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속담에 “왕의 밥그릇도 깨지면 강아지 밥그릇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이 속담에 제일 적합한 사람이 사울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오늘 본문 바로 앞의 15장 35절 하반절을 보면 “여호와께서는 사울을 이스라엘 왕 삼으신 것을 후회하셨더라” 고 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초대 왕으로 선택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해 결국은 하나님께 버림받았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이 하나님께 쓰임 받다가 버림받는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저와 여러분은 한 사람도 믿음에서 떠나는 사람이 없기를 바랍니다.
어떤 시험이 오고, 어떤 유혹이 와도 하나님만 붙잡고 믿음의 길을 선택하시기를 축원합니다.
1절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보내리니 이는 내가 그 아들 중에서 한 왕을 보았느니라”
하나님께서 시골 작은 마을인 베들레헴에 사는 이새의 아들 중에서 앞으로 이스라엘 왕이 될 사람을 선택해 놓으셨다고 하십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고 계십니다. 누구를 세워서 이 교회를 부흥시킬까, 누구를 통하여 고통당하는 이 땅의 사람들을 치유할까?
누구를 통하여 이 많은 불신자들을 새하늘 교회로 인도하게 할까?
이와 같이 하나님은 지금도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쓰임 받으려면, 하나님의 마음에 맞아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 보시기에 쓸만한 사람, 하나님께 존귀하게
쓰임받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보잘 것 없는 작은 고을 베들레헴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역사적인 일이 베들레헴에서 일어나는데, 가장 위대한 왕 다윗이 베들레헴에서 기름부음을 받은 것, 그리고 베들레헴에서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신 것입니다.
처음 사무엘이 사울을 보고 기름 부을 때 마음이 흡족했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모습이 왕으로 적합하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무엘상 9장 2절에는 사울에 대한 용모를 이렇게 칭찬하고 있습니다.
“기스에게 아들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사울이요 준수한 소년이라 이스라엘 자손 중에 그보다 더 준수한 자가 없고 키는 모든 백성보다 어깨 위만큼 더 컸더라”
그런 사울에게 기름을 부을 때 사무엘의 마음이 얼마나 흡족했겠습니까?
이제 베들레헴에 있는 이새의 집에 보냄을 받은 사무엘의 마음은 전혀 기쁘지 않았습니다. 사무엘에게 무척 자책하는 마음이 많지 않았을까요?
물론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한 일이지만, 자신이 기름 부었던 사람의 실패와 망가짐을 보면서 자신을 자책하지는 않았을까요?
사무엘은 사사이자 제사장이었으니, 요즘 말로 한다면 ‘내가 목회를 잘못했구나!’라는 생각으로 말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무엘상 16장 1절.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미 사울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였거늘 네가 그를 위하여 언제까지 슬퍼하겠느냐 너는 뿔에 기름을 채워 가지고 가라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보내리니 이는 내가 그의 아들 중에서 한 왕을 보았느니라 하시는지라”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을 위로하시며 자책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제 슬퍼하지 말고 작은 고을 베들레헴에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을 세우시겠다는 것입니다. 당시 왕은 사울이었기에 혹시라도 사무엘이 누군가에게 기름을 붓는다는 것은 명백한 ‘반역행위’이기에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은 제사를 드린다는 명목으로 이새의 집에 찾아갔고, 흩어져 있는 모든 아들들을 제사에 참여시키도록 하였습니다.
사무엘이 하나님의 명을 받들어 베들레헴 이새의 집으로 갑니다. 가서 이새의 아들들 중에 누가 하나님께서 왕으로 세우신 인물인가 면접을 봅니다.
이새는 여덟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 일곱 아들이 몸을 성결하게 하고 사무엘 앞에 섭니다.
첫째 아들 엘리압이 사무엘 앞에 왔습니다. 사무엘은 마음속으로 “이 아이가 왕이 될 사람이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7절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옛날에 과거 제도가 있기 전에 당나라에서 사람을 뽑는 기준을 정했습니다.
그 기준은 신언서판(身言書判)입니다. 신, 용신 외모를 제일 먼저 본다는 뜻이고, 그 다음으로 언, 언변을 본다는 뜻이고, 서 필체를 본다는 뜻이고, 마지막으로 판단력을 본다는 것입니다. 이중에 제일 마지막에 있는 판단력을 제외하고는 사실 상 외모로 보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인격이나 마음의 진정성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것으로만 판단합니다. 그래서 외적인 조건으로 사람을 차별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사람이 보는 것과 달리 중심을 보신다고 말씀합니다.
고린도전서 1:27-28 “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실력이나 조건보다 신앙이 먼저입니다.
우리도 잘 아다시피, 다윗도 부족한 사람입니다. 실수가 있었습니다.
부족한 것이 인간의 특징이고, 실수가 인간의 전공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되었을까요?
저에게 제일 먼저 들어오는 것은 그의 성실성입니다.
다윗은 성실한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사무엘이 자기 집에 왕을 뽑으러 온다면 자기도 얼마나 가고 싶었겠습니까?그런데 다윗은 묵묵히 자기가 맡은 일에 충성을 다하고 있었습니다.
사무엘 선지자께서 이새의 집에 오셨을 때, 형들 일곱은 다 사무엘 선지자와 함께 제사에 참석했습니다.
그러나 막내 다윗은 들에서 양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맡은 양떼를 치는 일을 잘 감당한 다윗, 성실한 사람의 전형입니다.
