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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도 (고린도후서13: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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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욕에 가서 한식집을 찾아 간 곳이 flushing. 

LA 한인타운만 큰 줄 알았더니 뉴욕도.

이민 사회는 참 재미있습니다. 미국이지만 한국인들의 사회.

“나는 내가 일하는 주유소 사장인 Mr. Kim을 미워한다. 

매일 아침 교대 시간에 3, 40분 늦게 오고도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도 하지 않고, 그 3, 40분을 부려먹는 것이 자신의 순이익이라고 생각하는 그 잔꾀를 나는 미워한다.  

한 번도 보수를 제날짜에 주지 않아 참다 못한 내가 며칠 후에 채근할 때에야 돈을 던져줘서 일하고 정당한 보수를 받는 나를 괜스레 초라하게 만드는  Mr. Kim을 나는 미워한다.  

그러면서도 자기가 나가는 교회에 함께 가자고 조르는 이 사람을 나는 더욱 미워한다.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 Mr. Kim 같은 사람이 그래도 그리스도인입니까? 

여러분, 무릇 그리스도인이라고 한다면 그의 말, 그의 행동, 그의 생활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가 배어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짜게 먹으면 물을 반드시 찾게 되어 있습니다.  

복음이 들어갔는데 어떻게 변화가 안 일어날 수 있단 말입니까? 

복음이 들어가니 그의 목적도, 그의 사는 방법도, 그의 돈씀씀이도, 그의 

생활 전반이 자꾸 달라집니다. 그래서 내가 하는 일을 그 분이 기뻐하실까 아닐까가 삶의 기준이 되어 갑니다. 그 전에는 나한테 이익인가 아닌가?

그래서 모든 사람과 점점 더 아름다운 관계를 맺어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5장 22, 23절에서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이라고 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래서 우리는 사랑해야 하고, 온유해야 하고, 오래 참아야 하고, 겸손해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아닙니다. 

성령이 임하면 이와 같이 된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복음은 말로 증거하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증거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에도 변화가 생기고, 얼굴에도 변화가 생기고, 그의 행동거지, 모든 일에 변화가 옵니다. 그 복음의 능력이 내게 임하여 이 기쁜 소식이 내 속에 들어와서 내 인격을 바꾸어 놓는 것입니다. 

곧 그리스도를 점점 닮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번 휴가에서 놀란 것은 정말 멀기도 하지만 작은 섬들. wifi, 카톡이 되요. 

그래서 두 번째 주일에는 윤철호 목사님 설교를 잘 들었습니다. 

마태복음 14:27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그곳에서 사온 케익으로 오늘 생일 축하를 먼저 하기로 합니다. 

 

생일 축하, 박민형, 서정훈.

 

오늘 설교 본문은 로마서, 고린도전, 후서를 읽던 중 하나님의 감동이 와서

정한 본문입니다. 고린도후서 마지막입니다. 

요즈음 예배 마지막에 하는 축도입니다. 

축도는 하나님께 예배하고 돌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이 친히 

내리시는 복입니다. 축도는 신약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구약에도 민수기 6:24-26, 아론의 축도라고 합니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신약의 축도는 삼위일체 하나님이 교회에만 계시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모든 자리에 함께 하실 것을 약속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삼위일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교통이라고 표현되고 

있는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을 만난 우리 신앙의 선조들의 다양한 간증을 들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 이름, 신명이라고도 합니다.

누구나 자기가 만난 하나님을 이야기합니다.

고쳐주시는 하나님, 잉태케 하신 하나님, 시험 붙여주신 하나님 등등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처음으로 부른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 이레”

모리아 산에서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다가 하나님께서 숫양으로 번제를 드리고 부른 이름입니다. “준비하시는 하나님”

 

출애굽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후 부른 이름은  “여호와 닛시”라고 했는데, 이 말은 “승리하신 하나님”이라는 의미입니다. 

 

또한 사무엘은 블레셋이 쳐들어왔을 때 하나님께서 도와 주셔서 블레셋을 물리치도록 해주셨습니다. 이에 기념비를 세우고 "에벤에셀"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는 뜻입니다.

 

선지자 에스겔은 환상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으로 인해 하나님의 영광이 예루살렘을 떠났으나, 새로운 언약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새 예루살렘에 영원히 거할 것을 보고 "여호와 삼마"(겔 48:35)라고 외쳤습니다. 

