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 재난지원금으로 인하여 한우 판매가 급증했다고.
경기가 좋아 졌다고 하니 듣기가 좋긴 한데 개인적으로는 확찐 자가 되어서 지난 주 금요일부터 살을 빼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비만이라는 것이 죄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넋놓고 있으면 내 몸에 딱 달아 붙어서 잘 떨어지질 않습니다.
그리고 사람으로 하여금 포기하게 만듭니다.
살이 찌니까 점점 살 뺄 자신이 없어지고 해도 안될 것 같아 시작도 못하게 만드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작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시작하지 않으면 하나님도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내가 시작할 때 하나님께서 동행해 주시면서 능력을 주시는 것입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인생은 내가 바라는 대로 되는 것이 아님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믿는 우리들은 더욱 더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어 가는 것입니다.
543장 후렴 “세월 지나갈수록 의지할 것 뿐일세.
무슨 일을 당해도 예수 의지합니다.”
우리가 한 세상 살아가노라면 여러 가지 일을 만납니다.
하는 일마다 잘 되고 승승장구할 때가 있는 반면에, 경제적인 위기를 만날 때도 있고, 질병으로 고생할 때도 있고, 가정적으로 혹은 인간관계의 어려움을 당할 때도 있습니다.
어제까지 형통하다가 오늘 와서 갑자기 형편이 반전됩니다.
세상은 누구에게나 만만치 않습니다.
사람들은 돈만 있으면 만사형통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세상은 가난한 자에게만 만만치 않은 것이 아니라, 부자들에게도 만만치 않습니다.
그러면 이 만만치 않은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잘 살았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겠습니까? 오늘 본문에서 그 해답은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을 앙망하는 것입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하나님만 앙망하는 것입니다.
나의 방법을 사용하고 그래도 힘이 부족하면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것이 앙망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앙망할 때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것과 같은 위대한 기적들이 오늘 저와 여러분들의 삶에도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 생활은 기적이고 그것을 사람들은 간증이라고 합니다.
내일 일은 난 몰라요
오늘의 본문은 이사야 선지자의 글인데,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거역하다가 바벨론 제국에게 침략을 당하여 예루살렘 성전은 무너지고 많은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그때 그들의 심경이 27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 길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내 송사는 내 하나님에게서 벗어난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사정을 몰라주고, 아무리 호소해도 들어주지 않는다는 겁니다. 원망과 낙심으로 가득한 모습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바벨론의 침략입니까?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이스라엘의 문제는 그들에게 닥친 현실을 극복할 힘이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흔히 이렇게 생각합니다. 현실이 너무 어렵다, 문제가 너무 복잡하다, 일이 너무 많다. 그것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그런데 좀 더 깊이 생각해 보면 정확한 말이 아닙니다. 그런 현실, 그런 문제, 그런 일들을 감당할 힘이 없고 실력이 없는 게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보면 한 학생이 시험지를 받아들고 시험을 치르는데 문제가 너무 어렵습니다. 앞이 캄캄합니다. 그런데 정확하게 말하면 문제에 비해 실력이 부족한 겁니다. 실력만 좋으면 어떤 문제라도 풀 수 있습니다.
어렵고 쉬운 것은 상대적인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왜 병에 걸립니까? 병원균 때문에요? 맞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틀립니다. 왜냐하면 병원균은 보통 사람들에게 항상 잠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 체력이 더 강하면 이겨냅니다.
힘에 부쳐서 병에 걸리고 고생하고 죽는 겁니다. 그래서 긴급 재난지원금으로 면역력 높이는 약들도 많이들 사 드신다고 합니다.
오늘 저는 이렇게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문제가 문제가 아니라 내 실력이 문제이다!”
그렇다면 여러분, 우리 인생의 문제들을 능히 이길 수 있는 실력은 무엇입니까? 30절을 보십시오.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힘이 펄펄 넘치는 한창 때라도 인간의 힘은 제한적이라는 겁니다.
정신력이라는 것도 인간 자신의 힘이기 때문에 제한적입니다.
그러므로 인간 자신의 ‘힘’과 전혀 차원이 다른 외부의 힘, 즉 하나님이 주시는 ‘새 힘’을 받아야 합니다. 28-29절을 보십시오.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아니하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내가 뭐 좀 한다! 다 쓰러집니다. 그 분의 새 힘을 앙망하는 자.
사사기 15:14를 보니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갑자기 임하시매 그의 팔 위의 밧줄이 불탄 삼과 같이 그의 결박되었던 손에서 떨어진지라”
삼손은 맨 손으로 사자를 찢어 죽였습니다. 밧줄로 결박당했어도 한 번 힘을 쓰니 밧줄이 불탄 삼처럼 끊어졌습니다. 나귀 턱뼈 하나를 가지고 블레셋 사람 천 명을 쳐 죽였습니다. 힘으로 삼손을 당할 자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가진 그 힘이 본래부터 그의 것은 아니었습니다.
혹 홍해가 여러분의 앞을 가로막고 있습니까?
