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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베스의 기도 (역대상 4: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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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베스는 역대상 2:55을 보면 성읍의 이름.

많은 신학자들은 8절에 나오는 ‘고스’의 형제일 것으로 추정. 

 

우리가 방금 읽은 말씀은 성경에서 꼭 오아시스와 같은 구절입니다. 

그 내용도 감동적이지만, 말씀의 위치도 꼭 사막 한 가운데서 발견하게 되는 오아시스와 같습니다. 역대상 1장부터 9장까지는 지루한 부분입니다. 

마태복음 1장을 보면 지겨워 합니다. 족보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약 50명.

마찬가지로 역대상 앞 부분도 아담부터 바벨론 포로 이후의 이스라엘 백성의 족보를 나열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만 500명이 넘습니다. 

4장에서도 야베스와 관련된 부분 외에는 온통 사람 이름으로 가득합니다.

그래서 이 역대서 첫 부분은 대충 건너뛰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다가는 그 한 가운데 숨겨져 있는 이 오아시스와 같은 야베스의 기도 부분을 놓치기 쉽습니다. 이것이 말씀을 읽는 기쁨입니다. 힘들고 졸리더라도 꾸준히, 건너 뛰지 말고 말씀을 읽어 가십시오. 그러다가 한 구절이 가슴에 ‘팍’ 하고 꽂힐 때, 그 동안의 수고는 넉넉히 보상받고도 남는 것입니다. 

 

9절 후반부를 보면 “그 어미가 이름하여 야베스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 

야베스라는 이름은 ‘고통’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그 이름을 아버지가 아닌 어머니가 지어 주었다는 사실을 눈여겨봐야 할 것입니다.  

고대 근동 지방에서 이름은 대단히 중요했습니다. 

그 사람의 인격과 성품, 운명 등을 암시했습니다. 

예를 들면 야곱이라는 이름의 뜻은 ‘발꿈치를 잡은 자’ 혹은 ‘속이는 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얍복 강에서 야곱의 이름을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자’라는 이스라엘로 바꾸어 주십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이름을 지어줄 때 좋은 이름을 지어주려고 합니다. 

누가 자식에게 ‘가룟 유다’와 같은 이름을 지어주려고 하겠습니까?

그래서 오늘 야베스의 이름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자기 자식의 이름을 ‘고통’이라고 짓는다는 것은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입니다. 부모들의 마음은 자신은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더라도 자기 자식만큼은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는 것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렇지 못한 경우가 가끔 있는데 그것은 낳은 자식에 대한 소망이 없을 때일 것입니다. 

그 마음을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적어도 ‘야베스’라는 이름의 뜻으로 보건대 야베스는 어머니로 하여금 “이제 너는 고생문이 훤하겠구나!”하는 탄식 가운데 태어난, 

대단히 불행한 과거를 가진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9절 전반부를 보면 이와 같이 서글픈 출생 배경과 상처투성이의 

과거를 지닌 야베스를 하나님께서 축복하셔서 그가 다른 형제들보다 더욱 더 존귀하게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도대체 야베스가 불행한 과거를 딛고 축복과 존귀의 사람이 될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일까요? 그 비결은 바로 그의 담대한 기도에 있었습니다. 

 

이 야베스 기도가 우리에게 감동적인 것은 그것이 철저히 자기 자신을 위한 기도라는 점입니다. 의외로 우리는 자기 자신을 축복하는 기도가 약합니다. 

나 자신을 위하여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모르는 분들은 오늘 야베스의 기도를 통하여 교훈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흔히 신앙인들은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에, 혹은 자기 자신을 생각하는 것은 이기적이고, 이기적인 것은 죄라는 생각이 강합니다. 

그래서 자기 자신을 위해서 많은 시간 기도하는 것에 대해서는 왠지 쑥스러워하고 죄송스러워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반드시 기억하십시오. 정말 소중한 것은 ‘나’란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길 원하는 것은 바로 나를 통해서입니다. 

