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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라(Aura)라는 말이 있습니다.
독일의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이 처음으로 썼는데 예술작품의 원본에서만 느낄 수 있는 고고함을 “아우라”라고 합니다. 모조품이나 복사품에서는 도무지 느낄 수 없는, 진품에서만 느낄 수 있는 고고함을 뜻합니다.
장충동에 가면 족발 집이 많이 있는데 모두 원조라 합니다.
그러나 진짜 원조집에서만 느껴지는 쫀득쫀득한 맛, 다른 집에서는 흉내낼 수 없는 맛이 있습니다. 그게 아우라라고 하는 것입니다.
통영에 가면 충무김밥, 광장 시장의 빈대떡, 순이네.
교회에도 아우라가 있습니다. 진품의 교회, 명품 교회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는 가운데 완전한 교회는 없지만 우리의 예배 가운데 아우라를 회복하기 위해서 우리 모두가 힘써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 땅에 존재했던 가장 이상적인 교회의 모습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바로 첫 번째 지상교회 예루살렘교회입니다.
그 모습은 초대교회의 실제적인 묘사이며 동시에 오고 오는 모든 교회가
본받아야 할 모습입니다. 그러나 예루살렘 교회가 전혀 문제가 없는 완전한 교회는 아니었습니다. 과부들의 구제 문제로 헬라파, 히브리파로 나뉘어
자칫하면 갈라질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화하고 양보하며.
갈등을 잘 극복하는 교회가 이상적인 교회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교회 또한 그 이상을 향해 가고 있는 교회가 되고 싶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함께 건강한 교회를 만들어 가길 원합니다.
인생의 방황은 하나님을 만나면 끝이 나고,
신앙의 방황은 건강한 교회를 만나면 끝이 난다.
초대교회로 돌아가자! 수많은 교회들의 구호입니다.
어쩌면 교회의 영원한 목표일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전 세계 모든 교회들의 모범이 되는 예루살렘 초대 교회의 특징에 대해서 읽었습니다. 본문 말씀에 요약된 예루살렘 초대 교회는 한 마디로 말해서 ‘은혜 받아 부흥하는 교회’였습니다.
초대교회는 ‘이기주의’라는 굳은 껍질에서 벗어나 자기 가진 것을 이웃과 함께 나누어 온 세상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았고, 그 결과로 저절로 부흥이 된 교회였습니다. 살아 있는 생명체는 성장하고 발전해야 합니다.
자꾸만 쇠퇴하고 죽어 가는 것은 무엇인가 잘못되어 있음이 분명합니다.
우리 교회도 건강하고 생명력이 충만하여 자라나야 하고, 교인수도 늘어나야 합니다. 그런데 양적 성장과 질적 성숙은 함께 가야 합니다.
교회는 부흥해야 합니다. 며칠 전에 잘 아는 후배 변호사하고 점심을 같이 한 적이 있었습니다. 교회는 어떠시냐? 유지는 되지만 부흥이 안되서 고민.
형님 너무 욕심 내시는 것 아니예요?
신앙은 전진 아니면 후퇴, 교회도 부흥 아니면 퇴보.
설명하면서 이제부터 부흥을 향해서 달려가야 하겠다.
요즈음 들어서 제 가슴을 치는, 은혜를 주는 말씀이 47절 말씀입니다.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그 부흥의 비결을 오늘 사도행전 본문에서 찾아보고자 합니다.
초대교회를 통해 주시는 교회 상은 한마디로 ‘가고 싶은 교회’였습니다.
이 교회의 성도들은 늘 교회가 가고 싶었습니다.
도대체 이처럼 가고 싶은 교회로 만들었던 힘의 동력이 무엇이었을까요?
42절에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라고 말합니다. 은혜로운 말씀이 있었습니다.
그 말씀을 듣기 위해 성도들은 교회로 달려갔습니다.
당시 그들의 육체는 말할 수 없이 힘들었습니다. 고난과 핍박이 그치지 않았지만 그들의 영혼은 날마다 새로웠습니다. 영을 살리고, 살찌게 하는 은혜로운 말씀이 있었기에 그들은 교회로 달려갔습니다.
은혜로운 말씀이 있는 교회는 우리가 지치고 힘들어서 주저앉고, 한 걸음도 움직이지 못할 때 생명의 말씀으로 인하여 새로운 힘을 얻게 됩니다.
이사야 40: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
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그런데 말씀이 은혜롭기 위해서는 우리의 마음이 ‘옥토’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씨뿌리는 비유’를 통해 이것을 잘 알려주셨습니다.
