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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라나게 하셨나니(고린도전서 3:5-9)

    

 

       자라나게 하셨나니, 고린도전서 3:5-9, 323장.

 

스가랴 2-8장

 

인간은 크게 두 종류의 욕망을 가졌다고 합니다. 

육체적 욕망과 지적인 욕망이라고 하는데 육체적 욕망은 여러분들 잘 아시다시피 먹고 싶은 욕망, 자고 싶은 욕망, 그리고 생식본능입니다.

그리고 지적인 욕망으로 인하여 인간은 계속 보려 하고, 들으려 하고, 알려고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지적인 본능이 채워지지 않을 때 생기는 현상을 정보 기아 현상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교도소에서 가장 지독한 징벌이 독방에 가두는 것입니다. 

멀리 교도소까지 갈 것도 없습니다. 며칠 전에 혼자 사시는 할머니에게 삶을 어렵게 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여쭤봤더니 TV가 고장나는 것이 제일 삶을 어렵게 한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계속 보아야 하고 들어야 하고 또 말해야 합니다. 

그래서 미국에는 대부분의 실버 타운, 양로원은 도심 다운타운에 있습니다.물 좋고 공기 맑은 산속에, 처음엔 좋다고 갔다가 다들 나옵니다. 산속에서 가만히 있어 보니까 죽음 같은 정적만 흐르고 아무튼 못 사는 것입니다. 

모름지기 양로원, silver town은 도심에 지어야 합니다. 

왜? 사람은 계속 보아야 하고 들어야 하고 말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지적 욕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자기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내 말이라면 다 믿어주는 사람과 함께 있을 때 행복한 것입니다. 왜? 내 존재가 인정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내 존재를 인정하시고 계신다,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으신다, 이렇게 느끼는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을 보면 고린도 교회에 분쟁이 있었다고 합니다.

바울 파니 베드로 파니 아볼로 파니 이 무슨 소리입니까? 

다 하나님의 사역자일 뿐입니다. 분쟁이 있는 것을 보고 바울은 자기 중심으로, 부분적으로 보기 때문이라고 진단합니다. 

전체를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종말론적으로, 우주적으로, 하나님의 역사 앞에서 크게 보아야 바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나 하나만 보고 현재만 보니까 그런 분쟁이 생기는 것입니다.  

좀 더 성숙한 세계관, 좀 더 높은 차원의 인생관이 요구됩니다. 

 

먼저 5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주께서 각각 주신대로’라고 합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대로 살 것입니다. 젊으면 젊은대로, 나이 들면 들은대로... 

여러분, 주름 생기면 생기는가 보다 하고, 흰머리 생기면 생기는가보다 하고, 또 늙으면 늙는거니 할 것입니다. 있어야 할 일들이 있는 것입니다. 

It is normal. 자연 현상입니다. 

모름지기 우리는 하나님의 뜻 앞에 겸손하여야 하는 피조물입니다.

여러분, 우리 인간의 불행은 피조물인 우리 자신이 피조물임을 잊기 시작할 때부터 시작됩니다. something, nothing 

 

저는 세상에서 제일 웃기는 곳이 무덤이라고 생각합니다. 

돈 있는 사람이랍시고 비석도 크게 만들고, 무덤도 크게 만들고. 

하지만 무덤이 크나 작으나 썩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평생 ‘나는 다르다. 나는 돈이 있다. 나는 능력이 있다’고 하다가 마지막에 가서야 ‘그것이 아니구나. 다 같구나’하고 죽습디다. 안 그렇습니까? 

결국은 남과 내가 같다는 것을 좀 더 일찍 깨달았더라면 자신도 사람답게 

살고, 많은 사람에게 덕을 끼치며 살 수 있었을텐데, 

나는 남과 다르다는 생각, 바로 여기에서 헤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고독하게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중요한 것은 내 적성을 알아야 합니다. 

