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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떠나가라! (창세기 13: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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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에 처음 입대해서 훈련소에서 처음 들은 말은 ‘뒤로 취침’이라는 말이었습니다. 그래서 알게 된 말이 ‘줄을 잘 서야 한다’였습니다. 

줄을 잘못 서서 낭패를 당하는 일들을 주변에서 흔하게 봅니다. 

멀리 생각할 것도 없습니다. 운전을 할 때도 차선을 잘못 들어서면 고생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선택은 자유라는 것입니다. 

고로 우리는 내가 선택한 바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합니다. 

‘인생에서 차선책이 최선을 가로 막는다’고 했습니다. 

주일날 교회에 가야 하는데 사업상 중요한 약속이 생깁니다. 그러면 고민하다가 하나님을 만나는 대신 결국 사람을 만나는 일을 택하게 됩니다. 

차선을 선택한 사람은 결국 최선의 길을 버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선택하고 결단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굳게 결심하고 갈 때에 방해가 많습니다. 사람들이 비아냥거립니다.  

그러나 결단이 있는 자는 우왕좌왕하지 않고 직선거리를 갑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3: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라고 합니다. 

알고, 선택하고, 담대하게 그 길을 갑니다. 

여기에 자유가 있고, 진정한 행복이 있는 것입니다. 

 

헬라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에 대하여 이렇게 설파하였습니다. 

“행복이란 다른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원해서, 스스로 선택해서 

‘온 몸으로 함께하며 동참할 때, 행복이 있는 것이다.’ 

 

지금 이 길을 갈까? 말까? 고민하고 계신 분들 계십니까?

될 수 있으면 빨리 선택하고 그 길을 힘차게 달려갈 것입니다. 

크리스찬이 된다는 것은 복잡하던 머리가 단순해지는 것입니다. 

가라고 하면 가고 가지 말라고 하면 안가고. 

 

창세기 12장 1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하십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보이지 않는 그 하나님을 선택하고 그 여호와 하나님이 지시하는대로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떠납니다. 

그것이 아브라함의 신앙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내가 선택하고 그가 인도하시는대로 살아가기로 작정을 하였습니다. 세상을 선택, 하나님을 선택. 이 갈등 속에서 기도해서 정해야.

 

오늘 집을 나서기 전.

 

그런데 아브라함에게는 롯이라는 조카가 있었습니다. 

그 조카 롯은 삼촌이 좋아서, 그래서 삼촌이 가는대로 따라갔습니다. 

동으로 가면 동으로, 서로 가면 서로, 애굽으로 가면 애굽으로 따라갔습니다. 그리고 오늘 다시 벧엘로 돌아옵니다. 

어쨌든 롯은 아브라함이 선택한 길을 그대로 따라 다녔습니다. 

아브라함을 좋아했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 땅이 좁아서 용납할 수 없을 만큼 소와 양이 많이 있었다고 오늘 본문은 말씀합니다. 삼촌네와 함께하기에는 땅이 좁으니 두 가정이 갈라져야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조카 롯에게 말합니다.

‘나를 떠나라. 이제는 네가 그만큼 컸으니 나를 떠나라’

이래서 두 가정이 갈라지는 이야기가 오늘 본문의 이야기입니다.  

아브라함은 바로 이 시간에 또 다시 택함받은 자의 모습으로 중요한 선택을 합니다. 무엇이 더 중요하냐, 하는 것입니다.

삶에 있어서 지혜 중에 가장 큰 지혜가 우선순위(priority)의 분별입니다. 

무엇이 중요하냐, 그것을 결정해야 합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생각했습니다. 

화목이 중요하다. 화평이 중요하다. 우리 다투지 말자, 그래서 그는 조카에게 양보를 합니다. 무릇 양보 없이 화평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화평은 상당한 대가를 필요로 합니다. 내가 손해 보지 않고 화평은 없습니다. 화평을 원하고 화평해야겠다고 하면서도 양보하지 아니하고 내 잇속을 차리려고 하니 화해가 없는 것입니다. 

조금도 양보할 마음이 없으니 하나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아브라함은 크게 양보합니다. 

이렇듯 크게 양보할 수가 없습니다. 보십시오.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너 가지고 남는 거 내가 가지마‘ . 

이 마음이 참으로 복된 자의 마음이요 선택받은 자의 마음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양보, 해 보신 적 있으십니까? 

 

그리고 양보하려면 구체적 사건 하나하나에 너무 연연하지 말 것입니다. 

사업, 지위, 명예..... 다 그렇습니다. 

“너 S 대학에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 하는 부모님들이 있다고 합니다. 

다른 대학 가면 되지요, 대학 정 가기 싫으면 직업을 가져도 되지요. 

이 문이 닫히면 저 문으로 들어가면 될 것 아닙니까?

