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38-44장
네 마음 속에 지키라, 잠언 4:20-27, 446장
요즈음 T.V를 보다보면 외국인들이 방송에 많이 나오는데 그들이 한국말을 잘하는 것을 보고 놀라고, 또한 대화 내용에 대해서도 놀랄 때가 많습니다.
며칠 전 프로에서 한국에서 오래 산 외국인들이 우리 한국 사회에 대하여 날카롭게 지적한 내용을 오늘 소개하고자 합니다.
먼저 “한국인은 배고픈 것은 참아도 배 아픈 것은 못 참는다”
대단히 중요한 지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 아프다”라는 속담도 있지 않습니까?
배고픈 건 참아도 배 아픈 건 못 참는 심성, 이게 바로 우리네의 오랫동안 고질로 내려온 병입니다. 그러나 반드시 고쳐야 할 병입니다. 왜? 우리의
대부분의 불행이 여기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거기서 파생하여 두 번째 나온 지적이 “반부유층 정서”였습니다.
‘반부유층 정서’란 잘사는 사람에 대해서는 일단 나쁜 감정으로 대하려고
하는 그런 정서가 우리 한국 사람들 마음속에 팽배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향 평등주의가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그들은 지적하고 있습니다. 내가 못사는 건 참을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의 성공은 못 보겠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20-22절을 보면 아주 근본적인 말씀이 나옵니다.
“내 말이 그의 온 육체의 건강이 됨이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육체의 건강이 된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건강의 근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기독교를 그 책(the Book)의 종교라고 합니다.
서양 사람들의 격언 가운데 성공하기 위해서는 삼 C를 놓쳐서는 안된다고 합니다. chance, choice, challenge(기회, 선택, 도전)
이 세 가지는 함께 역사하고 있습니다.
기회가 왔는데 선택하지 못하면 기회가 기회되지 못하고, 선택을 했더라도 도전의 결단이 없으면 선택이 아무소용이 없게 됩니다.
현대 지성인의 결정적인 약점을 든다면 용기와 결단이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아픈 과거는 주님 앞에서 회개하였으면 잊어야 하고 쓸모없는 나쁜 습성들은 과감하게 버려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계속 미적거리면서 잊지도
버리지도 못하고 그저 세월에 쫓기면서 살아들 갑니다.
요한계시록 3:16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분명하지 않은 것은 예수님의 성격에 맞지 않습니다.
차든지 뜨겁든지 분명히 하여야 할 것입니다.
하나를 취한다는 것은 다른 것을 버린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이 둘 사이에서 머뭇거리고 있습니까? 둘 다 얻으려는 욕심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과 섞여서 살다가 하늘 나라에도 가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대단한 결단을 우리에게 요구하고 계십니다.
마태복음 5:29, 30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현대인들이 제어하지 못하는 몇 가지 문제들이 있는데 이것을 잘 극복해야 건강하게 삽니다. 먼저 강한 분노입니다.
바로 이것이 문제입니다. 자꾸만 화를 냅니다.
그거 화낼 일이 아닌데, 내가 간섭할 문제도 아닌데 화부터 냅니다.
신문을 보면서, 축구 중계를 보면서도 화를 냅니다. ‘저놈이 잘못 찬다고’
왜 중계 방송을 보면서 그렇게 화를 냅니까?
운동공학을 보면 경쟁심이 강한 사람은 운동을 해도 손해라고 되어 있습니다. 수양부터 하고 운동을 하여야 한다고 합니다. 인격이 잘못 되어 있으면 오래 살겠다고 운동을 해도 헛것입니다. 골프를 많이들 치시는데 골프도
수양부터 하여야 합니다. 얼굴이 벌개지는 사람들은 먼저 마음부터 다스리고 필드에 나갈 것입니다. 강한 분노, 경쟁심에서 오는 분노, 이 마음이 있어가지고는 영영 자기 인격, 자기 마음, 자기 건강 못 지킨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 현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는 너무 여러 가지를 하려는 욕심으로 인한 집중력 결핍이라는 것입니다. 요즈음 젊은이들은 컴퓨터도 몇 대씩
놓고 봅니다. 한 대만 가지고는 성이 차지가 않나 봅니다.
그리고 여러분들 제발 밥 먹을 때는 밥만 먹읍시다. 밥 먹으면서 전화 받고 그러지 말고 제발 집중하십시다. 며칠 전에 점심을 누가 같이 먹자고 해서 나갔는데 식사 도중에 전화가 너무 많이 와서 대화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남의 식욕까지 없어지게 합니다.
욕심이 너무 많습니다. 너무 많은 것을 일시에 얻으려고 합니다.
한 가지만 얻으면 됩니다. 한 가지씩 해결해 나가야 합니다.
마지막 문제점은 자기기만이라고 합니다.
현대인에게 결정적인 약점은 자기 페이스를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모르고도 아는 척, 아무 것도 없으면서 있는 척, 가짜가 판을 치는 세상입니다.
언젠가 한 번 강도들이 미국 L.A의 베버리 힐스의 돈 많은 사람들이 파티를 하는 장소에 쳐들어가서 모든 여자들이 가지고 있는 반지, 목걸이 이런 거를 전부 거두워 왔다 합니다. 그리고 가서 감정을 해보니 90퍼센트가 가짜더랍니다. 그래 강도들이 일당도 안 나왔다고 한숨을 쉬었다고 합니다.
자기기만, 자기 스스로 자기 마음을 속이는 것입니다.
속이다 보면 진짜인줄 알아요. 우리 집 뒤에 풀들이 자라는데 잘라 주지를 않으면 나중에는 자기가 다 나무인줄 알아요.
