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수요일, 10월 4일은 우리 민족의 최대명절인 한가위입니다.
해외에 나가시는 분들도 많지만 많은 분들은 고향집에 다녀 오시기도 하고서울에 그냥 계신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아무튼 해외를 가든 고향집에 가든 서울에 있든 추석에는 온 가족이 함께 모입니다. 그래서 기쁘고, 그래서 힘들기도 합니다.
매스컴 발표에 의하면 제일 힘들어 하는 사람들은 며느리라고 합니다.
며느리들에 대한 제일 잘못된 생각, 그래서 며느리들이 가장 싫어하는 말은 여기서부터 시작한다고 합니다. 딸같은 며느리, 그런 건 없다고 합니다.
아들같은 사위, 며느리는 며느릴 뿐, 사위는 사위일 뿐.
시부모 : 좀 있으면 시누이네 오는데 좀 더 있다 보고 가야지
연휴도 긴데 좀 더 쉬었다 가지 그러니
남 편 : 나는 잘 못하지만 당신은 좀 더 싹싹하고 애교있는 며느리였으면
며느리 : 어머니, 그런 것 말 안해 주셔도 요즘 인터넷 보면 다 나와 있어요
수험생 : 수시 어디 썼니?
명절이 즐겁고, 기쁘고, 좋은 시간이 되기 위해서 무엇을 하고, 무엇을 조심해야 할지를 잘 알려준 내용입니다.
나로 인해 명절이 유익하고 즐거운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위해 믿음으로 살던 사람들의 믿음을 알고, 믿음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오늘도 그런 관점에서 바울의 믿음을 같이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은 로마에 있는 바울 참수 교회에 적혀 있는 본문입니다.
바울이 예수님을 증거 하다가 로마 감옥에 갇히게 되었고 그곳에서 바울은 자신에게 죽음의 때가 다가옴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제자인 디모데에게
마지막으로 서신을 보낸 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6절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벌써’ 라는 말로 자신의 죽음이 임박해 왔음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내용을 보면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는 바울에게서 전혀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인생에 대한 아쉬움을 찾아 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죽음 앞에서도 당당합니다. 바울이 죽음 앞에서도 이처럼 당당한 모습을 보일 수 있는 것은 두 가지 이유 입니다.
하나는 믿음의 경주에 최선을 다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천국을 향한 마라톤에 최선을 다했다는 것입니다.
몬주익의 황영조와 모리시타, 들어오고 나서 쓰러집니다. 의무실로 직행.
마라톤에서 완주를 하고도 힘이 남아 돌아 트랙을 계속 도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경주에 최선을 다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힘이 남은 사람은 뭔가 문제가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마라톤 경주에 참여하지 않는 것처럼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천국을 향해 달려가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어떻게 하면 더 재미있고 즐겁게 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더 많은 것을 누리며 살 수 있을까?’를 우선 순위에 두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믿는 우리들은 하늘나라를 바라보며 살아갑니다.
하늘나라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생각이 달라야 하고, 관심이 달라야 하고,
가치관이 달라야 합니다.
오늘 우리들이 심신을 다 바쳐 추구하고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지금 무엇을 위해 그렇게 수고하고 있습니까? 혹시 가짜를 위해 전심전력을 하고 있지는 않는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모파상의 진주목걸이, 아름다운 미모를 가진 가난한 시청 공무원 부인 마틸다는 문무상의 파티에 초대를 받고는 친구에게 진주목걸이를 빌렸다가 그만 잃어 버리고 맙니다. 할 수 없이 빚을 내어 10년 동안 갚고 보니 그 목걸이는 이미테이션. 가짜에 목숨 걸지 말아야.
즉 진정한 인생의 우선순위를 점검해 볼 때입니다.
마태복음 6: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세상 일에 집중해야지 인생의 문제가 해결될 것 같은데.
그런데 천국을 향해 마라톤에 참여 한 사람들 중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런 저런 이유로 중도에 탈락합니다.
초반에 탈락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중간 지점에 탈락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목표 지점을 얼마 남겨 두지 않고 안타깝게 포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6:9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바울이 당당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경주 후에 상급이 있음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믿음을 지킨 자들에게 주는 상을 히브리서 11:6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오늘 9절 이하에서 바울은 편지의 결론을 맺으면서 디모데에게 개인적인 부탁과 함께 지난날과 지금까지 자기와 함께 한 사람들을 죽 열거합니다.
그레스게, 디도, 누가, 마가, 두기고, 가보, 브리스가, 아굴라, 오네시보로,
에라스도, 드로비모, 으불로, 부데, 리노, 글라우디아 등 여러 사람들의
이름을 소개합니다.
바울은 편지를 쓸 때마다 마지막에 사람들의 이름을 열거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기억하면서 감사와 문안을 잊지 않습니다.
그만큼 바울의 생애에 영향을 주고, 받고, 함께 울고 웃으면서 살던 사람들입니다. 이 모든 사람들은 바울의 동역자요, 친구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혼자 사는 것으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늘 어울리고 함께 하는 삶으로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들과 함께 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점 현대사회가 고립되어 갑니다.
