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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진보(마태복음 14: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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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주에는 마태복음 14:13-21 본문을 가지고 은혜를 나누었는데 오늘은 

지난 주에 이어서 22-33을 가지고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마태복음 14장에 앞서 13장은 이렇게 끝납니다. 13:58 “그들이 믿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거기서 많은 능력을 행하지 아니하시니라”

무슨 말이냐 하면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은 믿음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믿음입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사이는 믿음으로 연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없어지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것을 성경에서는 죽음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믿음은 매우 소중한 것입니다. 하나님도 우리의 믿음을 보신다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후서 4장 7절에서 마지막 고백을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믿음을 지켰다고 했습니다. 이 믿음은 지켜나가는 것입니다. 

사단은 이 믿음을 무너뜨리려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아니하고 공격해 옵니다. 왜냐하면 이 믿음이 무너지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이 세상이 험하고 환란이 와도 믿음만 굳게 붙잡고 있으면 반드시 승리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사단이 하는 일은 믿은 우리들의 마음속에 의심을 심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왜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습니까?사단의 속임수에 넘어가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말씀을 의심하게 될 때에 넘어지게 되고, 범죄하게 되는 것입니다. 

믿기는 믿는데 내 방법대로 믿는 것, 내가복음을 쓸 때.

믿음대로 사는 삶 속에 기적이 있고,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가장 선한 길로 인도해 주신다고 약속하십니다. 다윗은 시편 23: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기독교는 기적의 종교입니다. 성경에 보면 수많은 기적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많은 기적들을 성경에 기록한 이유는 그 기적들을 우리에게 알려주기 위함이고, 그리고 그 기적들이 지금도 여전히 계속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기적은 계속 일어납니다. 

그러나 초대교회에 일어났던 기적이 오늘 그대로 일어나기보다는 오늘의 

상황에서 필요한 기적이 일어납니다. 

 

예수님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 명이 넘는 사람들을 배부르게 먹이고도 12바구니가 남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자 사람들은 예수님을 왕으로 세우고자 합니다. 그런데 그 후에 예수님은 제자들을 배에 태워 호수 건너편으로 보내고 본인은 기도하시려 산으로 올라가셨습니다.

인기와 칭찬이 사람에게 가장 큰 약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누구보다 이러한 상황을 잘 알고 계셨기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관심을 받으면 받을수록 하나님께 집중하셨습니다.

그 방법 중의 최고가 바로 기도와 묵상입니다. 

우리에게도 홀로 기도하고 묵상하는 시간이 꼭 필요합니다. 

23절을 보니 날이 저물매 거기 혼자 계셨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22절 예수님께서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24절 “물결로 말미암아 고난을 당하더라”

예수님께서 가라는 말씀에 순종했음에도 불구하고 풍랑이 일어났던 것처럼 우리 인생길에는 말씀에 순종해도 고난이 올 때가 있습니다. 

대부분이 그 고난을 통하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더 잘 알게 하고, 믿음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키십니다. 큰 그릇으로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신앙을 up-grade. 

 

그리고 오늘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고난당할 때 반드시 주님이 찾아오신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고난의 현장에 찾아 오셨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인류 역사에 없었던 기적을 행합니다. 물 위를 저벅저벅 걸어 주님께로 갑니다. 믿음은 모험입니다. 결단입니다. 주님과 눈을 맞추고 걸어가다가 풍랑을 바라보게 되니까 풍랑 속에 빠지게 됩니다. 

우리에게 여러 가지 환난, 시련 다가올 때 주님만 바라보고 나아가게 될 때에 환난 시련을 정복하는 승리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신․구약 성경에 위대한 사람이 여럿 있지만 물 위로 걸어본 사람은 예수님 외에 베드로 밖에 없습니다. 모세나 여호수아 같은 사람도 홍해나 요단강이 갈라진 다음에 걸었지 베드로처럼 물 위로 걷지는 못했습니다. 

