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모든 사람에게 똑 같이 주신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죽음과
시간입니다. 히브리서 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그런데 우리에게 똑같이 주어진 시간을 우리가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인생은 달라집니다. 소위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기회가
왔을 때 놓치지 않고 잘 붙잡은 사람들.
기회는 여러 번 오지 않기 때문에 왔을 때 잘 붙잡아야 합니다.
신앙도 그런 면에서 선택과 결단이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창세기 12장 1절을 보면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
4절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그 당시 아브라함은 떠나는 것을 선택하고 결단하여 세계 종교의 선조 아브라함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 여러분들이 듣지 않아도 저주를 받는다든지 죽지는 않습니다.
다만 best의 삶이 아니라 second level의 삶을 살게 된다는 것.
인간의 불행에 있어 심각한 점은 바로 그 불행에 길들여진다는 것입니다.
그 불행이 체질화한다는 것입니다.
신앙 생활은 그 불행의 나라에서 행복의 나라로 가는 과정.
아프리카에서 의료 선교를 펼쳤던 슈바이처 박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그는 한 식인종 추장과 함께 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야기가 길어지다 보니 슈바이처 박사는 당시 유럽에서 벌어지고 있던 세계대전까지 화제로 삼게 되었다고 합니다.
박사의 전쟁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식인종 추장이 물어봅니다.
“그렇게 전쟁이 나면 한 열 사람 정도 죽습니까?”
박사가 “열 사람이라니요, 백 사람, 천 사람... 당신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을 사람이 죽는답니다.” 하고 대답하자, 그 식인종 추장은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이렇게 중얼거리더랍니다. “백인들은 사람 고기를 먹지도 않는다면서 그렇게 많이 죽여서 무엇에 쓸꼬?”
치열하게 싸우지만 믿는 우리들은 영원한 것에 관심을 가져야.
우리가 한 세상 살아가노라면 여러 가지 일을 만납니다.
몸도 마음도 건강하고 하는 일마다 잘 되고 승승장구할 때가 있습니다.
반면에, 질병으로 고생할 때도 있고, 경제적인 위기를 만날 때도 있고, 가정적으로 혹은 인간관계의 어려움을 당할 때도 있습니다.
어제까지 형통하다가 오늘 와서 형편이 반전되기도 합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인생은 내가 바라는 대로 되는 것이 아님을 깨닫습니다. 잠언 27:1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 선택된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듯이, 믿는 우리들도 때로는 곤고한 일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기도를 해도 응답이 없고, 고난이 중첩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됨을 항상 기억하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한시라도 잊으신 적이 없으셨습니다.
시편 27:10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
하나님의 자녀됨을 얼마나 실감하며 사느냐가 우리의 인생을 결정합니다.
오늘은 2019년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매번 연말이 될 때마다 느끼지만 정말 세월이 빠릅니다.
순식간에 1년이 지나가버린 느낌입니다.
여러분, 왜 연도수가 중요하고 연말연시가 중요할까요?
어찌 보면 아무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연도가 바뀐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뭐가 달라지는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연도수가 바뀌는 것을 중요시 여기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분주한 일상의 삶 속에서 정신없이 살아가던 우리가 잠시 멈추어서 인생을 생각하고 정리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연말이 있고 송년주일이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됩니다.
다시 한번 시작할 수 있기 때문.
교회적으로 보면 새하늘 교회형 성경일독표를 처음 만들어서 1년 동안 읽었습니다. 특히 12월은 잠언을 읽고 모두 참여하는 방식을 해 보았는데 아! 이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성경 일독표를 나누어 드릴텐데 잠언을 읽던 방식대로 모두들 하루에 한 구절씩 올려주시고, 단 질문은 제 개인톡으로 하시든지 전화를 거시든지.
2020년은 다른 것은 몰라도 신앙적으로는 전교인이 성경일독에 참여해서
신앙이 자라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흔히들 ‘웰빙’(well-being), ‘웰빙’ 하는데 웰다잉’(well-dying)도 그 못지 않게 중요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멋진 피날레(finale)’ 쯤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멋진 피날레로 인생을 마친 인물, 모세가 등장합니다.
모세는 흔히들 모세오경의 저자라고들 합니다.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오늘 신명기 34장은 모세오경의 마지막 부분, 피날레입니다.
이제 그가 떠날 날이 가까워졌음을 직감하고 홀로 느보산으로 올라갑니다.
이 느보 산 중에서도 가장 높은 최고봉인 비스가 봉에 올라갔습니다.
살아온 120년 세월이 마치 주마등처럼 모세의 눈앞에 스쳐갔을 것입니다.
모세는 태어나자마자 바로의 압제로 죽임을 당할 운명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놀라우신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으로 40년 동안을 애굽의 왕자로, 히브리 민족이 핍박당하는 것을 참지 못하여 그후 40년 동안은 미디안 광야에서 목동으로, 40년 동안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향하여 진군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제 약속의 땅 가나안을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에게 들어가지 못하고 그저 눈으로만 보게 하셨습니다. 신명기 34:4
인간적으로 보면 아쉽고 섭섭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너는 거기까지,
모세는 이와 같은 하나님의 뜻을 수긍하고 죽음을 순순히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인생의 마지막을 멋진 피날레로 장식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한번은 죽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죽는가 하는 문제는 아주 중요합니다. 성경은 복된 죽음을 요한계시록 14:13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세상 사람들은 죽음을 결코 복되다고 말하지 않지만 ‘주 안에서 죽는 죽음’은 복되다는 겁니다.
