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후 1-3 세기의 기독교인들, 그러니까 초기 기독교인들은 잔혹한 박해를 받으면서 역경 속에서 너무 어려운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만날 때마다 이렇게 속삭였다고 합니다.
"데오 그라티아스!" 이 말은 ‘하나님 감사합니다’라는 뜻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절박한 상황 가운데서도 "데오 그라티아스"라는 고백을 할 수 있었을까? 여기에 대해 어거스틴은 그들은 환경을 바라보지 아니하고 하늘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신앙인의 삶은 환경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는 삶입니다.
누가복음에 보면 여러분들 잘 아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가 있습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말씀을 우리는 깊이 생각하여야 합니다.
여기에 강도 만난 사람이 누워있습니다. 이대로 두면 죽습니다. 외딴 곳입니다. 그런데 레위인, 제사장들이 지나가다 보았지만 이 사람들은 자기공동체에 충실해서 자기 일이 아니라하고 그냥 지나갑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 천대받던 사마리아 사람이 지나가다가 이 사람을 봅니다. 이때 사마리아 사람이 ‘지금 강도가 이 근처에 있을 것이다. 내가 이 사람을 돕는다고 어물어물하다가는 내가 죽게 될지도 모른다. 저 사람은 어차피 죽을 사람이다. 죽을 사람 돕다가 나 죽을 것 없잖은가?’ 이렇게 합리적으로 생각한다면 도망가게 생겼습니다.
그런데 이 사마리아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이 사람을 돕지 아니하면 이 사람은 어떻게 될 것인가?
그것을 생각합니다. 이 사람이 어떻게 될 것인가, 생각의 중심이 나 자신에게서 이웃에게로 옮겨가는 것입니다.
거기서 이 사마리아 사람이 선한 사마리아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바라보며 선한 사마리아인의 삶을 살았던 이태석 신부님이 계십니다. ‘울지마 톤즈’라는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하여 많은 크리스찬들이 보고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 영화를 만들었던 감독이 최근에 ‘부활’이라는 영화를 만들었는데 이태석 신부님이 세상을 떠난 지 10년 뒤, 그의 제자들을 추적해 가면서 영화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제자 중에 무려 57명의 의사가 배출되었다고 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아이들이 잘 먹고 살려고 의사가 된 것이 아니라 신부님과 같은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의사가 되었다는, 그래서 이태석 신부님의 사랑이 제자들을 통해서 계속 이어지는구나, 이것이야말로 부활이 아니겠는가?
오늘 날 문제는 ‘이기주의’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기주의로 살면 나에게 이익이 될 것으로 착각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습니까?
이기주의가 얼마나 나를 불행하게 만든다고 하는 사실을 모르고 산다는 데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나를 자꾸자꾸 불행하게 만들 따름입니다.
이기주의를 극복하는 길은 남을 섬기는 데에 있습니다.
성경의 등장인물 중 예수님 이외의 가장 위대한 사람은 당연히 사도 바울일 것입니다. 또한 그는 학식도 뛰어난 학자였습니다. 그가 예수를 믿고 나서
나의 나됨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의 고백이 로마서에 잘 나타나 있는데, 로마서를 읽어 가노라면 그의 진실함과 솔직함에 감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는 그의 얼굴도 보지 못한 로마 교인들에게 편지를 쓰는데 로마서 한 가운데인 7장에서 그는 이렇게 부르짖습니다. 24절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그리고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25절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그 누가 이렇게까지 솔직할 수 있겠습니까?
더 나아가 고린도후서 12장을 보면 ‘육체의 가시, 곧 사단의 가시’에 대하여 말씀합니다. 7절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말하고자 하는 요지는 ‘육체의 가시’가 그에게 있어서 꼭 필요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 육체의 가시가 무엇인지는 알 수는 없지만 학자들은 대부분 간질 아니면 안질이라고 이야기들 합니다.
성경을 보면 그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 특별히 이 문제를 놓고 세 번 간구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에 이렇게 응답하셨습니다.
고린도후서 12:9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My grace is sufficient for you.’
네가 지금 받고 있는 은혜만으로도 족하다, 충분하다 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응답은 항상 간단합니다. 받아들이는 우리가 복잡하지요.
바울은 이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나 같은 사람한테는 가시가 있어야 한다. 가시가 없으면 교만해지고, 가시가 없으면 방종하니까, 이렇게 쿡쿡 찌르는 것이 있어야 내가 겸손할 수 있고 진실할 수 있고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다’ 하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때로 내가 원치 않는 고통도 있고 질병도 있습니다. 실패도 있습니다. 정말 답답하고 괴로운 사정도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어떻게 받아들이십니까?
멀고 험한 이 세상 길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자기 자신을 아는 일이라고 합니다.
세상 이치를 잘 알고 모든 지혜에 통달했다 하더라도 자기를 모르면
그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자기를 아는 지식, 이것이 가장 귀중한 지식인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쉬운 일은 ‘남을 충고하는 일’이고 더 나아가 ‘남을 비방하는 일’은 재미있기까지 하다고 합니다.
우리는 구원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옛사람은 여전히 살아서 들먹거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되고 목회자가 된 지도 꽤 되었는데도 여태 옛것이 남아있더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에베소서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으라’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낡고 더러운 옷을 벗어버리고 깨끗이 목욕한 후에 새 옷으로 갈아입으면 잠시나마 기분이 얼마나 산뜻하고 좋겠습니까?
인격도 그처럼 쉽게 바뀐다면 참으로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격의 변화는 그렇게 오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시간, 많은 시련 가운데 변화해 갑니다.
그래서 살 맛이 납니다. 저도 처음 믿었을 때보다 점점 좋아지고 있습니다.
믿는 것은 순간이지만 성화에는 시간이 걸리는 법입니다.
여러분,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