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신 예수께서 이 세상에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이것이 성탄사건입니다.
“성탄”이란 말은 예수님이 탄생하셨다는 뜻이고,
“성탄절”은 이날에 탄생하신 예수님께 찬양과 영광을 돌리는 날입니다.
그래서 성탄절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성탄절에 과연 그리스도께서는 제대로 대접을 받으십니까?
어느 술 취한 사람이 교회에 찾아왔습니다.
관리집사가 물어봅니다. 나 예수 만나러 왔소.
그 사람은 여기에 없고 무덤에 가야지.
우리 교회는 그렇지 않은지.
지난 주 설교 중에서 제가 신앙 생활한지 거의 4년 만에 하나님과 대화
죽기 살기로 하고 간절한 마음이 있을 때, 처음으로 들리기 시작.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건 윤진이가 될 줄 알았던 숙명여대
떨어져서 울고 있다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남은 대학은? 연세대 하나.
제가 기도했습니다. 윤진이 엄마가 저렇게 열심히 새벽예배 나오는데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이 들려옵니다. 윤진이에게 새벽예배 나오도록 권하라.
윤진이가 또 예하고 나왔습니다. 연세대 합격.
목사가 하나님이 너 나오면 합격한다고 했는데 떨어지면 어떡해요.
입에 물려 준 걸 했습니다. 예언.
이제 2016년 성탄절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이번 주 토요일이
성탄절 전야, 크리스마스 이브이고, 다음 주일이 성탄절입니다.
부활절 앞에 사순절이 있듯이 성탄절 앞의 사 주간을 대림절이라고 합니다.
대림절은 영어로는 어드벤트(Advent), 성탄절까지의 준비기간을 말합니다.
오늘은 대림절 네 번째 주일, 마지막 주일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마음의 자세와 준비를 가지고 성탄을 맞이하고 계십니까?
우리는 세상의 왜곡된 문화에 휩쓸리지 말고 마음 속에 예수님을 모시는
거룩한 성탄절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Happy Holiday, Merry Christmas! 성탄절은 예수님 생일입니다.
성경만큼 미래에 대한 약속과 꿈을 말한 책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늘의 별처럼 바다의 모래처럼 많은 자손을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또한 요셉이 꾼 꿈도 마찬가지입니다.
환경으로 볼 때는 일어날 것 같지 않았지만 하나님이 비전을 주시고 그 비전을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때에 이루어주신 사건들입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에는 그 보다 더 큰 비전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예수를 세상에 보내시겠다는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그 비전을 예수님이 탄생하시기 700여 년 전에 이사야를 통해
우리들에게 주셨습니다. 6절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이게 복음입니다. 영어로는 good news.
기묘자, 모사는 영어로는 Wonderful Counselor
전능하신 하나님, Almighty, 권세 능력 무한하사 모든 시험 이기고
영존하시는 아버지, everlasting, 부모님들은 가지만 하나님은 영원히.
평강의 왕, 샬롬.
기독교의 기본은 절망 속에서 희망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2절에 보니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았다고 하였습니다.
그 빛이 바로 메시야이신 예수그리스도의 빛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1장 27절에는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라고 나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은 바로 소망의 시작입니다.
저도 그 분을 만나기 전에는 의미도 없이 목표도 없이 인생의 나락 가운데 떨어지고 있었지만 이제 빛 되신 그 분을 영접한 후로 전혀 다른 새로운 삶의 의미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 그 분만이 세상의 소망이십니다.
91장
오늘 우리가 함께 본 이사야서의 말씀은 희망이 어떻게 도래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당시 남유다는 매우 어려운 시기.
미, 중, 러, 일본 사이에서 고생하는 우리 민족.
앗수르가 동방의 강자로 떠오르자 주변국들은 존망의 위기를 느끼게 됩니다.
앗수르와 지리적으로 가까운 위치에 있었던 시리아와 북왕국 이스라엘은
그 위기에 공동으로 대처하기로 하고 시리아-에브라임 연합군을 형성합니다.
위기의식을 공유하고 있던 주변 나라들은 대체로 그 동맹에 가담했지만,
남유다만큼은 그 동맹에 들어오려 하지 않았습니다.
시리아-에브라임 연합군은 유다를 응징하기 위해 군대를 파견했습니다.
