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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세워가는 교회(에베소서 2: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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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본질은 믿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바로 알려면 그 교회에 모인 사람이 누구인가?를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2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19절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믿는 모든 분들은 교회의 손님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이 교회의 주인이 된 것입니다. 손님은 권리도 없고 책임도 없습니다.
그러나 주인이 된 여러분들에게는 하나님 나라의 상급도 주어졌지만
이 교회를 섬길 책임도 주어졌습니다.
주인의식과 주인공의식,
주인의식을 가지신 분들 덕분에 휴가를 잘 다녀 왔습니다.
새벽 예배를 지켜주신 고마운 분들, 송미경, 박태향, 황승우 모자.
사도 바울이 그토록 가기를 원했지만 가지 못했던 서바나, 스페인.
가서 보고 왜 사도 바울이 가고 싶어했는지를 알았습니다.
이유는 유대인들이 살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바르셀로나 황영조가 금메달, 몬주익, 유대인의 산. 사진.
가 있는 동안에 수고하신 김미경 집사님의 작품. 사진.

이어지는 말씀은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라고 합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천국을 소유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천국 시민권자입니다. 한국의 국력이 강해지다 보니까 한국의 시민권을 얻기 위해서 애를 쓰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특히 외국인 노동자들.
마찬가지로 신약 성경이 기록될 당시 로마 시민권을 가졌다는 것은 대단한 권세였습니다. 그런데 이 로마 시민권을 가질 수 있는 몇 가지의 길이 있었습니다. 첫째, 로마 시민권자의 자녀로 태어나면
둘째, 전쟁터에 나아가 영토를 점령해서 로마 황제에게 바치고 공로를 인정받으면 로마 시민권이 주어졌습니다. 세 번째, 많은 재산을 바치면
그렇게 온갖 대가를 지불하고서라도 로마 시민권을 얻기만 하면 대단한 권세를 누릴 수가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마 시민권자는 로마 제국 내에서만 보호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진 천국 시민권은 밤이나 낮이나 고난 가운데 있으나 형통한 자리에 있으나 보호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으면 억울한 일이 있을 때에 로마 황제를 찾아가 직접 호소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천국 시민권을 가진 우리는 만왕의 왕 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을 찾아가 우리 억울함을 직접 호소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직고. 종교개혁의 정신인 만인제사장설.
어려운 일 당할 때 543장 1절과 3절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이 천국의 시민권을 얻었습니까?
태어날 때 천국 백성으로 태어났습니까?
아니면 하나님 앞에 막대한 돈을 바쳤습니까?
그것도 아니면 하나님 앞에 엄청난 공적이라도 쌓았습니까?
2장 8절을 보면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에 의하여 내가 구원받았습니다.
천국의 시민이 되었습니다.
게다가 “하나님의 권속이라” 하나님의 가족이 되었다고 합니다.
아무리 고귀한 로마 시민권을 가졌다 할지라도 황실의 가족은 될 수가 없었습니다. 황제의 피를 받아서 이 땅에 태어나야만이 황제의 가족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권속 즉 하나님의 가족이 되었습니다.
21절과 22절을 보면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그런데 여기서 우리 눈에 뜨이는 단어들이 있습니다. 바로 ‘그의 안에서’, ‘주 안에서’, ‘‘성령 안에서’예수 안에서’, 라는 단어들입니다.
이는 우리들 간의 연합은 인간의 힘으로는 되지 못하고
오직 주 안에서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벽돌과 벽돌을 그대로 마주쳐 놓아서는 온전한 건물을 이루지 못하고 곧 무너져 버리고 맙니다. 벽돌과 벽돌 사이에는 모르타르를 발라야 온전해집니다. 바로 그리스도가 우리를 연결시켜주고 접착시키는 모르타르입니다.
믿는 우리들 사이에는 언제나 늘 그리스도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가 없이 바로 인간과 인간이 마주쳐서는 뻑뻑한 소리만 날 뿐만 아니라 곧 무너져 버리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실수도 하고, 또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기는 별로 잘하는 것 없지만 실수하는 사람을 판단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판단하는 그 형제를 위하여서도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그리스도의 눈으로 형제를 대할 때만이 하나의 공동체를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공동체를 이루기 어려운 분은 어쩌면 인간적으로, 윤리적으로 괜찮은 사람들일지도 모릅니다. 이 사람은 자신의 판단과 윤리 기준이 앞서기에 다른 사람의 단점만 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습니다. 그 말은 무슨 뜻입니까?
우리의 판단이 죽었다는 뜻입니다. 이제는 우리의 판단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주님의 판단이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이에 더하여 오늘 본문 21절과 22절은 교회에 관한 놀라운 통찰을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21절 “성전이 되어가고” 22절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이 땅에는 완전한 사람도 없고 완전한 가정도 없고 완전한 교회도 없습니다.
교회는 진행형입니다. 완전한 교회를 향해 나아가는 중입니다.

