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1-7장
험악한 세월, 창세기 47:7-10, 413장
한국은 고부갈등, 미국은 장서갈등, 장모와 사위가
어떤 미국인 가족들이 가족여행으로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떠났습니다.
그런데 여행 중에 갑자기 장모님이 돌아가시는 상황이 발생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영사관에 문의를 했더니 두 가지의 방법을 말해줍니다.
한 가지는 시신을 미국으로 모셔 가는 방법이고 또 한 가지 방법은 그곳 예루살렘에 매장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비용에는 엄청난 차이가 났습니다. 시신을 미국으로 모셔 가는데 드는 비용은 만 달러이고 예루살렘에 매장하는 비용은 겨우 오백 달러라는 것입니다.
한참 고민을 한 끝에 이 남자는 장모님의 시신을 미국으로 모셔가겠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 남자분의 장모님 사랑에 영사가 감동하여 칭찬을 하였더니 이 남자가 영사의 귀에다가 속삭입니다.
“영사님, 그게 아니라 오래 전에 이 곳 예루살렘에 묻혔던 어떤 사람이 3일 만에 다시 살아났는데 우리 장모님도 그러면 안 되거든요.”하더랍니다.
어느덧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오늘은 올 해의 마지막 주일이자 마지막 날입니다.
그런데 한 해의 끝자락이라는 종착역에 서 있는 것은 동일하지만,
그 마음은 사람마다 다 다를 것입니다.
몇몇 예외적인 분들도 있기는 하겠지마는 통상적으로는 누구라도 지나 온 인생을 돌아보면 만족보다는 후회와 아쉬움이 있게 마련일 것입니다.
2023년은 특별히 개인적으로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을 지나면서도 가까운 사람에게조차 말 못한 채 남몰래 눈물진 교우 분들도 계셨을 것입니다.
이제 2023년은 떠나보내고 2024년을 맞이해야 합니다.
예수를 믿고 교회 나오는게 제일 신났습니다. 그런데 먼저 믿은 분들이 하시는 말씀이 ‘하나님도 성격은 어쩌지 못해’ 과연 그렇습니까?
‘호질기의(護疾忌醫)’란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병이 있음에도 의사한테 보여 치료받기를 꺼린다’는 뜻으로 병을 숨기고 의원에게 보이기를 꺼린다는 뜻으로, 자신의 결점을 감추고 남에게 충고 받기 싫어함을 비유하는 말입니다. 자기 몸이 망가지는데도 불구하고 남의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을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참 우리는 잘 안 변합니다. 누구든지 자기의 인생관을 바꾸기란 결코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만 우리들의 성격을 뜯어 고치신다.
변하든지 떠나든지! 배우든지 가르치든지. 믿고 싶은 분만 아멘!
오늘 우리는 야곱을 통해 그의 인생관이 바뀌게 되는 대전환을 보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대하는 본문을 보면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던 야곱이 애굽의 바로 앞에 서는 장면입니다. 바로가 야곱에게 묻습니다.
‘네 나이가 얼마냐?’ 오느라고 고생 많았다, 어디서 왔느냐? 이름이 무엇이냐?고 할 것 같은데 오늘 바로는 야곱을 보자마자 대뜸 “네 나이가 얼마냐?”라고 묻습니다.
아마도 야곱의 모습이 나이를 묻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던 같습니다.
그의 외모에 산전수전을 겪어온 인생의 자국이 거칠게 자리 잡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때 야곱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내 나이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여기 ‘험악한 세월’이라는 말은 한 마디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이 질문과 대답 속에는 야곱의 인생을 총망라하는 함축적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이제 2023년의 끝에선 우리에게 주님은 다시 동일한 물음을 던지십니다.
“네 나이가 얼마냐?” 너 참 고생 많았구나.
야곱은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보장받았으면서도 참으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습니다. 어머니의 태중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창세기 25:23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이러한 하나님의 언약에도 불구하고 야곱은 자신의 노력으로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셨으면 하나님이 하나님의 방법으로 그 일을 이루어 가십니다.
야곱의 삶을 돌아보면 ‘노력해야 모든 것이 얻어지고 노력하면 안 되는 일이 없다.’입니다.
태어날 때도 쌍둥이 형 에서보다 먼저 태어나려고 형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또한 형 에서의 장자권을 형의 급한 성질을 이용하여 팥죽 한 그릇으로 샀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이삭의 축복권을 어머니 리브가와 공모해서 쟁취했습니다.
또한 하란으로 가서는 사랑하는 아내 라헬을 얻기 위해서 무려 14년간이나 힘써 일했습니다.
야곱은 무일푼으로 하란으로 가서 많은 재산을 불렸습니다.
그는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지 이룰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의 삶에 불가능은 없었습니다. 나폴레옹의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
그런 야곱을 하나님은 철저하게 자기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하신 사건이 바로 얍복 나루터의 사건입니다.
야곱이 이제 20년 만에 자신이 도망 나왔던 고향으로 길을 떠납니다.
