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참으로 빠르게 지나갑니다. 2021년 6월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벌써 1년의 반이 지났습니다. 돌아보면 작년과 올해 코로나와의 전쟁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 것 같습니다. 이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도
저희 새하늘 교회와 교인 한분 한분을 눈동자처럼 지켜주시고 보호하여
주신 하나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세월은 붙잡을 수 없는 것이고 세월은 달려가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이 땅에서의 한 번의 세월을 정말 소중하게 보낼 수 있다면 그것처럼 귀한 게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가 장차 인생을 끝내고 천국 문에 이를 때 주님은 우리에게 뭘 물어 보실 것 같습니까? 네가 이 땅에서 얼마나 많은 업적을 세웠느냐? 얼마나 화려한 인생을 살았느냐? 이런 것 묻지 않으실 것 같지 않습니다.
아마 하나님은 너희가 진정 거룩한 삶을 살았느냐?고 물으실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2:11에서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권면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우리는 오늘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해서 육체의 정욕을 제어한 사람, 요셉
이야기를 같이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요셉은 야곱의 사랑하는 아내 라헬의 큰 아들로 태어나 아버지의 총애를 한 몸에 받고 자라났는데 바로 그 사실 때문에 형들에게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형들은 요셉을 애굽에 노예로 팔아버리게 됩니다.
애굽 왕 바로의 친위대장, 오늘날로 치면 청와대 경호실장인 보디발의 집에 팔려간 요셉은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심으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해 비천한 노예 신분에서 하루아침에 막강한 집안의 가정 총무로 출세합니다.
모든 이들에게 능력을 인정받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능력과 실력을 갖춘 요셉은 얼굴까지 잘생겼어요. 요셉이 얼마나 외모가 뛰어났는지 오늘 본문 6절에서는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6 주인이 그의 소유를 다 요셉의 손에 위탁하고 자기가 먹는 음식 외에는 간섭하지 아니하였더라 요셉은 용모가 빼어나고 아름다웠더라
미드라쉬라는 유대교의 경전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옵니다.
“요셉의 타고난 외모는 너무나 잘 생겨서 모든 여성들이 그에게 끌렸다.
결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외모였다.” 알만 하시지요?
그런데 문제는 요셉을 보기만 해도 가슴 떨리던 여인 중에는 바로 이 집
주인인 보디발의 아내도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가슴 뛰고 호감 느끼는 거야 죄가 아니지만, 보디발의 아내는 요셉의 수려한 외모와 뛰어난 능력에 반해 그를 끈질기게 유혹합니다. 7절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7 그 후에 그의 주인의 아내가 요셉에게 눈짓하다가 동침하기를 청하니
아마 여인은 요셉을 볼 때마다 윙크하며 살살 꼬리를 쳤던 모양입니다.
미드라쉬에 의하면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을 유혹한다는 소문이 나자 부녀자들이 그녀를 보면 이렇게 수군댔다고 합니다.
“얼마나 바람기가 많으면 노예한테까지 그렇게 꼬리를 치겠어?”
그러자 ‘보디발의 아내’는 동네 여인들을 초대하여 잔치를 베풀면서 요셉을 그 여인들 앞으로 지나가게 하였습니다.
동네 여인들은 과일을 깎다가 요셉의 아름다운 용모를 황홀한 시선으로
정신없이 바라보다가 그만 모두 손을 베고 말았다고 합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이렇게 잘나고 멋진 젊은이를 바로 곁에 두고 바람기 가득한 보디발의 아내가 그냥 참고 넘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웠겠습니까? 그런데 그보다 더 어려운 일은 무엇이었을까요?
보디발의 아내가 나이가 얼마나 되었는지, 또 어떻게 생겼는지는 성경에는 안 나와 있습니다만 화가 렘브란트를 비롯해 이 사건에 대해 그림을 그린 화가들이 꽤 많은데 하나같이 보디발의 아내를 아주 빼어난 미모를 지닌
아주 농염한 여인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피 끓는 젊은이 요셉이, 외로움에 지친 젊은이가 그런 빼어난 미모를 지닌 농염한 여인의 유혹을 견디기가 쉬웠겠습니까?
우리 같으면 그 유혹을 이길 수 있었을까요?
