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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기억하사 복을 주옵소서(느헤미야 13:23-31)

목사님 0 905

  

 

   오늘 날 사회의 가장 큰 문제 중의 하나는 ‘이기주의’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기주의로 살면 나에게 이익이 될 것으로 착각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습니까? 

더 큰 문제는 이 이기주의가 얼마나 나를 불행하게 만든다고 하는 사실을 모르고 살아간다는 사실입니다. 나와 세상을 더 불행하게 만들 따름입니다.  

모든 생명체는 성장해야 합니다. 또한 성장을 하여야 하되 균형있게 성장을 하여야 합니다. 몸이 자람과 함께 지식도 자라고 영도 자라가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주위에는 어지간히 나이가 들었는데도 불구하고 철이 덜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충동적으로 일을 저지르고 그 다음에 있을 결과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 감정, 내 기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라고 당연한 것처럼 말합니다. 

깊이 생각해 보십시다. 정말로 감정은 무방비상태입니까? 기분은 이렇게 

마음대로 내버려두어도 되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고로 우리는 우리의 선택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합니다. 순간적인 감정의 표출에도 책임을 져야 합니다. 이 점을 잊지 맙시다. 

내가 내 마음을 다스릴 수 있을 때에 비로소 나는 어른이 된 것입니다. 

 

오늘은 505번 째 맞이하는 종교개혁 기념주일입니다.   

지금으로부터 505년 전 1517년 10월 31일 마르틴 루터가 독일 비텐베르그 성당에 95개조 반박문을 게시함으로써 종교개혁이 시작되었습니다. 

 

종교개혁의 근본정신은 한 마디로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것이었습니다.

로마 카톨릭을 부정하고 새로운 교회를 세우겠다는 것이 아니고 교회가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말씀에 바로 서자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는 것이 진정한 종교 개혁입니다.

말씀이 힘입니다. 말씀을 가까이 하면 잘못된 생각, 죄악된 마음을 바르게 합니다. 사람이 달라집니다. 개혁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개혁자들의 신앙 정신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 질 것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들을 보면 그들은 오직 말씀에 의지해서 살아갔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맑은 날씨에 산 꼭대기에서 방주를 지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인생의 갈 방향을 몰랐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말씀에 순종하며 앞으로 나갔습니다. 

80세 노인인 모세는 오직 여호와께서 자신과 함께 하시다는 그 말씀을 믿고,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 내었습니다. 

믿는 자의 삶의 원리는 오직 성경입니다. ‘Sola Scriptura’입니다. 

성경에 맞게 나를 고치어 나가는 것이 개혁하는 신앙의 원리입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예루살렘 초대 교회가 시작이 되었고, 예루살렘 교회는 로마의 핍박으로 흩어져 각지에서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흩어진 그들을 ‘디아스포라’라고 합니다. 

여러 지역으로 흩어진 성도들은 흩어진 그곳에서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런데 교회사적으로는 핍박을 받던 교회들이 종교로 인정을 받게 되고 

마침내 로마의 국교로 인정되게 되면서 힘을 얻게 되었고, 더 나아가 로마 교황이 국왕보다 더 많은 권력을 쥐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권력을 쥐게 되자 교회는 점점 타락하고 부패해 가기 시작하였습니다.

급기야 교황 레오 10세는 성 베드로 대성당을 증축하던 중에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게 되자 기발한 착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내 부모나 형제가 예수를 믿지 않고 죽으면 ‘연옥’이라고 하는 지옥대합실에 가 있는데 그 죽은 사람을 위해서 면죄부를 사면 지옥대합실에서 

천당으로 옮겨진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 때 테첼이란 능숙한 구변을 갖춘 신부가 외칩니다. 

“똑똑히 들어라. 너희들의 넣는 돈이 이 궤짝에 들어가서 딸랑 소리가 날 때마다 불쌍한 영혼들이 연옥에서부터 해방되어 뛰쳐 나오게 될 것이다.”

이런 변질된 모습을 보다 못한 마르틴 루터가 1517년 10월 31일 로마 카톨릭 교회의 잘못된 관행을 지적하는 95개조의 반박문을 비텐베르크 성당에 게시함으로 종교개혁은 시작되었습니다. 

 

중세 유럽 사회는 교회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거대한 종교집단이었습니다. 

