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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를 넘어서(민수기 14: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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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임 목사 동정, 늦은 여름 휴가를 거제도로, 바다 낚시

어제 토요일은 결혼 주례.

 

1. 보통 때는 자주 오던 버스도 타려고 기다리면 안 온다. 

2. 큰맘 먹고 세차를 하면 꼭 비가 온다. 

3. 시험 치러 갈 때 안 나왔으면 하는 문제가 꼭 출제된다.  

4. 보험 중에는 차 사고가 안 나다가 보험이 끝났을 때 사고가 난다. 

 

머피의 법칙, 미국 공군기지에 근무하던 머피(Edward A. Murphy) 대위가 1949년 처음으로 사용한 용어인데 자신이 바라는 것은 이루어지지 않고, 

나쁜 방향으로만 일이 전개될 때 쓰는 말입니다. 

 

 

토머스 길로비치의 ‘인간 그 속기 쉬운 동물’이란 책이 있습니다.

인간은 이성과 합리성으로 무장한 디지털 시대에 살면서도 무언가 부족해 하고 불안해 한다고 합니다. 교회 근처에 커피집, 편의점, 식당도 많지만 요즈음 점집, 타로도 많이 생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머피의 법칙’과 같은 속설 또한 현대인들의 의식, 무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저자가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는 이 같은 불합리한 사고 때문에 우리가 치러야 할 대가가 너무 크다는데서 출발합니다. 

저자는 인간은 사물에서 질서와 패턴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예측할 수 없는 것이나 의미 없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이 같은 속설과 미신이 만들어진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8:31, 32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그리고 이 진리에 대하여 요한복음 17:17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오늘 본문의 내용은 10정탐꾼들의 보고를 접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과 모세 및 아론을 원망하며 애굽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장면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밤새워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면서 모세와 아론을 대신하여 애굽으로 돌아갈 새 지도자를 세우려고 하였습니다.  

왜? 그들 스스로 한계를 정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스스로 설정한 한계를 갖고 있습니다. 

‘나는 이것만은 못해. 안돼.’ 

여러분들도 아마 나름대로의 한계를 갖고 계실 것입니다. 

나는 바빠서, 나이가 많아서.... 돈이 없어서....  체력이 약해서.... 

아침에는 죽어도 일찍 못 일어나.... 

영적인 분야에서도 한계를 갖고 있습니다. 

난 큰 소리로 기도는 절대 못해.... 

기도하여 병 고침 받는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어... 

 

그런데 성경에는 한계를 극복한 사람들의 이야기들로 차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생리적 한계를 뛰어넘었습니다. 

나이 많아 자식을 낳을 수 없는 폐경기였음에도 불구하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100세 때 아들을 낳았습니다.  

모세는 나이의 한계를 극복했습니다. 그의 나이 80세 때, 이스라엘을 애굽의 노예에서 해방시킨 지도자로 쓰임받기 시작했습니다.  

요셉은 신분의 한계를 극복했습니다. 노예로서의 한계를 극복하고 그 나라에서 총리가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평생 불치병을 지닌 채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불치병 때문에 자신의 사역을 포기하거나 낙망하지 않았습니다. 질병이 그의 앞을 가로막는 장애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도리어 자신의 연약함을 자랑하였습니다. 

고린도후서 12:10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저는 여러분의 약함이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는 도구로 쓰임 받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인생 여정에서 꿈이 없다, 꿈을 잃어버렸다는 것은 비극입니다. 

믿음은 하나님 안에서 잃어버렸던 꿈을 다시 붙잡는 것입니다. 

이 시간 하나님 안에서 꿈을 회복하십시오. 

그리고 성령의 능력으로 다시 시작하십시오. 

일어나지 않으면 한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일어나서 앞으로 한 걸음씩 나아가는 그 사람에게는 회복의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사람에게는 어떠한 역사도 행하시지 않습니다. 행하실 수가 없습니다.

