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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들은 인격을 평가하는 바로미터로 키스, 코스, 카스로 요약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키스라는 것은 돈주머니를 말하고, 코스라는 것은 술잔을 의미하고, 카스라는 것은 분노를 말하는 것입니다.
먼저 키스를 봅시다. 우선 돈의 노예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돈이 생의 목적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돈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합니다.
돈을 어떻게 버느냐, 어떻게 간직하느냐, 어떻게 쓰느냐 이 돈과 나와의 관계에서 내 인격이 평가되는 것입니다.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분, 누구와 돈거래해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신앙적 관계가 바로 되면 경제관이 바로 서게 되는 법입니다.
그런가하면 또 술버릇이 문제입니다. 술을 마시되 취하지 않도록 마시고 특별히 실수하지 말아야 합니다. 술 취하고 많은 실수를 하고 후회하고 뉘우치고, 그리고 또 마시고... 이런 사람 불쌍한 사람입니다.
연예인 스캔들 대부분 술 마시고, 박유천, 술 마시지 않았으면...
잠언 26:11 “개가 그 토한 것을 도로 먹는 것같이 미련한 자는 그 미련한 것을 거듭 행하느니라”
제가 중학교 때 제 친구네 집에 가보면 그 친구네 집 대문이 가끔 부서져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내 친구 왈. 아버지가 몇 달에 한 번씩 술드시고 와서 때려 부신다는 겁니다. 평소에는 그렇지 않은데.
그 문을 몇 번이나 새 것으로 갈았는지 모른다고 하면서.
그래서 그 친구는 나는 절대로 술 안 마실거야 하더니 몇 해 전에 보니 술을 마시고 집에 가서 똑같이 한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부전자전, 이것이 ‘가계에 흐르는 저주’
술 마시는 거 보면 술과의 관계로 그 사람을 알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카스, 분노 요즈음 현대인들의 화두입니다.
세상을 살다보면 화나는 일이 있습니다. 불같이 화가 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이 끓어 오를 때 그걸 어떻게 다스리느냐, 어떻게 마인드 컨트롤 하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인격이 드러납니다.
화났다하면 정신 뒤집히는 사람 있습니다. 아무 것도 가리지 못합니다.
이슬람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이유가 어쨌든간에 그 분한 마음을 다스리지 못해서 그냥 자살폭탄을. 이게 무슨 짓입니까?
여기까지 가는 이유가 분노에 노예가 된 탓입니다.
로마서 12:19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이주현 자매님 간증, 6월 11일 토요새벽예배, 아래층 사람이 담배를 펴서.
만나서 다투지 말고 기도하라고. 그 사람이 사과.
오늘 본문을 보면 상상할 수 없는,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이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하나님 앞에 우상 숭배의 죄를 범해서 하나님으로부터 징계를 받아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 가게 되었습니다.
그 화려하고 거룩했던 예루살렘 성은 다 무너지고 쓸 만한 사람들 수만 명은 바벨론으로 포로 되어 잡혀 갔습니다. 포로 되어가서 낙담하고, 절망하고, 모든 소망이 다 사라졌을 때 예레미야를 통해 전해준 메시지가 오늘의 말씀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 내용이 황당합니다. 놀랍습니다.
4-7절을 보면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여기서 결혼하고 여기서 생업에 종사하고 자식을 낳으면서 아주 살아라 하십니다. 이것만이 아닙니다. 더 놀라운 말씀이 7절에 있습니다.
‘너희는 내가 사로잡혀 가게 한 그 성읍의 평안을 구하고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라 이는 그 성읍의 평안함으로 너희도 평안할 것임이라’
다른 말로 하면 바벨론을 위해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바벨론에 포로되어 간 백성이 모진 고생을 하고 있는데 ‘너희는 바벨론을 위해서 기도하라. 그리고 평안한 가운데서 현실에 충실하며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날을 기다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그런데 말이 됩니다.
토저라는 신학자가 말합니다. ‘현대인이 하나님을 가까이 하지 못하는 것은 자기집착에 매이기 때문이다. 스스로의 생각을 버리고야 하나님의 뜻을 이해할 수 있다’고 합니다.
