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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안에서 (갈라디아서 2:20, 5: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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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생활의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 여부는 누가 내 삶의 주인이 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내가 주인인가?” “그리스도가 주인인가?” 

믿지 않는 많은 사람들은 자기 인생의 주인은 ‘자신’이라 생각하고 삽니다. 

나의 인생은 나의 것.

그러나 믿는 우리들은 천지만물의 주인은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며 내 인생의 주인도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며 살아갑니다. 

우리들이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이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겨 놓으셨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청지기라는 표현을 씁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사람이 하나님을 믿기로 결단하면 그 순간 주인이 바뀝니다. 이제까지는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었는데, 하나님이 내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다르게 표현하면 “신앙인의 정권교체”라 할 수 있습니다.  

정권교체란 말뜻은 정치권력의 주인이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법이 아닌 하나님의 법인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소위 말하는 부자가 되거나 출세를 하면 행복해 지겠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믿음이 우리에게 생명과 복을 가져다준다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행복해지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

 

저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의 말씀이며 복된 말씀임을 그냥 상투적으로가 아니라 실제적으로 체험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하여 깨달은 진리가 제 삶에 얼마나 큰 축복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그 중에 내 신앙생활에 큰 영향을 끼친 두 구절을 먼저 소개하고자 합니다. 

 

먼저 히브리서 11장 6절입니다. 새벽예배 때마다 하나님께 간구한 구절.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이 말씀에 의하면 믿음이란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상주심을 믿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들의 영, 혼, 육에 대한 책입니다. 

영만 있다고 강조하는 것이 영지주의라는 이단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마음의 평강이 있으면 됐지 하는 것은 신앙생활의 10% 정도만 아는 것. 상주십니다. 누구에게 간구하는 자. 

예레미야 33: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그리고 하나님은 언제나 옳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지극선.

우리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다를 때 우리의 생각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생각을 인정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래서 좀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 믿음이 우리에게 복을 가져다 줍니다. 

기독교는 청부가 되어서 많이 나누어 주는 사람.

제네바를 바꾼 사람, 칼뱅.

 

저에게 중요한 깨달음을 준 말씀 중에 또 다른 하나는 야고보서 1장 15절의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느니라”

 

성경의 이 두 말씀은 우리를 잘 살게 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며, 

우리를 죽이는 것은 욕심이라는 중요한 깨달음을 저에게 주었습니다. 

우리를 불행하게 하고 못 살게 하는 것은 죄요 그 죄의 뿌리는 욕심입니다. 그러므로 참으로 잘 살려고 하면 우리는 무엇보다도 죄의 뿌리가 되는 욕심의 문제를 해결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절대로 행복할 수 없습니다. 잘 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5장 24절에서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정욕과 탐심, 정과 욕심을 육체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아야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잘 사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욕심은 우리를 어리석게 합니다.

다이어트, 먹는 욕심, 영적 다이어트, 욕심을 내려놓는 것. 

 

그래서 성숙한 믿음이란 내 안을 그리스도로 채우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쉽지 않습니다.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자세히 읽어보면 중요한 부분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울이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았다’라고 표현하지 

아니하고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문장이 능동형이 아니라 수동형입니다.

그것은 자신에게 속한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을 수 있는 능력이 

자신에게서부터 말미암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는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10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나의 나된 것은 다 하나님 은혜라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나를 지으신 이가 하나님, 나를 부르신 이가 하나님, 나를 보내신 분도 하나님, 나의 나된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라’라는 찬양입니다. 

이사야 43:1,2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그래서 신앙생활의 근본은 감사입니다. 감사란 값없이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보답하고 싶어하는 마음입니다. 

 

‘윌리엄 로우’라는 분은 ‘엄숙한 부르심’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기독교의 성자는 기도를 많이 했다든가, 금식을 많이 했다든가, 혹은 자선을 많이 베풀었다든가 한 사람이 아니라, 범사에 하나님께 감사한 사람이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신앙의 깊이를 잴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의 신앙의 깊이를 알 수 있는 기준은 ‘그 사람이 생활 속에서 얼마나 하나님께 감사하는가?’라는 것입니다. 

