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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나 잘하세요(요한복음 21:21-22)

   

 

      네게 무슨 상관이냐(너나 잘하세요), 요한복음 21:21-22, 364장.

 

누가복음 24장 요한복음 1-6장

 

어느 회사에 새로운 사원을 뽑기 위한 시험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입사시험에 났던 시험문제를 여러분에게 내 드릴 테니 한 번 답안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당신이 혼자서 거센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밤길에 차를 몰고 가고 있다고 생각하십시오. 가다가 작은 마을을 지날 때 보니 마침 버스 정류장에 세 사람이 초조하게 추위에 떨면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차를 세워놓고 보니 한 사람은 거의 죽어가는 불쌍한 할머니입니다.

또 한 사람은 자세히 보니 옛날 담임선생님이었습니다. 다른 한 사람은 묘령의 여성인데 자기가 평생 찾던 그런 이상형의 아름다운 여자였습니다. 

그러나 자기 차에는 세 사람 중 한 사람만 태워갈 수밖에 없는 사정입니다. 당신이라면 셋 중 누구를 태워주시겠습니까?’

이런 질문입니다. 여러분도 마음 속으로 생각 좀 해보았습니까? 수많은 경쟁자를 물리치고 합격된 한 사람의 회사원은 답을 이렇게 썼다고 합니다.

‘내 자동차의 키를 은인한테 주고 그 은인이 할머니를 모시고 가서 치료해 드리라고 부탁하겠습니다. 그리고 나는 내 이상형의 여자와 함께 버스를 기다리겠습니다.’ 이 사람은 지금 세 사람을 다 살렸습니다. 또한 자기 소원도 이루웠습니다. 이게 말하자면 win-win입니다. 

너도 좋고 나도 좋고 이런 사람은 회사에 큰 도움이 되는 사람인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의 인생은 선택의 연속입니다. 우리가 처한 환경이 어떠하든지 간에 우리에게는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는 법입니다. 

오늘 여러분들도 교회에 어떤 옷을 입고 갈까, 교회에 가기 전에 밥은 먹고 갈까 그냥 갈까, 어떤 일에도 선택이라는 것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선택도 때를 놓치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할 수 있을 때에 하지 아니하면 하고자 할 때에 할 수 없게 됩니다. 

할 수 있을 때에 해야 됩니다. 아무 때나 노력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얼만 전에 어느 할아버지가 손담비의 무슨 춤을 추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추할 뿐입니다. 안되는 것은 안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사단과 싸우는 일도 이길 수 있을 때에 이겨야 합니다. 간단하게 이길 수 있는 것도 한번 때를 놓치고 나면 다음에는 잘 되지를 않습니다. 

흔히들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라’ 합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뭐 운동이 좋다 해도 그것은 건강한 사람의 이야기지, 병든 사람에게 운동하라고 하면 그 사람 운동하다 죽습니다. 될 일이 아닙니다. 

약도 그렇지요. 다 소용없는 것입니다. 할 수 있을 때에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할 수 없을 때가 된 다음에는 이제 하고자 해도 안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3:13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오늘이 중요합니다. 내일로 미루지 마십시오.

마귀가 훈련소에서 사람들 죄 짓게 하는 법을 가르치는데 그것 중의 으뜸, Top Class는 내가 꼭 할 거지만 조금만 뒤에 하겠다. 이렇게 유혹을 하라고 합니다. 그래서 목회를 하면서 종종 이런 사람을 봅니다. 

오늘까지는 이렇게 지내고 내일부터는 바로 하겠다고, 오늘까지 이렇게 

한 잔 하고 내일부터 정결하게 살겠다고, 쓸데없는 소리입니다. 

지금 바로 이 시간 여기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한 치도 뒤로 물러서지 마십시오. 아무 변명도 하지 마시고 여기서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입니다.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매일이라는 말을 강조합니다. 

반복적으로 계속 두드리며 다시 한 번 점검하여야 됩니다. 

내가 지금 어디에 와 있나, 내가 바른 신앙을 하고 있는가, 

나와 하나님의 관계가 바른 관계에 있는가, 물어야 할 것이라는 겁니다. 

마가복음 9장에 보면 변화산에서 예수님이 기도하셨는데 그 때 제자들은 산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들에게 한 아버지가 귀신 들린 어린 아이를 데리고 왔는데 저들이 쫓아내지를 못합니다. 

