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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이 내려오시다(사도행전 10:44-48)

목사님 0 1,211

  

 

     성경에서 말하는 인간은 구조적으로 세 요소로 되어 있다고 합니다. 

즉, 육과 혼과 영으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첫째가 biological being, 즉 생리적 존재입니다. 

우리 모두는 육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육신의 일을 무시하지 않습니다. C.S 루이스가 말하기를 사단은 우리 인간들이 동물인 것을 자꾸 잊어버리게 한다. 

둘째는 이성적 존재입니다.

우리에게 이성이 주어졌고 그 이성에 따라 비판도 하고 추리도 합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코지토 에르고 숨(Cōgitō ergo sum)’

세 번째가 theological being, 영적 존재입니다. 

하나님과 교제를 가져야만 하는 영적 존재입니다.

 

이 세 개가 합쳐져서 하나의 인격으로 종합된 구조를 가지고 인간은 살아갑니다. 그런데 문제는 어느 쪽이 주도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육체가 주도하는 삶을 삽니다. 자나 깨나 육체적 욕망에 끌려 삽니다. 육욕주도적인 인간이라 하겠습니다. 

그런가하면 철저하게 이성주도적인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먹고 입어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합리적인 생각으로써 행복해 합니다. 

그리고 영적 주도적인 사람은 항상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될 때에 행복해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며,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참된 평화를 느끼고 힘을 얻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존재는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영은 하나님께로서 오는 말씀을 먹고 삽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먹어야 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먹지 못하고 지나게 되면 영양실조에 걸리게 됩니다.

영양실조에 걸리게 되면 여러 가지 병을 얻게 되어 있습니다. 

캄보디아에 선교가서 보니까 영양실조에 걸린 아이들이 참으로 많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영양실조로 눈이 잘 안 보여 더듬는 아이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에게 눈 비타민을 먹였더니 이 아이가 눈을 뜹니다.

비타민이 정말로 중요한 것이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골고루 잘 먹어야 하는데 잘 알고 제대로 먹어야 하는 것입니다.

제대로 먹는다는 문제는 육적인 문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허하고, 영적으로 허한 사람 모두에게 해당하는 이야기입니다.

사람이 배가 고프면 무엇이건 먹게 됩니다. 허하게 되면 평소에 쳐다보지도 않던 음식도 만나게 보이는 것입니다. 베트남전 때 미군포로들.

마찬가지로 영적으로도 허한 사람이 되면 그릇된 사상에 빠지고, 이단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단에 왜 빠집니까? 영적으로 갈급한 사람들에게 바르지 못한 영이 전달될 때 이단에 빠지는 것입니다. 허해서 그렇습니다. 

 

배고프면 먹어야 하지만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적당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배고파서 죽겠다고 하고, 먹고 나서는 배 불러 죽겠다고 합니다. 

지나치거나 모자라게 먹지 말 것이며 내 몸에 꼭 필요한 만큼 섭취해야 합니다. 남이 좋다고 해서 나에게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내게 필요한 것을 적당하게 먹어야 하는 것입니다.

또 음식은 맛있게 먹어야 합니다. 같은 음식이라도 맛있게 먹고 감사함으로 먹는 데에 건강의 비결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맛있게들 먹고 계십니까?

우리의 영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4:15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비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

제가 목회를 하면서 가슴으로 담은 말씀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의 스승이기도 하여야 하지만 더 나아가 영적 아비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반드시 복음을 들어야 합니다. 

아무리 옥토라 하더라도 씨가 뿌려지지 않고 자라는 법은 없습니다. 

하늘로부터 오는 말씀이 아니고는 결코 새 생명의 역사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말씀 안에서 우리는 거듭 납니다. 그 다음에는 말씀을 먹고 성장합니다. 끊임없이 말씀을 먹어야 합니다. 말씀 안에서 양육됩니다.

학자들은 오늘의 본문에 나타난 말씀을 두고 ‘제2의 오순절’이라 별명을 붙여 부르기도 합니다. 첫 번째 오순절은 사도행전 2장에 마가다락방에서 일어난 성령 강림사건이 있은 그 오순절입니다.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유대사람들에게 나타났던 일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나타난 것은 가이사랴에서 있었던 사건입니다.

전적으로 이방인에게 나타난 성령강림사건입니다. 유대 사람들이 보고 ‘이방 사람들도 성령을 받는다’고 깜짝 놀랐다고 했습니다.

성령받는데 왜 놀랍니까? 

유대인들에게만 성령이 임하는 줄 알았는데 유대인이 아닌 로마 사람에게 성령이 임해서 놀란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에 나타난 내용입니다.

고넬료는 로마 군인입니다. 정복군의 백부장이지만 분명 이방인입니다. 

여러분, 한 번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고넬료는 로마 군인으로서 유대땅에 와서 식민지 관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로마군의 장교로서 그는 당연히 로마 황제에게 충성하고 로마에서 섬기던 우상이 있고, 문화가 있었습니다. 

