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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잠 언 30: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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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언 30장은 흔히 ‘아굴의 잠언’이라고 부릅니다. 

‘아굴’이란 이름은 문자적으로는 ‘수집하는 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이름의 뜻대로 그는 솔로몬 통치기에 여러 가지 교훈들을 수집하고 정리하여 백성들에게 가르치는 지혜자였습니다. 

아굴은 본문에서 두 가지 기도를 올리고 있습니다. 7절 “내가 두 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내가 죽기 전에 거절하지 마시옵소서” 

첫째로, 허탄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하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둘째로, 나로 가난하게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먹여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기도는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기도가 두 번째 기도의 전제 조건이 되기 때문입니다. 

아굴은 물질적인 것에 대해서 기도하기 전에 먼저 자신이 지켜야 할 

근본적인 삶의 자세에 대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허탄’은 얻지 못하는 대상들을 얻기 위해 애쓴 결과 얻지 못한 자에게 찾아오는 허탈감을 말합니다. 즉 허탄은 자기 욕심을 위해서 버리지 못하고 붙들고 있는 것들을 이야기 합니다. 이것만은 포기 못해.

‘거짓말’이란 자신의 유익을 위해 상대를 속이는 이기적인 범죄를 말합니다.

거짓말 중의 거짓말은 “제가 하나님을 믿습니다.” 하고는 믿음 없이 행동하는 것이 아닐까요? 마가복음 3:29 “누구든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사하심을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가 되느느라”

저는 여러분들의 삶에서 이 허탄과 거짓말이 없어지기를 기원합니다.

우리나라 사람 중 대다수는 정직하게 살면 잘 살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합니다. 진실해서는 제대로 살 수 없는 나라, 이것이 사실이라면 참으로 참담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본문의 지혜자도 죽기 전에 소원합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을 되돌아보니 아무리 화려하게 살아도 아무리 부귀영화를 누려도 그것이 거짓 위에 있는 것일 때 소용이 없더라는 것입니다. 헛수고였습니다. 진실만이 참된 것이요 진실만이 내 인생이었습니다. 그것을 깨닫고 이제 오직 남은 생애 진실하게 살게 해 달라고 소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오늘 우리의 관심은 두 번째 기도에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빌 4:12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러면서 그 유명한 빌립보서 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이 기도는 세 가지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째가 가난하게 마옵소서!

제일 먼저 아굴은 하나님께 가난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가난은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가난이 아닌 물질적인 가난입니다. 곳간에 쌀이 없어서 생존에 위협을 느끼는 극심한 가난입니다. 입을 옷이 마땅치 않아서 냄새나는 똑같은 옷을 일 년 내내 입고 다녀야만 하는 그런 가난인 것입니다. 잠 잘 곳이 없어서 고민하는 그런 실질적인 고민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살다보면 가난은 순식간에 찾아옵니다. 

잘나가던 사업이 갑자기 부도를 만나게 되고 갑자기 법률 소송에 말려들어 재산을 축낼 때도 있습니다. 아니면 회사에서 대량 해고를 단행해서 갑자기 직장을 잃어 버릴 때도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아굴은 일상 생활 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극심한 가난을 염두에 두고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정말 중요한 것은 아굴이 왜 가난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느냐 하는 이유가 중요합니다. 

그 이유는 가난이 가져오는 인간적인 고통이나 수치 때문이 아니라 철저히 신앙적이기 때문입니다.  

9절 후반부를 보십시오. “혹 내가 가난하여 도적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왜 가난해서는 안됩니까? 너무 가난해서 죄지을까 염려되기 때문입니다. 

우리 속담에 “사흘 굶어서 남의 집 담 안 넘어가는 사람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정말 살기가 곤궁해지면 사람이 죄를 안 지을래야 안 지을 수 없습니다. 내가 지나치게 가난하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도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는데 너무 가난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궁색한 폐를 끼치고 갖가지 죄악을 저지를 경우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둘째가 부하게도 마옵소서!

그러면 부자가 되는 것은 왜 문제가 됩니까? 

제일 무서운 것은 신앙을 버릴 수 있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자신의 경제적인 힘만 믿고 교만해 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질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굴은 본문 9절 전반부에서 지나친 부에 대하여 이렇게 걱정하고 있습니다.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이 무슨 말입니까? 

내가 부자 되어서 내 배가 따뜻해지면 하나님을 몰라보게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배당에 올 필요도 못 느끼고 기도할 필요도 못 느끼고 결국은 영혼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번 광복절에 한산이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한산과 하얼빈.

임진왜란이 일어나서 선조 임금이 피신을 가게 되었습니다. 

식량이 귀하던 차에 마침 한 백성이 ‘묵’이라는 고기를 임금님께 바쳤는데, 임금님은 그 맛이 너무 기가 막혀 그 물고기의 이름을 ‘은어’라 부르도록 하였답니다. 

