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년 9월 24일에 365장 마음 속에 근심있는 사람
11월 달에 마태복음 16장 16절을 암송하다가 말씀으로 거듭났습니다.
2박 3일 동안 눈물 흘렸던 것 같습니다. 세상을 다 얻은 느낌도.
그리고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 중에서 가장 존경하는 분을 오늘 본문에서
만나게 됩니다. 그는 짧은 시간 복음을 전하고 짧은 생애를 마쳤습니다마는
너무나 아름답고 존경스러운, 그래서 부러운 신앙의 선배이기 때문입니다.
성령 충만함의 속성과 그 상태가 어떤 것인가를 몸으로 말씀해 주시는 분이 바로 스데반 집사입니다.
‘성령 충만’의 충만을 뜻하는 헬라어 단어는 ‘플로레스’라고 하는데 이 말은 곧 체험적 신앙을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합리적 이해를 말합니다.
체험하고 나니까 이성적으로 합리적으로 다 이해가 됩니다.
그래서 이성적 비판의 충돌이 없습니다. 그런가하면 큰 감동이 있습니다. 모든 복잡한 문제를 다 넘어설 만큼 큰 감동이 있는 것이 성령 충만입니다.
성령의 능력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자기를 이기고, 죽음을 이기고, 원수도 이기고, 세상도 이겨 나갑니다. 그리고 성령 충만한 사람의 극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충만해서 모든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충만해 집니다.
‘The love of God’라는 책을 보면 사랑을 네 단계로 정리해 놓았습니다.
첫 번째 사랑이 뭐냐 하면 자신을 위해서 자신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기적이고 육체적인 사랑입니다. 나를 위해서 나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랑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결국은 망하고 맙니다.
두 번째는 자신을 위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기복신앙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결국은 자기 자신이 복을 받기 위함입니다.
헌금해서 복 받고, 열심히 봉사해서 복 받고, 칭찬받고...
세 번째는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신령한 세계를 추구하지만 그 하나님은 추상적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지만 구체적인 것이 없기에 이 마음은 곧 사라져 버립니다. 구체적이라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기도도 구체적.
마지막으로 가장 아름다운 사랑은 하나님을 위해서 나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 있는 내가 너무 소중하니까,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사가 너무 고마우니까 나를 위해서 나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하여 나를 사랑합니다. 모름지기 하나님을 위하여 나 자신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합니다.
오늘 스데반의 이 순교하는 장면에서 우리는 충만함의 뜻이 무엇인지를 읽어낼 수 있습니다.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사람들이 스데반을 향해서 이를 갈았다, 합니다.
이를 갈며 성 밖으로 내치고 돌을 던졌다 합니다.
여러분! 이 대목을 잘 생각해 보셔야 합니다.
왜 예수님의 수제자 사도 베드로가 아닌 스데반입니까?
왜 사도도 아닌 집사 스데반이 먼저 죽느냐, 순교하느냐 이 말씀입니다.
그것은 바로 이 사람이 특별했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은 저 ‘갈릴리 촌사람’이 아니고 헬라파 유대인이요 지성인, 당시로 말하면 세계문물을 두루 꿰고 있는 사람입니다. 식자층입니다.
이 사람이 예수 믿고 복음을 전할 때 같은 동료, 왕년에 같은 친구였던 헬라파 유대인들이 여기서 용납하지 못한 것입니다. 저들이 배신감을 느낍니다.
그래서 돌을 던져 스데반을 때려 죽입니다.
말하자면 지금 스데반을 죽이는 사람들이 바로 엊그제까지도 친구였던 같은 헬라파 유대인들입니다. 이 사람들이 돌을 던집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사울이라는 사람이 있어 뒤에 사도 바울이 됩니다. 그는 스데반을 죽이는데 가담했습니다마는 거기서 큰 감동을 받습니다.
스데반이 죽어가면서 사도 바울을 사로잡은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바울은 스데반의 제자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스데반을 향하여 돌을 던지는데 이에 대한 스데반의 태도가 중요합니다. 본문에 보는 대로 그는 성령이 충만했습니다.
성령 충만한 자는 땅을 보지 않습니다. 하늘을 우러러 봅니다.
그 옛날 로마 황제 시저가 암살 당할 때 칼로 자기를 찌르는 양자, 부르트스를 향하여 뭐라 합니까? ‘부르트스 너 마저도’ 아닙니까?
그런데 스데반은 자기를 죽이는 자를 보지 않았습니다.
네가 이럴 수 있느냐, 네가 어찌 이럴 수 있느냐,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하늘을 우러러 보았습니다.
여러분, 어떤 사건 어떤 상황에서든지 먼저 위를 보십시오.
위를 보는 것, 그것이 성령 충만한 자의 기본자세입니다. 골로새서 3:1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하십니다. 위의 것입니다.
먼저 눈을 들어 위를 보고, 하나님의 세계를 보고,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십시오. 그것이 성령 충만한 자의 모습입니다.
