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는 33년의 생애를 사셨습니다. 사생애, 공생애
30년 동안은 요셉의 아들로 목수의 일을 도우며 생활하셨습니다.
그 후에는 공생애라고 부르는 마지막 3년을 사시게 되는데, 그 때는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신 이후로 백성들의 병을 치료하시고, 가르치시고, 천국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마태복음 9:35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이 공생애 3년 중 가장 중요한 기간은 마지막 한 주간입니다.
오늘은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마치시고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종 려주일입니다. 그리고 오늘부터 고난주간이 시작됩니다.
고난주간은 종려주일에 시작하여 그 다음 주일인 부활주일에 끝이 납니다.
주일에 입성하시고, 월요일에 성전정화를 하시고, 화요일에는 감람산에서 여 러 가지 말씀을 하셨지만 수요일의 행적은 성경에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목요일에는 최후의 만찬과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시다 가룟 유다의 배반으로 잡히셨으며, 금요일에는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고, 토요일, 안식일에 무덤 속에 계시다가, 주일에 부활하셨습니다.
주님의 부활 이후 유대인들은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키는 반면,
우리 기독교인들은 부활하신 날인 일요일을 주일로 지키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예수께서 돌아가신 금요일은 성 금요일이라 하여 금식을 함으로써
그 고난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가능하신 분들은 모두 금식함으로써 그 고난에 동참하시기 바랍니다.
금식을 적절히 하면 몸이 건강해지고 영혼이 경건해지는 유익이 있습니다.
금식할 때 물만 마셔야 합니다. 다른 것을 마시면 더 힘이 듭니다.
마찬가지로 신앙도 순수해야 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이 힘들어지는 것은 우리의 신앙에 인본주의가 들어오기 시작하면서부터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성에 입성하실 때에 관한 기사입니다. 복음서를 읽어보면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를 피하여 다른 곳으로 다니시곤 하였으나 이 날은 많은 사람이 모이는 유월절에 나귀를 타시고 입성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고난주간이 시작되는 오늘, 종려주일에 예루살렘 성으로 승리의 입성(Triumphal Entry)을 하셨습니다.
승리의 입성이라고는 하지만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오직 하나,
죽기 위해서였습니다. divine appointment.
예수님이 죽으려고 이 땅에 오신 것처럼 여러분들도 교회에 다른 목적을 가지고 오시면 안 되고 죽으려고 오셔야 합니다. 죽어야 삽니다.
죽어야 별다른 세상, 즉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으로부터 2천 년 전 예수께서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오실 때 수천 명의 군중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호산나를 부르면서 예수님을 환영하였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그 예루살렘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종려주일을 맞이하여 주님을 이 시간 우리들의 마음에 영접하는 시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마태복음 10:40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은 누구를 영접하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인격이 달라집니다.
누구와 함께 어울리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인품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돈을 영접하면 돈의 종이 됩니다. 권력, 학벌.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라고 하였습니다.
자녀됨이 모든 것을 이깁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들 모두가 종려주일을 맞이하여
주님을 내 마음의 중심에 뜨겁게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게 되기시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감람산 동편의 벳바게라는 지역에서 예루살렘 성까지는 약 3km 였는데,
예수께서는 새끼 나귀를 타고 들어가셨습니다.
그 당시에 전쟁에서 승리한 로마의 개선장군이 백마를 타고 늠름한 모습으 로 행진해 들어 올 때 행진하는 길에는 붉은 카펫이 깔렸고 또 그 주변에 아름다운 꽃들과 여러 깃발들로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그에 비하면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너무도 초라한 행렬이었습니다.
이때 많은 군중이 예수님 가시는 길 앞에 겉옷을 깔고 종려나무 잎사귀를 흔들면서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외쳤습니다.
‘호산나’의 뜻은 ‘우리를 구원하소서’입니다.
전쟁 영웅들의 멋진 개선 행진을 할 때에는 멋있는 말을 타고 들어왔지만, 이 땅에 참 평화를 가져오시는 왕은 겸손하게 나귀 새끼를 타셨습니다.