아주 부끄러운 형편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 때 예수님께서 내려오셔서 쉽게 귀신을 내쫓아 주셨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의 제자들이 조용히 여쭙니다.

마가복음 9:28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이 말뜻은 지난 번에는 내쫓았는데 왜 오늘은 내쫓지 못했습니까?

이에 대하여 예수께서 29절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고 하십니다. 

며칠 전에는 기도 때문에 되었고 오늘은 기도가 없었기 때문에 못한 것이다.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과거에 가졌던 신앙을 가지고 오늘을 이기지 못합니다. 어제 기도했다고 오늘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매일매일 바른 자세로 기도하여야 합니다. 

운동 선수가 작년에 연습한 걸로 지금 우승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도했음에도 불구하고 실망스러운 결과가 나올 때가 있습니다.

 

나는 형통을 주문했는데 때로는 고난이라는 메뉴가 배달되어 옵니다. 

나는 풍요로움을 주문했는데 빈곤이 배달되어 옵니다. 

나는 성공을 주문했는데 실패가 배달됩니다. 

여러분, 그럴지라도 그것이 결코 우리의 인생을 망가뜨리는 것이 아님을 기억하십시다. 내가 주문한 것과 다른 것이 배달되었다면, 내 인생의 문이 닫힌 것이 아니라 다른 쪽 문이 열렸으니 다른 쪽을 바라보라는 주님의 지시임을 기억하십시다. 주님은 결코 실수하지 않으십니다. 이쪽 문이 닫히고 다른 쪽 문이 열렸다면 우리에게 그것이 훨씬 더 좋은 길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라는 사람을 보게 됩니다. 

그는 예수님의 제자 중에서도 수제자입니다마는 부끄럽게도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하는 실수를 범합니다. 

그의 고민에 대하여 성경은 언급하고 있지 않습니다마는 내 생각에는 그의 가장 큰 고민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는 사실일 겁니다. 

만일 예수님이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그런대로 베드로는 어떻게 좀 위로를 받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부활하셨으니 ‘이크 큰 일 났다. 어떻게 보나’ 이렇게 자기 자신을 자책하고 책망하고 괴로워 합니다.  

그래서 그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지만 다시 예수님의 제자가 되겠다고 나설 수는 없었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렇게 믿었던 예수님이 허무하게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후에 베드로는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간다’ 하고 옛 고향으로, 옛 직업으로 돌아갔더란 얘기 아닙니까? 그때 다른 제자들도 줄레줄레 따라갑니다. 그래서 2절을 보니 일곱 제자가 따라 갑니다.

가서 물고기를 잡는데 이게 한 삼 년 쉬었다 하니까 그런지, 물고기도 알아봤는지 어쨌든 못 잡았습니다. 

직장을 자주 바꾸는 사람치고 잘 되는 사람이 없습니다. 

한 마리도 못 잡고 피곤해 있는 바로 그 날 새벽에 예수님께서 나타나시고 베드로를 부르십니다. 아주 자비로운 모습입니다. 

이 본문을 읽으면서 내가 예수님이었다면 하고 좀 생각해 봅니다.

한 마디쯤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 이 녀석아 너 한 번쯤 

모른다고 하면 되지 굳이 맹세하고 나를 저주까지 했느냐?’ 한 번 물어 보았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의 과거에 대해 전혀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책망하지도 비판하지도 않으십니다.

히브리서 8:12 “내가 그들의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그들의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예수님은 그 엄청난 실수를 한 베드로를 놓고 오직 한 마디, 차원 높게 하시는 말씀은 이것입니다. “아가파스 메?” 네가 지금 나를 사랑하느냐, 

나는 네 과거를 묻지 않는다, 네 잘못을 탓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지금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러면 내 양을 먹이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리차드 바크가 쓴 ‘갈매기의 꿈’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생의 끝에 가서 삶을 정리하고 돌아볼 때 가장 가치 있는 질문은 오직 

하나, 나는 누구를 얼마나 사랑했는가? 그것뿐이다.’

여러분,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에 우리 마음에 물어야 할 가장 소중한 판단 기준이 이것입니다. 

‘나는 누구를 얼마나 사랑했는가?’ 거기서 내 인생이 평가됩니다.

오늘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물으십니다. ‘네 과거를 묻는 것이 아니다. 탓하는 것도 아니다. 지금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는 오직 ‘내가 주를 사랑합니다’ 오직 그것 하나만 생각하고 다시 출발합니다.

