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람들을 제일 잘 표현한 속담은 아마 “우물에서 숭늉 찾는다”
뭐든지 “빨리 빨리” 처리해야 직성이 풀립니다.
미국 이민자들의 가게에는 대부분 멕시코 사람들이 일하는데 이들이 가장 먼저 배우는 한국말이 “빨리 빨리, 안달레 안달레”입니다.
그런데 이 빨리빨리 문화의 장점이 21세기에 와서 꽃피기 시작하였습니다.
인터넷, 인터넷 시대에 빨리 처리하는 것은 경쟁력을 높이는데 아주 중요합니다. 그러나 신앙생활만큼은 “빨리 빨리”가 통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하다보면 오르막길을 올라갈 때가 있고 내리막길을 내려올 때도 있습니다. 천둥 번개가 치며 비가 오는 궂은 날도 있을 터이고, 화창한 날씨도 있을 것입니다.
괴롭고 슬픈 일도 있고 즐겁고 기쁜 일도 있습니다. 그런데 여하한 일을
만나도 잘 인내하는 사람만이 예수와 함께 승리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히브리서 12장 1절과 2절을 보면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여기에 보면 우리가 믿음의 릴레이 경주를 할 때 바라봐야 할 대상이 아브라함이나 모세나 다윗 같은 믿음의 영웅들이 아닌 예수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믿음의 경주를 해 나갈 때 바라봐야 할 목표물은 사람이 아나라
오직 예수님이라야 합니다.
구약에서는 우리에게 율법을 지키라고 했지만(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등등) 신약에서 예수께서는 산상수훈에서 이상한 말씀을 하십니다. 원수를 사랑하라 하고 오른 뺨을 치거든 왼 뺨을 대라고 하며
속옷을 달라고 하면 겉옷을 주며 오리를 가자하면 십리를 가라고 하십니다.
율법으로는 이룰 수 없는 것이지만 예수님을 바라볼 때 할 수 있다.
그런데 예수님을 바라보려면 먼저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던져야 합니다.
달리기하는 선수에게 무거운 것은 무엇이든 해롭습니다.
운동복도 가벼워야 하고 운동화도 가볍고 경쾌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운동화도 충격이 없어야 합니다. 충격이 없다.
상처 잘 받는 사람들은 좀 각성해야 합니다. 그 땐 괜찮은 것 같은데
집에 가서 밤에 생각나면 잠이 깨 소설 쓰기 시작합니다.
신앙 생활도 맷집을 키워야. 하나님 믿는데 괜찮아요가 아니라
목사님 너무 힘드니까 같이 기도해 주세요.
권투 선수들도 주먹이 센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맷집.
하물며 우리의 신앙 경주도 마찬가지입니다.
걸친게 없다는 것은 가난하다는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우선.
마태복음 6: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 다음, 인내함으로서 경주해야 합니다.
마라톤 선수에게는 인내가 제일 중요한 덕목입니다.
42.195 km나 되는 긴 거리를 쉬지 않고 뛰어간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한 번 쉬면 다시 시작이 잘 안됩니다. 게다가 자주 쉬게 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목회자들이 주일성수를 중요시.
순례자의 노래
우리가 어려서부터 배워 알고 있는 속담 중에 ‘공든 탑이 무너지랴?’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공들인 탑은 안 무너진다.’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길지는 않지만 인생을 살아보니 공든 탑도 무너집디다.
성실하게 자기 삶을 지키려고 하는 자의 삶도 무너집디다.
공을 들이고, 삶을 지키는 것이 다 허무하고 헛된 것이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 위에,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믿음입니다.
기도입니다.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기원하는 것입니다. 간절히.
예레미야 33: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교회 출석하는 대부분의 교인들에게 ‘우리의 삶에 있어서 가장 소중한 분은 누구십니까?’라고 물으면 대부분 하나님이라고 답하실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하나님을 종종 무시합니다.
종종이 아니라 아주 자주 무시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믿는다고 하는 사람과 믿지 않는다고 하는 사람의 차이가 있다면, 믿지 않는다고 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노골적으로 무시하며 사는데, 우리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은근히 무시하며 산다는 것 정도일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적으로는 노골적으로 무시하고 사는 것이나 은근히 무시하고 사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별반 큰 차이가 없습니다.
우리는 에서와 야곱의 이야기를 잘 알고 있습니다.
어느 날 야곱이 팥죽을 쑤고 있었습니다. 처음부터 에서에게거 장자권을 얻기 위하여 쑤었던 것은 아닌 것 같아 보입니다. 배가 고파서 먹으려고 쑤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에서가 마침 사냥에서 아무 것도 잡지 못하고 허기가 져서 내려오고 있었는데 동생 야곱이 팥죽을 쑤는 것을 보고 달라하자 야곱이 엄청난 흥정을 해 옵니다. 그것은 팥죽과 장자의 명분을 바꾸자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말도 되지 않는 흥정이었습니다.
이재용이 모든 상속권을 포기하고 호화반점 중국 냉면을 먹겠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허기진 에서에게 하나님의 축복 즉 장자권은 정말 명분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배가 고파 죽게 되었는데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며 아무런 고민없이 야곱에게 그 장자의 명분을 팥죽 한 그릇과 바꿔 버립니다. 에서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축복보다는 먹는 것이 중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대개 에서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특히 남자분들. 그냥 예배당에서 예배드리고 성경 공부할 때 하나님은 살아계시다고 신앙 고백을 합니다. 그러나 실제의 생활에서, 먹고 사는 문제에서, 특별히 그것이 좀 꼬여서 힘들어지고 어려워질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있어서 팥죽 한 그릇의 가치도 없는 존재가 되어 버리고 맙니다.