그 신앙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순순한 기독교 신앙이 아니라 미신과 신비주의가 혼합된 정체불명의 종교생활로 굳어져 있었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세속권력과 손잡고 종교권력을 마음껏 휘둘렀으며, 공공연히 성직을 돈으로 사고 팔고, 자식들에게 대를 이어 그 자리와 재산을 물려주었습니다. 교회 세습. 그 시대 교인들이 미신적인 신앙으로 빠져들 수 밖에 없었던 가장 큰 원인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라틴어로 된 성경은 사제들만 읽고 해석할 수 있는 전유물이었고 일반 성도들은 사제들이 읽어주는 성경구절과 기도문을 듣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성경을 스스로 읽을 수도 해석할 수도 없었던 일반 민중들은 화려한 성당건물과 그 안에 그려놓은 각종 성화와 조각상들만이 그들의 신앙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종교개혁 당시 네덜란드를 중심으로 개혁자들이 예배당에 모셔놓은 성화들이나 성상들을 파괴했던 것은 그런 미신적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느헤미야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지는데 전반부 1-7장은 이스라엘 회복의 외적 증거인 예루살렘 성벽 재건을 보여 주었고, 후반부 8-13장에서는 

회복의 내적 증거, 즉 신앙 회복과 제도 정비 등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10장 28절 이후에 보면 이방인들과의 혼인을 금하여 영적 순수성을 지키기로 하고, 안식일 준수, 십일조 등을 하기로 결단합니다. 그런데 본서의 마지막 장인 13장에서는 이스라엘이 타락한 것을 보여 주고있습니다. 

신앙은 한 번 은혜 받고, 한 번 잘 섬긴다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계속 은혜 받아야. 전통이라고 하는 것은 세월이 가면서 변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한 것입니다. 

종교개혁의 기본 정신, 말씀으로 돌아가자! 말씀의 반대는 내 생각.

 

사람이나, 공동체가 무슨 일을 이루고자 할 때 분명한 목표와 원칙, 기준이 없으면 주변 사람 관계와 환경에 따라 흔들리게 되며 혼란이 따라 옵니다.   

느헤미야 10장 28절 이하를 보면 느헤미야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중심으로 거룩한 삶을 살겠다는 원칙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가 12년 만에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을 때 약속과 원칙이 다 무너져 있었습니다. 

오늘 13장을 보면 느헤미야의 세 번의 기도가 나옵니다. 

느헤미야의 세 번의 기도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세웠던 세 가지의 원칙과 기준을 무시하고 타락했을 때 그것을 다시 회복시키면서 드린 기도입니다.

 

개혁이란 즉시 회개하고 시대와 상황을 뛰어넘어 말씀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1절 “그날 모세의 책을 낭독하여 백성에게 들렸는데”

그런데 거기에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의 회중에 들지 못한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이 말씀을 듣고 사람들이 소스라치게 놀란 것입니다.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이 결혼했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23장 3절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그들에게 속한 자는 십 대뿐 아니라 영원히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그러면서 3절에서 섞인 무리를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모두 분리하였다고 

합니다. 성전의 순결성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신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진정성과 순결입니다. 

십계명의 첫 계명은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내 마음대로, 정욕대로, 이성으로 모든 일을 하기 때문에 신앙 생활이 어려운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성전을 거룩하게 지키지 못하면 망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 교회 중심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5절을 보면 “도비야를 위하여 한 큰 방을 만들었으니”

도비야는 성벽을 건축할 때 산발랏과 함께 성벽 재건을 괴롭힌 사람입니다. 그런데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에 돌아와 보니 성전에 도비야를 위한 방이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도비야가 제사장과의 개인적인 친분을 이용해 

그 방을 사용한 것입니다. 

성전 건축 후 오랜 세월이 지나자 사람들의 생각이 무뎌진 것입니다. 

십일조와 안식일도 형식적으로만 지키게 되었습니다. 

내용을 타협하다보니 암몬사람, 모압사람을 받아들이기도 하고 성전 건축을 방해했던 도비야까지 성전 창고에 방을 주어 살게 한 것입니다.

무슨 일을 할 때에도 10년이 지나면 다시 한번 점검을 해봐야 합니다. 

원형과 달라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변질되기 때문입니다. 

국가나 사회, 가정,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느헤미야의 종교 개혁의 두 번째는 안식일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말씀하셨는데도 불구하고 너무 바빠서, 세상이 좋아서 안식일마저 지키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신앙 개혁은 십일조에 대한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면서 돈에 대해 자유로운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들이 돈에 대해 매우 예민한데, 여기에도 원칙이 있습니다. 

십일조라는 원칙입니다. 이 원칙을 지키지 않으면 평생 고생하게 됩니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이 원칙을 다시 이야기합니다.

