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마치시고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종려주일입니다. 그리고 오늘부터 고난주간이 시작됩니다.
고난주간은 종려주일에 시작하여 그 다음 주일인 부활주일에 끝이 납니다.
목요일에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하시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방울이 핏방 울이 되도록 기도하시다, 가룟 유다의 배반으로 잡히셨으며,
금요일에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고,
토요일에 무덤 속에 계시다가, 주일에 부활하셨습니다.
주님의 부활 이후 유대인들은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키는 반면,
우리 기독교인들은 부활하신 날인 일요일을 주일로 지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돌아가신 금요일은 성 금요일(4월 2일)이라 하여
금식을 함으로써 그 고난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가능하신 분들은 모두 금식함으로써 그 고난에 동참하시기 바랍니다.
금식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방법이기도 하지만
인생의 위기 앞에서 문제 해결을 위한 최고의 방법이기도 합니다.
오늘은 교회력으로 보면 종려주일이지만 우리 교회로 보면 우리 교회가 시작한지 17년이 되는 기념 주일입니다. 이번 17주년 개척기념주일을 맞으면서, 기도모임부터 시작해서 우리가 그동안 걸어왔던 발자취들을 가만히 되돌아보았습니다.
지난 주일에 저희 집사람 몸이 안 좋아서 상암동에 있는 이비인후과.
2004. 3월 28일. 상암동에서 전도사 시절 첫 예배, 개척
2006. 5월 25일. 목사 안수.
2008, 2011년 두 장소로 옮겼다가 2016년 11월에 지금의 자리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돌아보면 볼수록 발자국마다 하나님의 은총이었음을 깊이 깨닫게 되고,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에벤에셀.
생일자와 함께 축하.
세상 사람들은 믿는 우리들의 행동을 유심히 보고 있습니다.
자기들과는 뭔가 다를 것만 같은, 그리고 달라야 한다는 기대감을 가지고
우리들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에 대해서 우리가 말하지 않아도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더 잘 알아봅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들과는 다른 무언가를 크리스찬으로부터 발견하고 감동을 받고 싶어합니다. 거룩, 세상에 살지만 다르게 살아야.
그렇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1장 27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한 생활, 그것만이 세상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교회의 예배에는 많은 향을 피워서 교회가 향냄새와 연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들의 예배에 참석한 후 집에 돌아가면 옷과 몸에서 향냄새가 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야만 합니다. 그러할 때에 세상 사람들이 우리들을 향하여 마음의 문을 열게 될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저와 여러분들 모두가 예수의 향기가 진하게 배어있는 하나님의 대사이어야 합니다.
사도행전 16장은 언제나 신선함을 더해 주는 말씀입니다.
특별히 드로아에서 마게도냐 사람이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고 하는 그런 환상을 보고 사도바울이 보고 마게도냐로 건너갑니다. 그리고 빌립보 성에서 복음을 전하게 되었는데 아주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귀신들린 종을 치료해서 고쳐주었는데 그 일로 인해서 고발당해서 감옥에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매도 맞고 쇠고랑에 묶여서 감옥 안에 갇혀있을 때 하나님께서 기적을 주셔서 옥문이 열려지는 그런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때 간수장에게 복음을 전하는데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많은 박해와 환란이 있었지만 자주 장사 루디아를 만나서 유럽 최초의 교회, 빌립보 교회가 세워지게 됩니다.
그렇게 빌립보 사역을 마치고 데살로니가로 들어가 복음을 전한 후 데살로니가를 실라와 디모데에게 부탁하고 사도 바울은 고린도로 내려가서 사역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데살로니가에서 사역을 하고 있었던 실라와 디모데가 고린도로 와서 “데살로니가 교회가 믿음 생활을 잘하고 있습니다.”라는 보고를 했습니다. 그런 감동과 은혜 속에서 보낸 서신이 바로 데살로니가서 전후서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8절 후반절에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졌으므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라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다른 설명이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믿음생활을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잔소리를 할 필요가 없을 만큼 성숙한 교회라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건강한 교회로,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아주 견고한 믿음으로 서 있다는 그런 소문이 마게도냐 여러 지역에, 아가야 여러 지역에 그리고 각 처에 좋은 소문이 난 모델이 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7절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느니라" 신앙생활을 먼저 시작하신 분들은 이제 신앙생활을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믿음의 좋은 본을 보여야합니다. 우리 부모님들은 또 자녀들에게 믿음의 좋은 본을 보여야 합니다. 바로 데살로니가 교회는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좋은 모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데살로니가 교회가 좋은 소문이 난 교회였는데 그 교회는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을까요? 우리가 다시 한 번 이 말씀을 통해 신앙을 점검해 보고 또 이런 모습으로 우리가 하나님과 교회를 섬길 때 정말로 특별히 코로나19로 인하여 어려운 이 시대를 이겨 나갈 수 있는 교훈을 얻기를 바랍니다.
먼저 목회자와 성도의 관계가 좋은 교회였습니다. 2절 말씀입니다.
"우리가 너희 모두로 말미암아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할 때에 너희를 기억함은" 바울사도는 이렇게 데살로니가 교회를 생각할 때 마다 항상 하나님께 감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엎드려 기도할 때 마다 여기 "기억함은" 이 말은 생각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많은 교회를 세웠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3차례나 선교여행을 떠나고 20여 년 동안 선교하는 일에 힘을 썼던 것입니다. 여러 지역의 여러 교회들을 세웠고 여러 성도들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이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 대해서는 항상 하나님께 감사가 되었고, 기도할 때 마다 그곳이 생각 난 것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되었을까요?