동물원에서 놀고만 있는 사자는 다른 동물들이 전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세상을 정복해야 할 성도들이 먹이감 타령이나 하고(그 사람은 너무 빡빡해, 왜 하나님은 나에게 만만한 사람을 보내 주지 않는 거지?) 빈둥빈둥 놀고만 있다면 그들로서는 결코 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가 없습니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교회는 결코 이 땅을 정복할 수가 없습니다.

미약하지만, 부족하고 보잘 것 없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고 비전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에게 놀라운 역사를 이루어주실 것입니다. 

오늘 저는 그 역사를 보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이야기를 듣기를 원하십니다.  다른 교회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교회의 이야기를 듣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가 만나고 경험한 하나님의 역사, 우리 교회 위에 역사하신 하나님의 축복을 세상 사람들과 함께 나눌 수 있으셔야 합니다. 

 

 

제가 처음 예수를 믿었을 때 예수를 믿으면 고난이 없는 줄 알았습니다. 

완전 잘못 안 거지요. 

창조 이래로 고난이 없는 개인이 없었고, 나라나 민족도 없었습니다. 

어느 개인이나 국가나 민족에게도 끊임없이 고난이 다가옵니다. 

요한복음 16:33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그렇기 때문에 주를 믿는 우리는 고난이 없기를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이 고난과 맞서 싸워 나갈 수 있는 힘을 달라고, 지혜를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 고난을 극복함으로써 새로운 인류의 역사는 창조되고 발전해 왔습니다. 자신의 판단과 이성을 다 버리고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의 도우심과 손길을 기대하십시오. 

내가 주인으로 삼고 있는 모든 것들을 다 내려놓고 오직 주님만을 의지하십시오. 주님만을 사랑하십시오. 주님만을 바라보며 비전을 향해 달려가십시오.

 

신앙생활을 시작한 후에 하나님께서 한 번도 굶기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개입하시면 풍요가 임한다는 것이 성경이 우리들에게 주시는 교훈이고 저의 간증입니다. 신학생들에게 하나님이 제일 먼저 주는 가르치는 것이 물질의 부족을 통하여 하나님만을 바라보게 하는 훈련. 

오병이어에서 보는 바와 같이 우리는 부족하지만, 연약하지만 그러나 내 손에 있는 것을 가지고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나오기만 하면 우리는 놀라운 역사를 보게 될 것입니다. 

홍해가 갈라지고, 요단강이 멈추었던 그 역사를 우리도 보게 될 것입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넘어뜨렸던 그 역사가 내 삶 속에서도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중요한 것은 우리의 믿음입니다.  

 

할 수 있다 하신 이는

 

오늘 우리도 사명을 붙잡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하심을 믿고 힘차게 달려가십시다. 

가정이 일어나고, 교회가 일어나고, 이 민족이 일어나는 꿈을 안고 하나님의 역사와 기적을 기대하면서 살아가십시다.

민수기를 보면, 이스라엘 12지파의 행진도가 나오는데, 이 행진에서 항상 

선봉에 선 지파가 바로 유다 지파입니다. 민수기 7:12 “첫째 날에 헌물을 

드린 자는 유다 지파 암미나답의 아들 나손이라”

유다 지파는 강을 건너갈 때에도, 태양이 작렬하는 사막을 건너갈 때도, 

추운 밤에도 더운 낮에도 언제나 앞장섰던 지파였습니다.

긍정적이고,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지파였고 성막을 지을 때에도, 제일 먼저 예물을 드린 자들이었습니다. 가나안 정복에도 가장 앞장섰습니다. 

유다 지파는 궂은 일 있을 때마다, “내가 하겠습니다.” 이렇게 앞장서는 지파였고, 하나님이 이 점을 귀하게 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유다 지파의 이런 저돌성과 적극성을 사랑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에 들어와서 모든 땅을 다 정복했지만 난공불락으로 보이는 곳이 있었는데 그곳은 이스라엘의 첫 번째 수도 헤브론이었습니다. 워낙 험한 산지였던지라, 쉽게 접근할 수가 없었습니다. 