더욱이 상대방은 노예 하나쯤 마음대로 죽일 수도, 반대로 많은 혜택을 줄 수도 있는 주인마님인데 말입니다. 아마 그 누구도 이 유혹을 이겨내기란 힘든 정도가 아니라 거의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자, 우리 한 번 가정해 봅시다. 만약 요셉이 주인마님의 유혹에 넘어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똑똑하고 눈치 빠른 요셉이 이 집에서 살아남으려면 마님의 말을 순순히 들어야지, 어쩌면 출세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그 요구에 응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요셉은 필히 패가망신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요셉을 넘어뜨리셨을 것입니다. 만약 그렇게 되었다면 요셉은 자기의 뛰어난 능력과 외모 때문에 망한 사람이 되었을 것입니다. 인물 값한다고 하지요. 그러나 요셉은
9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누구에게 죄를 지어요? 주인이 아닙니다. 물론 자신을 믿고 중용한 주인 보디발도 배신하면 안 되겠지만 지금 요셉이 두려워 한 것은 주인 보디발이 아닙니다. 주인이 두렵고 주인의 권력이 겁났다면 주인마님의 권력도 무서워 할 수 없이 주인마님의 부탁을 들어줬겠지요.
하지만 지금 요셉이 두려워하는 분은 주인 보디발도 보디발의 아내도 아닌 하나님입니다. 여러분은 누구를 두려워하십니까?
내게 영향을 미치거나 손해 이익을 끼칠 수 있는 다른 사람입니까? 하나님입니까? 요셉이 유혹을 이길 수 있었던 힘은 바로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께 죄짓지 않겠다는 마음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여인의 유혹은 한번만이 아니었습니다. 10절을 보세요.
10 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으나 요셉이 듣지 아니하여 동침하지 아니할 뿐더러 함께 있지도 아니하니라
요셉이 단호하게 거절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자는 날마다 끈질기게 요셉을 유혹한 것입니다. 여러분, 성적인 유혹이 얼마나 끈질기고 치명적입니까?
수많은 남편들이, 그리고 뛰어난 정치인과 사업가, 지도자들, 심지어 교회의 영적 지도자인 목사들 중에도 이 성적 유혹 때문에 한 순간에 넘어지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그만큼 성적인 유혹은 보디발의 아내처럼 끈질기고 치명적입니다. 저도, 그 누구도 이 유혹으로부터 자유롭다고 장담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셉은 끝까지 죄의 유혹과 끈질긴 성적인 유혹을 이겨내서 끝내 하나님의 약속을 이어가는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죄와 끈질긴 유혹에 대해 단호하게 No! 안 됩니다!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아무리 세상이 원하더라도, 세상 모든 사람이 Yes라는 말을 듣기 원할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이 원하지 않으시면 No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아무리 Yes 하면 나한테 엄청난 이익이 생기고 좋은 일이 생긴다 해도, 반대로 No 하면 엄청난 손해와 불이익을 당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죄라면
반드시 No 해야 합니다. 그런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때 이 안주인이 요셉의 겉옷을 붙들고 놓아주지 않으면서 오늘 나와 동침하자고 간절히 요청하기 시작했습니다. 요셉은 뿌리쳤지만 여인은 놓지 않았습니다. 그러는 실랑이 속에서 요셉의 겉옷은 벗겨지고 되고 요셉은 옷을 버려두고 그 자리를 뛰쳐나오게 됐습니다.
오늘 성경 13, 15절에 보니까 버려두고 도망나왔다고 이야기합니다.
물론 요셉은 잘못한 것이 없습니다. 당당히 맞설 수 있었습니다.
자기의 입장을 항변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일단 옷을 벗어 던지고 그 자리를 피했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 혜화동에 살고 성북동에 살던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성북동에 가면 막 심은 소나무들이 자라고 있었고 잡목들이 많았는데 도마뱀이 꽤 자주 눈에 띠었습니다. 그러면 장난꾸러기인 우리들은 도마뱀 꼬리를 발로 밟는데 도마뱀은 밟힌 꼬리를 잘라내고 도망을 갑니다.
이렇게 미물인 도마뱀도 자기 생명을 건지기 위한 지혜가 있다는 겁니다.
꼬리를 버리고 생명을 건지는 지혜입니다.
덜 중요한 것을 포기하고 더 중요한 것을 얻는 지혜요.
그런데 사람이 이 도마뱀만 못할 때가 있어요.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것을 놓지 못하다가 정말 중요한 것을 놓치는 일들이 벌어집니다.
