나을 것이라는 희망이 거의 없었습니다. 본문은 그녀가 많은 의원들로부터 치료 받는 중에 낫기는 커녕 오히려 병은 더욱 위중해 졌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가진 재산마저 허비한 비참한 형편이 된 것입니다. 

그야말로 극히 절망적인 상황이었습니다.

여인의 입장은 말 그대로 철저히 버려진 존재였습니다.

이 여인이 예수의 소문을 듣게 됩니다. “예수의 소문을 듣고”

바로 그 소문을 들은 것이 여인의 운명을 완전히 바꿔 놓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여인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과 노력을 다 동원했지만 병을 고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소문이 들려오는데 나사렛의 예수라는 사람이 장님의 눈을 뜨게 했고 문둥병도 고치셨으며 죽은 자도 살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소문의 주인공이 자기가 살고 있는 마을에 온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라고?”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그 소문을 그대로 믿고 그리로 달려온 것입니다. 

이 여인의 훌륭한 점은 듣고 예수께로 나아왔다는 것입니다. 

의심하려고 든다면 ‘말도 안된다. 어떻게 죽은 자를 살릴 수 있나?’하고 반문할 수도 있고, 설사 그런 병을 다 고쳤다고 해도 나같은 혈루증은 고친 일이 없으니 나는 안 될 것이라고 마음을 먹으면 예수께로 나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예수께서 저들에게 은혜를 베푸신 것처럼 나에게도 은혜를 베푸실 것을 믿었습니다. 은혜를 믿었다, 은혜가 믿어졌다. 

많은 사람들이 은혜를 받고 구원을 얻었다는 간증을 들으면서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남의 이야기이지 내게는 결코 그럴 수 없다고 생각들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은혜가 임하는 것을 보았으면 내게도 있을 것으로 믿어야 합니다. 믿고 사모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의 문제는 내 문제만은 예외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내 문제는 너무 지독해서 예수님도 어쩌지를 못할거야 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5:9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

내 문제는 곧 다른 사람의 문제요, 다른 사람도 나와 같은 고민을 가지고 있음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들이 믿음으로 해결을 보았으면 나도 믿음으로 해결될 수 있음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여인은 다른 사람에게서 일어났던 기적을 자신에게도 현실적으로 가능하다고 믿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따르는 많은 무리들 속에 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 여자가 지금 예수님을 따르는 수많은 군중 속에 끼여 있습니다만은 그에게 관심을 보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사람이 많다 보면 그만큼 개인은 무시되기도 하고 또한 서로서로 관심을 갖지 않아 개개인의 소중함이나 소원은 묻혀 버리기가 쉽습니다. 

이와 같은 무관심 속에 있기에 완전히 소외된 형편에서 그 여자는 지금 다가서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도 두 가지 문제가 그 여자를 난감하게 하였습니다. 

첫째는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옹위하고 있기에 환자 된 몸으로 이것을 

뚫고 나아가기에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들에게도 주님께 나아옴에 있어 방해되는 외적인 여건들이 많이 있습니다. 날이 좋아서, 그린 필드, 결혼식, 

마귀는 성도가 예배드리지 못하도록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공격한다. 마귀가 목표로 하는 공격 대상 일순위가 바로 예배입니다.

어떤 상황에 처했든지 간에 아무리 어렵고 밑바닥 생활을 한다 해도 예배가 생명임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갈까 말까? 

우리가 흔히 안식일을 지킨다. 주일 성수한다. 안식일이 나를 지켜준다. 

십일조가 내 경제 생활을 지켜준다. 돈 놓고 돈 먹기.

 

둘째는 이 여인 자신의 문제입니다. 예수님을 찾아온 다른 사람들은 자기들의 병명을 말하며 그들의 환부를 보일 수 있었습니다. 

장님은 ‘눈을 뜨게 해 주세요’ 문둥이는 ‘내 몸을 깨끗하게 해 주세요’라고 자기의 사정을 주님 앞에 내어 놓고 고쳐주기를 청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지금 부끄러운 병에 걸려 있습니다. 

