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진하는 신앙, 마태복음 14:22-33, 400장
사도행전 21-27장
지난 주 설교 중 하나님의 은헤를 기억하고 감사하는 자들에게 나타나는
세가지 자세는 겸손, 순종, 헌신인데 그 중 겸손에 대해서만 설명을 드리고 순종과 헌신에 대해서는 그냥 넘어간데 대하여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교회 홈 페이지에 들어가면 설교 본문이 나오는데 다들 읽어 보시면 해결이 될 줄로 압니다.
시편 127편 3절을 보면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라고 합니다.
성경은 자식은 하나님이 주신 기업. 태의 열매가 생겨 아이가 출생하는 것도
결국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라고.
아이의 주인은 하나님, 부모는 청지기. 잘 길어야 할 의무
성경적인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신앙 교육에 최우선
하나님이 이 가정에 세린이를 맡기신 특별한 뜻이 있고 사명.
하나님 아버지!
이 귀한 생명을 이 가정과 우리 교회에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바라옵기는 하나님이 주신 기업으로 명심하고 청지기적인 사명을 다하는
이 부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임마누엘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였습니다.
오늘은 마태복음 14장 본문으로 “전진하는 신앙”이라는 제목으로 같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기독교는 기적의 종교입니다. 성경을 보면 수많은 기적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많은 기적들을 성경에 기록한 이유는 그 기적들을 우리에게 알려주기 위함이고, 그리고 그 기적들이 지금도 여전히 계속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기적은 계속 일어납니다.
그러나 기적이 일어나는 방식은 다릅니다.
성경에서 일어났던 기적이 그대로 일어날 수 있지만 그것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서 각각 다르게 나타납니다. 초대교회에 일어났던 기적이 오늘 그대로 일어나기보다는 오늘의 상황에서 필요한 기적이 일어납니다.
오늘 본문에서 한밤중에 제자들이 갈릴리 바다에서 풍랑으로 인하여 고난당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오늘이라고 하는 삶의 현실에서 제자들이 바다에서 광풍을 맞았던 것처럼 우리도 광풍을 맞이합니다.
그 광풍 속에서 우리에게 과연 신앙 생활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우리는 입술로 머리로 예수님이 어떤 분이며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잘 압니다. 그러나 막상 그 삶의 정황이 나에게 주어지고 그러한 고난의 현실이
나에게 다가오면 우리의 믿음은 어떻습니까?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찾아오시는데 물 위로 걸어오셨습니다.
똑같은 상황 속에서, 12명의 제자들이, 한 주님을 바라보았지만 베드로
한 사람만이 바다 위를 걸어가는 기적의 주인공이 되었던 것입니다.
다른 열한 제자들은 구경꾼처럼 바라만 보았습니다.
신․구약 성경에 위대한 사람이 많이 있지만 물 위로 걸어본 사람은 예수님 외에 베드로 밖에 없습니다. 모세나 여호수아 같은 사람도 홍해나 요단강이 갈라진 다음에 걸었지 베드로처럼 물 위로 걷지는 못했습니다.
베드로는 성격이 과격하고 급하여 실수가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주님이 명령하시면 그 말씀과 명령에 생명을 걸 수
있는 모험적인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신앙은 즉시
순종하는 신앙입니다.
오라! 하는 주님의 말씀이 떨어지자 베드로는 발을 내딛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눈에는 산더미 같은 파도가 보였으나 그것을 무시해 버렸습니다.
그러자 주님처럼 바다 위를 지금 걸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주께서 말씀하시니 가겠다. 이것이 기적의 비밀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실패도 성공도 말씀에 근거해야 합니다.
말씀대로 일을 하는 것이 성공이요 말씀이 없이 하는 일이 실패입니다.
28절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베드로는 자신의 재주나 능력으로 물 위를 걸으려고 했던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 좋다는 한 청년이 은혜로운 집회를 마치고 기도원에서 내려오는데
여름철 폭우에 강물이 넘쳐서 건널 수 없게 되었습니다.
마음속에 너무나도 믿음이 충만했습니다. 베드로가 물 위로 걸었다면 나도 넘실대는 강물을 건널 수 있으리라. “주여 믿습니다!” 100번 외쳤습니다.
그리고 강물에 발을 풍덩 담그는 순간 물에 빠져서 죽게 되었습니다.
“사람 살려!” 옆에 있던 청년들이 밧줄을 던져서 겨우 살려 주었습니다.
은혜는 말씀에 근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오라 했기 때문에 베드로가 간 것이지, 자기 생각으로 간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오라 하지 않는 일을 하면 망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말씀에 근거하고 살아야 합니다.
자기의 신앙이 up-grade되기 위해서는 자기 전공을 뛰어 넘어야 합니다.
자기 지식을 뛰어 넘어야 합니다. 자기 경험을 뛰어 넘어야 합니다.
자기 전공에 묶이면, 자기 지식에 묶이면, 자기 경험에 묶이면 신앙은 전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지식이나 경험을 뛰어 넘어 ‘주님이시거든 물위로 걷게 하소서’라고 외쳤던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이 업그레이드 되는 비결입니다.
내 전공보다 하나님은 크십니다. 내 지식보다 하나님은 크십니다.
내 전공, 내 지식, 내 경험이 혹시 주님께 나아가는데 장애가 되고 있지는 않습니까? 만일 장애가 된다면 그것이 바벨탑이며 우상입니다.
진정한 지식, 진정한 경험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이 시간 여러분들이 접어두었던 여러분들의 기도제목이 있습니까?
이 시간 펼쳐서 구하시기를 바랍니다. 이 시간 도전하시기를 바랍니다.