내가 얼마나 소중합니까? 내가 태어나던 날이 바로 이 우주가 창조되던 날입니다. 내가 보고 느끼고 생각하면서 이 우주는 시작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죽으면 이 우주도 끝장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변화되면 우주도 변화됩니다. 내 마음이 슬프면, 아무리 아름다운 새가 와서 지저귄다 하여도 그 노래는 슬픔의 노래일 것입니다. 

그러나 내 마음이 기쁨과 감사로 가득 차 있다면, 길가에 풀 한 포기도 마치 나를 반기는 것처럼 보일 것입니다.

모든 것은 나로부터 출발합니다. 그러므로 나를 소중히 여기셔야 합니다. 

이것은 이기적인 이유에서가 아닙니다. 내가 잘 되어야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고, 내가 능력 있어야 이웃을 도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야베스의 기도를 깊이 묵상함으로 내가 얼마나 소중하고 존귀한 존재인지를 깨닫는 되기를 바랍니다.

 

먼저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복은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하나님의 성품에 대하여 여러분이 가진 신관이 중요합니다. 

오늘 여러분은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생각하십니까? 

윤리 도덕적으로 완전무결함을 요구하시는 거룩한 완전주의자로서의 하나님, 

그래서 우리가 조금만 실수하고 불완전해도 금방 실망하시는 그런 하나님? 

조금만 잘못해도 벌주시는 하나님? 

출애굽기 34:6은 하나님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 

하나님의 본성은 우리를 축복해주시는데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환상 중에 천국을 여행하게 되었습니다. 

베드로의 안내를 받아 천국 이곳저곳을 돌아보는데 한 모퉁이에 허름한 창고가 한 채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 사람은 그 창고의 정체가 너무 궁금해서 베드로에게 간청을 합니다. 

“베드로 사도님, 저 창고를 꼭 구경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보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하며 허락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더 궁금해진 이 사람은 강청을 해서 결국 그 창고 안을 구경하게 됩니다. 창고 안에는 빨간 리본으로 묶인 하얀 상자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습니다. 그 중에는 바로 이 사람의 이름이 쓰인 상자도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만류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은 호기심에 그 상자를 열어 보았는데 그 상자 안을 들여다 보는 순간 이 사람은 얼굴 빛이 침울해지고 말았습니다. 그 상자 안에는 이 사람이 평생 동안 받을 수 있는 축복의 목록이 가득 쌓여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그 복을 하나님께 간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받지 못했고, 그 많은 복들이 여기 천국 창고에서 썩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축복의 창고는 기도하는 자에게만 열립니다.

기도란 내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일이지만, 기도할 때에  하나님의 능력을 덧입게 되고, 그 능력으로 모든 것을 감당해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9:29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그래서 기도는 밧데리와 같은 것입니다. 밧데리가 충전되어 있지 않으면 

힘을 쓸 수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도도 쌓아져야 하는 것입니다.  

문제 만날 때마다 기도하는 것도 소중하긴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평소에 기도의 습관을 가지고, 골방에서 기도하는 성도들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전에 “하나님, 너무 바빠서 기도합니다.” 라는 책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 책 제목에서 벌써 은혜가 됩니다.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가 바쁘기 때문에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수도꼭지를 틀지도 않고, 물을 얻기란 기대할 수 없습니다.  

수도꼭지를 틀 때, 비로소 물이 콸콸 쏟아지는 것처럼, 

하나님 앞에 나와  여러분이 기도하게 될 때에, 하나님의 능력의 물줄기가, 하나님의 은혜의 물줄기가, 하나님의 축복의 물줄기가, 여러분의 삶 가운데 쏟아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야베스의 두번째 기도는 나의 지경을 넓혀 달라는 간구였습니다. 지경은 곧 땅을 말합니다. 내가 경작할 수 있는 땅을 넓혀 달라는 간구입니다. 

오늘날의 의미로 해석하면 나의 영향력을 확대시켜 달라는 기도입니다. 

