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자의 ‘아모르 파티’라는 가요가 있습니다.
저는 파티가 party 인줄 알았더니 fati. 라틴어.
아모르 파티(amor fati)는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라는 의미로,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의 용어입니다. 운명애(運命愛)라고도 합니다.
인간에게 필연적으로 다가오는 운명을 감수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오히려 긍정하고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여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니체에 따르면 삶이 만족스럽지 않거나 힘들더라도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합니다.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자신에게 주어지는
자신의 삶에서 일어나는 고난과 어려움까지도 받아들이는 적극적인 방식의 삶의 태도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 자기애는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기 전에는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가 ‘자기애’ 의 시작.
하나님께서 생각하시다가 나를 이 자리에 보내셨다.
내가 있는 이 자리가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자리.
직장, 학교, 교회. 부부도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사람.
이게 흔들리니까 다 혼돈이 오고 흔들리는 겁니다.
이 자기애, 아모르 파티의 극치는 예수님의 자기 인식이 아닐까?
예수님은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고 하나님이 나에게 이 땅에서 하라고 하신 일, 십자가에서 죽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다.
그리고 오늘 그 선포를 누가복음 4장 18절로 하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33년을 우리와 같이 사셨습니다.
그런데 태어나서부터 초기 30년간을 사생애라 하고, 마지막 3년간을 공생애라고 합니다. 성경 특히 복음서에서 주로 다루는 부분은 마지막 3년간의
공생애 기간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3년간의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나사렛 회당에서 행하신 메시아로서의 사명을 선포하는 설교였습니다.
말하자면 예수님의 ‘메시아 취임설교’인 것입니다.
이 설교에서 예수님께서는 이사야서 61장을 인용하시면서 당신의 생애에서 무엇을 행하게 될 것인가에 대해서 선포하셨던 것입니다.
이사야 61:1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예수님의 메시아 선포는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로 시작합니다.
‘성령이 내게 임하셨다’는 하나님의 능력을 덧입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령이 내게 임하면 내가 못하던 것을 하게 합니다. 내가 모르던 것을 알게 합니다. 내 자신을 이기게 합니다. 세상을 이기게 합니다. 죄를 분별하게 합니다. 이것이 성령의 기름 부으심의 은총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령의 기름 부으심은 적절한 예가 될지 모르겠지만 우리들이
매일 쓰는 전기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 집에 있는 모든 기구들이 다 전기가 있어야 효용가치가 있습니다.
전기 공급이 중단되면 일대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전기는 어디에 가느냐에 따라 능력이 달라집니다.
밥솥에 들어가면 밥을 해 냅니다. 냉장고에 들어가면 음식을 차겁게 만들어 냅니다. T.V에 들어가면 영상을 만들어 냅니다. 에어컨에 들어가면 시원한 공기를 내 보냅니다. 전기는 받는 기구에 따라 하는 일이 다릅니다.
성령도 이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성령이 누구에게 임하느냐에 따라 나타나는 바가 다른 것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임을 받은 모든 사람은 성령이 임한 사람들입니다.
4: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성령이 임하셔야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며, 내 심령에 치유가 일어나며 죄와 사망에서 해방이 되는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 예배 중에 주의 성령이 임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없는 성도는 자기 힘으로 신앙생활을 합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에 동의도 하고 은혜를 받으면서도 나의 생각대로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들이 많습니다. 믿기는 믿습니다. 그런데 누구의 방법으로 믿느냐 내 방법대로 믿습니다. 그래서 진리가 들어오지를 않습니다.
말씀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그리고 온 마디로 전하여져서 행동이 나와야 하는데 중간에 담이 많아서 막혀버려서 내 생각대로 행동합니다.
이런 자세로는 신앙의 승리자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한 여행자가 미국 그랜드 캐년에 놀러 갔다가 발이 미끄러져 낭떠러지로 구르다가 가까스로 작은 나무 가지 하나를 붙잡아서 간신히 살았습니다.
그가 겁에 질려 소리 질렀습니다. “거기 위에 누구 없소? 누가 날 좀 구해줘요.” 그러자 “내가 여기 있다. 나는 주 너의 하나님이다.” 하는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너무 반가워서 “하나님 감사합니다. 나 좀 구해 주세요” 하니까?
음성이 나기를 “내가 구해 주마. 그런데 그 전에 한 가지 물어보겠다. 넌 나를 믿느냐?” 하는 것입니다. “주님, 제가 확실히 믿습니다. 저는 매주일 교회에 나갈 뿐 아니라 헌금도 잘 합니다.”
주님이 다시 묻기를. “네가 정말로 날 믿느냐?”
“제가 얼마나 하나님을 잘 믿는지 모르세요. 저는 하나님을 믿어요. 믿습니다.” 했더니,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좋아! 그렇다면 네가 붙들고 있는 그 나뭇가지에서 손을 떼거라.”
