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8장을 보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소돔과 고모라의 죄악이 심히 무거우니 멸하시겠다고 하십니다. 물질이나 무엇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죄악이 관영해서 소돔과 고모라는 망했습니다. 그 때 아브라함이 하나님에게 사정을 합니다. 50명만 있으면, 45명, 40명, 급기야 열 명,
의인 열 명만 있으면 그 성을 용서하겠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열 명을 찾지 못해서 망한 것이 소돔과 고모라입니다.
그런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5장 1절을 보면 “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을 용서하리라”
그런데 의인이 한 사람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하겠느냐, 이 성은 망할 수 밖에 없지 않느냐, 어떻게 내가 심판하지 아니하겠느냐.
애들에게 ‘2+2는 무엇이냐고 물으면 4라고 자신있게.
어른들은 생각하느라고 눈치보느라고 대답이 늦을 것입니다.
그런데 경찰청장과 청와대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먼저 문을 닫고 엿듣는 자가 없음을 확인한 뒤에 “해답을 어떻게 만들어 드릴까요?”할 것이다’
사실을 사실대로 알 길이 없습니다. 사실을 조작하는 것인지, 어디서 어디까지 우리가 알아야 하고 들어야 하는지를 알 수 없는 그런 세상에 산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총체적 위기, 도덕적 실종이라고 하는 것 것입니다.
이 모든 것들을 한마디로 말하면 병든 세상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 병들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위에서 아래까지, 젊은이로부터 노인까지, 남녀노소 어느 사회 어느 구석을 보아도 죄악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우리는 진실로 총체적 타락을 몸으로 경험하고 있습니다.
경찰청장(이철성)이 음주운전으로 23년에 걸렸는데 기록이 없어요.
그래서 물어봤더니 직업을 안 알려 줬다고 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아무리 그래도 후보를 사퇴하지를 않습니다. 별 죄도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민정수석(우병우)이 문제가 생기니까 대통령이 특별감찰관(이석수)에게 지시.
그런데 민정수석이 잘못했다고 하니까 특별감찰관이 매국노라고 합니다.
군데 갔다 온 사람들은 압니다. 보직 바꾸기가 얼마나 힘이 드는지.
정치인 중에는 특별히 의인을 찾아 보기가 더 힘든 것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저희 교단을 사랑합니다.
박형용 목사님, 이홍구 총리의 강원용 목사님.
민정수석이 그렇게 힘이 있는지 몰랐습니다.
김대중 대통령 목사, 김성재 교수.
정의를 외치면서 탄생. 우리 교단과 학교를 세운 김재준 목사님
문익환 목사님의 582장.
오늘 말씀은 이스라엘이 타락하고 그 악이 극에 달했을 때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해서 주신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예레미야마저 미워해서 그를 감옥에 쳐 넣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 중요한 메시지가 주어집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하나님께서는 지금 이 사건 속에서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리라. 이제 깊이 생각하여야 합니다.
다른 고난으로 우리를 단련시켜 나가십니다.
P.T 매일 다른 방법으로 단련시킵니다.
기독교 초창기 때의 이야기입니다. 시계도 귀한 때였습니다.
교회에서 특별새벽기도회를 하는데 그 당시는 걸어서 10리.
새벽기도에 빠지지 않고 출석하기로 다짐한 젊은 여 집사님이
장날 읍내에 있는 시장에서 잘 우는 암탉 한 마리를 샀습니다.
내일 새벽부터 닭이 울면 새벽기도에 나갈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동창이 훤히 밝았는데 닭은 울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할 수 없이 다음 장날까지 기다렸다 닭 장사에게 하소연을 했습니다.
“어찌 된 일인지 이 닭 진짜 안 웁니다. 교환해 주세요.”
여 집사님의 이야기를 다 들은 후 닭 장사는 몇 가지를 물어 보았습니다.
“닭장은 지어줬습니까?” “예”
“닭에게 모이는 배불리 줬습니까?” “아~ 예”
“닭장에 수탁 한 마리도 같이 넣어 줬습니까?” “예, 전부 다 해줬습니다.”
그 소리를 듣자 닭장사가 말합니다.
“아, 여보시요. 닭이, 집 있겠다. 배부르겠다. 거기에다 남편까지 있는데 뭐가 답답해서 새벽마다 빽빽 울어 샀겠소.”
그렇습니다. 우리가 부르짖을 때에는 뭔가 부족할 때입니다. 그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은 다 내게로 오라고 예수님께서 부르십니다.
때로는 질병을 통하여, 실패를 통하여, 전쟁을 통해서도 계속 부르십니다.
예수님 말씀이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필요하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의 뜻은 스스로 병든 것을 아는 사람에게만 의원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소경은 내가 소경인 줄 알기에 예수님 앞에 나아와 눈을 뜨게 해주십사고 했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눈을 멀쩡히 떴기에 ‘내가 왜 소경이야?’하다가 망하지 않습니까?
먼저 환자라면 자각증상이 있어야 합니다. 아플 때 아파하는 것도 복입니다.아픈 줄을 알아야 합니다. 아픈 줄을 모르는 사람은 죽은 사람입니다.
한센병, 문둥병의 무서운 점. 아픈 줄을 모르는 겁니다.
자각 증상이 없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슬프게 생각하는 것은 바로 이 점입니다. 죽어가면서도 죽어 가는 줄 모르는 것입니다.