베드로는 갈릴리 어부에 지나지 않은 자요. 성격이 과격하고 급하여 실수가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주께서 말씀하시면 주님이 명령하시면 그 말씀과 명령에 생명을 걸 수 있는 모험적인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신앙은 모험적이고 즉시 순종하는 신앙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찾아오시는데 물 위로 걸어오셨습니다. 

초저녁에 제자들은 배를 저어 갈릴리 바다로 들어갔습니다. 지금이 밤 4경입니다. 4경이란 새벽 3시부터 6시 정도입니다. 

똑같은 상황 속에서, 똑같은 제자들이, 똑같이 주님을 바라보았지만 열한 사람들은 구경꾼처럼 바라만 보았습니다. 그러나 베드로 한 사람만이 바다 위를 걸어가는 기적의 주인공이 되었던 것입니다. 

야고보서 4:2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이 시간 여러분들이 접어두었던 여러분들의 기도제목이 있습니까? 

이 시간 펼쳐서 구하시기를 바랍니다. 구하면 얻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꿈꾸는 그 일들이 너무나도 엄청나고 커서 도전하지 못했던 일들이 있습니까? 이 시간 도전하시기를 바랍니다. 

병으로 신음하며 오랫동안 고생해 오신 분들이 계십니까? 

이 시간 여러분의 질병을 주님 앞에 맡기시기를 바랍니다. 

불황이라고 고민하는 분들 계십니까? 

여러분들의 경제적인 어려움을 주님과 함께 해결해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열한 제자와는 다른 베드로를 보십시다. 오라! 하는 주님의 말씀이 떨어지자 베드로는 발을 내딛기 시작했습니다. 

가리라! 베드로는 풍랑 이는 바다에 발을 내딛었습니다. 

그러자 주님처럼 바다 위를 지금 걸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발을 내딛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는 배에서 일어나 파도가 흉흉한 바다 위로 과감히 걸어가고 있습니다. 

그의 눈에는 산더미 같은 파도가 보였으나 그것을 무시해 버렸습니다. 

주께서 말씀하시니 가겠다. 이것이 기적의 주인공이 되는 비밀이었습니다.

옳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실패도 성공도 말씀에 근거해야 합니다. 

말씀으로 하는 일은 성공이요 말씀이 없이 하는 일은 실패입니다.

28절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베드로는 자신의 재주나 능력으로 물 위를 걸으려고 했던 것이 아닙니다. 

자기의 신앙이 up-grade되기 위해서는 자기 전공, 자기 지식, 자기 전공을 뛰어 넘어야 합니다. 자기 전공에 묶이면, 지식에 묶이면, 경험에 묶이면 

신앙이 더 넒은 세계로 나아가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자기의 지식이나 경험을 뛰어 넘어 ‘주시어든 물위로 걷게 하소서’라고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이 업그레이드 되는 비결입니다. 

내 전공보다 하나님은 크십니다. 내 지식보다 하나님은 크십니다.

내 전공, 내 지식, 내 경험이 혹시 주님께 나아가는데 장애가 되고 있지는 않습니까? 만일 장애가 된다면 그것은 바벨탑이며 우상입니다.

진정한 지식, 진정한 경험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내 지식을 뛰어 넘어, 내 경험을 뛰어 넘어 주님 앞에서 당신의 신앙을 업그레이드 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믿음이 좋다는 한 청년이 은혜로운 집회를 마치고 산에서 내려오는데 여름철 폭우에 강물이 넘쳐서 건널 수 없게 되었습니다. 마음속에 너무나도 믿음이 충만했습니다. 베드로가 물 위로 걸었다면 나도 넘실대는 강물을 건널 수 있으리라. “주여 믿습니다! 100번 외쳤습니다. 그리고 강물에 발을 풍덩 담그는 순간 쑥 빠져 들어가서 허우적거리고 있습니다.” 사람 살려! 옆에 있던 청년들이 밧줄을 던져서 겨우 살려 주었습니다. 나는 왜 베드로처럼 걷지 못할까? 믿음 없음을 한탄했다는 얘기지요.