당시 소아시아 여러 교회 가운데 에베소 교회는 이상적인 교회가 될 수 있는 여건을 많이 갖추고 있는 교회였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사도 바울이 세운 교회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원래 교회를 창립하고 다시 다른 도시에 교회를 세우러 떠나곤 하였습니다.
그런데 유독 에베소 교회만큼은 교회를 창립한 이후 3년 동안 목회를 했고 또 제자훈련을 시켰습니다. 두란노 서원.
뿐만 아니라 에베소는 소아시아 지역의 교통중심지였고 문화의 중심지였습니다. 그래서 에베소 교회 성도들도 신앙생활을 시작하면 천국이 건설될 줄 알았는데 거기서 아픔과 상처를 겪게 되었습니다. 교회의 분열, 갈등을 겪었습니다. 그래서 저마다 교회를 비판하는 소리가 이곳 저곳에서 들려 옵니다.
그러다가 정작 쓰러지고 넘어지는 사람은 비판하는 자기 자신이었습니다.
오늘도 성도들이 교회에 올 때 자기 나름대로 교회관을 하나씩 가지고 교회에 옵니다.
교회는 모든 사람들이 나를 보고 웃어 주어야 할 만큼 친절해야 한다.
교회는 구제를 많이 해야 한다.
교회에 모일 때 큰 소리로 기도해야 교회가 뜨거운 교회요 좋은 교회다.
또 한켠에서는 교회는 큰 소리로 기도하거나 야단스러우면 안된다.
자기 나름대로의 교회관을 가지고 교회에 옵니다.
그래서 자기 생각과 맞지 않으면 거의 무차별 사격에 가까운 비판을 합니다. 그러다가 자신의 교회생활과 신앙이 위험 상태에 빠져듭니다.
이에 대해 오늘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를 통해 지금까지 너희들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을 가지고 하나님의 몸 된 교회를 평가할 위치에 있지 않다고 합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교회가 어떤 곳인지, 왜 교회 안에 연약성이 있는지, 왜 교회가 내 생각과 다른지 배워야 할 위치에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경삶 10단원 5과를 보면 ‘당신은 제게서 어떤 방법을 배울 필요가 없습니다. 당신은 오로지 당신의 교회에만 특별히 꼭 맞게 되어 있는 지시를 머리로부터 받아야 합니다. 그러한 지시가 최선입니다.’
그러므로 딴 교회는 이런데, 딴 교회는 뭘하는데 하시지 말고
기도해서 하나님으로부터 참신한 지혜를 받으십시오.

이 세상에서 가장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할 문제가 신앙생활, 교회에 대한 이해입니다.
지금 막 엄마 뱃속에서 나온 아기를 대하듯이, 이제 갓 결혼식장에서 걸어나오는 신부를 대하듯이, 경외감을 가지고 조심스럽게 대하지 않으면 그 고결함을 손상시킬 수 밖에 없는 것이 교회에 대한 생각입니다.
신학생 때는 세상 모든 교회들이 다 때 묻어 보입니다.
선배 목사들이 속물로 보입니다.
그래서 신랄하게 교회를 비판하고 목회를 평가해 보기도 합니다.
그리고 자기가 목회를 하면 끝내주게 할 걸로 생각을 하고 개척을 하면.
그러다가 자기가 목회현장에 나와 목회를 해보면 목회가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그렇게 쉽지 않은 것이 교회요 목회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합니다.

교회는 눈에 보이는 교회가 있고 눈에 보이지 않는 교회가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교회는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의 교회입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지상의 교회는 불완전한 교회입니다.
우리가 교회를 생각할 때 혼란을 겪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지상의 교회가 완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서 생긴 오해 때문입니다.
이 땅의 교회는 천사들이 모인 곳이 아니라 죄인들이 모인 곳입니다.
끊임없이 죄와 싸우는 부족한 죄인들이 모인 곳이 교회입니다.
교회에 허물이 있다고, 연약함이 보인다고, 내 맘과 취향에 맞지 않는다고 거기에 쉽게 화살을 쏘아대서는 안됩니다.
왜? 그 안에 모순되고 연약한 내가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행복하고 건강한 교회생활의 출발은 자기 생각 중심의 교회론을 버리고 정죄하지 않는 것입니다.

교회는 성자가 모인 곳이 아니라 죄인들이 모여 죄를 씻는 곳입니다.
교회는 어떻게 보면 병원같은 곳입니다. 그래서 거기 모인 우리 모두는 지금도 치료중이고 내일도 치료중이고 하늘 나라가는 그 날까지 계속 치료받아야 할 사람들입니다.
좋은 병원은 언제나 많은 환자들이 몰려와서 치료를 받습니다.
병원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환자를 치료하는 데 있습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다. 너도 환자요 나도 환자입니다.
병원에서 안대하고 나오는 사람이 다리 부러진 사람보고 비웃지 않습니다. 팔 부러진 사람이 맹장 수술하고 나온 사람 비난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교회 안에는 교만한 사람들, 혈기 많은 사람들, 거짓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 입이 가벼워서 걸핏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때문에 이 교회 안에서 그런 사람을 만나도 비난하거나 놀라지 말아야 합니다. 이제 교회에 대한 생각, 개념을 바꿉시다.
만약 이 땅에 살아가다가 한 완전한 교회를 만나시거든 여러분들은 절대로 그 교회에 등록하거나 그 교회 교인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왜? 여러분이 그 교회 멤버로 등록하는 순간 그 교회는 흠이 있고 아픔이 있고 갈등이 있는 교회로 전락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새하늘 청담 교회 교우 여러분!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행복한 교회를 만들어 갈 책임이 너희에게 있다.
건강한 교회를 만 들어갈 책임이 바로 너희에게 있다” 고 하는 것입니다.
“인생의 방황은 하나님을 만나면 끝이 나고
신앙생활의 방황은 좋은 교회를 만나면 끝이 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좋은 교회는 지금 저와 여러분들이 같이 만들어 가야 하는 것입니다. 완전하지는 않지만 건강하고 행복한 교회를 이루어가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Date: 2016/10/23 13:4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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