그 로마가 세상에서 최고다 라고 교육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러한 긍지로 살아가는 이 로마 장교가 종교에 관한 한은 피정복지인 예루살렘 종교가 옳다고 믿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바른 하나님이라고 생각해서 유대교로 개종한 사람입니다. 더 나아가 고넬료는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도행전 10:2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구약적인 신앙인으로서 거의 완벽하게 경건한 생활을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께서 특별한 은혜를 베푸셔서 천사를 만나게 해 주십니다. 그러자 그는 천사의 지시대로 욥바에 사람을 보내어 베드로라고 하는 사람을 청합니다. 저는 이 장면을 상상할 때마다 감격합니다. 

베드로와 고넬료를 비교해 보시지요. 베드로는 갈릴리 어부입니다. 

예수님을 3년 따라 다녔다고는 하지만 아마 턱수염이 더부룩한 초라한 행색을 하고 있었을 겁니다. 시쳇말로 볼품없는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높은 자리에 있는 고넬료가 이 볼품없는 촌사람을 모셔옵니다. 

모셔 와서는 예를 다합니다. 깍듯이 정중합니다. 그래서 온 집으로 더불어 준비하고 기다리다가 들어설 때에 모두가 엎드려서 경배를 합니다.  

순간, 본디 남 앞서기를 좋아하고 우쭐대기 잘하는 베드라이지만 황송해 합니다. 고넬료의 경배하는 자세가 너무도 경건해서 

26절 “베드로가 일으켜 가로되 일어서라 나도 사람이라” 

보십시오. 이 고넬료가 지금 눈으로는 갈릴리의 어부 베드로를 보지만 그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고넬료의 베드로를 맞아들이는 자세가 그러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고넬료는 말합니다. 33절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예배드리는 시간, 설교듣는 시간을 바로 그와 같은 시간이어야 합니다. 

‘우리 목사님을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여 나는 여기 하나님 앞에 있다.’ 고넬료가 베드로 앞에서 취한 자세, 이것이야말로 신앙인의 바른 자세입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합니다. 그런데 그 내용은 

43절 “그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의 이름을 힘입어 죄사함을 받는다”

이것이 복음의 핵심입니다. 성경의 중심입니다. 

이것을 신학적 용어로는 케리그마라고 합니다.

이 케리그마적 복음을 전하는 순간, 오늘 성경에 보니 ‘이 말을 할 때에’

‘한 다음’이 아닙니다. 하는 중입니다. 

44절 “베드로가 이 말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실로 굉장한 말씀입니다. 성령이 바로 이 시간에 임했습니다. 

말씀이 전해지고, 성령이 임하고, 그 순간 마음의 문이 열립니다. 

그리고 말씀이 마음 속에 쏙 들어옵니다. 

그러면 그 말씀에 전인적으로 응답하게 됩니다. 

이 사실을 두고 오늘 사도행전은 저들이 방언을 했다고 기록합니다. 

방언이 무엇입니까? 언어의 장벽을 넘어서 복음이 소통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들이 다 깨닫게 되고 받아들이게 되고 믿게 되더라는 말입니다. 

베드로는 지금 아람말(히브리말의 구어체)을 하고 있는데 고넬료는 로마 사람입니다. 알아들을 턱이 없는데 알아듣습니다. 성령이 임하니 알아듣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설교란 내 마음에 오는 감격입니다. 그 마음에 오는 생명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에 내 생명을 걸고 응답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알아듣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우리 개신교에서는 성경중심적인 신학을 전개합니다.

종교개혁의 정신입니다. Sola Scriptura. 

오직 성경만이 권위의 기초요 중심입니다. 

그리고 신앙과 행위의 유일한 규범이 성경입니다. 

특별히 중요한 것은 성경의 해석자는 성경이라는 사실입니다. 

성경 자체가 성경의 해석자다. 이것이 개신교의 특징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역사를 소중히 여깁니다.

디모데후서 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성령의 영감으로 성경이 기록되었고 성령의 조명이 있을 때에 성경이 바르게 해석되며, 성령이 빛을 비추어서 우리의 마음을 감동시킬 때에 우리는 성경을 깨닫게 됩니다. Logos가 Rema

어떤 분들은 너무 조급하게 생각해서 성경을 읽을 때에 빨리 이해하려고 애를 씁니다마는 여러분, 성경은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읽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에도 절대로 조급해서는 안됩니다. 

내 생각이 미치지 못했고, 내 인격이, 내 지식이, 내 영적인 성장이 아직 부족하기 때문에 이해하지 못하는 것인줄 아시고 겸손한 마음으로 읽으시기 바랍니다. 이리 뜯어맞추고 저리 뜯어 맞출 생각마시고 그대로 읽으십시오.