그런데 임진왜란이 끝이 나고 궁궐로 다시 돌아오게 된 선조는 피난길에 먹었던 그 생선 ‘은어’가 생각이 나서 찾게 되었고 먹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먹어 보니 그 맛이 아니어서 그 이름을 ‘도루묵’이라고 하게 하였다고 합니다. 

이것은 사람이 빈궁할 때와 풍요할 때의 마음 가짐이나 처세가 판이하게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입니다.  

 

여러분, 부가 분명히 좋은 것이기는 하되 우리 영혼을 위해서는 그렇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오히려 진정한 행복과 영혼의 건강을 위해서 해가 될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누가복음 12: 15에서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어떤 사람은 돈만 있으면 안 되는 것이 없다고 말하지만 이 세상에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돈으로 침대는 살 수 있지만 달콤한 잠은 살 수 없다. 

돈으로 책은 살 수 있지만 지식은 살 수 없다. 

돈으로 음식은 살 수 있지만 식욕은 살 수 없다. 

돈으로 좋은 집은 살 수 있지만 행복한 가정은 살 수 없다. 

돈으로 약은 살 수 있지만 건강은 살 수 없다.”

 

셋째가 꼭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

아굴은 지나치게 가난한 길을 원치 않았습니다. 지나치게 부한 길도 두려워했습니다. 그는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자기를 먹여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얼마나 지혜로운 기도인지 모릅니다.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가 쓴 “인간은 도대체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라는 제목의 단편 소설이 있습니다.  

도무지 만족을 모르는 부자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지금 가지고 있는 땅도 엄청났지만 더 많은 땅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이 부자는 새로운 유목지가 한창 개발중인 지역에 러시아 화폐로 1천 루블만 내면 하루 종일 자기가 걸은 만큼의 땅을 차지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단 해가 떨어지기 전에 자기가 출발한 지점에 다시 돌아와야 한다는 규정을 지켜야만 했습니다. 

이 사람은 흥분을 가누지 못한 채 해가 뜨자마자 기름진 대평원을 젖 먹던 힘을 다하여 걷기 시작했습니다. 기름진 땅 곳곳에 말뚝을 박으면서 이 광활한 땅이 모두 자기 것이 된다는 기쁨 때문에 피곤도 모른 채 걷고 또 걸었습니다. 아니 뛰어 갔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입니다. 

그러다가 어느 지점에서 그동안 걸어 온 길을 되돌아보니 엄청난 길이의 땅이었습니다. 더 가고 싶었지만 해지기 전에 출발지점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규칙을 지키기 위하여 왔던 길을 부지런히 돌아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 사람은 지나치게 넓은 땅을 잡았기 때문에 도저히 해 떨어지기 전에 출발지점으로 돌아오는 일이 불가능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처음 떠났던 곳으로 되돌아가지 않으면 그 많은 땅을 고스란히 잃어버린다는 생각을 하자 넘어지고 다치고 땀이 뒤범벅이 된 채 단 1초도 쉬지 않고 걷고 또 걸었습니다. 

마침내 해가 지평선 위로 막 떨어지고 있었을 때 이 사람은 간신히 출발지점에 도착했습니다. 그러나 곧바로 그 자리에서 거품과 피를 토한 채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하루 종일 기를 쓰고 걸어서 엄청난 땅이 모두 자기 소유가 되었다는 기쁨을 채 누리기도 전에 죽고 말았습니다. 

톨스토이는 이 소설을 다음과 같이 끝내고 있습니다. 

“머슴은 괭이를 집어들고 머리에서 발끝까지의 치수대로 여섯 자(six feet)의 땅을 팠다. 그의 묘를 쓰기 위해. 그리고 그를 그곳에다 묻었다.” 

이 부자에게 필요한 땅은 겨우 6 피트였으면 족했지만 그는 그 이상의 욕심을 부렸던 것입니다. 

아굴은 인간의 이와 같은 맹점을 정확하게 꿰뚫어 볼 줄 안 현자였습니다. 그리하여 지나치게 가난하지도, 지나치게 부하지도 않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으며, 꼭 필요한 양식만 허락해달라고 기도했던 것입니다! 

 

아굴의 기도는 매우 중요합니다. 인간이 어떤 자세로 

세상을 살아야 하는가 하는 기본적인 철학을 제시했기 때문입니다. 

너무 가난해서도 안 됩니다. 그렇다고 너무 부자가 되어도 불안합니다. 

극단적인 가난과 극단적인 부는 신앙 생활에 해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기독교는 청부를 이야기 합니다. 부자가 되어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이 잠언 3장 27절에 잘 나와 있습니다. 

“네 손이 선을 베풀 힘이 있거든 마땅히 받을 자에게 베풀기를 아끼지 말며”

이것이 복 받는 비결입니다. 인색하지 말고 열심히 베풀라는 말입니다. 