그릇된 집념이 사람을 그릇되게 인도합니다.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동이면 어떻고 서면 어떻습니까? 산지면 어떻고 평지면 어떻습니까? 그것은 아브라함에게 대수롭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고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고 내가 경건생활을 지켜갈 수가 있다면 이것으로 더 바랄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그렇듯 너그럽게 양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반면 롯은 높은 산에 올라가서 눈을 들어 요단들을 바라봅니다. 

10절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들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는 고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10절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이라고 했습니다. 

보는 것 중요합니다. 무엇을 보느냐,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합니다. 

롯은 당장 ‘오른쪽이 좋은지 왼쪽이 좋은지’ 열심히 계산하기 시작하면서 

‘요단 들판’을 바라보았습니다.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그 땅은 그의 눈에 당시 풍요의 땅 그 자체로 유명했던 애굽 땅처럼, 그리고 여호와의 동산 즉 에덴동산처럼 아름답고 기름지게 보였습니다. 

여호와의 동산은 아니더라는 것입니다. 속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좇는 그것이 여러분을 망하게 합니다. 돈, 권력.

예수를 믿으면 가치관이 바뀌어야 합니다. 세계관이 바뀌어야 합니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롯과 같이 순전히 세속적인 축복관을 추종하고 세속적인 성공 비결을 따라서 선택을 내리고 있습니다. 

그 선택 과정에 그 어떤 영적인 고려, 본인과 가족의 신앙생활에 미칠 영향에 대한 고려는 조금도 없이 그저 내 생각에 잘 살 것같은 기준만을 가지고. 

그래서 롯은 먼저 그 곳을 갖겠다고 합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했던 것은 물자가 부족했던 것이 아니라 물자가 너무 풍족해 져서 죄를 짓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로마 제국이 망한 것이 왜 입니까? 너무 풍요하게 살다보니 죄가 관영하게 되어서입니다. 

개인이건 민족이건 국가건 죄 때문에 망합니다. 

 

화려함을 보는 것, 외형을 보는 것, 겉을 보는 것, 안됩니다. 

사람도 겉만 보아서는 안됩니다. 속을 보아야 합니다. 

겉만 보다가 많은 실수를 하지 않습니까? 

사도행전 10:34, 35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  

 

롯은 장차 이 아름다고 풍요한 땅이 자신을 행복하게 해 줄 것으로 믿었습니다마는, 결국 이 때문에 망하고 맙니다. 

더욱이 12절을 보면 롯이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다고 합니다.

12절 “롯은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

자기 장막에 머물지 않고 소돔과 고모라, 그 죄악의 도성으로 자꾸 옮겨 갔습니다. 이처럼 일단 세속 문화에 발을 들여 놓은 롯이 점점 죄악의 깊숙한 세계로 빠져 들어 갔듯이, 보이는 현실의 풍요와 화려함에 눈이 먼 자는 마치 부드럽게 집어 삼키는 수렁과도 같은 죄의 심부로 빠져들어 가고 맙니다. 

종교개혁자 칼뱅은 이렇게 말합니다. “롯은 장차 낙원 속에서 살 것이라고 상상했으나 지옥의 심연으로 빠져들어가고 있었다”

롯은 멀리서 소돔과 고모라를 바라보았지만 그 속은 보지 않았습니다. 

그 죄악도 보지 못했습니다. 아니, 뒤에 깨달았어도 그는 돌이키지를 못했습니다. 이 땅은 망할 것이다, 생각하고 벌떡 일어나서 나와야 되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결국 그는 다 잃어버렸습니다. 사랑하는 아내도 죽어버렸습니다. 

왜 이렇게 된 것입니까? 그는 선택을 잘못했습니다. 

그리고 잘못된 선택을 수정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13절을 보면 “소돔 사람은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더라”

동성애자들을 뜻하는 소도마이트,

 

오늘도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끌어안고 있는 문제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버려야 할 것을 버리지 못해서 문제입니다. 

그 옛날 이스라엘 백성도 그러했습니다. 

몸은 애굽에서 나왔으나 마음은 애굽을 떠나오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이 시간, 우리는 모두 성전 안에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은 여전히 콩밭에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겉은 그리스도인인데 그 중심에는 아직도 세상 것에 연연하는 욕심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 때문에 깨끗하고 시원스러운 신앙생활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좀 더 시원하게, 화끈하게 신앙생활을 할 수는 없겠습니까? 

 

사랑하는 새하늘 교회 교우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어떤 고민을 하고 계십니까?

혹, 선택을 잘못한 것 때문에 지금 고민을 하고 계십니까?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다시 궤도 수정을 하시기 바랍니다. 

올바른 선택을 할 때 하나님께서 그 길을 보장해 주실 것입니다. 

바른 선택을 해 놓고 그 아름다운 선택을 지키기 위해서 시련을 겪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끝까지 참고 견디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선택하고 환경과는 관계없이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행복했던 것처럼 하나님의 자녀됨을 깨닫고 하나님의 자녀다운 바른 선택을 해나가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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