인생의 기쁨을 잃어 버리셨습니까? 힘이 없으십니까? 목표가 없어 지셨습니까? 내가 주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내가 주를 사랑합니다’라는 고백으로 이 인생을 다시 한번 힘차게 

출발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다시 출발하는 이 귀한 시간에 베드로는 옆에 있는 사도 요한을 생각하고 하는 질문이 ‘이 사람은 어떻게 될까요?’라고 질문을 합니다.

묘한 질문 아닙니까? 사람에게 치사하고 더러운 것이 비교의식, 즉 질투입니다. 이 비교의식이라는 마음은 참으로 묘한 것이고 어디에나 있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과 대화하는 이 순간에도 작용을 합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나 잘하세요’입니다.

깊이 생각해야 할 말씀입니다. 우리는 주님만 생각하면 되는데, 주님과 나와의 관계이면 되는데 왜 다른 사람을 생각합니까?

‘왜 저 사람이 잘되는 거죠?, 왜 저 죄인이 잘되는 거죠?, 왜 나쁜 사람이 출세하는 거죠?’ 다른 사람하고 비교할 것 없습니다. 다 하나님께 맡기고 비교하지 말 것입니다. 꼭 비교하는데서 문제가 일어납니다. 

 

한 여성잡지에서 이런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남편들이 가장 싫어하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그런데 그 설문조사에서 뜻밖의 결과로 1위가 “이웃집 남편”이었다고 합니다. 

수많은 남편들은 왜 “이웃집 남편”이 가장 밉다고 대답을 했을까?

기자가 그 이유를 물어보자 30대 중반의 남성이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아내의 말로 미루어보면 옆집 남편은 회사에서는 능력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고, 친구들 사이에서는 인간성도 최고이고, 아내한테는 값비싼 옷도 턱턱 잘 사준답니다. 그뿐입니까? 집안일도 아내가 잔소리하기 전에 척척해내고, 게다가 낭만적인 남자라니... 그게 어디 사람입니까?”

아내는 늘 남편에게 “이웃집 남자를 좀 보라”며 잔소리를 했던 것이고, 그래서 남편들이 괜히 ‘죄 없는 이웃집 남편’을 미워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건 비단 남편들만의 현상이 아닙니다. 아이는 아이대로 옆집 아이를 미워하고, 자기 반 1등을 미워하고, 사촌형, 사촌언니를 미워합니다. 비교당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베드로도 부활하신 예수께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하시면 

‘아멘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하면 되는데 이 시간에 ‘이 사람은 어떻게 될까요?’하다니 참 치졸하고 답답한 질문입니다.  

왜 그쪽으로 마음을 쓴단 말입니까? 예수님이 잘라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다시 올 때까지 머물게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그건 나와의 관계이지 네 문제가 아니다라고 잘라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진정 신경 써야 할 것은 하나님과 나와의 직선적 관계입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누구입니까? 이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 너무 모를 때가 많습니다.  

내가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바가 무엇인지, 

또 내가 할 일이 무엇인지, 그걸 똑바로 모릅니다. 

여러분들, 우리는 내게 맡겨주신 것 그것만 알면 되는 것입니다. 

또 그 일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과 절대 비교하지 말 것입니다. 

사람들의 많은 공통된 고민이 어떻게 하면 자녀 교육을 잘 할 수 있겠습니까? 사실 그 대답은 당신 할 일만 잘 하면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아버지가 해야 할 일, 어머니는 어머니가 해야 할 일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하나님께 맡기세요.

부부간에도 서로 이런 사람이 되어 달라, 저런 사람이 되어 달라 할 것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과 그와의 관계입니다. 

질투할 것도 없고 비판할 것도 없는 것입니다. 그게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인생의 문제의 본질은 바로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인 것입니다. 

내가 문제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너하고 무슨 상관이냐?’ 얼마나 강한 말씀입니까?

내가 다시 올 때까지 머무르게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왜 요한하고 비교하느냐, 너는 나를 따르라, 오직 너는 나를 따르라. 

 

사랑하는 새하늘 교회 교우 여러분!

이 아침 주님의 그 강한 음성을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너나 잘하세요!

남과 비교하는 것 이제 그만합시다.

우리 인생에서 가장 큰 문제는 내가 얼마나 주님을 사랑하느냐 그것입니다.  

이 아침에도 주님이 우리들 각자에게 질문하십니다.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다 같이 기도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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