빌립보 선교를 마치고 데살로니가로 들어갔을 때 바울사도 그 일행들은 심신이 지쳐있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마음도 지치고 육신도 지쳐있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집을 떠날 때 한 주간만 떠나도 피곤해요. 한 달 떠나면 얼마나 피곤하겠습니까? 그런데 몇 년 동안, 한 번 떠나서 여러 나라를 돌면서 선교를 하는데 그런 과정 속에서 박해도 받지요, 매도 맞지요, 풍랑도 만나지요, 그리고 많은 박해를 당하면서 헐벗고 굶주리지요, 그러니 마음도 지치고 육신도 지치고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영육간에 피곤해 있고 심신이 지쳐있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데살로니가 지역에 들어가서 3주 동안 교회를 세웠는데 그 교회가 아름답게 성장 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그래서 늘 그 교회를 생각하면 항상 하나님께 감사가 되었습니다. 기도할 때 마다 엎드리면 그 교회 성도들의 얼굴이 생각나고 목회자와 성도의 좋은 그런 관계입니다.
그리고 데살로니가 교회는 믿음의 역사가 있는 교회였습니다.
3절 말씀입니다.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믿음 생활 한지가 오래 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짧은 시간, 3주간에 복음을 전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실라와 디모데가 말씀으로 양육해 가는데 그들의 믿음이 성장하게 된 것입니다. 단기간에 거쳐서 아주 견고한 믿음으로 세워져갔습니다.
신앙생활은 신앙의 연조도 참 중요하지요. 모태신앙, 그리고 10년, 20년, 30년 신앙생활 하는 그 연조도 무시할 수가 없습니다.
교회 일꾼을 세울 때 그래서 초신 자들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신앙의 연조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믿은 지가 얼마 되지 않는 짧은 기간이었는데도 아주 믿음이 견고하게 세워져서 예배를 소중하게 여기고 교회 봉사를 소중하게 여기고 하나님을 향한 그런 헌신을 소중하게 여기는 그런 믿음의 사람들도 보게 됩니다.
바로 데살로니가 교회가 그런 교회였습니다.
3절에 “믿음의 역사”란 다른 말로 “믿음으로 살 때 나타나는 결과”를 말합니다. 믿음은 신앙생활의 출발점입니다. 신앙은 지식이나 경험으로부터가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부터 출발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않는 모든 것은 죄라고 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과 분명히 다르게 살아가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의 지혜, 자기의 능력, 자기의 주관으로 삽니다.
그러나 믿는 우리들은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 믿음의 행위는 구체적인 결과로 나타납니다.
사도행전에 나타난 초대교회는 예수의 이름으로 앉은뱅이를 일으켰고, 죽은 자를 살렸고, 귀신도 쫓아냈습니다. 우리 교회도 믿음의 역사가 나타나는 교회, 인생의 어려운 문제, 물질의 문제가 해결되고, 육체의 질병들이 치유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는 교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데살로니가 교회는 사랑으로 수고하며 섬기는 교회였습니다.
본문 3절에 “사랑의 수고”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주를 위해 사랑의 수고를 아끼지 않았던 교회였습니다. 우리 성경에 ‘수고’로 번역된 헬라어 ‘코포스’는 ‘엄청난 고통이 뒤따르는 수고, 봉사’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 ‘코포스’는 현재 진행형으로 ‘일회적인 수고가 아닌 계속적인 수고’를 말합니다. 그런데 모든 수고와 봉사의 기초는 사랑입니다. 사랑이 없는 수고는 피곤합니다. 괴롭습니다.
라헬을 사랑한 야곱을 보십시오. 라헬을 아내로 맞는 조건으로 삼촌 라반에게 칠 년을 봉사하기로 약속했지만 칠 년을 수일같이 여겼습니다.
어떻게 칠 년을 수일 같이 여길 수 있습니까? 야곱의 수고는 타의에 의한 강제적인 수고가 아니라 사랑의 수고였기 때문입니다.
저는 우리 새하늘 교회가 사랑의 수고가 있는 교회가 되어서 누구든지
와 보고 싶은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소망 중에 인내하는 교회였습니다.
오늘 본문 3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쉬지 않고 기억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생각하기를 “데살로니가 교회가 이처럼 믿음이 좋은 교회이고, 사랑의 수고가 있는 교회였던 것은 저들에게 생활의 여유가 있고 남을 도울 수 있는 안정된 조건들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라고 판단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6절에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이 말씀을 보면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은 많은 환난 가운데서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초대교회가 다 그렇듯이 그들도 신앙생활 하는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이 이처럼 많은 환난 가운데서도 기쁨으로 말씀을 받으면서 지낼 수 있었던 까닭은 저들에게는 소망의 인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는 소망이 있었기에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찬양할 수가 있었으며 소망이 있었기에 어려움을 이길 수가 있었습니다.
캄캄한 밤이라도 항상 밤은 아닙니다. 곧 새벽이 다가옵니다.
가장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할지라도 여러분, 곧 동이 틀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서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인내해야 합니다. 소망가운데 인내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새하늘 교회 교우 여러분!
오늘 우리 교회도 데살로니가 교회와 같이 칭송받는 좋은 교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특히 창립기념 주일을 맞이하여 우리 새하늘 교회가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 소망 중에 인내하는 교회로 좋은 소문이 나서 세상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들으며, 갖고 나온 기도제목들마다 응답받는 그래서 부흥하는 교회가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