감사는 하나님의 능력이 내 삶에 임하게 하는 통로입니다. 

감사는 감사를 낳고, 원망은 원망을 낳습니다. 감사하느냐 안하느냐는 여러분의 자유입니다. 여러분의 선택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감사를 선택하면 계속해서 감사와 축복이 나오게 됩니다. 

 

누가복음 17장을 보면 문둥병자 10사람이 고침 받은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고 하셨습니다. 

아홉 사람은 이제 병을 고침 받은 마당에 더 이상 예수님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이 경우에, 예수님은 병을 고침받기 위한 수단에 불과할 뿐입니다. 철학자 니체는 기독교인들의 믿음을 “지팡이(clutch)에 불과하다.”고 비판했습니다. 즉 기독교인들은 믿음을 지팡이처럼 필요할 때만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지팡이를 의지하듯 예수님을 의지하다가 더 이상 필요가 없으면 지팡이를 버리듯 예수님을 등한시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을 때 즉시로 감사를 실천해야 합니다.

농부가 씨 뿌릴 때를 놓치면 농사를 망치듯이, 감사도 때를 놓치면 감사다운 감사를 드릴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비 나중에 오는 것 소용없슴.

먼저, 입술의 고백을 통해서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할 일이 있거든 즉시로 “하나님, 감사하나이다”라고 감사의 기도를 올리시기 바랍니다.  

감사하는 자에게 더 큰 은혜를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최초의 감사주일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 오로지 하나님을 잘 믿기 위해서 대서양을 건너 생명의 위협을 극복하고 미국으로 이주한 청교도들입니다. 

그들은 돈을 벌고 부자가 되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을 잘 믿기 위해서 모든 고난을 헤치고 거기까지 온 것입니다. 

그래서 최초의 청교도들은 돈을 모으면 첫 번째로 교회를 지었습니다. 

그 다음으로 학교를 지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지은 것이 자기 집이었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미국을 건설한 것입니다. 

집, 홈, 교회, 얼마나 중요한지 저는 경험적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 사역지에서 집에 가라고 하는데 돌아갈 집이 없어요.

교회, 장로님들하고 싸움이 나서 담임목사가 교인들을 몰고 다른 곳에 가서 예배를 드리는데 저한테는 연락을 안해줘서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됩니다.

몇이서 예배당에서 예배를 드리는데 목회자가 없는 예배. 

 

오늘 말씀을 보면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라고 합니다.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성경은 위인전이 아닙니다. 성경은 사람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금 내 안에서 일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이야기입니다. 

 

여러분의 주님은 여러분 속에 계신가요? 

아니면 문밖에 서 계신가요?  

 

생각해 보세요. 우리 인생사의 복잡한 문제 그리고 치명적인 실수들은 

대부분 중심을 잃고 흔들렸을 때 생기는 것입니다. 

자동차가 중심을 잃으면 큰 사고가 납니다. 

자전거도 중심을 잃으면 넘어집니다. 그러기에 우리도 중심을 잃고 흔들릴 때는 모든 행동을 멈추고 중심을 바로 잡아야 합니다. 

‘내가’ 중심이 되면 여지없이 흔들리고 ‘내가’ 중심이 되면 넘어집니다. 

우리 성도의 삶의 중심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이 내안에 들어와 거하시여 내 중심이 되어주시면 결코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러기 위해 내 속에서 진정한 정권교체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정권교체가 일어난 사람들에게 임하는 축복, 5장 22,23절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자아를 못박은 사람들에게 임하는 성령의 열매들, 자연히 그렇게 되어간다는 뜻.

 

사랑하는 새하늘 교회 교우 여러분!

저는 정말 사도 바울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고 싶습니다. 저는 정말 육체와 함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아 진정한 자유인이 되고 싶습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도 하늘나라를 맛보며 사는 복을 받고 싶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여러분들 모두가 이 땅에서 하늘나라를 맛보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고 세상이 주지 못하는 하늘 나라의 

복락을 이 땅에서도 누리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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