여러분, 명예니 지위니 돈이니 하는 게 다 옷걸이입니다.
잠깐 걸쳤다가 훌쩍 지나가는 것입니다. 이걸 모르면 안됩니다.
옷걸이는 옷걸이일 뿐이지요. 우리가 추구하는 것들 중에는 옷걸이인 것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뭘 그렇게 열을 냅니까? 바로 이런 이유로 오늘 봉독한
23절은 “무릇 지킬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했습니다.
무슨 뜻이냐하면 세상에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재산도 지켜야 하고 명예도 지켜야 하고 가족도 지켜야 하고 나라도 지켜야 합니다. 그 지켜야 할 수많은 것들 중에 제일 먼저 마음을 지키라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생명의 근원이 바로 여기에서부터 나오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네 마음을 방임하지 말라, 마음은 언덕 위에 놓인 수레와 같은 것이다.
위에서 잡아 당기지 아니하면 그대로 떨어지게 되어있다.
스스로 자기 자신을 컨트롤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범선이 바다 위에 떠서 돛을 높이 달고 항해할 때, 한 척은 동쪽으로 가고 다른 한쪽은 서쪽으로 갑니다.
그럼 왜 똑같은 바다위에서, 똑같은 방향으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면서
두 배가 떴는데 한 척은 동쪽으로 가고 다른 한척은 서쪽으로 갈까요?
이것은 파도 때문이거나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 범선에 달린 돛의 방향에 따라서 한 배는 동쪽으로 가고 다른 한배는
서쪽으로 가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의 중심을 잡아야 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지켜야 삽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마음을 지키는 것일까요? 24-27절에 그 대답이 나옵니다.
첫째로, 마음을 지키기 위해 입을 지켜야 합니다.
오늘 본문 24절은 말씀합니다. “구부러진 말을 네 입에서 버리며 비뚤어진 말을 네 입술에서 멀리하라”
입술을 깨끗케 해서 바른 말, 덕스러운 말, 남을 살리는 말을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마음을 잘 지키기 위해서는 말을 잘해야 합니다.
말이라는 것이 결국 마음에서부터 나오는 것 아닙니까?
상대편이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생각하는지를 알려면 말을 들어보면 압니다. 아무리 말을 그럴듯하게 해서 속이려고 해도 말 속에 그 사람의 인품이나 사상, 의도 등이 고스란히 묻어있기 마련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어떤 말을 씁니까? 살리는 말입니까? 죽이는 말입니까?
그런데 입을 잘 지키기 위해서는 먼저 귀를 잘 지켜야 합니다.
항상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사람의 말에 귀를 빌려주는 사람은 결국 자기도 그렇게 되고 말아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말을 하기 마련입니다.
내가 어떤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어떤 내용에 귀를 기울이는가를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마음을 지키기 위해 눈을 지켜야 합니다.
25절을 보세요. “네 눈은 바로 보며 네 눈꺼풀은 네 앞을 곧게 살펴.”
무슨 뜻입니까? 새번역 성경은 이렇게 번역합니다.
“눈으로는 앞만 똑바로 보고, 시선은 앞으로만 곧게 두어라.”
쓸데없는 곳에 기웃거리지 말고 항상 앞만 똑바로 쳐다보라는 말씀입니다. .
눈을 지키는 것이 마음을 지키는 일입니다. 보는 걸 잘 보아야 합니다.
아무거나 보는 거 아닙니다. 봐서 안 될 것은 안 보는 게 좋습니다.
보아서는 안 될 것이라고 생각되거든 바로 눈길을 돌릴 것입니다.
다윗이 시간이 나서 어슬렁 거리다가 목욕하고 있는 아낙네에게 눈길이 갔습니다. 눈이 그곳으로 간다는 것은 마음이 그곳으로 간다는 뜻입니다.
다윗은 눈을 잘못 지켰기 때문에 큰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오늘 여러분은 무엇을 주로 보십니까?
눈이 어디로 가 있는가에 따라 마음도 거기에 가 있기 마련입니다.
눈은 마음의 창입니다. 마음을 지키기 위해서는 눈을 지켜야 합니다.
셋째로, 마음을 지키기 위해 발을 잘 지켜야 합니다.
본문 27절을 보면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네 발을 악에서 떠나게 하라” 그렇습니다. 마음을 잘 지키기 위해서는 발을 잘 지켜야 합니다.
아무데나 발을 들여놓다가는 죽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느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가에 따라서 우리의 마음도 영향을 받습니다.
술을 좋아하는 분은 술집으로, 책을 좋아하는 분은 서점이나 도서관으로,
샤핑을 좋아하는 분은 백화점으로 발걸음을 둡니다.
신앙이 좋은 분은 항상 교회로 발걸음을 두기 마련입니다.
발걸음을 바로 지켜 마음을 바로 간수하지 못하면 죽습니다. 길을 잘못 들어 일평생 어둠 속에서 방황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사랑하는 새하늘교회 교우 여러분!
재산과 명예와 권세와 인기와 가족과 나라를 지키는 것, 다 소중합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보다 마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잘 살기 원하십니까? 무엇보다 마음을 지키십시오! 그리고 마음을 지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지배해야 합니다.
오늘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성령의 역사로 충만하도록 우리가 교회에 나오지 않았습니까? 계속적으로 말씀의 충전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면 복잡한 마음이 단순하게, 근심했던 마음이 평강으로 가득찰 것입니다.
단순한 마음으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이 세상이 주지 못하는
평강을 누리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