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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 달, 5월(사사기 2:10-15)

목사님 0 917

   

 

 

    계절의 여왕인 찬란한 아름다운 5월입니다. 특별히 오늘은 주일인 1일입니다.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5월 5일은 어린이날이고, 8일은 어버이날입니다.

15일은 스승의 날, 21일은 5월 21일은 부부의 날입니다.  

21일을 부부의 날로 정한 이유는 21이라는 숫자가 ‘둘(2)이 하나(1)가 되는 날’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하여 21일을 부부의 날로 정한 것입니다. 부부는 둘(2)이지만 하나(1)가 되어야 하고 계속 둘(2)로서 존재한다면  

행복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시대는 예전과 전혀 다른 새로운 질서를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다 변해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가정의 영적 질서입니다. 

세상의 불행의 시작은 가정의 파괴에서부터 일어납니다. 

그래서 마귀는 가정을 파괴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이 시대의 가장 무서운 위기는 가정의 붕괴입니다. 

 

 기독교는 가정적인 종교입니다. 창세기의 시작을 보면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만물을 창조하신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창조 이야기의 클라이맥스는 하나님께서 한 남자와 한 여자를 만드시고 두 사람을 한 가정 되게 하시는 이야기입니다.  

이와 같이 창조 역사의 마지막은 가정을 이루는 데 핵심을 두고 전개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정 생활에서도 부부간의 하나됨이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행복을 위하여 주신 최고의 선물이 있다면 그것은 가정일 것입니다. 가정은 힘을 충족 받는 곳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회사나 학교나 국가를 설립하신 적이 없으십니다. 하나님이 친히 만든 공동체는 가정과 교회 두 곳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 교회와 가정은 그냥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아담의 갈비뼈가 뽑혀진 다음에야 가정이 만들어지게 되었고,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 후에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신명기 6장 4절 이하 본문을 보면 “들으라.”는 말이 있는데 히브리어로는 

쉐마입니다. 이 ‘쉐마, 들으라’에는 유대인들의 신앙고백이 들어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 말씀을 믿고, 외우고, 이 말씀대로 살아갑니다. 

쉐마 교육의 요약이요 성경전체의 핵심이 되는 말씀은 5절입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입니다. 

그리고 그 신앙을 누가 가르칩니까? 신앙교육의 교사는 바로 부모입니다. 

이스라엘 신앙의 교육을 가르치는 첫 번째 교사는 학교에서 가르치는 스승이 아니고 집에서 양육하는 부모입니다. 

부모를 대신할 수 있는 선생님은 없습니다. 

우리들은 일류선생님한테 보내놓으면 다 될 것으로 생각하는데 착각입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의 미래는 부모님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유명한 학원선생님, 가정교사가 자녀들의 미래를 책임질 수 없습니다

좋은 부모가 훌륭한 자녀를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시편 127:3을 보면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자식은 내 자식 이기 전에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를 경건하게 키우라고 내 가정에 맡겨 주셨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자녀에게 나는 너의 육신의 부모이지만 너의 참 아버지는 하나님이시다.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해서 그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고 가르쳐야 합니다. 

자녀에게 빠져 가지고 그것이 내 것인 것처럼 키워보려고 온갖 노력을 다 하다가 결국 하나님도 모르고 육신의 부모도 모르는 망나니가 되고 말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생각이 이미 굳어진 다음에는 교육이 별 효과가 없습니다. 

어려서부터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으로 양육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모가 교사가 되어야 합니다. 

나의 삶 전체가 자녀를 가르치는 모델이 되어야 합니다. 

 

미국 역사상 46명의 대통령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조 바이든이 46대. 

그런데 그 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대통령이라고 하는 링컨도 어머니로부터 받은 가장 위대한 유산은 성경이었다고 고백을 하고, 록펠러에게 “당신이 이런 부를 누리게 된 비결이 무엇입니까?”라고 어느 기자가 물었더니 “내가 부자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은 어머니의 신앙의 교육인데 그 중에서도 온전한 십일조를 하라. 

여러분은 자녀에게 무엇을 남기기를 원하십니까? 먼 훗날 어떤 부모로 기억되기 원하십니까? 성경에서 말하는 부모의 역할 중에 으뜸은 “자녀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자” 입니다. 

