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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잠언 6: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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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대하 11-17장

 

게 으 름, 잠언 6:6-11, 348장.

 

오늘은 먼저 지난 주간에 제가 받았던 감동, 느낌을 먼저 나누고 

설교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저희 집 길 건너에는 제가 사랑하는 영천 시장이 있는데, 제가 그 근처에서 태어났습니다, 영천 시장은 물가가 싸고 맛있는 음식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오늘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영천 시장 앞 도로변에는 각종 병원들이 있고 내과 안과 이비인후과 정형외과 치과 등등 그러다 보니 약국들도 꽤 많은데 ‘꿈이 있는 약국’이라는 약국의 약사분은 나이가 꽤 드신 할머니셨는데 

그 약국 앞에는 야채를 파는 노점상이 있었는데 참 이상하다.

어느 날 그 할머니 약사분이 약국을 파시고 새로운 분이 약국을 여셨는데 약국 앞에 화분들을 쭉 늘어 놓아 노점상이 장사를 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걸 보는 마음이 별로 편치 않았는데 다른 약국이 허용을 해서 그 분이 

그리고 옮겨 장사를 하는 것을 보고 마음이 따뜻해 졌습니다. 

우리도 힘든 사람들을 배려해서 같이 살아야 하는데 

 

하나님도 도와 주지 못하는 것 몇 가지가 있습니다. 

다이어트 하겠다고 기도 제목 내어 놓은 사람이 정작 본인은 저녁마다 폭식합니다. 돈은 많이 벌기 바라면서 본인은 일을 안합니다. 

공부 잘하기를 바라면서 정작 스스로는 공부 안합니다. 

내가 먼저 먹는 것을 참아야 하고, 내가 먼저 열심히 일해야 하고, 내가 

먼저 공부해야 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믿는 우리들은 두 나라 시민입니다. 

이 세상의 시민인 동시에 하나님 나라의 시민입니다. 

한 몸 가지고 두 나라를 섬기려고 하면 배나 더 부지런해야 합니다. 

사실 그렇지 않습니까? 직장에서 승진하려면 남보다 더 부지런해야 합니다.  그리고 또 우리는 그 바쁜 생활 속에서도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시간을 쪼개어 땀 흘리며 열심히 일하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기도를 하기만 하면 살이 저절로 빠지고 가만히 있어도 사업이 잘되어 곧 부자가 되고, 노력을 안 해도 공부도 잘하게 되는 줄 알고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먼저 부지런하셔야 합니다. 

 

오늘의 본문은 ‘게으른 자여’라고 부르면서 시작합니다. 

게으르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지금 할 일을 내일로 미루는 것이 게으름입니다. 

또 내가 해야 할 일을 남에게 맡기는 것도 게으름입니다. 

하나님은 게으른 자에게는 다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지 않습니다.   

게으른 사람들은 동물적 시간을 살고 있습니다. 생각 없이 살아가는 것입니다. 맑은 정신으로 살아가도 모자라는 세상에 그저 잊어버리려고만 합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게으름이란 상승 작용을 합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한번 게을러지면 점점 더 게을러진다는 말입니다. 

게으름도 병입니다. 일단 한번 이 병에 걸려서 치유 받지 못하면 계속적으로 더 게을러지는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 9절 “게으른 자여 네가 어느 때까지 눕겠느냐 네가 어느 때에 잠이 깨어 일어나겠느냐?” 도대체 잠이 너무 많습니다. 

잠을 너무 많이 자는 것, 문제입니다. 병들어서 잠을 많이 자기도 하지만, 

잠을 너무 많이 자서 병들기도 합니다.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또 잠언 26:15을 보면 참으로 기가 막히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게으른 자는 그 손을 그릇에 넣고도 입으로 올리기를 괴로워하느니라” 

게으른 자는 그릇에 손을 넣고 음식을 입으로 올리는 것까지도 힘들어한다는 것입니다. 게으름은 끝도 없다 이 말입니다. 

옛날 왕이나 귀족들은 침상에서 식사했습니다.  

침대에서 일어나자마자 갖다 받쳐놓은 음식을 먹습니다. 

이게 무슨 꼴입니까? 그래서 왕과 귀족들은 오래 살지 못 하였습니다. 

우유배달부와 우유를 먹는 사람.

 

로마서 12장 2절을 보면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라고 되어 있습니다. 

‘변화를 받아’ 습관에는 ‘나쁜 습관’과 ‘좋은 습관’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믿는 사람들은 조금 다른 관점에서 보아야 합니다. 

단순히 ‘나쁜 습관, 좋은 습관’이 아니라 ‘영적으로 도움이 되는 습관’과 

‘영적으로 방해가 되는 습관’으로 나누어 보아야 합니다.

 

지난 설교에서 우리들 각자 앞에 있는 여리고를 무너뜨리려면 그 여리고를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순종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방법대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 방법이 황당합니다.

아무 것도 하지 말고 그저 성을 돌라는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6일 동안은 하루에 한번만, 그리고 7일째 되는 날에는 7바퀴를 돌라는 명령이었습니다.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일수록, 세상 물정에 밝은 사람일수록, 사리판단에 빠른 사람일수록 매일 성을 돈다는 것이 얼마나 미련한 일이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이 사랑하셨던 백성들에게 요구하셨던 것은 그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을 따라 살라! 아무리 좋아보여도, 아무리 굉장해 보여도 세상의 방법으로 살지 말고 하나님의 방법으로 살아라! 

신앙인으로 산다는 것은 하나님의 방법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여리고성을 돌라는 것이 하나님의 방법이었습니다. 이해하기 힘들었으나 하나님의 방법대로 따랐더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완벽한 승리가 주어집니다.  