이는 '여호와가 거기 계신다’는 뜻으로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말합니다. 

 

여러분들의 고백은 무엇입니까?

진정한 교회는 이런 고백들이 모인 곳이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문제 많은 고린도 교회에 대하여 바울이 권면과 처방을 써서 보낸 고린도후서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여기에서 바울은 마지막 인사를 하면서, 다섯 가지의 축복과 권면을 말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형제들아 기뻐하라 온전하게 되며 위로를 받으며 마음을 같이하며 평안할지어다. 또 사랑과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그런데, 우리는 먼저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을 향해 “형제들아”라고 부르고 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그동안 거짓 사도들의 충동을 받아 바울을 의심하고 무시했던 고린도 교인들을 “형제”라고 한 것은, 이미 바울이 그들을 다 용서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포용하겠다는 표현입니다. 우리들 또한 다른 이들의 부족하고 잘못한 것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표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산상수훈 마태복음 5장 23, 24절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바울은 먼저, “기뻐하라”고 했습니다. 

바울의 서신을 보면, “기뻐하라”는 말이 자주 나오는데, 사람들은 ‘무슨 기쁜 일이 있어야 기뻐하지, 기쁜 일도 없는데 어떻게 기뻐하냐?’고 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가 하는 일이 잘 될 때 기뻐합니다. 

반면에 인생에 환난과 풍파를 만나게 되면 도저히 기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바울은 “기뻐하라”고 합니다. 

게다가 한 술 더 떠서, “항상" 기뻐하라고 합니다. 

사람이 살다보면, 기쁜 일도 있고, 슬픈 일도 있기 마련인데, 어떻게 항상 기뻐할 수만 있습니까? 이것은 세상적인 가치관으로는 불가능합니다. 

특별히 빌립보서 4장 4, 5절을 보면 항상 기뻐할 수 있다는 근거를 “주의 가까우심에 있다”고 했습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즉, 주의 재림이 곧 오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이 오심을 기다리면서 항상 기뻐하면서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온전하게 되며”라고 권면했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으로 실낙원했던 우리들이 우리를 완전하게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진리에 순응하기만 하면 온전하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바울은 “위로를 받으라”고 했는데 진정한 위로는 기도하는 중에 성령님으로부터 받게 됩니다. 크리스찬들에게 있어서 진정한 위로는 세상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기도 중에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보기도가 필요.

기도하면 하나님이 일하신다. 이번 여행 중에 저희 집사람이 미셀 오바마가 쓴 책 비커밍을 읽으면서 저에게 읽어보라고 한 부분.

“나는 영적 공동체의 온기가 그리웠다. 매일 밤 침대에 누워 고개를 돌리면눈을 감은 채 조용히 기도하는 버락이 보였다”

 

그 다음은 “마음을 같이 하여”라고 했습니다. 

교회는 마음을 같이 하는 사람들의 공동체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분열, 특별히 명성 교회와 사랑의 교회.

마음을 같이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생각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초대 교회는 사도들이 교회를 지도하는데 마음이 같았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생각을 같이하고, 마음을 같이하여, 한국교회의 신앙인의 모범을 보여 주었으면 합니다.  

 

마지막으로 "평안할지어다"라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의 인사는 “샬롬”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 모든 일이 선하게 매듭지어진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이스라엘은 강대국으로 둘러싸여 있는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하루도 평화로운 날이 없었습니다. 

남쪽에는 이집트, 동쪽에는 앗수르와 바벨론, 북쪽에는 시리아등 열강 들이 포진해 있기 때문에 언제나 전쟁의 위협에 시달렸습니다. 

유대인들이 가장 바라는 것이 바로 "샬롬"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 상황입니다. 역사적으로, 특히 조선 말기를 보면 일제의 침략으로 인하여 고난을 겪어 왔고, 오늘날 우리나라 주변에 포진하고 있는 미·일·중·러 등의 강대국의 줄다리기로 인해, 한반도는 늘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나라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샬롬”일 것입니다. 

 

사랑하는 새하늘 교회 교우 여러분!

오늘날 세계는 바울이 활동하던 1세기의 로마제국시대처럼 '힘의 논리'가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돈'의 힘은 날로 막강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약육강식의 세상에서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은 점점 더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어려운 시대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시대에 사도 바울의 권면처럼 거룩하게 서로 문안함으로 

서로에게 살아갈 힘을 주는 그런 교회, 그런 성도들 되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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