다윗의 감동적인 유언이 역대상 28장 9절에 나옵니다. 

“내 아들 솔로몬아, 너는 네 아버지의 하나님을 알고 온전한 마음과 기쁜 뜻으로 섬길지어다.” 

다윗은 자기가 섬기던 하나님을 아들 솔로몬이 알기를 원했습니다. 

 

지금 우리는 가정이 파괴되고, 윤리와 도덕이 무너지는 위기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위기의 시대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견고한 기초를 쌓아야 할 것이고 그것을 다음 세대들에게 유산으로 물려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쌓아서 다음세대들에게 유산으로 물려주어야 하는 견고한 기초, 즉 위대한 유산이 무엇인지를 본문을 통하여 함께 살펴보고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여호수아 다음 세대들이 괴로움을 당하고 있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괴로움을 받는데 있어서 하나님께서 앞장을 서시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사사기 2:15 

“그들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의 손이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시니”

이 말씀에 의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재앙을 내리시는 분이 바로 다름 

아닌 하나님이시라는 겁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신데 어떻게 

이러한 일이 벌어질 수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사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괴로움을 당한 것은 하나님께 그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자신들에게 있었습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괴로움을 당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13절에 의하면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과 아스다롯(풍요를 가져다 주는 신)을 섬겼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기게 된 이유는 하나님에 대한 무지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누구인지 잘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겨야 더 부요하고 행복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하나님이 누구인지 잘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호세아 선지자는 6:6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사람들은 행복해 지기 위해서 나름대로 열심히들 살아갑니다.

많은 사람, 아니 모든 사람들에게 있어서 제일 가는 소원은 행복하게 사는 것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소원을 이루기 위하여 사람들이 투자하는 시간과 정력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행복한 삶을 위하여 전쟁 같은 삶을 삽니다.

보다 행복한 삶을 위하여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공부를 시킵니다. 

그런데 그 과정과 양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마음껏 산과 들을 뛰어 다니며 놀아야만 할 어린 아이들이 가방을 끌고 

이 학원 저 학원을 뛰어 다녀야만 합니다. 

중, 고등학교를 들어가면 그야말로 전쟁입니다. 그와 같은 전쟁은 대학을 가도 끝나지 않고 대학을 졸업해도 끝나지 않습니다.

 

또 사람들은 보다 행복한 삶을 위하여 돈을 열심히 법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밤에 늦게 누우며 또 전쟁하듯 돈을 법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제법 돈을 많이 법니다. 

물론 돈을 벌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돈을 버는 일에 크게 성공한 사람도 막상 

알고 보면 행복하게 살지는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행복하게 사는 법’이 있는데 정작 사람들은 그것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때문에 배우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 법을 깨닫기 위하여 노력하지 않습니다. 시간을 투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법에 서툽니다. 

오히려 불행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성경에는 수도 없이 ‘행복하게 잘 사는 법’에 대한 말씀이 담겨져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그 법을 모르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답답한 일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열심히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도 

별로 다를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믿습니다.’ ‘믿습니다.’ 말은 하지만 실제로는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주고 헛된 일에 분주한 삶을 살아갑니다. 

교회 백날 다녀야 별 소용없습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말씀대로 행하여야 복을 받습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2:26 “영혼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행복하게 잘 사는 법’이 성경에 나와 있습니다. 

그 법을 성경에서 찾으시고, 몸에 익혀 그대로 한번 살아 보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 하나 하나를 경외감을 가지고 실제의 삶에 적용할 때 하나님의 축복이 반드시 주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여호와 외에 다른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고 합니다. 

원칙이 무너지지 말아야,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늘 항상 기쁘고 감사하며 행복하게 잘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데살로니가 전서 5장 16절 이하의 말씀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에 나타난 것처럼 하나님의 뜻의 첫 번째는 항상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목적은 구원입니다. 그런데 구원을 보통의 언어로 다시 정의 한다면 ‘하나님 안에서 영원히 행복하게 잘 사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구원을 위하여 우리가 치러야만 하는 대가가 있습니다. 