특히 여인으로서 많은 사람 앞에 내놓을 수 없는 숨겨진 병이기에 남다른 괴로움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은 이 여인에게서 바로 나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말못하는 자기 나름의 내적인 고민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나름대로 아무에게도 말 못할 자기들만의 고민이 있습니다.

 

이 여인은 참으로 고독한 여인이었습니다. 

사람의 성숙함은 그가 혼자 있을 때 무엇을 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영적으로 강한 사람들의 특징은 홀로 있는 그 시간에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하나님과 대화를 합니다. 하나님과의 대화가 그 사람을 강하게 합니다.

반면에 영적으로 약한 사람들의 특징은 혼자 있는 것을 못 견뎌합니다. 

밤낮 사람들과 어울려서 지냅니다. 계속해서 무리 속에 머물러 있으니 묵상할 시간이 없고 다름 사람들의 생각에 휩쓸려서 부화뇌동하며 살아가게. 

 

이제 이 여인이 예수님께 나옵니다. 

이 불행 속에서 한 가닥 희망을 가지고 나옵니다. 

예수님만은 내 사정을 아실 것이라고, 그 분에게만은 가능할 것이라고, 

이제 이 여인은 드디어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게 됩니다. 자기의 부족을 

느끼지만 그래도 주님을 만지기만 하면 된다는 확고한 믿음이 있습니다. 

그 순간 병에서 낫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렇게도 고통스럽던 몸이 순간적으로 깨끗해지는 것을 직접 체험할 수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언제나 이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에게 열려 있고, 

또한 이런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게 됩니다.  

 

괴로울 때 주님의 얼굴 보라

 

예수님께서 이 여자를 찾으십니다. 나를 만진 자가 있다 하십니다. 

옆에 있는 제자가 한 마디 합니다. 31절 “아니,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모여서 서로 밀고 밀치니, 손이 좀 닿을 수도 있고 옷자락이 스칠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것을 가지고 뭘 그렇게 말씀하십니까?”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은 그게 아닙니다. 

가며 오며 스쳤다는 것이 아닙니다.

어쩌다 만나고, 어쩌다 옷자락에 손이 닿았다는 것이 아니라, 단적으로 말하면 믿음으로 나를 만진 사람, 종말론적으로 나를 만진 사람이 있다 하심. 

일생에 단 한 번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예수를 만진 바로 그 사람을 찾으시는 것입니다. 

오늘도 여러분이 교회에 나왔습니다. 그러나 내 일생에 처음처럼, 마지막처럼, 종말론적으로 경건하게 이 자리에 앉았을 때에 주님께서 그를 만나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응답이 오늘 여러분들의 예배입니다. 

우연히 교회에 나온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이 여인은 절박하게, 종말론적인 믿음을 가지고 주님을 만졌습니다. 

그때 그는 예수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됩니다. 당장에 몸이 깨끗해짐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자 이제는 부끄러움이 사라집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 앞에서 고백을 합니다. 나는 12년 동안 이렇게 산 사람입니다. 그런데 예수를 만나고 나니 내가 이렇게 깨끗해 졌습니다. 모든 간증이 내용이 이것 아닙니까? 그래서 이제는 부끄러움이 없이 당당하게 자신의 과거를 고백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새하늘 교회 교우 여러분!

교회에 와서 말씀을 듣고 단 한 번에 변화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수십 년을 다녀도 변함없이 자리만 채우고 왔다 갔다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차이가 어디서 비롯됩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그 말씀을 믿고 

그 말씀대로 행하는 사람은 단 한 번에도 변화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그 말씀대로 행하지 않는 사람은 결코 변할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믿는 자는 구원을 받게 되고 병나음의 기적까지 선물로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주의 옷자락을 만지는 이 여인과 같은 깨끗하고 겸손한 믿음으로 주님께 

다가설 때에 비로소 예수님의 음성이 들릴 것입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이런 은혜가 삶 속에서 함께 하여 이 힘들고 곤고한 세상을 이겨 나가시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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