말씀이 우리의 마음에 뿌려지는데 어떤 밭에서 말씀의 씨앗이 열매를 맺는가를 알려주셨습니다. 씨를 뿌리러 나가는 사람이 씨를 뿌릴 때 그 밭이 4가지로 나타난다고 하셨습니다. 길가와 돌짝, 가시덤불과 그리고 옥토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밭입니다. 그래서 늘 옥토와 같은 마음의 밭을 일구어야 합니다. 우리가 모두 말씀 앞에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처럼 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그 교회 성도들을 칭찬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13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
당시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바울이 말씀을 전할 때, 그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습니다. 바로 그럴 때 그 말씀이 그들 속에서 놀라운 힘과 역사로 솟구쳤던 것입니다.
설교는 강의가 아닙니다. 연설도 아닙니다. 사람의 귀를 즐겁게 하기 위한 것도 아닙니다. 오늘 나에게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나를 깨우고, 바로 세우기 위해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케리그마’ 라고 부릅니다. 이 말은 전쟁에서 나팔수가 나팔을 부는 것에서 나왔습니다. 돌격 앞으로 할 때 힘을 내기 위하여.
말씀을 건성으로 듣지 않아야 합니다. 말씀은 다른 사람이 아닌 나에게 주신 말씀으로 받아야 합니다. 바로 이것이 옥토와 같은 마음입니다.
그리고 42절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어떤 일에 전심전력을 다하여 지속적으로 기도하였음을 뜻합니다.
‘노박 조코비치’ 그는 우승할 수 있는 좋은 자질을 가졌는데도 항상 4위 정도의 성적만을 유지하였습니다. 그의 문제는 체력이었습니다. 끝까지 갈 수 있는 힘. 우리 신앙인들의 문제도 그것입니다.
성령충만함을 받으신 분이라도 기도에 힘쓰지 않으면 감격과 능력은 오래 지속되지 못합니다. 성령 충만을 체험했던 분들 중에 많은 분들이 지속적인 기도 생활을 하지 않음으로 인해 충만했던 믿음을 잃어버리고 다시 메마른 삶을 살아가는 것을 봅니다.
기도의 불이 꺼지면 모든 것이 다 꺼져 버립니다.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교회와 성도가 범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신앙은 기도와 정비례합니다.
어떠한 경우라도 기도하기를 쉬지 말고 계속적으로 기도하는 성령 충만한 성도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그리고 초대교회에는 예배의 중요한 요소들이 다 있었습니다.
42절에 말씀과 기도, 46절에 모이기를 힘썼다, 47절에 하나님을 찬미했다는 것을 보면, 이들의 진정한 기쁨은 바로 예배에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가고 싶은 교회는 어떤 교회인가, 바로 예배가 살아 있는 교회입니다.
예배에 뭉클한 감동이 있는 교회입니다. 예배를 드리면서 새로운 힘을 얻고, 내 마음에 기쁨이 넘치는 교회, 바로 그런 교회가 가고 싶은 교회라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도 바로 그런 예배의 감동이 흘러나와야 합니다.
이런 예배를 위해 물론 인도하는 저의 역할이 중요한 것을 압니다.
그러나 감동적인 예배는 결코 저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여러분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감동의 예배를 만드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말씀을 보면 예배와 함께 ‘교제’를 강조합니다.
42절에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46절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며
이 모두는 교제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여기 이 교제를 헬라어로 ‘코이노니아’라고 말합니다.
교회에 정말 필요한 것은 코이노니아, 교제입니다.
사람들이 교회에 가기 싫은 것은 하나님보다 사람 때문인 경우가 많은 것을 봅니다. 사람과의 관계가 깨지고, 미워하고, 싸우는 순간부터 교회는 힘을 잃게 됩니다. 그래서 풍성한 교제는 우리의 사명입니다.
바로 거기에서 사람들은 세상과 다른 면을 보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교회를 오기 싫어하는 이유들을 종합해 보면 한마디로 ‘교회와 세상이 다르지 않더라. 오히려 더하더라’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도 세상처럼 지방색이 있고, 학력을 내세우고, 신분 따라 대우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믿고 싶고, 예수는 참 좋으나 교회는 가기 싫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새하늘 청담 교회 교우 여러분!
제가 꿈꾸는 교회는 가고 싶은 교회입니다.
내가 우선 가고 싶고, 다른 사람들을 끌고 오고 싶은 교회입니다.
바로 초대교회와 같은 교회입니다. 당시 성도들이 만나면 떠나지 않을 정도로 교회에 가고 싶었던 이유는 은혜로운 말씀이 있었고, 뜨거운 기도가 있었고 코이노니아, 풍성한 교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말씀과 기도와 성도간의 교제가 가득한 감동의 예배로
많은 사람들을 빛의 세계로 인도하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Date: 2016/06/26 12:2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