지금은 철저한 개인주의, 이기주의, 독립주의가 판을 칩니다.
아이들도 혼자 놀기를 좋아합니다. 점점 고립되어가고, 사람을 기피하고,
멀리합니다. 이것이 현대사회의 비극입니다.
영등포의 한 노인네, 집은 주저 앉아서 쥐가 왔다 갔다 하고.
수도 전기는 다 끊기고. 그런데 그 집에 노인 분이 한 분 삽니다.
새벽에 일찍 목발을 자전거에 싣고 지하철 역에 가서 세수를 하고, 교회를 돌아다니면서 300원씩 받고 빵, 밥 얻어 먹고. 그러다가 10시쯤 돼서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런데 동네 분 중 누군가가 이 분에게 접근을 하면 욕을 하면서 말도 못 붙이게 하고는 집으로 그냥 들어갑니다.
방송사에서 알아보니 이 분 집이 이 분 건데 형제들 명의로 되어 있고 자기는 명의가 없다고 믿고 있어요. 부동산업자가 등기부등본을 가지고 가서 설명을 하고 주변에서 설명을 하고 방송국에서 설명을 해도 막무가내.
결국 이 분은 재산이 50억 이상 되는데도 그냥 비참하게 살아갑니다.
왜 옆에 사람이 없기 때문에. 유일한 믿을 대상이 어머니.
신앙생활은 함께 하는 것이고 서로 돌아보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0:24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하나님의 사랑은 사람을 통해 확인됩니다. 하나님의 위로도 사람을 통해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응답도 많은 부분에서 사람을 통해 나타납니다. 주위를 둘러보십시오. 나와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의 힘과 위로와 격려가 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서로를 향해 그런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믿는 자의 가는 길이어야 합니다.
바울은 오늘 특별한 사람들을 소개합니다. 바울은 평생 자기와 함께 한 사람들로 인해 위로와 힘을 얻으면서 여기까지 왔지만, 바울의 생애에 적잖이 상처를 준 사람들도 동시에 알려줍니다.
대표적인 사람을 여기에서 몇 사람 언급합니다. 우선, 데마입니다.
10절에 데마는 세상을 사랑하여 데살로니가로 갔다고 하면서 침통한 바울의 심경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데마는 바울의 동역자로서 함께 일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다시 옥에 들어가고, 이번에는 풀려날 가망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그는 바울을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떠나 버린 사람입니다.
일종의 기회주의자, 배신자였습니다.
바울은 이런 데마를 생각하면서 안타까움을 말합니다.
또한 14절에 언급하고 있는 알렉산더를 언급합니다. 알렉산더는 바울에게 많은 해를 끼친 사람입니다. “구리 세공업자 알렉산더가 내게 해를 많이 입혔으매 주께서 그 행한대로 그에게 갚으시리니”
유다서 1:9 “천사장 미가엘이 모세의 시체에 관하여 마귀와 다투어 변론할 때에 감히 비방하는 판결을 내리지 못하고 다만 말하되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원하노라”
16절 “그들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
진정한 신앙인의 태도.
이어서 17, 18절 나에게 힘을 주심은
오늘 말씀에서 유의하여 보아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13절의 말씀입니다.
여기에서 바울은 디모데가 빨리 오기를 원하는 마음을 전한 뒤에, 2가지의 부탁을 합니다. 하나는 올 때 드로아에 사는 가보라는 사람의 집에 있는 바울의 겉옷을 가지고 오라고 말합니다.
이제 점점 겨울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바울이 겨울을 준비하기 위해 두툼한 옷이 필요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다른 하나의 부탁을 합니다. 그것은 가죽종이에 쓴 특별한 책을 가지고 오라고 말합니다. 여기에서 가죽종이에 쓴 책이란 곧 성경, 구약성경을 가리킵니다. 특별히 가죽 중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
우리가 말씀을 끝까지 붙잡고 산다는 것은 우리의 무덤에 내가 읽던 성경책을 집어넣기 위함이 아닐 것입니다.
지금까지 그렇게 산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나에게 말씀하시는 대로, 명령하는 대로 그렇게 살기를 다짐하는 의미로 붙잡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말씀은 그냥 종이에 불과합니다.
추석명절이 즐겁고 기쁜 명절이 되어야겠지만 정말 고통스러운 날이 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바로 아직 예수를 믿지 않고, 하나님을 모르는 가족들과 함께 차례를 드리는 일에 참여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오늘도 그 말할 수 없는 고민으로 예배에 참여하고 고향으로 내려가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끝까지 붙잡는 것은 바로 이런 때를 위함입니다. 먼저 하늘의 위로와 평안이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강하고 담대함을 잃지 마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지혜를 구하십시오.
아무리 옳은 일이라고 하더라도 방법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믿음으로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그때마다 필요한 지혜와 은혜를 공급해 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새하늘 교회 교우 여러분!
이 분주한 중에도, 힘 빠지는 순간에도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에게 힘을 주심은 선포된 하나님의 그 귀한 말씀이 믿지 않는 자들에게 전해지기를 바라신다는 이 귀한 믿음을 마음에 새기고 부모와 형제와 친지와의 만남의 현장으로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며 출발하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