히브리서 11:30은 그들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칠일동안 여리고를 도니 성이 무너졌으며.”  

여러분들 앞에 어떤 여리고성이 있습니까? 

오늘도 하나님이 하나님의 방법대로 그 여리고성을 정복하게 하실 것입니다. 

 

아이들은 방학이 되면 생활계획표를 짭니다. 

저도 짜봐서 아는데 몇 가지 문제점이 있습니다. 

첫째는 게임하는 것이 중심이 된다는 것입니다. 

24시간 중 노는 시간, TV보는 시간을 다 뗀 후 남는 시간에 공부도 하고 독서도 한답니다. 무엇이 우선순위입니까? 

두 번째 문제는 실컷 계획은 세워놓고 그렇게 못 산다는 것이지요. 

방학 시작하고 하루 이틀은 실천하지만 작심삼일이 되곤 합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이 아이들에게만 나타나는 게 아닙니다. 

어른들도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려면 시간표를 작성해야 하는데 어른들도 

아이들처럼 두 가지 문제가 나타납니다. 

첫째는 무엇이 먼저냐, 우선순위가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자는 시간, 먹는 시간, 누구 만나는 시간, TV 보는 시간 먼저 다 떼어놓은 후 남는 시간으로 성경 보고, 기도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하지만 이런 생활습관으로는 절대ㄹㅎ 신앙이 성장하지 않습니다. 

신앙이 성장하려면 내 생활과 시간을 철저하게 신앙생활을 중심으로 짜야 합니다. 아침에 깨는 시간도, 밤에 잠자리에 드는 시간도 신앙적인 필요에 의해 조정되어야 합니다. 

교회 나온 지 꽤 오래 됐는데도 늘 신앙이 제자리걸음인 사람들을 보면 대개 소극적인 신앙을 가진 분들입니다. 

교회 나온 지 얼마 안 되어도 신앙이 쑥쑥 크는 분들의 공통점은 적극적인 자세로 믿고, 긍정적인 생각으로 신앙생활을 하시는 분들입니다. 

 

영적으로 도움이 되는 습관, 즉 ‘거룩한 습관’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저희 교회에서 강조하는 것은 매일 성경 읽기입니다. 

여러분들이 성경을 매일 읽으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삶이 정돈이 되어서 똑똑한 소리들을 하고 삶에 기쁨이 넘쳐 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녀들에게 신명기 6:8-9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지니라.”고 가르친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늘 곁에 두고 읽으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삶이 형통하는 비결이 있다고 믿은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루에 얼마나 성경을 보십니까? 가끔 생각날 때 한 번씩 하십니까? 이것이 다 습관이고 생활입니다.

내 모든 습관들이 철저하게 영적으로 자리 잡히고 하나님 중심으로 서게 되면 나의 삶 전체가 놀랍게 바뀌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잠언 22:13에 재미있는 말씀이 있습니다. “게으른 자는 말하기를 사자가 밖에 있은즉 내가 나가면 거리에서 찢기겠다 하느니라”

게으른 자의 특징은 변명과 핑계가 많고, 비난하기를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  

나는 안하면서 남이 하는 것을 헐뜯습니다. 나는 게으르면서 남이 부지런한 것을 비난하기를 좋아합니다. 이런 못된 성격이 생깁니다. 

그리고 나면 모든 책임을 남에게 돌립니다.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앞에 큰 죄를 범했습니다. 

그 광야 생활 동안에 저지른 죄는 한마디로 ‘원망죄’입니다.

환경이나 이유가 어떠했든 간에 원망은 바로 불신앙입니다. 

조금 깊이 생각해 보면 원망이란 자기 불행의 책임을 남에게 돌리는 것입니다. 내가 가난한 것은 부자 때문이고, 내가 실패한 것은 세상 때문이고, 내가 이 모양 이 꼴이 된 것은 다 누구누구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남편 때문에 신세 망쳤다는 사람, 아내 때문에 일생을 실패해 버렸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잘못된 책임을 남에게 전가하고 그 원인을 다른 사람에게 귀속시키다 보면 원망은 절로 생기게 마련입니다. 이제 분명히 아십시다. 

남 탓하지 마시고 모든 책임을 나 자신이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때에 비로소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게으른 자의 개념은 더 높은 차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에 대하여 마태복음 25장에서 달란트 비유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거기에서,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은 다섯 달란트를 남겼고, 두 달란트 받은 사람은 두 달란트를 남겼으나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한 달란트 그대로 가지고 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한 달란트 받은 사람에게만 ‘악하고 게으른 종아!’라고 하셨습니다. 악하고 게으르다. 게으르다는 말은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악하다는 말은 지나친 것 같습니다. 왜요? 본전은 잘라 먹지 않았습니다. 그냥 본전 그대로 가지고 왔는데 왜 악하냐, 이 말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게으름의 개념입니다. 게으름은 악함과 동일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불신앙입니다. 

데살로니가 후서 3:10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골로새서 3:23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사랑하는 새하늘 교회 교우 여러분!

내게 주어진 기회, 내게 주어진 능력, 내게 주어진 현실 이대로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것입니다. 소중한 것입니다. 

내가 해야 할 일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릅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가르칩니다. 

6절 “개미에게 가서 그가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

아무도 탓하지 말고 원망하지도 마세요. 

내게 주어진 여건과 시간 안에서 내가 얼마나 충성되었느냐, 얼마나 최선을 다하느냐에 내 앞날, 미래가 달려 있는 것입니다. 

농부가 수확을 하늘에 맡기고 충성을 다하는 것처럼 

오늘의 현실에서 최선을 다하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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