쉽게 무시당하고, 쉽게 잊혀져 버리는 그런 존재가 되고 맙니다.
우리의 신앙 생활도 별로 다르지 않지 않습니까?
입으로는 예수님을 주라, 말씀을 진리라고 하면서도 따르지 아니하고 실제의 삶은 자기 생각대로, 고집대로, 욕심대로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믿음은 따라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복음서에서 나를 따르라!고 하십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주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따라가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아무리 입으로 주여, 주여 하여도 하나님을 실제로 주로 섬기고 그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살지 않는다면 그것을 믿음이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태복음 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복된 삶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따름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노력과 수고와 생각만으로 우리는 절대로 복된 삶을 영위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개선이 우선입니다.
성경에서는 관계 개선된 사람들을 의인이라고 합니다.
저는 우리의 삶 속에서도 경제를 중요시 여기는 목사입니다.
그러니까 신앙 생활에서도 제대로된 재물관을 가져야 하는데.
목사가 돈 이야기를 하면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이 있지만, 돈과 경제를 쉽게 보고, 가볍게 보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볼 때 교만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돈과 경제에 얽매여 사는 것은 바라지 않지만,
또한 돈과 경제를 우습게 여기고 사는 것 또한 바라지 않습니다.
돈과 경제는 우리에게 소중한 것입니다.
사람이 떡으로만은 살 수 없지만 그러나 떡이 없으면 살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돈과 경제의 문제에 있어서 실패하는 이유가 돈과 경제에 있어서 하나님을 자꾸 배제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젖혀 놓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있음이 헛되도다”
여러분 이 말씀은 물론 돈과 경제에 대한 말씀만은 아니지만,
돈과 경제에 있어서도 구체적이고도 중요한 말씀입니다.
사업을 하고 돈을 벌려고 할 때 하나님을 젖혀놓고 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제외하고 사업을 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사업에 성공하고자 하시면 오늘 제 설교를 잘 들으시고 그대로 해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과 동업을 하여 성공하고자 하시면 다음 세 성경 구절을 여러분의 티맵으로 삼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첫째는 말라기 3장 10절 말씀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제가 사업을 한다면 이 말씀을 사업 성공의 T-map으로 삼겠습니다.
돈에는 하나님의 몫이 있습니다. 바로 십일조입니다.
십일조는 부자를 만들어 주겠다가 아니라 안정적인 경제 생활을 약속.
사업을 하다보면 언제나 돈에 쪼들리게 됩니다. 투자할 돈이 언제나 모자라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제일 먼저 손을 대는 것이 하나님의 몫입니다.
우리는 사업을 하다 보니 돈에 너무 쪼들려서 할 수없이 십일조에 손을 댄다고 말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처음부터 너무 쉽게 하나님의 몫을 겁도 없이 손을 대기 때문에 쪼들리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몫에 손을 대는 것은 사업을 하나님 없이 혼자 하겠다는 선언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없어도, 하나님이 집을 세워 주지 않으셔도, 하나님이 성을 지켜주지 않으셔도 된다는 선언입니다.
사업에 뜻이 없다면 모를까, 사업에 뜻이 있다면, 그리고 저라면 말라기 3장 10절 말씀에 사업 승부를 걸겠습니다.
둘째는, 잠언 14장 11절의 말씀입니다.
“악한 자의 집은 망하겠고, 정직한 자의 장막은 흥하리라”
사업과 장사에도 식이 있고 수준이 있습니다.
제가 보니 후진국은 정직하면 부자가 될 수 없는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선진국은 그 반대로 깨끗하지 않으면 부자가 되기 어려운 문화를 가지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선진국의 문화와 방식을 보니 그 바탕이 성경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그 법을 무시하고 함부로 장사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나라는 후진국이고, 존중하고 잘 지키는 나라들은 선진국이었습니다.
장사를 하여 크게 성공하려고 하는 사람은 장사를 하나님께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방식대로 사업을 하여야 합니다.
방식이 틀리면 답이 틀립니다. 그것은 영적인 세계에서만 통하는 진리가 아니라 돈과 경제 즉 사업에 있어서도 통하는 진리입니다.
마지막 셋째는, 고린도전서 10장 31절의 말씀입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과 동업하려면, 하나님이 세워주시고 지켜주시는 복을 받기를 원한다면 사업의 목적이 하나님과 같아야만 한다는 뜻입니다.
사업은 크리스찬에게 있어서 목적이 아니라 도구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배제하면 도구인 사업이 목적이 되어 버립니다.
그냥 사업을 위한 사업을 하게 됩니다. 거기에 빠지게 되면 사업과 돈의
노예가 되어 평생 거기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사업에는 성공한 것 같아도 인생의 실패자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몫을 정확히 떼고, 하나님의 식대로,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고 사업을 하는데도 어려움이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시험, 테스트를 통과하고 나면 약속하신 모든 일들이 이루어져
형통하게 되고, 성공하게 되고, 약속하신 축복의 증인이 되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새하늘 교회 교우 여러분!
예수를 믿는 목적은 하나님의 축복을 얻기 위함인데,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을 에서처럼 경홀히 여기며 살아가고 계시지는 않으십니까?
믿는 우리들은 하나님을 경홀히 여기며 행복할 수 없습니다.
형통할 수 없습니다. 야곱처럼 하나님을 그 무엇보다도 소중히 여기며,
하나님의 축복을 귀히 여기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에 인생을 거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에스더처럼 죽으면 죽으리라는 단호한 결심으로 신앙생활을 하여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인생에서 승리하여, 들어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