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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기만 하라! (마가복음 5: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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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흔히 우리 인생을 광야로 비유합니다. 광야는 위험하고 불확실하기 때문입니다. 광야를 통과하는 것처럼 인생살이가 여간 힘든 게 아닙니다. 힘에 부쳐서 허덕거릴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인생을 승리하며 살아갈 수 있게 하기 위하여 어떻게 해서든 힘을 키우려고 합니다. 

흔히 사람들이 추구하는 힘은 대개 학력, 재력, 권력 등입니다. 이런 것들이 있으면 험한 세상에서 승리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인생을 살다 보면 이런 것들만으로는 여전히 세상을 살아가는데 힘이 부치는 것을 절감하게 됩니다. 

이 세상의 그 어떤 힘보다도 센 힘은 하나님의 힘입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사람은 하나님의 힘을 얻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힘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오직 기도와 말씀을 통해서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이 가장 센 힘을 갖고 계시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얻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레위기는 오늘로 끝나고 내일부터는 민수기.

 

물이 우리 집에까지 오는 과정을 생각해보면 수원지에 있는 물이 파이프를 통해서 집에까지 오게 되고 집에서는 수도꼭지를 틀면 물이 나옵니다. 

수도꼭지를 틀지 않으면 물이 나오지 않습니다. 기도하는 것이 곧 수도꼭지를 트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기도는 내가 직접 실천해야 비로소 ‘나의 힘’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 비로소 하나님의 힘이 나의 삶에 고스란히 나타날 수 있습니다. 

 

기도할 때가 언제입니까? 어려울 때 아닙니까?

참된 신앙인은 어려운 일이 생기면 기도하지만 쭉쟁이 신앙인은 어려운 일이 생기면 신앙을 떠납니다. 참된 신앙인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아! 하나님이 부르시는 구나! 

질병을 통하여, 실패를 통하여, 인생의 어려움을 통해서 부르십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그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일, 은밀한 일’을 알 수 있겠습니까? 예레미야 33: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지금 자녀문제로, 가정의 문제로, 직장의 문제로, 사업의 문제로 아파 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 서서 쩔쩔매시는 분이 계십니까? 

지금이야말로 부르짖어 기도해야 될 때입니다. 

문제는 내 앞에 있는 인생의 풍랑이 아니라 기도하지 않는 것입니다. 

아직도 여러분의 경험을 의지하시겠습니까? 지식을 의지하시겠습니까? 

썩은 새끼줄 같은 세상 줄을 붙들고 살아가시겠습니까? 

그것들을 놓을 때에 우리는 생명줄인 기도의 줄을 붙들 수 있게 됩니다.  

 

주께 두 손 모아 비나니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중의 하나는 잘 사는 것입니다. 

사는 것 자체가 힘든데 잘 사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는 힘든 일이 참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힘든 일들 때문에 못 살겠다고 생각하고 그리고 정말 그렇게 삽니다. 

그런데 정말 힘든 일이 없으면 우리는 잘 살 수 있는 것일까요?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는데 하나님은 그렇게 생각하시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잘 살고 못 사는 것이 힘든 일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는데 

하나님은 잘 살고 못 사는 것이 믿음에 달려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아무리 세상이 힘들고 어려워도 정말 하나님을 믿을 수 있다면,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살 수 있다면 잘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젖과 꿀이 흐리는 가나안 땅, 광야,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는 곳이 약속의 땅.

 

오늘 같이 읽은 본문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일어난 기적의 두 사건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 첫 번째 사건은 회당장인 야이로가 죽게된 딸을 살리기 위해서 예수님께 찾아와서 간청해서 딸이 살아난 사건이고, 다른 하나는 12년 동안 혈루증으로 고생하던 여인이 예수님의 옷깃을 만짐으로써 병을 고침받은 사건입니다. 오늘 이 예배에 오신 모든 분들이 예수님께서 ‘제 인생에도 오셨습니다’라고 간증할 수 있길 원합니다. 