‘괴로울 때 주님의 얼굴보라’
또한 ‘주목하였다’ 합니다.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였습니다. 집중해서 보았습니다. 그 외의 다른 것은 안 보았다는 뜻입니다.
concentrate, 집중적으로 주목해서 하늘을 쳐다봅니다.
그리할 때 하늘이 열리는 것을 보았고 그리스도를 뵈었습니다.
나를 위하여 십자가 지신 그리스도를 뵈었습니다.
어서 오너라, 하고 서서 기다리고 계신 그리스도를 뵈었습니다.
하늘을 우러러 볼 때, 집중적으로 볼 때 주님을 만나게 되고 주님을 뵙게 됩니다. 그리고 그 주님께 내 생명을 드립니다.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주님을 바라보며 주님께 내 생명을 바쳐드립니다. 내 미래를 드립니다. 내 운명을 맡겨드립니다.
죽음을 앞두고 스데반은 자기를 기다리는 주님을 바라보면서 주님께 자기의 생명을 위탁합니다. 그러면서 죽음의 문제를 깨끗이 해결합니다.
죄의 문제, 불안과 공포의 문제, 세상에 대한 미련, 다 접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 total commitment, 자기 자신을 완전히 위탁해 버립니다.
여기서 그는 영혼의 자유함을 얻게 됩니다. 평안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제 자기를 죽이는 사람들, 그 원수들을 용서합니다. 용서할 뿐 아니라 원수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가끔 우리는 원수를 사랑하라 할 때 ‘원수를 사랑하다니, 원수를 어떻게 사랑해? 그건 특별한 성현들이나 예수님이나 사도 바울이나 할 수 있는 일이지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이 어떻게 원수를 사랑한단 말인가?’하고 말하기 쉽습니다마는 그렇지를 않습니다.
여러분, 원수를 사랑하고야 내가 살 수 있음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누구를 미워합니까? 미워하고 있는 동안은 ‘나’라는 생명을 내가 미워하고 있는 그 사람에게 빼앗기고 있는 것입니다.
내 마음도 내 진실도 내 소중한 건강까지도 다 빼앗기고 있는 것입니다.
빨리 벗어나십시오. 조금이라도 누구를 미워하는 그림자가 있거든 빨리 벗어나십시오. 거기에 매여 있으면 그 저주에서 헤어 나오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원수를 사랑하고야 내가 자유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스데반은 하나님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합니다. 그랬더니 참으로 귀하게도 그의 얼굴이 천사의 얼굴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6:15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
위를 보는 사람, 천사의 얼굴과 같습니다.
원수를 다 수용하고 사랑해 버릴 때 천사의 얼굴이 됩니다.
우리는 천사를 본 일이 없지마는 천사의 얼굴이 어떠할지 짐작은 합니다.
바로 그것이 변화된 모습입니다.
확실히 젊었을 때는 예쁜 것이 있습니다. 더 예쁘고 덜 예쁘고 가 있습니다.
그러나 나이 한 60쯤 넘고 보면 다들 그 사람이 그 사람입니다. 다 비슷합니다. 별 차이가 없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다른 점이 있습니다.
밝은 얼굴과 어두운 얼굴입니다. 예쁘고 안 예쁘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밝으냐 어두우냐의 차이는 확실히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형외과도 손을 못 대는 부분입니다.
왜? 이것은 내면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결국은 밝은 얼굴이 필요합니다.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자유하면 마음이
천사가 되고 얼굴도 천사가 되는 것입니다. 밝아지는 것입니다.
전도가 딴 것입니까? 밝은 얼굴이 전도입니다. 제 얼굴은 썩어가지고 누구에게 전도를 한다는 것입니까? 제가 듣고 싶은 소리는 이렇습니다.
‘저 사람 요새 와서 낯빛이 밝아졌어. 새하늘 청담 교회 나가더니 얼굴빛이 환해졌어.’ 그것이 전도입니다. 천사의 얼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십자가의 은혜를 깨닫는 사람, 성령 충만한 사람, 그에게 하늘이 열리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십니다. 그리스도께서 그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살고 싶으십니까? 아니 어떻게 죽고 싶습니까?
사람은 잘 죽어야 되겠습디다. 제때에 근사하게 죽어야겠습니다.
이게 잘못되면 한평생 수고한 거 다 망가지고 맙니다.
여러분, 오늘 스데반의 저 장엄한 순교를 보시기 바랍니다.
그 영광된 시간을 보시기 바랍니다.
천사의 얼굴을 하고 주님의 영접을 받는 저 스데반을 보십시오.
충만합니다. 그에게는 원수가 없습니다. 그에게는 어두운 그림자가 없습니다. 오직 밝은 마음과 소망과 영광과 천사의 얼굴이 있을 뿐입니다.
밝은 마음으로 천사의 얼굴을 가지고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Date: 2016/02/21 11:1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