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영혼이 잘됨같이 (요한삼서 2절)
2020년 6월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딱 반이 지났습니다.
돌아보면 올해 전반기는 코로나와의 전쟁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 것
같습니다. 이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도 저희 새하늘 교회와 교인 한분 한분을 눈동자처럼 지켜주시고 보호하여 주신 은혜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요한삼서는 사도 요한이 장로 가이오에게 개인적으로 쓴 편지입니다.
그 편지에서 사도 요한은 가이오에게 영혼 건강의 복을 빌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이 말씀에서 보는 것처럼 건강에도 ‘우선 순위’가 있다는 것입니다.
범사가 잘되고 육체가 강건한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먼저 ‘영혼이 잘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진정한 건강은 영혼이 잘되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당시는 아직 성경이 체계적으로 쓰여지지 않았던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전도자들이 복음을 전하고 나면 곧바로 거짓 선지자들이 다시 들어가서 그 복음을 왜곡시키고 변질시키는 일들이 흔했습니다.
이 말을 들으면 이 말이 옳은 것 같고 저 말을 들으면 저 말이 옳은 것 같았던 그런 시대입니다. 그런데 장로 가이오는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다고 3절에서 말해주고 있습니다.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그런 면에서 기초가 튼튼한 신앙을 가진다는 것이 무척 중요합니다.
운동 선수가 되려면 기본 자세가 잘 되어 있어야 합니다.
기초를 배울 때 제대로 배워야 좋은 운동선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손흥민은 기초가 잘 되어 있는 선수인데 그 기초를 아버지가 세워 주었다고 합니다.
기초가 잘 되어 있으니 어느 곳에서나 실력을 인정받습니다.
마찬가지로 신앙생활도 출발할 때 기본부터 잘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이 친히 말씀하시기를 마태복음 6:24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재물이라 되어있지만 원문에서는 맘몬, 돈 귀신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물질을 바르게 벌고 바르게 드리고 바르게 사용하는 것은 영적전투라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재물과의 영적전투에서 승리는 바로 ‘십일조’에 있습니다.
‘십일조’는 우리를 경제적인 흔들림으로부터 보호해 줍니다.
아브라함이 살렘 왕 멜기세덱에게 하는 것부터.
내가 주일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그 주일성수가 나를 지켜줍니다.
사자같은 맹수들은 배만 부르면 절대로 아무도 해치지 않는다고 합니다.
배고플 때만 사냥을 한다고 합니다. 동물의 세계에서는 배만 부르면 No problem!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배부른 다음부터가 문제입니다. 여기서 칼 마르크스가 실수한 겁니다.
그가 생각하기를 경제문제만 해결되면 온세상은 평안해질 것이다.
그러면 평화가 오고, 모두가 살기좋은 세상이 될 것이라고 내다보았는데
여기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Affluenza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부유하다는 뜻의 ‘affluent’와 유행성 독감 ‘influenza’의 합성어입니다. ‘부자병’이라는 뜻입니다.
풍요로워지면 풍요로워질수록 더 많은 것을 추구하는 심리로 인해 나타나는 갖가지 증상을 일컫는 용어입니다. 부자들은 가지고도 더 가지고 싶은 마음에 마음의 평안이 없습니다. 많이 가질수록 만족을 모릅니다.
그리고 이보다 더 무서운 부자들의 병은 불신입니다. 아무도 안 믿습니다.
아내도 남편도 자식도 안 믿습니다. 여기서 분열이 일어납니다.
부라고 하는 것이 사람을 이렇게 분열시킵니다. 화목함이 없습니다. 넉넉하니까 마음도 평안하고 여유가 있어야 할텐데 그렇지 못한 것입니다.
신앙생활이란 무엇입니까? 신앙생활이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랑은 뜨거울수록 좋습니다.
사랑하는 사람 사이에 틈새를 주지 말아야 합니다.
좀 느슨하게 사랑하면 그 자리에 꼭 다른 누군가가 비집고 들어옵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을 느슨하게 사랑하면 그 자리에 다른 것이 비집고 들어와서 주님과의 거리가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혹시 지금 여러분은 지금 주님과의 관계가 어떻습니까? 어떤 것도 들어오지 못하게 주님께 바짝 붙어 있습니까? 주님과 밀착되게 살고 있습니까?
사람들은 문제가 생기면 그 문제를 바라보고 사람을 바라보고, 권력을 바라보고, 재물을 바라보고 해결을 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신앙생활이란 그 문제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주님을 바라보고 그 분과의 관계를 통해서, 즉 그분과 내가 얼마나 친밀하냐에 따라 해결될 것 같아 보이지 않는 문제들이 해결되는 것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경험한 하나님을 서로 나누는 것이 신앙생활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1장 1절에서 자신있게 이야기합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우리 중에 이렇게 자신있게 말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일제시대에도 일본 순사들이 조선 기독교인들을 상당히 좋게 보았다는 기록들이 많이 있습니다. 7,80 년 까지만 해도 믿는 사람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참 좋게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 들어서 한국에서는 기독교인 중에서도 특히 개신교인이라고 하면 더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지난 7,80년대는 교회들이 ‘오직 성장하는 교회’만을 부르짖었습니다. 그러다보니 교회들이 성숙한 신앙인을 만들어 내지를 못하였습니다.