성경 원문을 그르치지 마십시오. 그렇게 읽어나가노라면 성령이 감동하는 

중에 성경이 내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새하늘 교회 교우 여러분! 

여러분은 성경을 어떻게 보십니까?

신학자 칼 바르트는 말합니다. ‘Word of God waits for us in the Bible’

하나님의 말씀이 성경 안에서 우리를 기다리신다.

지금 내가 성경을 읽고 있지만 내가 읽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지금 성경을 통하여 나에게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부지런히 읽으십시다.

그리하면 그 말씀이 나를 사로잡고 나를 붙들고 나를 인도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세상을 떠날 때에 내가 읽고 감동받은, 내게 성령으로 말씀하시던 바로 그 말씀 그 구절이 나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성령의 비추심에 따라 하나님의 말씀에 우리의 인생을 온전히 의탁하게 

되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레미야서의 배경 설명

노예 생활하던 애굽, 어려운 일이 생기면 그리워 해

앗수르, 바벨론

요시야 므깃도에서 B.C 609년에 전사 바로 느고

여호아하스, 바로 느고에 의해서 여호야김으로, 친애굽

605년 갈그미스 전투에서 바벨론 승리 1차 침공

2차 침공 여호야김 전사, 여호야긴 즉위 3개월만에 바벨론에 의해서 시드기야로, 친애굽. 

 

예레미야 27, 28, 29, 52 다니엘 1-3

 

27장  바벨론에의 복종 권고

1절 여호야김은 시드기야의 오기

    본문의 예언이 주어진 시대적 배경

시드기야는 B.C 597년 조카 여호야긴 대신에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에 의해 유대 왕으로 옹립.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애굽 정책. 

B.C 593년 주변 나라들과 반바벨론 동맹 결성

 

2-11절 유다 주변 국가들에게 바벨론에게 복종 권고

12-15절 유다에게 바벨론에게 복종 권고

16-22절 거짓 선지자들에게 속지 말 것

 

28장 참 선지자 예레미야와 거짓 선지자 하나냐의 대립

1-4절 두 해가 차기 전에 하나님께서 바벨론으로부터 회복

5-17절 하나냐의 죽음

 

29장 바벨론 포로민을 향한 권고와 거짓 선지자 스마야에 대한 경고

1-23절 바벨론 포로민을 향한 권고

1-14절 바벨론에 항복하여 살면서 지난 날의 잘못을 회개하고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회복시킬 것을 예언

15-19절 포로 귀환이 속히 이루어질 것이라는 거짓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말고 하나님께서 유다에 남은 자들에게 심판할 것임을 예언

20-23절 아합과 시드기야에 대해서 그들이 느부갓네살에 의해서 화형에 처해질 것을 예언

24-32절 거짓 선지자 스마야에 대한 경고

 

52장 예루살렘의 멸망과 그 이후의 사건들

51장으로 마감. 대필자인 바룩이 첨가

1-23절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의해 함락될 당시의 정황을 보도

24-30절 제사장을 비롯한 유다의 지도자들이 바벨론에 의해 처형

31-34절 바벨론의 제 2차 침공 B.C 597년 당시 포로로 끌려간 여호야긴의 석방 사실을 언급함으로 본문을 마무리.

 

다니엘서

다윗 언약 : 사무엘하 7:11-16

성전 신학 : 솔로몬 성전은 영원

하니님께서 이제 이스라엘을 더 이상 선민으로 여기지 않는다

여호와가 유일신이 아니라 다만 여러 신들의 하나이며 지금 자신들을 지배하고 있는 이방 민족들이 섬기는 신들보다 더욱 열등한 한 신에 불과.

 

1장 다니엘의 성장과 바벨론 및 바사 황실 진출 배경 요약

1-7 다니엘의 바벨론 왕실에서의 성장 배경

8-16 다니엘과 세 친구의 신앙 지조

다니엘 하나냐 미사엘 아사랴

벨드사살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17-21 바벨론 왕실에서 높은 지위를 얻은 다니엘

21절 고레스는 페르시아 제국을 건설한 인물

 

2장 느부갓네살 왕의 첫 번째 꿈, 곧 한 큰 신상의 꿈 사건

1-13 꿈을 완전히 기억하지는 못하고 대략적으로만 알고 있었다.

14-23 다니엘에게 주신 하나님의 계시

24-30 하나님의 계시를 가지고 왕 앞에 나선 다니엘

31-45 다니엘이 밝힌 큰 신상 꿈 내용과 해석

46-49 느부갓네살의 다니엘 중용

 

3장 세 친구의 풀무불 처형 사건

1-7 느부갓네살의 금신상 건립과 숭배 명령

8-16 금신상 숭배 거부죄로 참소 당한 세 친국

19-27 풀무불 속에서 구원받은 다니엘의 세 친구

28-30 여호와의 능력을 체험한 느부갓네살의 찬양과 조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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