여호수아 14:12를 보면 사람들이 주저하고 있을 때 유다 지파의 족장이었던 갈렙이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라고 말하는 것을 봅니다. 

아무리 그 성이 크고 견고하게 보일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필경 여호와의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겠다고 했습니다. 

그때 갈렙의 나이가 85세였습니다. 늙은 노인인데도 청년의 마음을 가지고 “내가 맡겠다. 제일 어렵다는 헤브론을 내게 달라.”고 했습니다.

갈렙의 용감무쌍함 덕분에, 헤브론은 유다 지파의 땅이 되었고, 나중에 다윗에 의해, 수도로 정해지는 영예를 얻었습니다. 

우리들도 이래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이 시대 영적 전투가 있을 때, 앞장 서야 합니다. 

히브리서 10:38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뒷걸음질치는 성도는 하나님께서 쓰시지 않으십니다. 

언제나 긍정적인 신앙을 가진 사람들, 능동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들, 적극적인 말을 하는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사용하십니다.  

그래서 유다 지파에서 다윗이 나왔고, 예수 그리스도가 나왔습니다. 

 

여러분 신앙생활 왜?하십니까? 행복해 지셔야 합니다. 

그런데 이 행복은 그냥 찾아오지 않습니다. 

가만히 있음으로 해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을 위하여, 주님의 나라를 위하여 구체적으로 헌신할 때에 찾아오는 것입니다. 

인생이란 어차피 몇 안 되는 경기자와 수많은 구경꾼으로 나누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구경꾼들은 미래에 대한 설계도, 훈련도 없습니다. 

그저 관중석에 앉아서 편안하게 구경만 하면 됩니다. 

참여하지 않으니까 염려도 실패도 없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구경꾼에게는 상급이 없습니다. 면류관이 없습니다.

저는 여러분들 모두가 경기자가 되기 바랍니다.

열정적인 경기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구경꾼의 신앙은 메뚜기 신앙에 불과합니다. 

가나안 땅의 거인들을 보고 열 명의 정탐꾼들은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그들은 가나안 땅을 두루 돌아보고 와서는 이렇게 보고했습니다.

“우리는 저들 앞에 메뚜기와 같다.”

이 비뚤어지고 믿음 없는 시각 하나로 그들은 멸망했습니다. 

메뚜기 콤플렉스는 망합니다. 메뚜기 콤플렉스는 자신만 망하는 것이 아니라 가정과 이웃의 공동체를 다 망하게 합니다.

여호수아 5장 1절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전적인 도움으로 요단강을 건넜다는 한 가지 사실 때문에 아모리 왕과 가나안의 모든 왕들의 마음이 녹았고 정신을 잃었다고 말합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이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어둠의 영들은 두려워 정신을 잃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그 한 가지 사실 때문에 사탄은 정신을 잃습니다. 성령께서 여러분과 함께 한다는 사실 때문에 악한 영들은 정신을 잃고,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강하고 담대하시기를 바랍니다. 

메뚜기 콤플렉스에 빠졌던 열 명 정탐꾼 때문에 애굽에서 나왔던 기성 세대들은 두 사람을 제외하고 모두가 광야에서 메뚜기처럼 죽어갔습니다.

메뚜기 콤플렉스로는 결코 성공하는 인생을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져야 합니다. “저들은 우리의 밥이다”

말대로 됩니다. 생각대로 됩니다. 보는 대로 됩니다. 

믿는 우리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영적 권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녀 된 우리들에게 이 영적 권세를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새하늘 교회 교우 여러분! 

우리 모두 일어나 하나님의 강한 군사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이 축복을 

쟁취하시기 바랍니다. 구하는 자만이 누릴 수 있다고 성경은 분명하게 밝히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1:12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오늘 이 아침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이 영적 권세로 하나님의 귀한 축복을 후히 받으시고 천국을 향하여 힘찬 발걸음을 내딛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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