바벨론에 포로되어간 이 사람들이 자기 생각, 자기 감정에 매인다면 분노에 차서 자살 폭탄이나 계획하고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바벨론에 포로되어간 이 사람들에게 ‘여기에 당분간 머무를 생각을 하라. 그리고 이 성을 위하여 기도하라’ 하십니다. 도대체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자기 생각을 완전히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했습니다.
더 나아가 성경은 이 사건이 재앙이 아니라 평안이라고 합니다.
신앙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기독교인은 누구입니까?
시련을 축복으로, 재앙을 평안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입니다.
내게 주어진 불행이 결코 저주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있지만 이것은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그걸 믿는 것이 그리스도인입니다.
교우 여러분!
현실이 불만스럽습니까? 하나님이 왜 나한테 이런 것을 허락하시는지 모르시겠습니까? 잊지 마십시오. 사람은 실수를 해도 하나님은 실수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민수기 23:19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저와 여러분들을 버려둔 채로 그냥 두지 않으십니다.
잠시 잠깐 내 생각에 집착한 나머지 주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어려운 사건에 부딪힐 때면 조용하게 우리 인간의 생각, 자기 집착에서 떠나 그 높은 의미를 이해해야 합니다.
큰 사건이요 모순적인 사건이요 부조리한 사건일지언정 그 속에 하나님의 뜻이 있고 하나님의 경륜이 있고, 하나님의 지혜가 있고, 하나님의 커리큘럼이 있는 것입니다.
또한 본문에서 말씀합니다.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현실보다 강한 것은 소망입니다. 그래서 인생은 그가 지금 어떤 모습으로 사느냐로 평가할 것이 아니라 마음 속에 있는 소원에 따라서 평가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것입니다. 형통할 때에는 소망이 세속적입니다.
잘 살고 평안하고 행복하면 소원 자체도 아주 이기적입니다. 그게 인간입니다. 그러나 환난을 당하고 어려움을 당하고 고난을 당하게 되면 소원이 승화가 됩니다. 내가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가? 인생이 무엇인가? 묻게 됩니다. 그래서 고통의 날에 소망이 순수해 집니다. 하나님을 향한 종말론적 소원으로 소원이 정화됩니다. 병 걸리고 나면 생각이 달라집니다. 아주 임종이 가까워보면 더 달라집니다. simple해 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각이 바뀌게 됩니다.
제가 신학교 다닐 때에 CCC 간사를 한 분 알았습니다.
그분의 기도제목이 무엇이냐 하면 믿음 없는 부모님과 형제들이 예수 믿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분의 몸에 뜻하지 않은 이상이 왔습니다. 암.
1차 수술을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병은 더욱 악화되었고, 2차 수술도 실패했습니다. 결국, 얼마나 살이 빠졌는지 뼈만 남았습니다. 왜 하나님은 1차 수술에 실패하게 하신 것일까요? 왜 하나님은 2차 수술도 실패하게 하신 것일까요? 3차 수술이 마쳤을 때 그 자매는 자신에게 행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형제와 부모가 진실로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현실이 마음에 안드십니까? 조용히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저주가 아니요 소망이라고 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에 왔을 때 홍해가 가로막혔다고 아우성입니다.
그 때 주어진 유명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Be still and know that I am God”
가만히 서서 내가 하나님됨을 알지어다. cool down, calm down, 제발 들끓지 말고 쉽게 절망하지 마라, 조용하여 내가 하는 것을 보라, 말씀하십니다.
때때로 우리 앞에 원치 않는 사건들이 있습니다. 변론을 벌이지 맙시다. ‘하나님 어찌하여 이런 일이 있습니까? 원망하지 맙시다. 하나님께는 뜻이 있으니까, 하나님께는 계획이 있으니까, 그에게는 지혜가 있으니까,
우리는 조용히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에 부딪히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초연하고
초월한 역사의식을 가지고 신앙적으로 대처해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우리는 모든 생각을 잠깐 멈추고 이 현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 현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무엇을 이루고자 하시는지 조용히 들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이것이 재앙이 아니요 평안이라는 세미한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 들려진 음성대로 풍랑이는 이 세상을 힘차게 항해해 나가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Date: 2016/06/19 12:07: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