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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 (이사야 60:1-5)

목사님 0 930

  

 

 

       올해는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서 벗어나 해방이 된지 77년이 

 되는 해이고, 내일은 일흔 일곱번째 맞이하는 광복절입니다.

광복절은 우리 민족이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서 벗어난 것을 기념하고, 

대한 민국 정부 수립을 경축하는 날입니다.

 

2차 세계대전 중인 1943년 11월 미국, 영국, 중국의 세 나라가 이집트의 

카이로에 모여 적당한 시기에 한국을 해방, 독립시킨다는 ‘카이로 선언’이 발표되었고 1945년 7월 미, 영, 소 참가의 베를린 인근의 ‘포츠담 선언’으로 한국을 독립시킨다는 것이 재확인되었습니다. 

그 후 1945년 8월 15일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 폭탄이 떨어짐으로 일본은 

무조건적으로 항복하였고 그 결과 우리나라는 36년간의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 통치 하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광복’(光復)이란 빛을 회복한다는 말입니다. 

어둠 속에 갇혀 있다가 다시 빛을 본다는 뜻입니다.

우리 민족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성도 빼앗기고 언어도 빼앗겼습니다. 

그 당시 우리 민족은 일본 사람들에게 무시를 받으면서 노예와 다름없는 

생활을 하였던 것이 일제 36년의 생활이었습니다. 

일본은 말로는 일본과 조선은 하나, 내선일체라고 하였지만 

실제로는 우리 민족을 식민지 노예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많은 젊은이들을 일본 땅으로 데리고 가서 힘든 일들을 다 시켰습니다. 강제 징용, 그런데 지금도 일본의 주장, 노동계약서가 있다.

80년도에 전두환이 만든 삼청교육대, 봉급지급, 식사비, 치약, 치솔

어디 그뿐입니까? 수많은 여인들을 일본군의 위안부로 끌고 갔습니다. 

위안부 문제도 돈을 받았기 때문에 매춘부라고.  

게다가 그들은 지금도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일본의 무서운 점은 치밀하게 준비를 한다는 점입니다. 

외교를 얼마나 잘하는지, 1907년 네덜란드의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이준, 이상설, 이위종 들어가보지도 못하고.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사람을 쓰시기 전에 하는 일이 있습니다. 

따로 떼어놓는 것입니다. 특정한 기간 동안, 특정한 장소에 떨어져 있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엘리야를 부르자마자 일을 주신 것이 아니라 세상을 떠나게 만듭니다. 그래서 보낸 곳이 그릿 시냇가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그릿”이라는 말이 히브리어로 “자르다. 단절시킨다”라는 말입니다. 왜 하나님은 엘리야를 그릿 시냇가로 보내어 세상과 단절시켰을까요?

하나님의 사람은 “즉시”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모세도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기 전에 목동으로 40년. 

다윗은 사무엘의 기름 부으심이 있고 나서 11년을.

사도 바울은 아라비아 사막에서 많은 시간 고독의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 위해 우리는 “즉시”의 유혹으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혼자있는 시간이 필요한 법입니다.

 

이 여름에 엘리야처럼 그릿시냇가로 갑시다. 

올 여름, 여러분의 그릿시냇가는 어디입니까? 

“타인의 강요 때문에 독방에 들어가면 그곳은 감옥이 되고, 

내가 선택해서 감옥에 들어가면 수도원이 된다”고 합니다.  

이번 여름, 우리가 어디를 가든 영적 재충전을 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 면에서 여러분들에게 책을 하나 권할까 합니다.

“김 훈”의 하얼빈, 안중근 의사의 이토오 히로부미를 저격하던 순간과

체포 후의 재판 과정을 대한의 남아답게 담담하게 당당하게 잘 표현해 

놓았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민족주의에 빠지는 것은 경계.

물론 일본의 과오를 무조건 덮는 것은 더더욱 안되고요.

 

우리는 1945년 8월 15일, 일본인들의 속박에서 벗어났습니다. 

해방이 되자 우리는 비로소 자유라는 말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77년이라는 기간동안 자유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처음에는 정치적 자유만 있으면 다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천만에요, 굶어보니까 그것은 자유가 아니었습니다. 

경제적 자유가 없으면 정치적 자유도 소용없음을 알았습니다. 정치적 자유, 경제적 자유 그리고 사상적인 자유 다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참자유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은 어떻게 얻어지는 것인지, 

그 대가가 얼마나 큰지, 자유에 따르는 책임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비로소 배워가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도 배우고 있고, 앞으로도 더 배워야 할 것입니다. 자유의 가치를 모르면 자유를 지키지 못합니다. 

그런데 공산주의자들은 투쟁을 통해서 자유를 얻으려고 합니다. 

이것을 변증법적 유물사관이라고 합니다. 

반면에 자본주의자들은 경쟁을 통해서 자유를 얻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공부도 더 열심히, 돈도 더 많이, 집도 더 좋은 집, 

특히 요즈음 젊은이들은 자동차도 더 좋은 자동차...

이 공산주의와 자본주의가 우리에게 가르쳐준 그 투쟁과 경쟁 때문에 

우리가 궁극적으로는 속박 받게 된다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했습니다. 

참 자유는 오직 하나님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자유하고, 진리를 따라 삶으로 자유합니다. 

인간은 스스로 자유할 수 없습니다. 자기가 만든 함정, 자기가 만든 굴레에서 스스로 노예가 되었으나 그 속박에서 벗어날 재간은 없습니다. 