그런데 이 일은 우연히 된 것이 아니고 스가랴 선지자의 예언의 성취였습니다. 스가랴 9:9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
지금까지 저는 오늘 본문의 사건을 대할 때 겸손하게 나귀 새끼를 타신 예수님의 모습에 대해서 관심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에 있어서 나귀를 빌려준 나귀의 주인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갖지 않고 있습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들과 지금까지 별 관심이 없었던 나귀의 주인에 대하여 같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나귀를 잠시 빌리자고 부탁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당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런데 말씀을 듣고 나귀 새끼의 주인은 어디에 쓰실 것인지, 어떻게 쓰실 것인지, 왜 하필이면 자기의 나귀 새끼여야 하는지 그는 전혀 묻지를 않았습니다. 그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성경에 전혀 언급이 없기 때문에 알 수 없지만 예수님의 그 말씀에 대한 그의 반응은 참으로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그는 ‘주가 쓰시겠다’는 말씀에 순종하여 자신의 것을 기꺼이 드렸습니다.
오늘 ‘주가 쓰시겠다!’는 이 말씀이 우리들의 심령에 부딪쳐야 합니다.
나는 돈이 없으니까, 시간, 손, 발, 기술, 전도 - 천사도 부러워하는 것.
우리의 작고 보잘것없는 것이라도 하나님께 드리면 훌륭한 하나님의 것이 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드리는 사람입니다. 미련한 사람은 드리지 못하고 주저주저하다가 기회를 놓쳐 버리든지 빼앗기는 사람입니다.
잠언 19:17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
평화의 왕, 영광의 왕으로 등극하시는 예수님께 나귀 새끼의 주인은 기꺼이 자신의 소유를 드렸습니다. “주가 쓰시겠다!”는 말씀 앞에서 자신의 계획도 접었습니다. 자신의 욕심도 접었습니다. 그리고 선뜻 내어놓았습니다. 예수님을 주로 믿고 고백하는 사람의 모습이 그래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도 우리의 것이 아니라 모두 다 주님의 것입니다.
다만 이 땅에서 사는 동안 잠시 빌려 쓰다가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거꾸로 생각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린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주인인 것처럼 착각하고 사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입니다.
“주님의 것입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쓰십시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삶 가운데서 언제나 고백되어야 할 신앙고백입니다.
주님은 바로 이와 같은 신앙을 우리에게 요구하고 계신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서커스를 보게 되면 그 중에 한두 번쯤은 꼭 빠지지 않고 나오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동물들이 불이 붙어있는 둥근 고리 속을 뛰어넘는 모습입니다.
대개의 동물은 원래 불을 싫어합니다. 털이 긴 동물일수록 거의 본능적으로 불을 두려워하고 꺼려합니다. 그렇다면 이 동물이 그 본능을 거슬러 가면서 불이 붙을 고리 속으로 뛰어들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요?
그 힘은 뛰어든 후에 이루어지는 보상이나 혹은 뛰어들지 않을 수 없을 만큼 내모는 가혹한 훈련이 아니라 바로 동물과 조련사 사이에 있는 믿음이라고 합니다. 동물에게는 여태껏 조련사가 훈련시키는 대로 해서 목숨이 위험했거나 손해를 당한 적이 없었다는 믿음, 나에게 위험한 일은 시키지 않는다는 그 믿음이 있기 때문에 본능을 거슬러 가면서까지 불 속으로 뛰어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들도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중요한 것입니다.
이 믿음이 있는 분들은 주님이 쓰시겠다 할 때 어려워하지 않고 내 놓을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새하늘 청담 교회 교우 여러분!
사노라면 여러분 앞에 시련과 환란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에 절망해서는 안 됩니다. 고난 후에 오는 저 새벽의 승리를 바라보면서 오늘 주님이 걸어가신 이 골고다의 길을 따라가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진실의 길은 좁은 길입니다. 그리스도가 걸어가셨던 아주 좁은 길, 어려운 길, 그런데 그 십자가 속에서 새로운 창조가 시작됩니다.
나귀 타고 갔던 예루살렘 길은 골고다 언덕으로 이어지고 그 고통의 끝에서 바로 다음 주일 아침에 예수님은 부활하실 것입니다.
그분과 같이 부활하시겠습니까? 다 같이 기도하십시다.
Date: 2016/03/20 11:1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