적성은 쉽게 말해서 내가 즐거워하는 그 일이 내 적성인 것입니다. 

그래서 직업도 적성에 맞추어서 구해야 합니다. 

적성을 신학적으로는 은사라고 합니다. 

모름지기 내게 주신 은사, 내게 주신 경륜에 따라 살아야 합니다. 

각각 주신 바가 있고 그 주신 바대로 살 것입니다. 

남 부러워할 필요 없습니다. 

 

오케스트라에서 first violin도 중요하고 오보에, 플룻도 중요하지만 마지막에 가서 딱 한 번 두드리고 마는 북을 치는 사람도 중요한 것입니다. 

다 같이 악보에 충실해야 하고, 다 같이 지휘자를 보아야 하고, 다 같이 자기 맡은 일에 충실해야 오케스트라라고 하는 작품이 나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내게 주신 일을 충실히 감당하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을 보면 할 수 있는 일은 자신이 열심히 하고 

할 수 없는 일은 남에게 맡깁니다. 

자기가 할 일과 못할 일을 구별해 낼 줄 알아야.

 

숨지는 날까지 자신을 하나님께 헌신하고 바친 리빙스턴 선교사를 여러분들은 잘 아십니다. 그런데 이 분을 사람들은 평생을 하나님께 헌신했다고 높이 칭찬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훌륭함을 치하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를 사양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저는 결코 헌신해 본 적이 없습니다. 제 생활은 오히려 특권을 누리며 살아온 것일 뿐입니다” 여러분 특권이라는 이 말을 잘 이해를 하여야 합니다. 

내가 봉사할 수 있는 것이 특권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건강을 주시고 시간을 주시고 지혜를 주셨기에 이 모든 일들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까?

 

하나님께서는 토양을 주셨고 비를 주셨고 태양을 주셨습니다. 

우리의 할 일은 심어야 하고 가꾸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실 일이 있고 내가 할 일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농장에 고용된 일꾼입니다. 

충성되게 진실하게 일해야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고용된 직분을 가지고 감격하여 고마운 마음으로 일해야 할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교회에서 무슨 일을 권하면 제가 자격이 없어서요라고 대답을 합니다. 겸손한 것 같지만 대단히 불신앙적인 대답입니다.  

주님이 필요해서 쓰시면 자격이 있는 것이지 내 자격을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온 세상 사람이 다 나를 필요치 않다고 해도 하나님이 나를 필요로 하고 있어서 오늘 내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 부름 자체가 자격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소명, calling.

존재함으로 일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일이 있어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건강해서 일한다고 착각하지 맙시다. 일해서 건강한 것입니다. 

내게 주어진 돈, 쓰일 데가 있어서 내 손에 주어진 것입니다. 

쓰라고 주신 돈이지 꼬옥 움켜쥐고 있으라고 주어진 돈이 아닙니다. 

모든 시간, 모든 건강, 모든 재능이 하나님께 쓰임받기 위해서 존재합니다. 

하나님의 높으신 뜻대로 고용되었고 하나님의 깊으신 뜻대로 그가 주신 능력 안에서 그 기간 안에 충성을 다할 뿐입니다. 

고린도전서 4:2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충성했으면 그 결과는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내가 하여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하시고, 겸손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 하면서 하루 하루 살아갈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씨를 뿌리는 자도 있고, 물을 주는 자도 있고, 거두는 자도 있습니다. 그러나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수고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수고대로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힘을 주시고, 능력을 주시고, 그리고 은혜를 주셔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나는 작은 수고를 했는데 큰 열매가 있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사건을 보면 떡 다섯 덩이, 조그만 물고기 두 마리를 어린아이가 예수님께 바쳤을 때 설마 오천 명이 먹고도 남는 그런 기적이 일어날 것이라고 그 당시 그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그러나 그 작은 것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큰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그렇다고 이 아이가 내가 했노라 할 수 있겠습니까?