시리아 군대가 에브라임에 주둔하고 있다는 말이 다윗 왕실에 전해지자
이사야 7:2 “왕의 마음과 그 백성의 마음이 숲이 바람에 흔들림같이 흔들렸더라”고 합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둘이었습니다. 정치적인 해결, 신앙적인 해결
앗수르의 힘을 빌리는 것과 하나님께 의지하는 것.
남유다 왕실은 사람들이 흔히 그렇듯이 정치적인 해결책에 매달립니다.
하지만 이사야 선지자는 신학적인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그는 앗수르와 동맹을 맺음으로 위기를 돌파해 나가는 것이 당장에는 좋아보일지 모르겠지만 결국에는 재앙이 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이 함께 계시니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백성들이 겪어내야 할 고통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태어날 아기의 이름을 ‘마헬살랄하스바스’라고 짓습니다.
‘노략이 속히 올 것’이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그는 고통 너머에 있는 새로운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막연한 낙관론처럼 위험한 것이 없습니다.
그것은 더 큰 절망을 낳게 마련입니다. 목회자의 고민이 여기에 있습니다.
이사야는 어둠 속에서 고통받는 백성에게서 어둠이 걷힐 날이 올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사야는 먹구름의 나날을 살고 있는 백성들에게 그런 햇빛의 날을 일깨우고 있습니다.
예언자 이사야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사건이지만 이미 그 일이 실현된 것처럼 말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철저한 신뢰를 보여줍니다.
지금은 어둠의 날이지만, 기쁨의 날은 반드시 도래하고 말 것.
그 기쁨을 이사야는 3절에서 구체적인 비유를 들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곡식을 거둘 때 기뻐하듯” 기뻐할 것이고, “군인들이 전리품을 나눌 때 즐거워하듯이” 즐거워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 기쁨의 날은 압제받는 이들, 무시당하는 이들, 마치 세상에 없는 사람들처럼 취급받고 있던 사람들에게 기쁜 날이 됩니다.
이런 날이 오고야 말리라는 확신이 어둠의 날을 견디는 힘이 됩니다.
믿는 사람은 기존의 세상에 길들여지는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 변화되어 역사의 변혁을 꿈꾸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보수입니까? 진보입니까? 강한 진보. 그래서 그 당시에 보수들인 사두개파와 바리새파가 작당하여 죽여 버리고 말았습니다.
며칠 전에 이홍구 총리님하고 대화, 왜 빨갱이라고 하지요?
편해서, 그렇게 몰면 다른 설명이 필요없거든.
믿음이란 남들과 다르게 살 수 있는 용기(courage to be different)입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기적이 있습니다. 기독교는 동정녀 탄생이라고 하는
기적으로 시작해서 예수님의 부활이라고 하는 기적으로 끝을 맺습니다.
그리고 그 기적 속에 내가 구원받는 기적, 내가 변화되는 기적이 있는 것입니다. 몇 십 년을 믿어도 특별히 나 자신에게 나타나는 기적을 모른다면
그 사람은 신앙인이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진정 아기 예수가 우리 인류의 소망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소외된 자의 친구가 되기 위해서, 절망한 자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서, 병든 자를 치료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지금 모두가 경제위기를 당해서 힘들어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성탄의 의미를 살린다면 여러분이 부족한 가운데서도 여러분의 이웃과 한번 나눠보지 않겠습니까? 거기에 진정한 성탄의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요한일서 4장 20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이번 성탄절에 전라남도 무안군에 위치한 일로한우리교회를 돕기를 원합니다. 사모님이 입원해서 퇴원했지만 입원비 내는데 동참하기를 원합니다.
사랑하는 새하늘 교회 교우 여러분!
예수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굿 뉴스, 복음이었습니다.
대림절은 약속하신 그대로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실 것을 묵상하며 보내는 기간입니다. 그리고 내가 그런 주님을 알게 되고 그 주님으로부터 은혜 입은 것에 감격하며 보내는 기간입니다.
이 기간에 더 깊은 영적 바다로 들어가는 은혜의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이 뜻 깊은 대림절에 이 하나님의 뜻과 섭리에 동참하고 경험하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Date: 2016/12/18 11:13: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