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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수의 강(에스겔 47:1-12)

목사님 0 1,040

   

 

     에스겔서는 에스겔이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를 받고 환상을 본 약 22년간을 

역사적 배경으로 하여 쓰여졌습니다. 

당시 북왕국 이스라엘은 B.C. 722년 앗수르에 의해 멸망당하였습니다. 

그러나 강성하였던 이 앗수르도 B.C. 612년 신흥강대국 바벨론의 나보폴라살에 의해 멸망당하였고, 뿐만 아니라 나보폴라살의 아들 느부갓네살은 B.C. 605년 애굽 왕 바로 느고를 갈그미스 전투에서 패퇴시킴으로써 명실상부하게 중동의 패권을 장악하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유다 백성들은 다윗 언약으로 인하여 유다는 멸망하지 않을 것과 예루살렘 성전은 무너지지 않으리라는 낙관주의적 풍조가 조장되고 있었습니다. 다윗언약. 사무엘하 7:16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그러면서도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기 보다는 여전히 우상을 숭배하며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B.C. 586년 느브갓네살이 이끄는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을 침공해 성을 함락시켰습니다. 

절대 무너지지 않으리라고 믿었던 성전은 불타고 유다의 마지막 왕인 시드기야는 잡혀서 두 눈을 뽑히고 바벨론으로 끌려 갔습니다. 

이제 포로로 잡혀 왔지만 언젠가는 돌아가리라고 생각하였던 조국이 없어졌습니다. 돌아갈 곳이 없어진 것입니다. 바벨론으로 끌려 왔던 백성들은 울고 또 울었습니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을 통하여 유다의 회복을 예언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 회복의 메시지가 바로 오늘 본문의 환상인 것입니다. 

하루는 에스겔이 하나님의 사자에게 이끌려 성전에 들어갔습니다. 

에스겔이 가서 보니까 성전 문지방에서 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해서 마침내 큰 강을 이루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자가 에스겔에게 성전에서 흐르고 있는 물속으로 걸으라고 합니다. 에스겔이 그 지시에 따라서 물속에 들어가 보니까 물이 발목만큼 올라왔습니다. 

그 다음 두 번째로 들어가 보니까 물이 무릎까지 올라왔습니다. 

세 번째로 들어갈 때에는 물이 허리까지 올라왔습니다. 

그리고 네 번째로 들어갈 때에는 물이 가슴 이상 올라와서 더 이상 걸을 수가 없어서 헤엄을 쳐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이 물은 성전을 한 바퀴 휘감아 돌더니 사막을 향하여 흘러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사해 바다에 도착하자 죽었던 사해 바다가 살아나고 

고기들이 펄떡거리며 뛰어 노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물이 흐르는 곳, 주변에 보니 사방에 숲이 우거졌습니다. 

진귀한 열매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습니다. 

 

오늘 에스겔서의 메시지는 우리의 눈으로 볼 때는 해결책이 없어 보이고 

암울한 시대같이 보이지만 우상을 제거하고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의지하면 

하나님께서 회복시켜 주실 때가 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은혜의 강물의 시작은 성전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여기에서 전이란 문자적으로는 ‘예루살렘 성전’을 

의미합니다. 그 성전으로부터 생수의 강이 시작되었다는 말입니다. 

 

그 대답을 예수께서는 요한복음 7장 38절에서 해주셨습니다.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나오리라.” 

초대 신학자인 터툴리안은 이렇게 신앙생활을 설명하였습니다. 

“우리는 물고기와 같다. 물고기는 언제나 물속에 있어야 살 수 있으며 활동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물이다. 그 안에 생명이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물을 떠난 고기는 살 수 없듯이 주님을 떠난 인생은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인생은 다른 것으로는 목마름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이 주시는 생명수로만 우리 인생의 갈증을 해결할 수 있는 것입니다. 타는 목마름은 세상의 그 어떠한 것으로도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요한복음 7:37에서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물은 생명의 강물을 말하며 성령을 상징합니다. 

이 물이 성전에서부터 흘러 나왔습니다. 

우리의 인생을 회복시키고 성령을 소성케 하는 생명수는 성전의 제단으로부터 흘러나옵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는 진정한 생명의 샘입니다. 

세상에 좋고 훌륭한 기관이나 단체가 많지만 영혼을 살리는 생명수가 흐르는 곳은 교회 외에는 없습니다. 

교회를 떠나서는 구원도 없고 영적인 기쁨도 없습니다. 

초대교회인 예루살렘 교회도 성령이 충만히 임하니까 제자들이 나아가서 

복음의 증인이 되지 않습니까? 

사도행전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그런데 이 물이 성전에서부터 흘러나옵니다. 

그러므로 교회 중심의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어찌하든지 성도는 교회를 가까이 하려고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놀라운 길을 열어 주십니다.

