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1:33, 34절을 보면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냐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냐”
사도 바울이 이렇게 감탄하고, 이렇게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누가 주의 모사가 되겠습니까?
누가 그 하나님의 오묘하고 깊은 뜻을 알겠습니까?
여러분! 이 자리에 내가 나올 때까지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오랫동안 참으시고 얼마나 귀한 역사를 통해서 부르셨음을 깨달으십니까?
깊이 생각하여야 되겠습니다. 우리의 문제는 생각하는 시간이 없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모름지기 우리는 하나님의 침묵 속에서 더 큰 역사를 보고 더 큰 기도의 응답을 들을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하실 일과 나의 할 일 - His part, My part를 분명히 해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토양을 주셨고 비를 주셨고 태양을 주셨습니다.
우리의 할 일은 심어야 하고 가꾸어야 하고 거두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실 일이 있고 내가 할 일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농장에 고용된 일꾼입니다. 충성되게 진실하게 일해야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고용된 직분을 가지고 감격하여 고마운 마음으로 일해야 할 것입니다.
직업 자체가 하나님의 소명, calling, 직업소명설
존재함으로 일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일이 있어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건강해서 일한다고 착각하지 맙시다. 일해서 건강한 것입니다.
내게 주어진 돈, 내가 부지런해서 벌었다고 생각할 것이 아닙니다.
쓰일 데가 있어서 내 손에 주어진 것입니다.
모든 시간, 모든 건강, 모든 재능이 쓰임받기 위해서 존재합니다.
하나님의 높으신 뜻대로 고용되었고 하나님의 깊으신 뜻대로 그가 주신
능력 안에서 그 기간 안에 충성을 다할 뿐입니다.
고린도전서 4:2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충성했으면 그 결과는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내가 하여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하시고, 겸손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 하면서 하루 하루 살아갈 것입니다.
멀고 험한 이 세상 길.
오늘 본문 말씀의 배경을 보면 고린도 교회에 분쟁이 있었다고 합니다.
바울 파니 베드로 파니 아볼로 파니 이 무슨 소리입니까?
다 하나님의 사역자일 뿐입니다. 분쟁이 있는 것을 보고 바울은 자기 중심으로, 부분적으로 보기 때문이라고 진단합니다.
전체를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종말론적으로, 우주적으로, 하나님의 역사 앞에서 크게 보아야 바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좀 더 성숙한 세계관, 좀 더 높은 차원의 인생관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먼저 사도 바울은 5절을 보면 ‘주께서 각각 주신대로’라고 합니다.
각각 주신대로의 각자에게 주신 별도의 은사가 있다는 것입니다.
큰 사람도 필요하고 작은 사람도 필요한 것입니다.
여러분, 키가 작으면 작은대로 살면 안됩니까?
쓸만한 사람들은 대개가 작습니다. 제가 아는 여자 분은 소원이 하이힐을 신어보는 것이랍니다. 키가 커서 될 수 있으면 작게 보이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분을 보면 꾸부정합니다. 그럴 것 있습니까? 당당하게 살 것입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대로 살 것입니다. 젊으면 젊은대로, 나이 들면 들은대로.
환갑이 넘으면 하지 말아야 할 3가지, 200미터 이상 산 오르지 말기,
자전거, 스키, 탁구 치다가 빡.
그리고 중요한 것이 적성을 알아야 한다고 합니다.
적성은 쉽게 말해서 내가 즐거워하는 그 일이 내 적성인 것입니다.
그래서 직업도 적성에 맞추어서 구해야 합니다.
적성을 신학적으로는 은사라고 합니다. 각각 주신 바가 있고 그 주신 바를 통해서 살 것입니다. 남 부러워할 것 없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중요한 것은 내게 주신 일을 충실히 감당하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을 보면 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합니다.
그리고 할 수 없는 일은 남에게 맡깁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사람은 혼자서 다 하려고 하다가 기진하고 맙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씨를 뿌리는 자도 있고, 물을 주는 자도 있고, 거두는 자도 있습니다. 그러나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수고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수고대로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힘을 주시고, 능력을 주시고, 그리고 은혜를 주셔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나는 작은 수고를 했는데 큰 열매가 있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사건을 보면 떡 다섯 덩이, 조그만 물고기 두 마리를 어린아이가 예수님께 바쳤을 때 설마 오천 명이 먹고도 남는 그런 기적이 일어날 것이라고 그 당시 그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그러나 그 작은 것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큰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그렇다고 이 아이가 내가 했노라 할 수 있겠습니까?
착각하지 말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작은 것을 통하여 큰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죽은 나사로를 살리실 때에도 그러한 역사가 일어납니다.
무덤 앞에 막아놓은 돌을 옮겨 놓은 것은 사람이 한 일입니다.
11:39 “예수께서 이르시되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러나 43절 “나사로야 나오너라” 하신 것은 예수님의 일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이 하실 일, 내가 할 일이 따로 있습니다.
내가 할 일은 내가 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께 책임을 돌리지 말 것입니다.
숨지는 날까지 자신을 하나님께 헌신하고 바친 리빙스턴 선교사를 여러분들은 잘 아십니다. 그런데 이 분을 사람들은 평생을 하나님께 헌신했다고 높이 칭찬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훌륭함을 치하하려 했습니다.
그때에 그는 이를 사양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저는 결코 헌신해 본 적이 없습니다. 제 생활은 헌신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특권을 누리며 살아온 것일 뿐입니다”
여러분 특권이라는 이 말을 잘 이해를 하여야 합니다.
내가 봉사할 수 있는 것이 특권입니다.
그런고로 결론은 8절 “각각 자기의 일하는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뿌리는 사람은 열심히 뿌리고, 물주는 사람은 정성껏 물을 주라, 그것에 대한 자기 상을 받으라 함입니다.
어느 부문에서 어떤 일을 했든지 문제는 그 충성됨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쁜 마음으로, 즐거운 마음으로 일할 것입니다.
그것이 충성입니다. 골로새서 3:23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오직 자원하는 마음으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며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일하는 것, 그 질적인 충성을 하나님께서는 보시는 것입니다. 323장 3절 후렴.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섬기리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섬기리다
유명한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단원들을 이끌고 리허설을 합니다. 이제 마지막 연습입니다. 그런데 마지막에 북을 쳐야 하는 사람이 좀 지겨워졌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들어가야 하는 대목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지휘자가 음악을 멈추고는 ‘북 어디갔어?’하고 전체 연주를 멈추었습니다.
여러분,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first violin이 중요하지만 그러나 한참 기다리가다 마지막에 가서야 딱 한 번 두드리고 마는 북을 치는 사람도 중요한 것입니다. 다 같이 악보에 충실해야 하고, 다 같이 지휘자를 보아야 하고, 다 같이 자기 맡은 바에 충실해야 음악이라고 하는 작품이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도 각자가 맡은 부분에 충실하고 서로 협력하여야 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오케스트라에서 어느 악기인들 필요치 않은 악기가 어디 있겠습니까?
나는 나의 일, 내 부분을 감당하여야 합니다.
부모가 되었습니까? 아이들 너무 나무라지 마십시오. 아이들은 내 분야가 아닙니다. 내 분야는 좋은 부모가 되는 일입니다.
아내가 되었습니까? 남편 나무라지 마십시오. 좋은 아내가 되면 그만입니다.
남편이 되었습니까? 아내 나무라지 마십시오. 좋은 남편만 되면 그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