은혜는 말씀에 근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오라 했기 때문에 베드로가 간 것이지, 자기 생각으로 간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 젊은이는 강물을 자기 생각으로 건너보려고 했던 게지요.

주님이 오라 하지 않는 일을 하면 망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말씀에 근거하고 살아야 합니다. 말씀이 없는 성공이나 실패는 불행입니다. 

말씀에 근거한 일은 성공을 하든, 실패를 하든 모두가 위대한 것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말씀을 붙들고 믿음으로 시작한 일에도 실패가 있었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말씀을 붙들고 바다 위를 걸어가던 베드로가 물속에 빠져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왜 베드로가 물속에 빠져 들어가게 된 것입니까?

오늘 본문 30절에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가는 지라” 

뚜벅뚜벅 주님만 보고 걸어갈 때는 바다 위를 걸어갈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거대한 파도가 지나가며 베드로와 예수님 사이를 갈라놓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이 파도에 가려서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때 아래를 내려다보니까 흉흉한 바다가 두려움으로 다가오게 된 것입니다. 불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운동장처럼 걸어가던 바다에 빠져들기 시작한 것입니다. 예수를 보던 그 눈이 문제의 파도를 보는 순간 문제 속에 빠집니다. 파도에 빠집니다. 

이때 예수님은 31절에서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물으십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에게 때로 믿음이 있다할지라도, 말씀 듣고 달려간다 할지라도, 물에 빠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도 건강이 물에 빠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도 사업이 물에 빠질 수 있습니다. 행복이 물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천부여 의지할 곳 없어 주님 앞에 나옵니다. 항복하고 나오면 주께서 우리의 손을 붙들어 주실 것입니다.

 

중동에 한 행상이 사막에서 길을 잘못 들어서 크게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때 공자님께서 나타나셔서 하시는 말씀이 “인생은 언제나 바른 길을 가야 하는 법이요” 하고 지나갔습니다. 

그 후 석가모니께서 나타나셔서 “인생은 고행이라오” 하고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마호멧이 나타났습니다. “그게 하나님의 뜻이니 하나님 앞에 굴복하시오”라고 지나갔습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는 이 나그네의 손을 붙들고 

“내가 이 길을 너와 함께 동행해 주마” 

그래서 그 길을 예수님이 함께 손 붙들고 사막을 지나간다는 얘기입니다. 

이게 기독교입니다.

예수님은 책망하거나 나무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구경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멀찍이 바라만 보는 분이 아니십니다. 언제나 내 곁에서 나와 함께 계시는 분이십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내 곁을 떠나는 그 순간에도 예수님은 내 곁에서 나를 붙들어 지켜 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 날 붙잡아 주시면 세상의 모든 권세 있는 자들이 다 도와줘도 해결될 수 없었던 문제, 세상의 모든 의사들이 다 매달려도 치료되지 않았던 그 문제, 세상의 모든 부한 자들이 다 도와줘도 해결될 수 없는 문제, 하나님이 한번만 도와주시면 바로 이 순간에 해결될 줄로 믿습니다. 

 

주님여 이 손을

 

오늘 본문을 통하여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기 원하는 메시지는 예수님은 지금도 영원히 변하지 않는 기적을 베풀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기적을 경험하지 못할 것입니다. 

반면에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기적의 주인공이 될 것입니다. 

기적은 이성과 상식으로는 알 수 없습니다. 오직 말씀에 대한 깨달음과 영적 감각이 있어야만 기적을 체험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새하늘 교회 교우 여러분!

신앙이 성장하지 않고 정체해 있으면 장애입니다. 신앙의 현상유지를 단호히 거절해야 합니다. 자신의 신앙의 현주소에 만족하지 마십시오. 

그러기 위해 신앙은 계속해서 UP GRADE 되어야 합니다. 

신앙이 계속해서 UP GRADE 되기를 원하십니까? 이제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그 말씀에 생명을 걸고 신앙의 모험을 시작하십시오. 

주님의 모습을 닮아갈 때까지 신앙의 성장이 계속 되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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