우리가 일 년에 한 번씩 건강 진단을 받아 보아야 하듯이 우리 영혼의 건강진단도 받아 보아야 합니다.
매년 나라에서 건강검진을 해 줍니다. 우리 나라 의료보험은 전세계에서 최고. 시민권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사람들 많아져.
우리들도 영적인 진단을 정기적으로 받아 보아야 합니다.
그럼 영적으로 건강진단을 할 수 있는 그 기준은 무엇입니까?
이 시간에 각자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첫째 예배가 즐거운가?
예배는 영적 건강진단에 가장 중요하고 첫 번째 가는 것입니다.
예배드리는 이유는 예수님이 너무나 좋기 때문에 나와 예배 드리는 것입니다. 예배가 즐거워지면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집니다.
조정민 목사 “예배를 드리는 기쁨이 없습니까? 주님께 드린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기태희 자매님 성가대 세탁.
우리의 영혼이 건강하면 하나님 앞에 가는 것을 즐거워합니다.
사랑은 자주 만날수록 깊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자주 만나야 하고, 목사도 자주 만나야 하고, 그리고 교인들도 서로 자주 만나야 합니다. 모이기를 힘써야 합니다.
초대교회는 참 건강한 교회였습니다. 모이기를 힘쓴 교회입니다.
모이면 기도하고, 말씀 듣고 그 가르침을 따라 살려고 애를 썼습니다.
히브리서 10: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둘째 하나님 말씀의 맛이 단가?
시편기자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시편 119:103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
몸이 아프면 입맛이 딱 떨어집니다. 마찬가지로 영적으로 침체되거나 병들면 말씀의 맛부터 잃어버리게 됩니다.
요즘 아침을 안 먹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는데 전문가들은 아침을 안 먹으면 영양의 불균형을 이루기 때문에 건강에 좋지 않다고 합니다.
그래서 간단히라도 요기를 하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말씀도 조금씩이라도 정기적으로 읽어야 하고 정기적으로 먹어야 합니다.
셋째 나는 예수를 자랑하고 싶은가?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은 사람은 그 하나님을 자랑하고 싶어 합니다.
연애하시는 분들 본인은 의식하지 못하지만 만나는 사람 자랑이 끝이 없습니다.
그러면 구원받은 우리들이 하나님을 자랑하지 않으면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하나님 자랑이 곧 전도입니다.
지금은 잘 쓰지 않는 단어지만 옛날에는 교회에서 헌금을 ‘연보’라 했습니다. 그런데 한국 초대교회 교인들은 ‘날연보’라는 특이한 연보를 했습니다.
보통 연보는 돈이나 쌀로 하는데, 초대교회 셩도들은 물질 대신 시간을 바쳤습니다. 부흥회 때 은혜를 받은 성도들이 하나님께 바칠 수 있는 날수를 적어내고, 그날만큼은 전도하는 일에 사용하였습니다.
물질 대신 시간을 바치는 ‘날연보’는 농경사회에서 흔히 보는 ‘품앗이’ 제도에서 유래한 것으로 한국 교회 특유의 토착적 헌신 제도였습니다.
넷째가 아멘을 잘해야 합니다.
운동경기 중에 집중하거나 상대방의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 소리를 지르는 것을 ‘기합’이라고 합니다. 역도 선수들이 순간의 힘을 발휘해 역기를 들어 올리기 위해 기합을 넣는가 하면 격투기와 같은 종목에서는 선수들이 기합을 넣으면서 상대방의 기선을 제압합니다. 그런가 하면 축구나 구기 종목 선수들도 경기를 하면서 기합을 넣으면서 경기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처럼 기합은 선수 개개인의 내면에 있는 힘을 끌어 모을 뿐만 아니라 다른 선수들을 격려하고 힘을 하나로 모아 최상의 경기를 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 기합 소리가 선수들의 경기력에 상당한 영향력을 준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기합소리는 사실 운동선수들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인들에게도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무슨 말씀인가 하면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그냥 살아가는 것과 순간 순간 영적인 기합 소리를 내는 것과는 대단히 큰 차이가 있더라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내는 기합소리는 “야!, 으샷! 파이팅!” 이런 소리들이지만 그렇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내는 영적인 기합 소리는 어떤 소리일까요? 아마도 “아멘, 할렐루야” 등이 있지 않겠습니까?
성경의 가장 마지막인 요한 계시록의 마지막 절은 요한계시록 22:21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찌어다. 아멘.”으로 끝이 나고 있습니다.
성경의 마지막 단어가 ‘아멘’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삶에 그대로 이뤄지기를 소원하면서 고백하는 것이
바로 ‘아멘’입니다.
‘아멘’ 은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이들의 영적인 기합소리입니다.
이 ‘아멘’이 잘 나올 때가 여러분들의 영적 상태가 좋은 때입니다.
여러분들 각자 채점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예배를 기뻐하는가? 나는 하나님의 말씀이, 설교가 단가? 나는 예수를 자랑하고 싶은가? 아멘을 잘하는가?
사랑하는 새하늘 교회 교우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영혼의 문제를 먼저 해결함으로써 우리 새하늘 교회 교우
여러분들 모두가 건강한 신앙인으로 자라기를 바라십니다.
그래서 우리 새하늘 교회가 건강한 교회로 성장하기를 바라십니다.
모두들 이 시간 결단하여 건강한 신앙인, 건강한 교회가 되어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되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