그런데 형 에서가 이를 갈고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큰 고민에 빠집니다. 고독과 번민 가운데 얍복 나루터에 홀로 남아 밤새 기도합니다.
천사가 야곱의 환도뼈를 쳐서 위골되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창세기 32:26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야곱의 야곱다움은 여기에 있었습니다. 그는 끈질기게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인생의 문제를 놓고 밤새 기도한 적이 있으십니까?
그제서야 야곱은 자기 자신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 후에도 야곱은 여러 가지 어려운 일을 겪지만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야곱의 가슴을 아프게 했던 것은 사랑하는 아들 요셉이 짐승에게 물려 죽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는 더 이상 산다는 의미를 상실한 채 인생을 덧없이 보내게 됩니다. 그런 와중에 흉년을 만나게 되고, 20년 전에 죽은 줄만 알았던 아들이 살아있다는 기쁜 소식을 듣습니다.
그래서 지금 야곱은 꿈인지 생시인지 구별이 안되는 상황 속에서 애굽으로 가족과 함께 온 상황입니다.
그의 인생 이력을 들여다보면 너무나 파란만장합니다.
그러므로 그는 바로 왕에게 ‘험악한 세월을 살았다’고 고백을 합니다.
야곱만 험악한 세월을 살았겠습니까?
이 중에서 예외인 분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그러나 야곱이 험악한 세월을 보냈다고 고백했지만, 그런 야곱의 생애 속에 보이지 않게 흐르는 중요한 것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도우시는 손길이었습니다.
야곱의 인생을 늘 보호해 주시고 야곱의 인생에 간섭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형 에서를 피해서 외갓집으로 도망가던 첫날밤에 하나님께서 야곱의 꿈에 나타나셔서 창세기 28:15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이 약속의 말씀대로 야곱의 모든 일에 간섭하시고 도와주시고, 보호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건 야곱이 잘 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여러분 창세기를 주의 깊게 읽어보시면 야곱이 하나님의 마음에 들도록 살았던 적이 얼마나 되나? 야곱은 언제나 자기만을 위해서 살았던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자기 욕심에 이끌려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늘 사랑하셨고, 야곱의 든든한 보호자요 후원자가 되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 때문입니다.
다윗의 시편을 보면 다윗의 귀중한 깨달음이 나오는데 그는 내가 가치가
있기에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기에
비로소 내가 인간이 되어 가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이 착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으로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심으로 저희가 착하게 변해가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신앙적 역사관을 분명히 가져야 하겠습니다.
신앙적 역사관을 가진 사람들은 하나님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에 그분이 일하고 계신 것을 알 수 있는 사람입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이 왜 이렇게 침묵하시는가?’ 할 때에 그분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이 안 계신 것처럼 생각하고 방종하며 절망할 때에
그분의 역사를 똑똑히 바라보면서 옷깃을 여미고 경건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입니다. 왜? 그분의 신실하심을 믿으니까.
하나님 한 번도 나를
더 놀라운 것은 10절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고 그 앞에서 나오니라”
대제국 애굽의 바로를 보잘 것 없는 늙은이인 야곱이 축복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축복할 수 있습니까? 세상적으로는 지위가 높고 가진 것이 더 많은 자가 남을 축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전능하신 하나님, 복의 근원이시며 인생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이 자신의 하나님이시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에 당당하게 일국의 왕을 축복할 수 있었습니다.
진시황도 알렉산더도 어떤 재벌들도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한 평생을 살아가며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움켜쥐고, 무엇인가를 이 땅에 남기기 위해서 몸부림치는 인생을 살아갑니다.
이 진리를 빨리 깨닫는 자가 지혜로운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이제 이 한해 마지막 달 마지막 주간에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지난 1년 헐떡거리며 달려온 열매가 무엇입니까?
부지런히 달려온 것 같은데 급한 것들 때문에 소중한 것을 놓친 것은 없으십니까? 현실적인 것들 때문에 영원한 것을 놓친 것은 없으십니까?
땅의 것을 얻느라 교회와 천국을 상실하며 살아가지 않았는지?
사랑하는 새하늘 교회 교우 여러분!
주님은 우리 인생을 오늘까지 지켜주셨고 내일도 동행하시며 지켜 주실 것입니다. 이분의 은혜 하나로 우리가 살아가고 있습니다.
야곱의 하나님이셨던 그 하나님이 여러분의 하나님이 되시기를 원하십니까?
시편 146:5에 보면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했습니다.
야곱을 복된 인생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이 바로 나의 인생을 인도하십니다.
야곱을 포기치 아니하시고 끝까지 붙드시고 새롭게 일으켜주셨던 그 하나님이 바로 나와 동행하십니다.
야곱을 돌아보신 그 하나님이 지금 내 삶을 인도하고 계십니다.
나를 포기치 않으시는 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달아 하나님의 사람으로 빚어져서 2024년을 새로운 소망으로 시작하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