여러분, 지금 사업을 하고 있습니까? 그러면 자기의 사업이 확장되기를 기도하십시오. 여러분, 지금 직장에 있습니까? 자기 자리를 높이시고, 유능하게 하여 좀 더 많은 영향력을 행사케 해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자기 인생의 지경을 자기 능력이나 경험으로 한계 짓지 마십시오. 

오래 동안 고생하고 또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자기 한계를 스스로 작게 설정할 수 있습니다. 

“자기 능력에 맞추어 일을 구하지 말고, 일에 맞추어 능력을 달라고 구하라” 내 능력은 이 만큼이니까 이 정도의 일만 하겠다 그렇게 살지 말라는 뜻입니다. 우리의 능력은 무한합니다. 성경에서 그렇게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빌립보서 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그러므로 더 큰 일을 구하십시오. 우리 인생의 바운더리를 더 넓게 치십시오. 한계에 갇히고 연약한 우리들을 향하여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시편 81:10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시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기도입니다. 우리의 능력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옵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주의 손이 돕는 인생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주의 손이 함께 할 때는 지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지치는 이유는 일이 많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지치는 이유는 성령 충만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일을 ‘하는’ 사람이 있고 일이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일을 하는 사람은 자기 손으로 일을 하는 사람이고, 일이 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도우셔서 일이 자연스럽게 되는 은혜의 사람입니다. 

일을 ‘하는’ 사람은 피곤합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자기가 계획하고 자기 손으로 해야 하기 때문에 피곤하고, 일을 다 하고도 성사될지 두렵습니다. 

그러나 일이 ‘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좋은 기회를 만들어 주시고,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키기 때문에 일이 저절로 됩니다. 

하나님의 손이 임할 때 이처럼 일이 되어 갑니다.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전쟁이나 건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미리 막는 것입니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전쟁이 가장 잘하는 전쟁입니다. 

병이 생기지 않도록 주의하고 예방하는 것이 가장 최상의 건강법입니다. 

이 기도가 바로 미리 환난이나 근심을 막는 기도입니다. 

우리는 주기도문을 통해 “우리를 시험에 들게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고 간구합니다. 이것이 바로 야베스의 기도입니다.

우리 기도는 우리 눈앞에 닥친 문제만을 위해서 기도하지 자기 자신의 미래를 위한 기도는 적습니다. 우리의 기도 내용을 한 번 분석해 보십시오. 

우리 기도는 문제에 끌려 다니는 기도가 대부분입니다. 남편 문제, 자녀 문제, 건강문제, 물질문제, 바로 눈앞에 벌어진 문제만을 놓고 간구하다 우리 기도는 끝나고 맙니다. 자기 미래를 위한 진취적인 기도가 없습니다.

이 기도야말로 가장 공격적인, 진취적인 기도인 것입니다. 

사실 이런 기도를 드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겸손함의 표현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런 기도를 드린다는 것은 우리가 연약한 존재임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반대로 이런 기도를 드리지 않고 있다면 그것은 교만입니다. 

시험과 환난을 미리 막아달라고 기도하지 않는 이유는 자기 스스로에 대해서 자신이 있거나, 아니면 둔감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야베스는 미리 환난을 막는 기도를 그 일생동안 부지런히 드림으로 근심이 없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야베스가 이렇게 구하자 하나님께서는 10절 하반절에 “그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야베스는 그 형제 중 존귀한 자가 됩니다.  야베스는 기도로 운명을 바꾼 사람입니다. 

야베스는 존귀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야베스 기도를 반복함으로 야베스처럼 존귀한 존재가 되기를 바랍니다. 존귀한 자가 되어서 여러분 자신을 일으키고, 가정을 일으키고, 

가문을 일으켜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 살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새하늘 교회 교우 여러분!

오늘부터 여러분들도 야베스의 기도를 매일같이 드려 보십시오. 

여러분의 인생이 바뀔 것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이 풍요로워질 것입니다. 

야베스의 기도를 드림으로써 여러분의 인생이 존귀하게 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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