십일조는 하나님과 동업. 부자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먼저 새는 돈이 없게, 목사들끼리는 우스개 소리로 다들 십일조한다. 병원이나 법원

 

마지막으로 교회가 새로워지는 방법은 순결을 지키는 것입니다.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거룩하게 교회를 지켜야 합니다. 

성전을 성결하게 다시 세운 이후에 드린 첫 번째 기도가 14절의 기도입니다. 

그 후 이스라엘 백성들이 안식일을 철저하게 지키게 했습니다. 

그러면서 드린 두 번째 기도가 22절 나옵니다. 

암몬과 모압 여인들과 결혼을 하며 이방신들이 판을 치는 세상을 만들었습니다. 대제사장 엘리아십의 손자는 사마리아 총독인 산발랏의 사위가 되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세운 믿음의 원칙이 사람의 관계와 상황에 따라 무너진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단호하게 선을 그으며 가정을 다시 하나님 앞에 거룩하게 세웠습니다. 그러면서 드린 기도가 31절입니다. 

느헤미야서의 마지막 내용은 ‘내 하나님이여 나를 기억하사 복을 주옵소서’라는 느헤미야의 기도입니다. 

느헤미야의 마지막 기도에서 야베스의 기도가 생각이 났습니다.

 

야베스의 기도가 담겨 있는 역대상 4장 10절을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야베스의 삶은 태어날 때부터 시작해서 성장하면서까지 환난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런 어려운 상황 속에서 야베스는 탄식과 원망을 하며 인생을 살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 안에서 자신의 삶에 놀라운 반전을 일으켰습니다. 인생역전을 만들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았습니다.  

야베스의 삶에서 가장 기억이 되는 것은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야베스는 자신의 아픔과 고통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 부르짖으며 기도했습니다. 자신이 겪고 있는 환난과 근심을 넘어 복을 주실 수 있는 분이 오직 하나님 한 분이라는 사실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느헤미야의 삶이 바로 야베스의 삶과 같았습니다. 

느헤미야는 하나님을 인생의 중심에 두고 그 분의 말씀을 원칙과 기준으로 삼고 살았습니다. 그는 진정한 복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고백했습니다. 

그것이 그의 삶의 가치였고 기준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느헤미야를 높이셨고 그를 통해 놀라운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사랑하는 새하늘 교회 교우여러분!

종교개혁이 따로 없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우리부터 느헤미야가 

붙잡았던 말씀 안에서의 원칙과 기준을 잘 지키어 어디에서든지 당당하게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시도록 합시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경외심으로 

하나님의 진정한 복을 담아 나가시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도행전 12-18장

12장 

1-19절 헤롯의 교회 탄압.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죽이고 베드로를 옥에 가둠

헤롯은 헤롯 대왕의 손자로 헤롯 아그립바를 가리킴.

20-24절 헤롯의 죽음과 교회의 흥왕.

25절 바나바와 사울의 안디옥 귀환

 

13장

1-3절 제1차 전도여행의 준비와 파송

4-12절 구브로에서의 전도 사역

13-43절 비시디아 안디옥에서의 전도 사역

바나바와 바울이 출발한 수리아의 안디옥과 구별

44-52절 유대인들의 박해

 

14장

1-7절 유대인들에 의해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쫓겨난 바울과 바나바는 이고니온으로 이동, 이고니온과 루스드라 및 더베에서의 전도 사역

8-18절 루스드라에서의 사건, 제우스와 헤르메스

19-28절 안디옥 교회로의 귀환

 

15장

1-3절 이방인 신자들에 대한 할례 문제 제기

4-21절 예루살렘 공의회 개최

22-35절 예루살렘 공의회 결의 및 통보

이방인 성도의 할례 의무를 폐지하고 네 가지 금지 사항만 지키도록

우상의 제물과 피아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

36-41절 바울과 바나바의 분열과 제2차 전도 여행의 시작

 

16장

1-5절 바울과 디모데와의 만남

6-10절 바울이 본 마게도냐인의 환상

11-15절 빌립보에서의 루디아의 회심

16-34절 바울의 투옥과 구원

35-40절 바울의 석방

 

17장

1-9절 데살로니가 전도 

10-15절 베뢰아 전도

16-34절 아테네 전도

 

18장

1-4절 바울의 고린도 체류

5-11절 고린도 전도

12-17절 유대인의 바울 제소와 갈리오의 판결

18-22절 제2차 전도 여행 종료

23-28절 바울의 제3차 전도 여행 시작과 아볼로의 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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