하나님의 일이란 높은 것도 없고 낮은 것도 없습니다.
귀한 것도 없고 천한 것도 없습니다.
자신이 맡은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 바로 그런 사람을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그런 사람을 하나님께서 쓰시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쓰신 사람은 언제나 자기 일에 성실한 사람이었습니다.
요셉도 옥중에서 모범적인 죄수로 일을 하고 있을 때 왕의 부름을 받고
쓰임을 받았습니다.
모세도 미디안 광야에서 장인 이드로의 양을 치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고, 엘리사도 밭을 갈고 있을 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자신이 맡은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을 쓰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배우지 못한 사람도 쓰시고, 가난한 자도 쓰시고, 죄인도 쓰시지만, 약속을 잘 지키지 않는 사람, 책임감이 없는 사람, 성실하지 못한 사람을 쓰시지는 않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심판의 기준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네게 맡겨진 작은 일에 충성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다윗이 하나님으로부터 쓰임 받은 이유입니다.
“그가 양을 지키나이다” 형님들이 다 떠나간 그 자리에서 혼자 양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전서 1:12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섬길 수 있는 교회가 있고, 내가 섬길 사역이 있다고 하는 것은 감사한 일입니다. 그러나 교회 사역은 지식 있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돈 있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쓰임 받고 싶은 열정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누가복음 16:10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성실성, 이것은 쉽지 않습니다. 환경이 우리를 흔들어대기 때문입니다.
주위 사람들이 나를 힘들게 합니다. 나를 화나게 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이 일어나는지 모릅니다. 그만 두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성실하게 맡은 일을 감당하는 사람,
그 사람이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 중심이 바로 선 사람입니다.
어느 날 개구쟁이 꼬마가 목사님에게 물었습니다.
"목사님, 설탕하고 소금하고 섞으면 어떻게 되게요?"
목사님은 순간적으로 당황을 했습니다. 설탕과 소금의 화학적인 반응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무리 생각을 해 보아도 대답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모님에게 얼른 전화를 해 보았습니다. 사모님도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아이가 목사님을 보더니 말했습니다. "목사님, 그것도 모르세요?"
목사님이 멋쩍은 듯이 물었습니다. "어떻게 되는데?"
아이가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설탕하고 소금하고 섞어 놓으면요, 엄마한테 혼나요!"
우리는 무엇이든지 깊이 생각하고 남다른 연구를 해야 좋은 줄을 압니다.
그렇지만 진리는 그렇게 복잡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과도 순수하고 정직하게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그대로 받아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중심이 바로 선 사람, 그 두 번째 특징은 하나님께 집중합니다.
사도행전 13:22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마음에 맞는 사람”, 영어성경번역본에서는 “a man after my own heart”
즉 하나님의 마음을 좇아가는 사람, 하나님의 마음을 따라 사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그 사람의 마음의 생각은 항상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실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일까, 항상 이런 생각을 하며 삽니다. 하나님께 집중하는 사람입니다.
물론 돈 버는 일에도 신경을 써야 합니다. 자녀교육을 잘 시키도록 힘써야 합니다. 그러나 거기에 내 마음이 휘둘리면 안됩니다.
돈벌이가 잘 안 된다고, 자식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거기에 우리 마음이 사로잡히면 안됩니다.
하나님께 우리 마음이 사로잡혀야 합니다. 하나님께 올인해야 합니다.
성령이 임하여 하나님께 집중하는 사람은 세상에 있는 그 어떤 것도, 그 어떤 사람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지혜로 사람을 설득합니다. 그냥 믿어 주세요 하지 않았습니다.
이새의 일곱 아들이 다 사무엘에게 면접을 봤는데, 아무도 없습니다.
그때 사무엘이 묻기를 “네 아들이 다 여기 있느냐?”
이새의 대답이 “아직 막내가 남았는데 그는 양을 지키나이다”
여기 막내라는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이 말은 ‘막내가 하나 있기는 한데 만나 보나마나입니다. 신통한 구석이 없습니다. 그 아이는 아닙니다.’ 이런 뜻입니다.
적어도 아버지에게는 그리고 사람들에게는 그랬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에게는 가장 중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야말로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이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들에게 복음입니다.
12절 “이에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매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
영문도 모르고 헐레벌떡 달려온 다윗, 얼굴은 흙먼지와 땀으로 범벅이 되었고, 옷은 꽤재재하고, 여기 저기 헤어져있고 냄새나는 모습으로 사무엘 앞에 섰습니다. 깨끗하게 목욕하고, 멋진 옷을 차려입은 일곱 형들과는 대조적입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 “이가 그니”- 영어로 He is the one.
이 사람이 바로 내가 보아온 사람이다. 이스라엘 왕으로 세우기로 계획한 아들이다. 오늘 주님께서 여러분을 보시고 “이는 그니” 라고 말씀하시는 은혜가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우리가 사람의 눈에는 있으나 마나 한 사람, 막내와 같은 사람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보기에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람, 다윗이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이 되었습니다.
마지막은 사무엘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었더니
“이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고 합니다.
사랑하는 새하늘 교회 교우 여러분!
여러분은 사람의 눈에 든 사람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눈에 든 사람입니까? 그것이 인생의 성패를 좌우합니다.
우리의 자녀들도 여기에 초점을 맞추어 양육해야 합니다.
다윗처럼 하나님의 눈에 든 사람이 되어 성령의 기름부으심을 받아
하나님의 영광을 빛내는 멋진 인생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