내가 작은 손을 벌려서 이웃을 도와주면 

하나님이 큰 손을 가지고 나에게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인용한 유일한 예수의 말씀. 사도행전 20:35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입니다.

성경에서 빨간 글씨.

 

경주에 가면 최 부자집이라는 아주 유명한 가문이 있습니다. 

대개 부자들은 시기를 받고, 미움의 대상이 되기 쉬운데 경주의 최 부자는 존경과 사랑을 받았고, 지금도 받고 있는 가문입니다.  

부자 3대 가기 어렵다는 말이 있는데 경주의 최 부자는 약 300년 동안 큰 부를 누리면서도 사람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한 몸에 받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 최 부자 집에는 몇 가지 생활규칙이 있는데 그 중에 두 가지만 말씀드리면 “흉년에는 땅을 사지 마라” 

먹을 것이 없어서 흉년에 가난한 농부들이 생명 같은 땅을 싸게 팔아서 

먹고 살려고 내놓으면 그 땅을 사지 마라. 오히려 쌀을 가져다주고 도와줄지언정 절대 땅을 사지 마라. 

우리 주위를 보면 사람이 어려움을 당하면 그것을 이용해서 싸게 삼켜 버릴려고 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최 부자집은 절대 그런 짓을 하지 말라고 가르쳤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집 사방 100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누구 네가 쌀이 떨어져서 굶는다는 소식이 들리면 최 부자 집에서 쌀을 가져다주고, 먹을 것을 가져다주고 그래서 이 최 부자네 집 주변 100리 안의 사람들은 굶어죽는 사람이 없었답니다.

 

사랑하는 새하늘 교회 교우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는 특별 은혜와 보통 은혜 두 가지입니다. 

특별은혜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만이 받는 은혜입니다. 

예수 믿고 죄 사함 받고, 예수 믿고 구원받고, 예수 믿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복을 말합니다.  

보통은혜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이나 하나님이 똑같이 주시는 은혜입니다. 

마태복음 5:45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악한 사람이나 선한 사람이나 똑같이 햇볕을 받고 살고,  

악한 사람이나 선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비를 내리우고, 

악한 사람이나 선한 사람이나 똑같은 공기를 마시면서 사는 것입니다. 

아무리 예수를 열심히 믿어도 공부를 안 하는 사람은 꼴찌하고, 아무리 예수를 안 믿어도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은 1등 하는 복을 하나님이 주십니다. 

그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일을 안 해도 복을 주세요? 택도 없는 소리 하지 마세요.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 아닙니다.

데살로니가후서 3:10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사랑하는 새하늘 교회 교우 여러분!

성경은 우리에게 게으르지 말고 열심히 일하라고 권면합니다.

그런데 믿는 우리들은 내가 왜 돈벌어야 하는 가가 분명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부하게 되어도 많은 사람들에게 기쁘게 나누어 주어 

하나님 기뻐하시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마가복음 3-9장

3장

1-6절 안식일에 손 마른 자를 고치신 예수와 에수 살해 음모

7-12절 예수께로 나아온 많은 무리들

13-19절 열 두 제자를 세우시다

20-30절 바알세불 논쟁

예수님이 이적을 행하시자, 진정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반면에 예수님의 친족들은 이러한 예수님의 행동을 오해하였고, 또한 바알세불에게 사로잡힌 결과라고 매도하는 서기관들도 있었음을 기록.

29절 성령모독죄, 성령의 능력으로 은혜를 받았음에도 부인하는 것.

31-35절 예수님의 가족관

 

4장

1-20절 씨 뿌리는 자의 비유

21-25절 등불의 비유

26-34절 씨앗의 비유와 겨자씨 비유

35-41절 풍랑을 잔잔케 하신 예수님

 

5장 

1-20절 거라사의 귀신 들린 사람을 고치신 예수님

21-34절 혈루증 앓는 여인을 고치신 예수님

35-43절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신 예수님

 

6장 

1-6절 고향에서 배척을 받으신 예수님

7-13절 열 두 제자의 파송

14-29절 세례 요한의 죽음

30-44절 오병이어

45-52절 물 위를 걸으신 예수님

53-56절 게네사렛에서의 치유

 

7장 

1-23절 율법의 근본 목적은 율법 준수를 통한 내적 성결의 완수

24-30절 수로보니게 여인의 딸을 고치신 예수님

31-37절 귀먹고 말 더듬는 사람을 고치신 예수님

 

8장 

1-10절 칠병이어, 이방인들을 대상으로.

11-21절 바리새인과 헤롯당에 대한 경계

기적에 대한 체험이 믿음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기적에 대한 체험을 초래.

22-26절 벳새다의 소경을 고치신 예수님

27-38절 베드로의 첫 신앙 고백

 

9장 

1-13절 예수님의 변형 사건

14-29절 귀신들린 아이를 고치신 예수님

33-37절 겸손에 대한 교훈

38-50절 독선과 범죄에 대한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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