얼마나 비참한 가운데 있고 위험한 가운데 있는지를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정신 못 차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디가 아픈지를 내가 모르고 있을 때 의사가 말해 줍니다. 당신이 아픈 것은 요것 때문이요 하고. 그러면 의사 앞에서 진실해야 합니다.
꼭 기억하십시오. 의사 앞에서까지 거짓말을 하면 구제불능입니다.
자기의 과거와 자기의 병력을 똑바로 말하기 전에는 치료할 길이 없습니다.
의사의 처방은 바로 그 고백에 근거하기 때문입니다.
진실이 없기에 치료가 제대로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예배 드리러 하나님 앞에 나아왔습니다.
하나님 앞에 솔직한 우리의 심령을 드려야 합니다.
여러분이 잘 아는 링컨 대통령의 별명은 honest ape입니다. 정직한 원숭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그를 미워하여 붙인 별명입니다.
그의 정직함은 모든 사람에게 알려졌는데 이에 대한 일화가 많습니다.
그가 장사할 때 어느 날 물건을 팔았는데 뒤에 계산해 보니 거스름돈 1센트를 못 준 것입니다. 손님한테 돈이 덜 갔더란 말입니다. 그는 그 1센트를 들고 3마일을 물어물어 찾아가서 결국은 그 손님을 찾아 1센트를 주고 돌아왔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그는 정직했습니다.
손님 하나를 잃어버릴까 봐 그런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정직 그 자체인 것입니다. 이것이 그의 생활신조였기 때문입니다.
정직은 선과 의보다 우선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정직이 있고야 힘이 있고, 긍지도 있고, 영향력도 있는 것입니다.
정직이 있고야 참 평안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것을 잊어버릴 때가 많습니다.
본래 정직하지 못한 사람은 설명이 깁니다. 설득을 시키려니까 길게 말합니다. 그리고 또 머리가 복잡합니다. 왜냐하면 진짜배기를 기억해야 하고 거짓말한 것도 기억하여야 되고, 둘 다 기억하려니 복잡합니다. 그러나 정직한 사람은 간단합니다. 그렇다, 아니다 하면 끝나니까 설명이 필요없습니다.
정직이란 사실을 사실대로 인정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 책임을 내가 지는 것입니다.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지 않는 것이 정직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정직하기 위해서는 이 정직 뒤에 오는 불이익과 후속결과에 대해서 염려를 하지 않아야 됩니다. 정직함으로 인하여 손해도 봅니다, 망신도 당합니다, 부끄러움도 당합니다. 그래도 먼저 정직할 것입니다.
정직한 다음에 어떻게 되느냐? 묻지 마십시오.
오늘 날 우리들은 이런 것을 못 가르쳤습니다.
위장전입, 관행이라는 이름의 다운 계약서, 병역의무의 기피...
이 세대는 정직함을 잃어 버린 세대입니다. 이제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 모르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슬퍼하는 것은 그것입니다.
인사 청문회라는 거 백날 해 봤자 진실이 밝혀진 적이 있습니까?
쓸데 없습니다. 괜히 떠들다 말고, 많은 사람의 마음만 상하고 말지 진실은 한 가지도 밝혀진 것이 없습니다. 이 땅에는 없습니다.
지금 어떻게 자녀들을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그 사람들을 탓하려는 것이 아니올시다.
이 거짓의 세계에서 나부터라도 정직하기로 결단합시다.
순교자가 누구입니까? 순교자는 한 마디 거짓말을 안 하기 위해서 죽은 사람들입니다. 예수 안 믿겠다고 하면 살고, 예수 믿겠다고 하면 죽습니다.
한 순간 한 마디만 거짓말을 하면 살아남을 수 있는데, 거짓말하고 이 세상에 살기보다 진실한 말 한 마디를 하고 죽어서 하나님 앞에 가겠다고 하는 바로 그것이 순교적 생활인 것입니다. 내 진실로 인해서 오는 어떤 희생이라도 그대로 감수할 때, 이것이 바로 순교자의 정신입니다.
부르짖으라고 하셨던 하나님께서는 6절에서 “내가 이 성을 치료하며 고쳐 낫게 하고” 치료가 선포되어집니다. 회복과 영광이 선포되어집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한 심판과 멸망의 예언은 부르짖는 기도를 통하여 위대한 반전이 일어납니다.
6절의 하나님은 고치시는 하나님으로 나타나십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 실패와 절망의 걸음으로 주님 앞에 나오신 분이 계십니까? 사업이 어려워서 나오셨습니까? 자녀들의 방황 때문에 울며 나오신 분이 계십니까? 커다란 어려움 때문에 울며 나오신 분이 계십니까?
지울 수 없는 마음의 고통 때문에 찾아오신 분이 계십니까?
오늘 주님 앞에 나오면 회복시켜 주시겠다고 약속하고 계십니다.
7절, 8절의 하나님은 회복시켜 주시고 용서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사랑하는 새하늘 청담교회 교우 여러분!
치유가 무엇입니까? 먼저 우리의 영혼이 치유되고 우리의 생각이 치유되고 우리의 시각이 치유되어야 됩니다.
우리의 세계관과 우리의 철학과 우리의 가치관이 바꾸어져서 찬송과 감사로 넘치게 되고 서로 존경하게 될 때 우리는 치유 받게 될 것입니다.
모름지기 치유자 하나님 앞에 진실하여야 하겠습니다. 그 말씀 앞에 정직하여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정직함을 통하여고쳐 낫게 하신다는 하나님의
만지심을 심령 깊숙한 곳으로부터 경험하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Date: 2016/08/21 12:0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