자기 교회, 즉 하나님께서 보내 주신 교회를 통하여 영적 양식을 공급받아야 성숙한 믿음에 이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담임 목사를 위해서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탄은 오늘도 성전을 멀리하게 만듭니다. 주일 성수하지 못하도록 유혹합니다. 교회 안에서도 자꾸만 시험 들게 합니다. 

 

하나님의 달력에는 ‘오늘’이라는 말이 적혀 있고 마귀의 달력에는 ‘내일’이라는 말이 가득 차 있다고 합니다. 

마귀는 우리에게 자꾸 ‘내일 하라’고 유혹합니다. 

‘기도도 내일 하라, 봉사도 내일 하라, 예수도 천천히 60살이나 70살을 지나서 믿어라, 열심도 천천히 하면서 서둘지 말라’고 유혹합니다. 

그러나 주의 성령은 지금 당장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은 영의 양식이기 때문에 자주 자주 먹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일주일에 한번 교회 나와서 먹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말하자면 일주일동안 금식하고 주일날 한 번만 먹습니다. 

학생이 실력이 향상되려면 교과서에 충실해야 합니다. 

참고서나 문제집만  보아서는 안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경은 잘 안 읽고 설교나 간증 테이프만 열심히 듣습니다. 신앙서적만 열심히 봅니다. 세미나에만 열심히 참석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신앙성장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자가발전을 하지를 못합니다. 개신교 신앙은 ‘만인 제사장설’에 따라 자가 발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3-5절을 보면 성전에서 나온 물이 처음에는 발목을 적시고, 무릎을 적시고, 허리를 적신다고 한 것처럼, 교회에는 여러 종류의 신자들이 있는데, 발목신자와 무릎신자, 그리고 허리신자와 수영신자가 있습니다. 

 

1. 발목신자는 교회만 왔다 갔다 하는 사람입니다. 

발목에 물을 잠근다는 것은 신앙의 초보상태입니다. 왔다 갔다 족입니다. 

발목에만 물이 차있으니 아직 체험도 없고 감격도 모자라고 그냥 주일이 되면  졸라대니까 성화에 못 이겨서 나오는 피동적인 성도입니다. 

발목만 잠겼기에 언제든지 발을 뺄 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세상과 더불어 주를 섬깁니다. 교회를 갈까 말까 할 때는   

이런 분들은 “하나님, 내 발목에 은혜를 주옵소서”라고 기도하셔야 합니다.  

 

2. 무릎신자는 발목신자보다는 조금 발전한 형태의 성도입니다.

교회에서나 집에서나 무릎을 꿇을 줄 아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기도는 열심히 하는데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는 못하니까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을 자기의 기도나 들어주시는 분으로 생각합니다. 

기도를 안 들어 주면 삐집니다. 그래서 다른 곳(점집)으로 갑니다. 

 

3. 허리신자입니다. 

허리는 우리 몸의 중심부분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중심이 잡히는 시기가 오는 것입니다. 그냥 성경이 옛날 얘기인 줄 알았는데 언젠가부터 성경이 내게 주시는 하나님의 편지인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냥 옛날 역사책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그 성경이 나에 대한 말씀임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눈물이 핑돌며 감격이 찾아오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주일 예배가 기다려지고 주일이 가까워지면 가슴이 설레이기 시작합니다. 

 

4. 수영신자입니다. 

이 사람은 성령에 충만히 젖어서 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 앞에 우리 자신을 내어 맡기고 살아가는 삶입니다. 

 

토마스 아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 라는 책이 있습니다. 

거기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십자가를 지되 억지로 지지 말아라. 이왕 십자가를 지려면 기꺼이 지거라. 

그리하면 십자가가 너희를 짊어져 줄 것이니라.’ 

망설이지 마십시오. 성령의 강물에 뛰어 드십시오. 

그러면 그 분이 여러분을 띄어 줄 것입니다. 

신앙은 내 의지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온전히 내 뜻은 버리고 주님의 뜻을 따르고 그분께 내 삶을 전폭적으로 맡기는 것입니다. 

수영할 때, 안 빠지려고 힘을 주고 애를 쓰면 더 깊이 빠지는 원리를 아십니까? 반대로 힘을 빼고 물에 자신을 맡기면 손쉽게 물의 부력으로 내 몸이 둥둥 뜨게 되어있습니다. 

이 은혜의 깊은 강물에 뛰어드는 신앙인이 됩시다.  

 

믿음에는 이런 과정이 있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 발전해가는 것이 성장의 원리이듯이 . . . 

그런데 어떤 사람은 자라나지 않고 어느 단계에 머무는 사람이 있습니다.  

신앙은 처음에는 아주 얕은 물가에서부터 시작해서 나중에는 깊은 물에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늘 얕은 물가에서만 있어도 안 됩니다. 얕은 물에만 있다 보니 겁이 많습니다. 