 

22절, 23절 말씀을 읽습니다. “회당장 중의 하나인 야이로라 하는 이가 와서 예수를 보고 발 아래 엎드리어 간곡히 구하여 이르되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받아 살게 하소서” 

야이로는 예수님의 발 앞에 와서 엎드렸습니다. 그리고 간곡히 간구했다고 했습니다. 절박한 심정을 가지고 부르짖어 기도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보통 유대교 회당에는 열 명의 장로가 지도를 하는데, 그 장로들을 대표하는 사람이 바로 회당장입니다. 그러므로 회당장은 유대교에 철저히 헌신하고, 율법에도 능통하며, 존경을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회당장인 야이로가 자기 딸의 병 때문에 예수님을 찾아온 것입니다. 사실 이것은 그 당시의 사회 분위기나 역사를 살펴볼 때 보기 드문 일이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사역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고, 정통랍비 출신도 아니었고, 단지 시골 출신 목수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상황에서 회당장 야이로가 예수님을 찾아와 그 발아래 엎드려 “내 딸을 고쳐주소서!” 했다는 것은 그 당시의 상식을 뛰어 넘어서는 일이었습니다.

우리들도 우리가 가진 문제가 어떤 것이든, 그 문제를 가지고 주님 앞에 나와야 해결을 받습니다. 체면이 문제가 아닙니다. 위신이 문제가 아닙니다. 

남의 이목이 문제가 아닙니다.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데는 그 어떤 것도 우리가 주님 앞에 나오는데 방해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진정 우리의 아픔과 실패와 절망을 고침 받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모든 것을 물리치고 주님 앞으로 나아오십시오. 

참된 치유와 회복의 역사는 내가 가진 문제가 무엇이든지 간에, 그것을 가지고 주님 앞에 나아와 겸손하게 무릎 꿇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 앞에 나올 때 인생의 변화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인생의 변화는 기도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예수 앞에 나오십시오. 그리고 부르짖어 기도하십시오. 

그것이 바로 기적의 출발입니다. 

 

이제 예수님이 회당장과 함께 가십니다. 24절.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둘러쌓았는데 그 중에 12년 동안 혈루증을 앓아온 여인이 있었습니다. 

성경에는 이 여인이 병을 고치기 위해 수없이 애를 썼다고 쓰여 있습니다. 이 여인은 많은 의사를 찾아다녔고, 가지고 있는 돈을 다 썼는데도 불구하고 그녀의 병은 고쳐지지 않았고 오히려 더 악화되었습니다. 25-26절.

우리 주변에는 이런 분들이 참 많습니다. 애를 쓰면 쓸수록 덫에 빠진 것처럼 상황이 더 악화됩니다. 누구나 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빠져나가고 싶지 않겠습니까? 과연 병뿐이겠습니까? 우리들의 인생사에 여러 가지 일이 얽히면 몸부림칠수록 더 어려워지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이 여인을 지켜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사람이 스스로 혼자 살아야 한다는 것은 고통이고 또한 외로움입니다. 

그렇지만 이 여인에게는 ‘예수님’이라는 희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예수님이 자기 동네에 오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 여자는 ‘사람들이 뭐라고 해도 나는 예수님의 얼굴이라도 보고 싶다’고 생각하며 사람들 틈에 끼어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의 몸에서는 악취가 났을 것이고, 사람들은 좀처럼 자리를 내어주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여인의 마음속에 있는 예수님을 만나보고 싶은 강한 열정이 사람들이 환영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 속에 끼어들게 했습니다. 여러분에게 이 마음이 생기기를 바랍니다. 

양보하지 말아야,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

28절. 이것이 믿음입니다. 

예수님의 옷자락이라도 만지면 나을 것 같다는 것이 이 여인의 믿음입니다. 이것이 과학적 사실이겠습니까? 지성적 논리겠습니까? 

그런데 이 여인이 예수님께 가까이 가서 옷자락을 만지는 순간, 흐르던 피가 멈췄습니다. 이 여인은 자신에게 변화가 온 것을 알았습니다. 

교회에 나와 설교를 듣고 말씀을 읽어도 뭐가 뭔지 느껴지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와 그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갑자기 내가 변하고, 마음이 울렁거리고, 기쁨이 내 안에서 솟아나며, 생명이 움틀거리는 것을 느낍니다. 

 

30절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그러자 자기에게 일어난 일을 알고 있는 이 여인이 와서 예수의 발 앞에 엎드려 두려움에 떨면서 사실대로 말했습니다. 예수께서 여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34절.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네 믿음이 너를 치료했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여러분, 불치병의 치료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여러분들의 구원입니다. 

그리고 평안히 가라고 하십니다. “너를 묶어놓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돈도, 세상의 인연도, 모든 꼬인 것도 다 풀렸다. 이제 너는 자유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선언입니다.

이 혈루병 걸린 보잘 것 없는 여인에게 예수님은 축복을 해주셨습니다. 