그러자 그는 한참 동안 조용히 있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거기 위에 이 하나님 말고 다른 하나님 없습니까?”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받으면 해야 할 일 첫 번째가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땅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돈, 명예, 권세, 지식, 건강, 이런 것들을 말합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러한 것들이 아니라 복음입니다.
복음이 들어가면 죽어가던 생명을 살려냅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일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생명을 살리는 일입니다.
생명은 천하보다 귀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려다가 죽으면 의인이라고 하여 국가가 그의 가족과 자녀들을 보훈대상에 포함시켜 책임져 주는 것입니다.
물에 빠져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는 일, 전철에 떨어져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을 살리는 일, 참으로 소중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잠시 생명을 연장시켜주는 선행입니다.
그러나 영원한 선행은 영혼을 하늘나라로 인도하는 전도입니다.
누가복음 15:7절에는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하셨습니다. 전도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일이며, 또한 장차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이르렀을 때 최고의 상을 받게 하는 업적입니다.
하나님은 이 땅에 새로 태어나는, 거듭나는 모든 사람에게 사명을 맡기시어 보내셨습니다. 그 사명 중에 가장 중요한 사명이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전도의 결과가 얼마나 엄청난 일인지 모르고 있기 때문에 전도를 소홀히 압니다. 시간이 남으면 하는 일, 바쁘면 할 수 없는 일, 특별한 사람이나 하는 일로 여깁니다. 그러나 전도에 영원한 생명이 달려 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도 이 땅에 오셨을 때 쉬지 않고 전도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38에는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주님을 만난 사람들은 가만히 있지를 못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안드레는 형 베드로에게 전도했고 빌립은 나다나엘에게 전도하였습니다.
수가성의 여인은 예수님을 만나자 마자 자기 동네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그 결과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합니다.
빌립보에서 복음 전하다 감옥에 들어간 바울은 그 감옥에서 간수에게 전도합니다. 그러자 그 가족 전체가 예수를 영접하고 세례를 받습니다.
우리가 전도한 사람이 어떤 일을 할지 아무도 모릅니다. 우리가 전도하여 가르친 어린아이 하나가 세계적인 지도자가 될 지 누가 압니까?
오늘 우리가 전도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 어떤 일에 쓰임을 받을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열심히 전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가족, 이웃, 직장, 여러분 주변의 모든 사람들을 여러분에게 맡긴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 중에 먼저 여러분을 구원하셨고 그들을 맡긴 것입니다. 좋든 싫든 감당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하나님이 나를 세상에 보내신 중대한 이유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또 성령의 기름 부으심은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주신다고 합니다.
요한복음 8:32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사진.
진리를 깨닫게 된 사람들은 변화될 수 밖에 없습니다.
자기애의 변질된 제품이 자기 고집입니다.
일본이 세계 문물을 열심히 받아들이고 변화를 꾀하고 있던 시절
대원군의 쇄국정책.
변화는 자연현상이 아니어서 스스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대로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참고 기다리면 무슨 일이 있겠지, 그것은 어림도 없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는 살아남지 못합니다.
생각이 없는 것은 죽은 것입니다. 프로 골퍼들은 한 번 골프채를 들 때마다 그때마다 다시 생각하면서 한다는 것입니다.
단순한 행동이라고 그대로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생각이 따라가지 않으면 되는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자연이 변하겠지 어림도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는 살아남을 수가 없습니다.
대영제국이 오랫동안 자존심을 걸고 만들어낸 세계적인 백과사전인 Britannica란 사전이 있었습니다. 1990년대에만 해도 년 6억 5000만불이라고 하는 사상 최대의 매출고를 올렸습니다. 그로부터 4년 후에 이 브리태니커 회사는 제 3위로 위치가 밀려나고 말았는데 그 이유는 CD-ROM 백과사전 때문입니다. 처음 CD-ROM이 나왔을 때 브리태니커는 이것은 애들의 장난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시대의 흐름을 감지하지 못하고 역사와 전통을 고집한 결과로 고객은 역사와 전통을 운운하는 브리태니커의 묵은 땅을 떠나버렸습니다.
급기야 이 회사는 1999년에 헐값에 팔리고 말았습니다.
개신교 신앙의 핵심은 성령의 능력을 덧입어 변화되는 것입니다.
전진 아니면 후퇴입니다. 그냥 그 자리에 머무는 것은 없습니다.
내가 지금 나아가고 있지 않으면 퇴보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마지막은 이렇게 맺습니다.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오늘 설교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십니까?
주의 성령이 우리들의 이 메마른 심령에 임하여 예수님의 그 귀한 사역을 이어서 이루어가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