하나님을 깊이 알지 못하니 시험에 빠져 넘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주 자기 감정에 좌우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성령 충만한 믿음은 놀라운 능력이 나타납니다. 이렇게 성전으로부터 흐르는 물이 닿는 곳마다 생명이 넘쳐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본문에 나타난 아라바라든가 엔게디, 에네글라임같은 곳은 모두가 사해와 연관이 되어있는 지명들입니다. 

사해하면 그 이름 그대로 생명이 살 수 없는 죽음의 바다입니다. 

생명체들은 아무 것도 살 수 없는 곳이지요. 그런데 하나님의 성전에서 나온 물이 흘러들어오면서 이러한 죽음의 기운은 사라져 버리고 생명이 충만한 곳으로 바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9절을 보면 에스겔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렇게 하나님의 전으로부터 생명의 물이 흘러넘칠 때 비로소 그 땅에 자리 잡고 있던 죽음의 기운이 사라지게 되고 각양각색의 과일나무와 물고기들이 살게 되는, 모든 생명들과 사람들이 살만한 곳으로 바뀌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희망을 가질 수 있다면 바로 여기에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11절에 보면, 진펄과 개펄은 소성되지 못하고 소금 땅이 된다고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성전으로부터 흘러 내리는 물, 주의 말씀과 성령의 은혜를 거부하는 자를 가르키고 있는 것입니다. 

주의 말씀을 거부하는 땅과 그 나라는 결국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신기하게도 같은 장소에서 같은 말씀을 들어도 어떤 사람은 은혜를 충만히 받는데, 어떤 사람은 시험에 들고 진펄과 개펄이 되어서 더 깊은 수렁으로 빠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저는 여기 모인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을 달게 받아 들이시기를 축원합니다.

 

한 신사가 갑자기 여행을 가게 되는 바람에 양복을 드라이크리닝 할 일이 생겼습니다. ‘한 시간 드라이크리닝’(one hour dry cleaning)이란 간판의 세탁소를 본 기억이 나서 그 가게에 찾아가 옷을 맡겼습니다. 

“한 시간 안에 되죠?” “내일까지는 어렵겠는데요”

“아니, 그럼 저 간판은 뭡니까? 한 시간에 해 준다는 소리 아니예요?”

“아, 그거요. 그건 그냥 우리 세탁소 이름입니다” 하더랍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자칭 예수 따라가는 자들이라고 하지만 전혀 이름하고 상관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수 믿기로 했으면 교회 나와 은혜 받아 삶이 회복되고 주위를 변화시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성전으로부터 흐르는 이 물이 내 심령에 넘쳐서 은혜의 강물에 잠기는 신앙의 성숙이 있기를 바랍니다. 깊이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날마다, 달마다 생명의 열매들이 맺히고, 여러분의 인격의 열매가 맺히고, 성령의 열매가 맺히길 바랍니다. 

그래서 그 열매들을 통해서 수많은 생명들이 소성하길 원합니다. 

 

사랑하는 새하늘교회 교우 여러분!

저는 우리 교회 성도분들이 복의 근원이 되어서 여러분의 가문이 살고, 

사회가 살고, 민족이 사는 역사를 일으키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시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요한복음 19장~사도행전 4장

 

19장

1-16절 빌라도의 사형 선고

17-30절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

31-42절 무덤에 장사된 예수님

 

20장

1-18절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

19-23절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예수님

24-29절 도마의 신앙 고백

30-31절 본서의 기록 목적

 

21장

1-14절 디베랴 바닷가에 나타나신 예수님

15-23절 베드로에게 사명을 맡기신 예수님

24-25절 맺음말

 

사도행전

누가복음을 쓴 누가가 저자로서 원래는 한 권의 책.

사도행전은 예수님의 승천 후에 사도들이 교회의 설립과 선교를 한 내용. 

1:1-7:60 예루살렘 초대 교회의 설립과 예루살렘에서의 복음 증거

8:1-12:25 유대와 사마리아에서의 복음 증거

13:1-28:31 땅끝까지의 복음 증거

 

1장

1-11절 시작하는 말

데오빌로 데오, 필로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12-14절 성령 강림을 기다리는 사도와 제자들

15-26절 가룟 유다의 죽음과 새사도 맛디아 선출

 

2장

1-4절 오순절 성령 강림

5-13절 성령의 역사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

14-36절 베드로의 첫 번째 설교

37-41절 삼천명의 회개

42-47절 예루살렘 초대 교회의 모범된 삶

 

3장 

1-10절 앉은뱅이 치유 이적

11-26절 베드로의 솔로몬 행각 설교

 

4장

1-4절 베드로와 요한의 투옥

5-12절 공회의 심문과 베드로의 변론

13-22절 공회의 결의와 사도들의 석방

23-31절 사도들의 석방에 따른 성도들의 반응

32-37절 성도들의 나누는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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