곧 그것은 오늘 여러분과 제게 주시는 축복의 말씀입니다. 

 

이러느라고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병 든 딸을 눕혀놓은 아버지의 마음은 얼마나 급했겠습니까? 얼마나 답답했겠습니까? 얼른 빨리 가야지, 딸이 죽기 전에 도착해야 할텐데 시간이 많이 지체되니 얼마나 답답했겠습니까? 

그런데 시간이 지연됩니다. 진정한 믿음의 테스트는 응답이 늦어질 때, 시련이 길어질 때 여러분이 얼마만큼 잘 견디어 내느냐 하는 것입니다. 

만약 야이로가 힘들다고 그냥 내팽개치고 그냥 가버렸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야이로는 끝까지 기다렸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인내했습니다. 우리들은 기다림을 통해서 믿음의 성숙을 경험합니다. 

여러분의 기도가 때로 응답이 늦을지라도 포기하지 말고 기다리실 때 여러분의 인생에 기적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문제 앞에 기적을 체험하려면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두려워하지 말고 믿어야 합니다. 35절, 36절 말씀을 읽습니다. 

오늘 회당장은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꽤 많은 시간을 허비했습니다. 마음은 조급하고 안타까워죽겠습니다. 지금쯤 어떤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지 너무 안타까운데 드디어 하인 한 사람이 달려왔습니다. 

그리곤 딸의 죽음을 전합니다. 그리고 이제 상황은 끝났다고 합니다. 

숨이 붙어있을 때, 살아있을 때 의사가 필요하고 예수님이 필요한 것이지, 이제 아이가 죽었는데 예수님이 온들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자, 오늘 이 아이가 죽었다는 최악의 상황에서 야이로는 어떤 태도를 보였을까요? 성경에는 없지만 몹시 당황하고 슬펐을 것입니다. 

어떤 사본에는 야이로가 너무 놀라서 쓰러질 뻔 했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한 번 따라해 보시기 바랍니다.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지금 너에게 최악의 상황이 왔을지라도 아니, 끝이라고 선언되었더라도 공포에 떨지 말고 끝까지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믿음의 줄을 놓지 말라는 것입니다. 운동 경기가 재미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역전승.

하나님은 역전의 명수입니다. 

믿음도 그런 것입니다. 포기하지 마십시오. 밑바닥까지 갔다고 해도 이젠 끝장났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언제 뒤집어질지 모릅니다. 믿음의 묘미가 여기 있는 것입니다.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인간이 끝이라고 할 때부터 하나님은 시작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기에 신앙의 묘미가 있는 것입니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두려워말고 믿기만 하면.

 

마지막으로, 문제 앞에서 기적을 체험하려면 끝까지 동행하셔야 합니다. 

그의 딸이 죽었다고 알려 와도 회당장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모시고 자기 집에까지 안내합니다. 거기에 승리가 있습니다. 

중도에 가 봐야 뭐합니까? 애가 죽었다는데... 선생님 가고 싶은대로 가세요라고 했다면 예수님이라도 가실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예수님과 동행했습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때로 실패할지라도, 넘어질지라도, 좌절할지라도 끝까지 주님과 동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집에 갔더니 역시 장례가 났으니 그 집안의 사정이 어땠겠습니까?

38절을 보니 사람들이 떠들며 울며 심히 통고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 시끄러운 가운데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떠들며 우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보시기에는 잠자는 것이나 죽은 것이나 똑같은 것입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뭐 저런 말도 안 되는 얘기를 하냐구 비웃습니다.  

예수님은 비웃는 사람들을 다 내어 보내십니다. 그리고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 그리고 이 아이의 부모만 데리고 방으로 들어가십니다. 

그리고는 아이의 손을 잡고 말씀하셨습니다. “달리다굼!”

이 말은 “소녀야!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는 말씀입니다. 

그 때 아이가 마치 잠자다가 일어난 것처럼 눈을 뜨고 벌떡 일어납니다. 

 

사랑하는 새하늘 교회 교우 여러분! 

우리는 늘 인생의 문제 앞에 부딪칩니다. 좌절하고 낙심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믿음을 가지고 일어나는 사람은 절망하지 않습니다. 

오늘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오늘 우리 믿음의 현주소는 어디입니까? 

오늘 우리는 어디까지 믿고 있는 것입니까? 

주님께서는 이 아침에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달리다굼”, 일어나라! 

낙심과 절망의 자리에서 과감히 일어나서 믿음으로 기적을 체험하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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