그 이유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영원한 안식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얼마나 많이 수고하고 애쓰며 살아갑니까?
그런데 그 모든 수고를 마치고 안식하게 되었으니 복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믿음으로 수고하고 애쓴 결과 천국의 상급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정말 이 말씀대로 오랜 세월 수고한 모든 삶을 마치고 이제 천국의 안식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하늘 나라에 가면 여러분들의 삶을 유 튜브로 보여 줄 것.
바울의 최후의 고백이라고 할 수 있는 디모데후서 4: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그는 일말의 의심도 없이 천국에 들어갈 것과 주님 앞에서 상을 면류관을 받을 것을 당당히 선언합니다. 얼마나 멋진 장면입니까!
우리가 인생을 살다 이 세상을 떠나는 그 날은 하나님을 뵙는 날입니다.
물론 우리가 이 세상 살 동안에도 하나님을 만납니다.
하지만 고린도전서 13장 12절을 보면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그 당시 거울은 청동.
그 때 어떤 모습으로 하나님을 뵈올지 생각하면서 마치 결혼 날짜 받아놓은 신부처럼 나 자신의 모습을 가꾸어야 합니다.
교회 근처가 웨딩센터. 어제도 그 추운날도 신부들이 드레스만 입고
웃으면서 다녀요. 그렇게 가꾸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접하면 즉시 천국 갈 수 있지만, 아직 이 세상에 남아 있는 이유 중의 하나가 시간을 두고 성화의 길을 걷게 되는 겁니다. 마치 안경알을 닦듯이 우리의 영혼을 맑고 투명하게 갈고 닦으며 수련을 해야 됩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이 부르실 때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갑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성화의 과정은 심은대로 거둔다.
이 엄연한 진리 앞에 우리는 좀 더 숙연해져야 합니다.
내가 심은대로 거둔다 이제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또 심었으면 기다려야 합니다. 인내가 필요합니다.
오늘 심고 오늘 당장 거두는 게 아닙니다. 오늘 심어 놓고 10년 후에 거두기도 하고 20년 후에 거두기도 하고 때로는 나 죽은 후에 거두기도 합니다.
모세도 죽은 후에 거둡니다. 여호수아가.
그러나 반드시 거둡니다.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런고로 기다려야 합니다.
그런데 조급해하며 당장 눈 앞에 있는 사건 하나하나로 울고불고 하지는 않았습니까? 쓸데없이 조급하게 판단했다가 뒤늦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서 부끄러워 하지는 않았습니까?
기다리되 낙심하지 말고, 초조하지 말고 느긋하게 기다릴 것입니다.
언젠가 반드시 결과가 올 것입니다.
모세에 대한 평가를 10절에서는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라고 합니다. 그는 늘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오래 함께 하면 닮기 마련입니다. 모세는 세월이 가면서 점점 더 하나님을 닮아간 것입니다. 모세는 사람을 때려서 죽인 사람, 다혈질의 사람이었지만 온유해진 사람입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은 이렇게 증거합니다. 고린도후서 4:16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오늘 모세는 아름다운 작별로 멋진 피날레를 장식합니다.
모세가 떠날 때, 그리고 떠난 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보십시오.
백성들이 얼마나 슬피 울며 애도했는지 모릅니다. 34:8
여러분, 모세와 이스라엘의 광야 40년을 성경을 통해 더듬어 보십시오.
얼마나 우여곡절이 많았습니까? 백성들의 반역과 핍박, 심지어 모세를 죽이려고 달려든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끊임없이 그들을 사랑했고
그들을 섬겼습니다. 고운 정 미운 정 다 들었습니다.
백성들은 떠나가는 모세의 모습을 보면서 울며불며 30일 동안이나 애곡합니다. 아름다운 작별의 장면입니다.
사랑하는 새하늘 교회 교우 여러분!
송년주일을 보내면서 1년을 마무리하는 가운데 내 인생의 피날레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부족하지만 다행히 하나님이 우리에게 2020년이라는 기회를 새롭게 주십니다.
부디 이전보다 더 잘해서 한 해 한 해 변화된 모습으로 살다가 언젠가
하나님이 부르시면 모세처럼 멋진 피날레를 장식하며 천국에 들어가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올 한 해도 오브노바 교회와 저희 가정을 위해 기도와 헌금으로 함께
동역해 주심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사 주신 자동차도 잘 타고 다니고
있습니다. 특별히 우리 딸 누리 결혼식에도 온 교우분들이 함께 도와 주셔서 빚 안지고 잘 마친 것 정말 잊지 않고 있습니다.
온 땅에 기쁜 소식으로 오시는 복된 성탄 되시고 새해에도 건강하시고 항상 행복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불가리아 플레벤에서 김영중, 김선경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