그것은 ‘잠시 재미있고 편하게 사는 것’을 포기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길들여져 있어서 그것을 불행한 일이라고 착각하기도 하지만 사실 그것은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은 죄로 말미암아 왜곡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과 식대로 살려하다가 잠시 어려움을 당하는 경우가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왜곡된 세상에서도 왜곡되지 않는 원칙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뜻대로 살려고 하는 자가 마침내 세상에서도 부요하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원칙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의하면 그들이 하나님에 대해서 알지 못한 이유는 10절에 의하면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신앙교육의 부재 때문이었습니다. 

즉 여호수아 시대 세대들이 자신들이 체험했던 하나님에 대해서 다음 세대들에게 교육시켜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여호수아 시대를 살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분명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자신들에게 행하신 큰 일을 눈으로 직접 보았고, 자신들을 애굽의 노예생활로부터 구원하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신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경험하였습니다.  

그러나 2, 3절에서 경고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경제적인 안정 때문에 가나안 족속들을 다 내어쫒지 않고 그들과 교류를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후손들의 신앙교육을 점점 소홀히 하게 됩니다. 

우리들도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야지 자녀들에게 교육을 시킬텐데 내가 별로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니까 제대로 교육시키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그 결과 그 후 세대들은 10절의 말씀대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들을 알지 못했고 알지 못한 관계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가증하게 

여기시는 우상숭배에 빠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이 여호와 하나님을 진노하시게 하였으며, 후세들은 본문 15절에 나타난 것처럼 그들이 어디를 가든지 여호와의 손에 의한 재앙으로 인하여 심한 괴로움을 겪게 됩니다. 그리고 그 후손들은 이러한 징계를 통하여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배우게 됩니다. 

즉 자신들에게 진정한 풍요를 가져다주는 신은 바알과 아세라(아스다롯)가 아니라 살아 계신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죄를 짓고 하나님의 징계를 받은 후에 하나님을 알아가게 된다면 이것처럼 소모적인 것은 없는 것입니다. 매 맞지 않고도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이 참으로 현명한 처세가 아니겠습니까?

보통 말들은 맞아야지 교육을 받는데 “준마는 마부의 채찍의 그림자만 보아도 달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자녀들이 준마처럼 하나님의 징계를 받기 전에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지혜로운 삶을 살게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그것은 바로 부모들의 참된 신앙교육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우리나라 부모님들의 교육열이 세계 1위임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사회에 많은 문제가 일어나는가? 그 이유는 부모님들이 자녀들의 지식교육에만 관심이 있고 인성교육에는 무관심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크리스찬 부모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자녀를 사랑하십니까? 그러면 자녀의 신앙교육을 위해 투자하십시오. 그리고 자녀에게 신앙을 유산으로 물려주십시오. 

그것이 자녀로 하여금 하나님의 복을 경험하며 살아가게 하는 지름길입니다.

자녀에 대해서 지혜로운 사람은 자녀에게 돈을 유산으로 물려주는 사람이 아니라 신앙을 물려주는 사람입니다. 

사무엘상 2:30에 보면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저는 여러분들 모두가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자들이 되어서 하나님이 존중히 여기시는 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더 나아가 여러분의 자녀가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자들이 되도록 교육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새하늘 교회 교우 여러분!

가정의 달 5월을 맞이하여 여러분의 가정을 한 번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이 행복하기를 바라십니다. 

믿음의 씨앗과 여정을 자손들에게 물려줌으로 우상이 횡행하는 이 세상 

속에서 여호와의 계명들을 기쁘게 지켜 나가시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창세기 36-42장

 

36장  1-19절 에서의 계보

      20-30절 세일 땅의 원주민 호리 족속

      31-43절 에서의 후손들이 호리 족속을 흡수하여 에돔 왕국을 건설

 

37장 야곱의 편애와 요셉의 꿈 및 애굽으로 팔려간 요셉

 

38장 유다와 며느리인 다말의 불륜과 베레스와 세라의 출생

 

39장 보디발의 가정 총무가 된 요셉에 대한 보디발 아내의 유혹과 

     요셉의 투옥 5절 

 

40장 감옥에 갇힌 바로의 두 관원장(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의 꿈과 

   요셉의 해몽  8절 

 

41장 바로의 꿈과 술 맡은 관원장의 요셉 천거, 애굽 총리가 된 요셉

 

42장 곡식을 사기 위하여 요셉 형들의 애굽 방문, 요셉과 형제들의 

     제1차 재회 및 형제들에 대한 요셉의 시험, 야곱의 탄식. 베냐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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