착각하지 말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작은 것을 통하여 큰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죽은 나사로를 살리실 때에도 그러한 역사가 일어납니다. 

무덤 앞에 막아놓은 돌을 옮겨 놓은 것은 사람이 한 일입니다. 

그러나 “나사로야 나오너라” 하신 것은 예수님의 일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이 하실 일, 내가 할 일이 따로 있습니다. 

내가 할 일은 내가 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께 책임을 돌리지 말 것입니다. 

하나님이 싫어 하시는 행동 중의 하나가 원망과 핑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하나님의 높은 경륜을 미쳐 몰랐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왜 이렇게 인도하시나, 하나님은 왜 이렇게 오랫동안 광야에 머무르게 하시나, 원망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하나님의 지혜요 하나님의 능력이었습니다. 

교육학에 보면 ‘hidden curriculum’라고 하는 용어가 있습니다. 

숨겨진 교육과정이라고 하겠습니다. 이 말의 뜻은 선생님이 학생들에게는 

알려 주지 않고 선생님 혼자만 아는 교육과정이 있다는 것입니다. 

다만 학생들은 선생님을 믿고 이 교육과정을 따라가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hidden curriculum’이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하나님의 경륜, 하나님의 섭리라고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숨겨진 뜻을 믿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가 하여야 합니다.

 

도산 공원에 가면 도산 안창호 선생님의 말씀이 

“그대는 나라를 사랑하는가? 그러면 먼저 그대가 건전한 인격이 되라.

우리 중에 인물이 없는 것은 인물이 되려고 마음 먹고 힘쓰는 사람이 

없는 까닭이다. 

인물이 없다고 한탄하는 그 사람 자신이 왜 인물이 될 공부는 아니하는가?“

 

참으로 주인의식을 잘 표현한 문장입니다.

주인공 의식과 주인 의식은 구별되어야 합니다. 

주인공 의식은 쉽게 표현하면 왕자병, 공주병이라고 합니다. 

이런 분들을 말씀의 은사를 가진 분들이라고 합니다. 뭐든지 말씀으로만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주인공 의식이 있는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에게 요구하는 것들이 많고 그러다 보니 불평, 불만을 많이 합니다.   

반면에 주인 의식을 가진 사람들은 자원하는 심령을 가지고 일을 처리합니다. 그러다 보니 자기가 지금 하는 일이 즐겁습니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즐겁습니까? 아니면 스스로 하는 일이 즐겁습니까? 

노예는 노동을 합니다마는 그 속에 기쁨이 없습니다. 

땀은 흘리고 있으나 즐거움이 없습니다. 이것이 노예입니다. 

자발적으로 주인 의식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이 참된 신앙인입니다. 

오직 자원하는 마음으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며 정말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일하는 것, 그 질적인 충성을 하나님께서는 보시는 것입니다. 323장 3절.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섬기리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섬기리다

신앙이 가장 위대한 생산력이라는 것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오늘의 결론입니다. 8 “각각 자기가 일한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교회에 나오지 않는 분들이 많이 하는 말 중의 하나가 나도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믿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믿는 정도의 믿음은 귀신들도 갖고 있습니다. 야고보서 2:19에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한 가지를 더 믿어야 합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께서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분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나는 상을 바라지 않아’라고 하는 것은 나 믿음 없어와 동의어. 

히브리서 11:26을 보면 저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 모세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사랑하는 새하늘 교회 교우 여러분!

달란트 비유에서 보듯 다섯 달란트건, 두 달란트건 남겼다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몇 달란트이냐를 묻지 않습니다. 이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얼마를 받았든지, 주신 바가 무엇이든지 충성을 다 할 것입니다. 

오직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쁜 마음으로, 자원하는 마음으로...

나에게 맡겨진 바를 하나님의 경륜 안에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수용하고 

충성되이 묵묵히 감당하여 자기 상을 반드시 받게 되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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