사자굴에 던져진 다니엘처럼 피할 길이 없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습니까? 앗수르 대군에 의해 포위된 히스기야처럼 속수무책이 되었습니까?
여호와를 앙망하십시오. 여호와를 앙망할 때 홍해가 갈라지고, 사자의 입이 봉해 지고, 대적들이 멸망하고 말았듯이, 우리들의 당면한 문제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해결될 것입니다.
우리 눈에는 도무지 해결할 수 있는 길이 보이지 않을지라도 우리가 여호와를 앙망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생각과 상상을 초월하는 방법으로 우리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자는 자기의 약함을 깨닫고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 풀리지 않던 인생의 문제들이 하나님께만 해결책이 있음을 믿고 매달리는 사람.
세상에서도 두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성공하지 못합니다.
열왕기상 18:21절을 보면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고 합니다.
여기서 두 사이란 ‘야훼 하나님’과 ‘바알’신 사이를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생각하기를 야훼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는 능하시지만,
농사짓는 데는 바알과 아세라 신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우리도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주일에 예배드릴 때에는 하나님이 계시지만 사업을 할 때나, 자녀들 교육시킬 때에는 세상 방법을 따라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이런 것이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했던 잘못입니다.
우리는 언제라도 하나님을 떠날 소지가 다분히 있는 사람인 것을 알고
하나님을 떠나지 말고 늘 하나님과 함께하라 이것만 하면 잘된다는 것입니다. 다른 것 없습니다.
구체적으로 하나님께 나아가 새 힘을 얻는 방법은 31절에 잘 나와 있습니다. 보십시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여호와를 앙망하면 새 힘을 얻습니다.
여기서 ‘앙망한다’는 말은 바라본다, 기다린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어원적으로는 줄을 팽팽하게 잡아당긴다는 의미도 갖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종합하면, 앙망한다는 것은 늘 긴장감을 갖고 지속적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과 지속적으로 영적 교제를 나누는 것입니다. 그럴 때 영적인 새 힘을 공급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에서도 긴장감이 중요합니다. 살이 찌니까 긴장하질 않아요.
31절을 다시 보면, 새 힘을 얻는 사람의 모습을 독수리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독수리의 힘은 양 날개에 있습니다. 양 날개를 쫙 편 채 기류를 이용해서 유유히 날아가고, 때로는 날개 짓을 하며 힘차게 창공을 향해 솟아올라갑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신앙에 있어 말씀과 기도는 양 날개와 같습니다.
말씀과 기도 이 두 가지를 균형 있게 잘 활용하면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새 힘을 충만히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전자제품을 사면 항상 사용설명서가 따라옵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용설명서를 바로 읽지 않고 또 경고사항을 확인하지 않아서 물건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물건을 망가뜨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인생이라는 선물을 주시면서 함께 주신
인생 사용설명서입니다. 반성경적, 지성이면 감천, 안 통해요.
말씀을 듣고, 읽고, 연구하고, 암송하고, 묵상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섭취해야 됩니다. 특히 암송할 수 있는 분들은 암송하는 게 좋습니다.
암송하면 마음속에 말씀이 살아 있어, 언제라도 나올 수 있습니다.
처한 상황에 맞는 말씀을 기억하고 적용함으로 능력 받고 승리하게 됩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우리가 간절히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나주시고, 영적인 능력을 부어주십니다.
1세기 초대교회 시대는 기독교 2천년 역사 가운데 가장 위대한 교회와 성도들이 있었던 시기였습니다. 그 때는 유대인의 박해, 로마 당국의 박해로 인하여 어렵게 된 상황인데 어떻게 그게 가능했겠습니까?
외적으로는 힘들었지만 그들은 기도하는 가운데 새 힘을 공급받았습니다.
사도행전 1:14을 보면 오순절 성령 강림 직전에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그리고 우리의 영혼 가운데 새 힘, 영적인 능력이 부어지면 아름다운 승리의 삶이 연속적으로 펼쳐집니다. 그 모습을 31절(하)에서 뭐라고 묘사합니까?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승리하다 말다 하는 게 아니라, 연속적으로 승리한다는 것입니다.
새 힘을 받으면 현실의 어려움을 넉넉히 극복하고 승리하게 됩니다.
환란을 이깁니다. 환란을 극복합니다. 환경을 변화시킵니다.
그리고 믿는 우리들은 이 모든 것을 기적이라고 합니다.
사랑하는 새하늘 교회 교우 여러분!
우리 앞에 있는 난공불락과 같은 문제들이 진짜 문제가 아닙니다.
나 자신이 문제입니다. 나의 신앙이 문제입니다.
여러분, 현실이 어렵습니까? 태산 같은 문제 앞에 짓눌려 있습니까?
그 모든 것보다 더 크신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이십니다.
그 사실을 굳게 믿으시고, 말씀과 기도의 양 날개로 힘차게 날개 짓을 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새 힘을 부어 주실 것입니다.
세상 그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는 새 힘! 하나님 주시는 새 힘으로
이 불공평하고 불합리한 세상의 모든 환란들을 이겨 나가시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