이 시간 여러분의 질병을 주님 앞에 맡기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의 경제적인 어려움을 주님과 함께 해결해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내 지식을 뛰어 넘어, 내 경험을 뛰어 넘어 신앙을 업그레이드 시키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데 말씀을 붙들고 바다 위를 걸어가던 베드로가 물속에 빠져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 30절에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뚜벅뚜벅 주님만 보고 걸어갈 때는 바다 위를 걸어갈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거대한 파도가 휘청 지나가며 베드로와 예수님 사이를 갈라놓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이 파도에 가려서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때 아래를 내려다보니까 불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흉흉한 바다가 두려움으로 다가오게 된 것입니다.
운동장처럼 걸어가던 바다가 무서워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예수를 보던 그 눈이 문제의 파도를 보는 순간 문제 속에 빠집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에게 때로 믿음이 있다할지라도, 말씀 듣고 달려간다 할지라도, 물에 빠질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이 영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얼마나 오래 믿었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어디로 보고 있느냐? 방향성입니다. 아무리 오래 믿어도 지금 세상을 보고 있으면 믿음 없는 것이고 믿은지 얼마 되지 않아도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면 신앙이 좋은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들도 건강이 나빠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도 사업하다가 부도날 수 있습니다.
불행해 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천부여 의지할 곳 없어 주님 앞에 나옵니다. 항복하고 나오면 주께서 우리의 손을 다시 붙들어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지금 나하고 같이 다시 시작하자!
어떤 여행자가 사막에 들어섰다가 길을 잘못 들어서 크게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때 공자님께서 나타나셔서 하시는 말씀이 “인생은 언제나 바른 길로 가야 하는 법이요” 하고 지나갔습니다.
석가모니께서 나타나셔서 “인생은 고행이라오” 하고 지나갔습니다.
마호멧이 나타났습니다. 인샬라! “그게 하나님의 뜻이니 하나님 앞에 굴복하시오”라고 지나갔습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는 이 나그네의 손을 붙들고 “내가 이 길을 너와 함께 동행해 주마” 그래서 그 길을 예수님이 함께 손 붙들고 사막을 지나간다는 얘기입니다. 이게 기독교입니다.
예수님은 구경만 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멀찍이 바라만 보는 분이 아니십니다. 언제나 내 곁에서 나와 함께 계시는 분이십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내 곁을 떠나는 그 순간에도 예수님은 내 곁에서 나를 붙들어 지켜 주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재미있는 한 단어가 세 번씩이나 반복적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즉시” immediately 라는 말입니다.
1. 22절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2. 27절 “예수께서 즉시 일러 이르시되”
3. 31절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우리 예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두려움에 빠져 신음하고 있을 때에, 하나님의 자녀들이 모진 고난에 빠져있을 때에 그냥 구경만 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즉시” 찾아와 건져주시는 분이십니다. 바로 도와주시는 분이십니다. 즉시의 예수님이십니다.
여러분들 누구의 손을 붙들고 이 세상을 살아가려 하십니까?
사람의 손을 붙드는 사람들 그 손에 힘이 없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세상의 재물을 붙들고 살아가는 사람들, 명예를 붙들고 살아가는 사람들, 권력을 붙들고 살아가는 사람들, 언제나 정권말기가 되면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소리를 듣게 되지 않습니까?
그것을 의지하지 마십시오. 하나님만을 의지하십시오.
실패의 고난에 쓰라려 지금 아파하시는 분들이 계십니까? 세상 사람 아무도 나를 도와줄 수 없다고 괴로워하시는 분들이 계십니까? 여러분들이 의지하고 믿고 따랐던 모든 끈들이 단절되어지고 끊어진 고통 가운데 계신 분들이 계십니까? 이 시간 두 손을 그분에게 맡기시기를 바랍니다.
“즉시” 여러분의 손을 붙들어 주실 것입니다. Immediatley!
바로 이 시간 찾아와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기도한 다음이 아닙니다. 오늘밤 은혜 받은 다음이 아닙니다. 성경을 100번 읽은 다음이 아닙니다. Immediately! 여러분들이 고통 가운데 빠져서 손을 내미는 순간 즉시 주님께서는 여러분의 손을 붙들어 주실 것입니다.
주님여 이 손을 꼭 잡고 가소서 약하고 피곤한 이 몸을
폭풍우 흑암 속 헤치사 빛으로 손잡고 날 인도 하소서
인생이 힘들고 고난이 겹칠 때 주님여 날 도와 주소서
외치는 이 소리 귀 기울이시사 손잡고 날 인도 하소서
오늘 이 본문의 결론은 무엇입니까?
베드로 물에 빠진 실패를 통하여 예수가 누구인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당신은 내 인생의 시련의 풍랑을 잔잔케 하시는 분이십니다.
내 인생의 살고 죽는 문제, 생사화복을 주장하신 분이십니다.
내 인생에 이는 이 풍랑은 나를 망하게 하는데 있지 않습니다.
이 풍랑은 나를 주님께 더 가까이 가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인생에서 일어나는 작은 문제라도 소홀히 여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자연적인 현상이라고 여기고 무시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믿는 우리들에게 우연은 없습니다. 다 필연입니다. 그것을 섭리하고 합니다.
입으로만 주인님이 아닙니다. 삶속에서 진정으로 주인님으로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풍랑의 원인입니다.
33절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더라”
사랑하는 새하늘 교회 교우 여러분!
신앙의 현상유지를 단호히 거절해야 합니다.
자신의 신앙의 현주소에 만족하지 마십시오.
그러기 위해 신앙은 계속해서 UP GRADE 되어야 합니다.
신앙이 계속해서 UP GRADE 되기를 원하십니까? 이제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그 말씀에 생명을 걸고 신앙의 모험을 시작하십시오.
주님의 모습을 닮아갈 때까지 신앙의 성장이 계속 되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