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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사람에게 (누가복음 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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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25입니다. 무력 통일은 안됩니다. 평화 통일.

평화 통일의 선봉에 우리 한국기독교장로회.

2008년으로 기억합니다. 저희 부부는 그 해 봄에 꿈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평양 방문, 가까우면서도 가장 먼 곳,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산산조각.

이제 다시 꿈을 꾸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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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은 교회에서도 주례를 꽤 많이 했습니다.

새 생명이 탄생해서 같이 백일을 맞이한 것은 처음있는 일.

손시온 백일입니다. 참 예뻐요. 애들이라고 다 이쁘진 않습니다.

백일 떡 준비

 

김미경 집사님이 두 번의 컨퍼런스에 참석했습니다.

존 파이퍼의 desiring God와 마리아 행전, 참관기를 듣겠습니다.

 

예수님의 탄생기사는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기록되어 있는데

누가복음에만 예수님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성전에서 정결예식을 드릴 때 시므온과 안나에게 축복받은 이야기, 그리고 예수님이 열두 살 때 부모님과 함께 성전에 갔던 이야기가 1, 2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마지막이 오늘 읽은 본문 52절입니다.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이 말씀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자라면서 지혜와 키가 함께 자란 것처럼 하나님과 사람에게 사랑스러운 분으로 성장했다는 것입니다. 아이의 성장은 지혜와 키, 이 두 가지가 함께 이루어져야 합니다. 두 가지가 함께 자라야 정상적이고 건강한 성장이 됩니다.

지적능력은 커 가는데 키가 안자라면 어떻게 됩니까? 바로 저성장증이라고 부르는 장애입니다. 반대로 키는 커 가는데 지적 능력은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발달장애’, 저능아.

두 가지 가운데 어느 한쪽이라도 안 커주면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똑같은 원리가 우리 신앙의 성장에도 적용됩니다.

즉 잘 자란 아이가 하나님과 사람에게 사랑받는 존재가 되어 가듯이

참된 신앙인은 하나님에게 사랑받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동시에 사람에게도 사랑받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226아이 사무엘이 점점 자라매 여호와와 사람들에게

은총을 더욱 받더라

바로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셨다는 말씀과 너무도 똑같습니다. 이렇게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들은

다 예수님처럼 하나님과 사람에게 함께 사랑을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자녀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더구나 이 선물은 단지 누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고 막중한 책임이 따르는 선물입니다.

부모가 지는 책임 중에서 가장 큰 것은 자녀들을 양육하는 것입니다.

한 사람의 성숙한 인격을 가진 사회인으로 키워내는 것.

? 어린이들에게는 모든 가능성이 다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자녀 교육열로 치자면 한국인들을 따라올 민족이 없을 것입니다.

맹모삼천이란 고사가 무색할 정도로 극성스럽습니다.

오죽하면 인사청문회를 하면 안 걸리는 후보들이 없을 정도입니다.

그런데도 교육이 제 구실을 다하지 못하는 것은 교육 당국에도 책임이 있지만, 그 보다는 학부모들의 책임이 더 크다고 봅니다. 다른 아이들보다 내 자식이 더 공부를 잘해서 좋은 학교에 진학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경쟁적으로 사교육을 시키다 보니 오늘과 같이 수습하기 어려운 상황이 된 것입니다.

미국 어느 사립학교에서는 아주 한국인들의 조건부 입학.

외국 사람들은 학교에 기부, 한국 사람들은 학원에 기부.

어른들의 잘못으로 인한 최대의 피해자는 어린 자녀들입니다.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학교에서, 이 학원 저 학원을 찾아다니면서 고생하는 것을 보면 너무나 딱합니다.

그러면 그렇게 공부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하면 일류 대학에 들어가서 이 사회에서 행세하고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공부를 많이 할수록, 일류 학교를 나올수록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사람이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요즘 우리사회를 혼란하게 만드는 사람들은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무식한 사람들이 아니고 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 그것도 일류대를 나오고 외국 유학을 다녀온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애국심.

더불어 사는 삶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

잠언 910절에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고 했습니다.

지혜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아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시편 141절에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일본의 교육, 몇일 전에 비행기를 타고 나오는데.

그런데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반성과 회개가 없어요.

그런즉 여러분의 자녀들이 지혜로운 사람이 되기 원하신다면 먼저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을 가르치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 섬기는 일을 그 어떤 일보다 우선적으로 생각하도록 가르치십시오. 공부보다 하나님 섬기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자녀들에게 심어주십시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 자녀들에게 지혜를 주셔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하고 그토록 소중히 여기는 하나님이 나를 통해 영광 받지 못하시고 도리어 내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결과가 오게 됩니다. 내 주변 사람들이, 특히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이 저 사람 왜 저래? 예수 믿는다며?” 하는 순간 이미 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인정받고 사랑받는 만큼 크리스천으로서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과 칭찬을 받고 사랑을 받을 때 그들은 저 사람 참 괜찮아, 믿을만해. 그런데 저 사람 예수 믿는다며? 교회 다닌다며?” 하게 되고 그 순간 진짜 영광은 우리 하나님이 받게 되신다는 것입니다. 정말 중요한 사실입니다.

 

사람을 가리켜 사회적인 존재라고 합니다. 이 말과 같이, 사람은 외딴 곳에서 혼자 살 수 없고 많은 사람과 직간접적으로 관련을 맺고 살아갑니다.

이렇게 볼 때, 다른 사람들의 존재가 매우 소중함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은 서로서로 어떤 식으로든 도움을 주고받으면서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나만 잘 살겠다고 남을 짓밟는 것은 결과적으로 나에게도 손해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나도 살고 너도 사는 방법을 찾아야지 너는 죽어도 나만 살면 된다고 하면 모두에게 불행한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나의 권리가 중요하면 다른 사람의 권리도 중요함을 인정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행복하게 사는 것이 어떤 삶인지를 새롭게 규명해야 합니다.

행복한 삶이란 다른 사람들 위에 군림해서 지배하는 삶이 아니라 서로서로 돕고 협력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자녀들에게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의 자녀들 가운데서도 정치가도 나오고, 경제인도 나오고, 군인도 나오고, 학자도 나와야 합니다. 사회 각 영역에서 일할 훌륭한 인물들이 나와야 합니다. 그러나 어떤 위치에 설지라도 예수님의 정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웃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 이웃을 행복하게 해 주려는 사람이 되도록 어려서부터 가르쳐야 합니다. 그렇게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는 마음으로 살아갈 때 우리의 자녀들 역시 이웃으로부터 사랑 받고 섬김을 받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새하늘 교회 교우 여러분!

저는 여기 모인 모든 분들이 예수님을 본받아 영육간에 같이 강건해지고

신앙이 성숙해 지시기를 바랍니다. 참된 신앙을 가지고 자녀들을 교육하여

복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게 되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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