사람마다 좋아하는 메뉴가 다른데 사탄은 기가 막히게 누가 뭘 좋아하고
뭐에 약한지 잘 알아서 딱 거기 맞는 미끼를 던지지요.
그래서 누구는 돈 때문에, 누구는 권력 때문에, 누구는 가족이나 자녀나 건강 때문에 마귀 사탄에게 붙잡혀 죄의 노예가 되고 영원한 생명을 읽게 됩니다. 어리석지요?
사랑하는 여러분 거룩함이란 죄의 자리에서 도망가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거룩한 도망자가 되어야 됩니다.
요셉이 그 장소를 미련 없이 떠날 때 신의 직장인 그 자리를 떠날 때 하나님은 그를 위해서 더 좋은 기회를 준비하고 계셨던 겁니다.
하나님은 그의 생명을 보전케 하시고 왕의 신하들이 들어가는 그 지하 감옥에 그를 넣어서 거기에 들어온 왕의 신하들, 장관들, 국회위원들, 고위공무원들을 섬기면서 그들로부터 정치의 감각을 익히게 되었습니다.
요셉이 대학을 다녔다는 이야기는 성경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가 가진 탁월한 지혜와 식견은 지하 감옥에서 깨닫게 되었다는 겁니다.
김대중.
하나님께서는 요셉에게서 가정총무의 옷을 벗겨버리셨지만, 더 좋은 옷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바로 이집트의 제2인자의 국무총리의 옷을 준비하고 계시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도 죄악의 옷을 벗어버릴 때 가장 소중한 것이라도 성결함을 위해서 벗어버렸다면 하나님이 요셉을 위해서 국무총리의 옷을 준비하고 계셨던 것처럼 더 좋은 것으로 주실 줄로 믿습니다.
에베소서 4장 22-24절.
22절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23절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24절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아멘 그렇습니다.
오늘 예수를 믿는 사람들. 옛 사람의 옷을 벗어 던져버리고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성경은 우리에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군대에 있을 때 돼지를 몰아본 적이 있습니다.
수많은 돼지 떼들이 한 사람을 졸졸 따라가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어떻게 저럴 수 있나 너무 신기해서 뒷 따라 가보았어요. 그랬더니 그 사람을 따라서 돼지들이 도살장으로 다 몰려 들어가는 거예요. 그리고 얼마 후에 다 죽어서 고기가 되어서 차에 실려서 다시 나오는 거예요. 너무 신기해가지고 그 사람을 만나서 물어보았어요. 선생님 제가 신기한 것을 보았는데요. 어떻게 돼지 떼들이 당신 말을 쫒아 다닙니까? 그랬더니 그 사람이 자세히 보지 못 하셨군요 제 한 손에는 콩을 든 바구니가 있었습니다. 돼지들이 좋아하는 콩을 길거리에 뿌리니깐 그 콩을 주워 먹느라고 정신없이 저를 따라옵니다. 그러다가 모두 도살장에 끌려와 고기가 되는 것이죠.
이 무지한 돼지들이 죽음의 자리로 가는 줄도 모르고 그 콩 몇 개 얻어먹자고 도살장으로 자발적으로 달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하물며 이 땅의 많은 사람들이 지옥으로 가는 줄도 모르고 마귀가 던져주는 그 콩 몇개 주워 먹느라고 자발적으로 지옥으로 달려가는 그 모습이 상상하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안타깝습니까?
혹시 여러분 콩을 보고 정신없이 달려가는 분 계시면 얼른 정신 차리시고 돌아서시기를 바랍니다. 돌아서지 않으면 우리들은 돼지처럼 도살장에 끌려가는 비참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경은 예전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의 이야기입니다.
이 시대 하나님은 경건한 그리스도인들을 찾고 계십니다. 우리가 죄의 자리에 있다면 우리는 과감하게 그 자리를 떠나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죄의 근처에 가지 않도록, 죄의 자리를 떠나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고 기도할 때 여러분의 인생을
준비시켜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은 그렇게 녹녹치가 않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영적싸움을 치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영적전쟁에서 승패는 아주 엄청난 것에 의해 좌우되지 않습니다.
아주 작은 것, 사소한 것에 의해서 우리의 승패가 좌우될 때가 많습니다.
여러분 거대한 댐도 작은 구명으로 물이 샐 때에 결국 허물어지게 됩니다.
사소한 일에 목숨 걸지 마시고 요셉과 같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더 큰 세상을 기대하며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