빠져나오려고 하면 할수록 더욱더 무서운 함정 속으로 깊이 잠겨버립니다.

예레미야 2:13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

 

요한복음 8:36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

예수께서 자유케 하여야, 예수님에 뿌리를 두지 않는 한 자유함은 없다는 말씀입니다. 어느 사회, 어느 제도의 틀에서가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께서 자유케 하시는 그 자유 안에 참자유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 이사야서는 이 문제를 잘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첫째,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빛, 구원의 빛, 계시의 빛이 임했습니다. 

어두움 가운데에는 자유가 없습니다. 

빛 안에 깨달음의 자유가 있고, 식별의 자유가 있고,  지혜가 있습니다. 

어두워지면 모든 지식, 모든 능력, 모든 소유가 다 무효로 돌아갑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오늘 말씀하십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왜 빛 안에 자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이렇게 영적으로 자유할 때에 회복케 하는 자유가 있습니다. 

관계성을 회복케 하시는 것입니다. 

4절 “네 눈을 들어 사방을 보라 무리가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어떤 사람들은 자유를 찾겠다고 집을 나가버립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리석은 판단입니다. 자유는 가출이 아닙니다. 

나가는 순간, 고독의 속박에 매이고, 허무의 속박에 매이게 되는 것입니다. 

고독은 자유가 아닙니다. 분열은 자유가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오늘 이렇게 말씀합니다. 

영혼이 자유할 때에 다시 모이게 되고 다시 사랑하게 되고 다시 반가워하게 된다고 말입니다. 증오하는 곳에는 자유가 없습니다. 

사랑하고서야 자유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샬롬, 그 평화 속에 자유가 있는 것입니다. 

크리스찬들은 사람 만나는 것이 반가워야 합니다. 

자꾸 도망하고, 되도록 안 만나려 하고, 그래서는 안됩니다. 

내가 참으로 자유하다면 사람 만나는 것이 반가운 법입니다. 

그리고 사람을 만나다 보니 자유하게 됩니다. 

 

본문은 또 풍부함을 말합니다. 자유할 때 풍부해진다고 합니다. 5절 

“바다의 부가 네게로 돌아오며 이방 나라들의 재물이 네게로 옴이라”

여러분, 참 이상한 것이 있습니다. 세계 여러 나라를 볼 때 천연자원이 풍부한 나라가 잘 살 것 같은데 실은 대체로 못삽니다. 

베네수엘라, 세계 제 1의 산유국, 카자흐스탄 니켈, 망간, 구리

잘 살고 못 사는 것은 결코 천연자원의 문제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유케 하시는 것은 마침내 물질에까지도 풍부하고 여유있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도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유케 하시는 마지막 단계는 “영화롭게 하리라”는 것입니다. 언제? 시편 50:15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이것이 바로 영화롭게 하시는 역사입니다. 

하나님께서 영화롭게 하시는 역사, 이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없습니다. 

 

사랑하는 새하늘 교회 교우 여러분!

예루살렘 유대인학살기념관 전시실에 이런 글귀가 붙어 있다고 합니다. 

“망각은 파멸로 이끌지만, 기억은 구원의 비결이다”

과거의 뼈아픈 역사를 기억하면 흥하고, 망각하면 망한다는 겁니다. 

오늘 우리도 광복 77년을 보내면서 냉정한 반성과 다짐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제는 이만 이 비참한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야 할 때입니다. 

그러나 투쟁으로도 아니요 경쟁으로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깊이 감사할 때에, 바로 거기에 자유함이 있고 행복이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3:17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광복 77주년을 맞이하여 우리나라를 일본의 압제로부터 해방시켜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그 하나님의 은혜에 매임으로 세상이 주지 못하는 

참 자유를 누리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태복음 24장 ~ 마가복음 2장

24장 말세의 징조와 재림에 대한 예언들

1-2절 예루살렘 성전 파괴 예언

3-14절 종말의 여러 징조들

15-28절 마지막 대환난 

15절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로마 군대가 예루살렘을 멸망시키고 성전을 파괴시킨 사건

29-31절 그리스도의 재림과 관련된 상황

32-51절 그리스도의 재림 시기에 관한 교훈

 

25장 종말을 대비하는 성도의 자세를 비유하는 세 비유

1-13절 열 처녀 비유

14-30절 달란트 비유

31-46절 양과 염소의 비유

 

26장 가룟 유다의 배신 및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 및 예수의 체포와 심문

 

27장 예수의 십자가 수난 전*후의 사건들

1-10절 가룟 유다의 자살

11-26절 빌라도의 예수 심문

27-31절 조롱받으시는 예수님

32-49절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50-56절 예수님의 운명

57-66절 예수님의 장례

 

28장 주님의 부활과 최후의 명령

1-10절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11-15절 부활에 대한 거짓 소문

16-20절 지상 명령

 

마가복음

마가는 베드로의 제자

1장 세례 요한의 증언 및 예수님의 공생애 개시와 갈릴릴 초기 사역

1-8절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는 세례 요한의 사역

9-13절 공생애 사역을 준비하시는 예수님

14-20절 공생애의 시작

21-28절 가버나움 회당에서의 설교와 축사

29-45절 각종 병자들을 고치신 예수님

 

2장 중풍 병자의 치유, 레위를 부르시다, 금식 논쟁과 안식일 논쟁

1-12절 중풍 병자 치유 사건

13-17절 세리 레위를 제자로 부르시다

18-22절 금식 논쟁

23-28절 안식일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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