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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누구이기에(출애굽기 3:9-12)

   

 

     내가 누구이기에, 출애굽기 3:9-12, 320장

 

사무엘상 29-31장, 사무엘하 1-4장

 

사람들이 저를 부르는 명칭이 아주 다양합니다. 

아저씨, 할아버지, 제가 주유를 하기 위해 주유소에 가면 그 곳에서 일하는 분들은 저를 ‘사장님’ 아니면 ‘회장님’이라고 부릅니다. 

아무튼 그들이 저를 향하여 ‘사장님, 회장님’하고 부를 때마다 ‘나는 누구인가’ 하고 생각해 보게 됩니다. 

 

여러분은 자신을 누구라고 생각합니까? 

현대인들의 특징은 세상이나 우주에 대해서는 지금도 꽤 많이 알고 있고, 

점점 더 많이 알게 될 것이지만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점점 더 무지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현대인은 자신에 대하여 무지한 존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가끔 혼자 생각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끔은 혼자 있는 시간도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독을 다스릴 줄 알아야 하고, 고독을 즐길 줄도 알아야 합니다.

 

텔레비전 연속극을 보면 주인공이 어려운 일을 당했을 경우, 사업에 실패했거나 실연을 당했을 경우 열이면 열 다 포장마차에 쭈그리고 앉아 술을 마시는 장면으로 이어집니다. 왜 조용히 혼자 앉아서 생각하는 인간을 그리지 못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는 때로 사업에 실패도 합니다. 때로는 병들기도 합니다. 

그때서야 비로소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생각을 하기 시작합니다. 

‘나는 누구인가’ 바로 이 한마디의 질문에 대한 답을 받아내기 위해서 

이 모든 사건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탈무드’를 보면 사람은 세 개의 이름을 가지고 살아간다고 합니다.

하나는 나면서 부모님이 지어준 이름이요, 그 둘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나와 관계된 모든 사람들, 그 사람들이 나에게 붙여준 별명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죽은 뒤의 명성이라고 하는 이름으로, 이름 가운데 제일 소중한 이름입니다. 그렇습니다. 죽은 뒤에 나를 어떤 사람이라 불러줄 것인가가 가장 중요하다고 합니다. 

 

오늘의 본문 말씀에는 모세가 하나님의 특별한 사명을 받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입니다마는, 모세의 일생을 가만히 살펴보면 그는 원래 다혈질의 사람으로서 실수가 많았습니다. 

특별히 그는 시내산에서 40주야를 하나님과 함께 하며 계시를 받는 엄청난 경험을 한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산에서 내려오다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놓고 섬기는 것을 보자 욱하는 혈기를 다스리지 못하여 그만 하나님께서 주신 십계명 돌판을 내던져 깨뜨려 버립니다. 

저는 이 대목에 이르러 늘 위로를 받습니다. 

모세는 결코 온유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만은 모세는 오늘의 본문 말씀에서 보듯이 점점 더 하나님의 손에서 귀한 존재로 쓰임 받고 있습니다.  

 

모세는 애굽의 라암세스 2세라는 바로의 궁전에서 왕자로서 40년을 보냈습니다. 모세는 당시 최고의 교육을 받고 최고의 영광을 누리면서 자라게 됩니다. 왕족으로서 엘리트 의식을 가진 사람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로 친어머니의 젖을 먹고, 친어머니에게서 

종교교육을 받으면서 민족적 정체감을 잊지 않고 살아갑니다. 

 

그러던 어느 날, 모세는 애굽 사람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괴롭히는 것을 보고는 그만 참지 못하고 그 애굽 사람을 때려 죽이고 맙니다. 

그리하여 그는 미디안 광야로 도망가서 목동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애굽에서 왕자로 살아가던 사람이 이제는 작렬하는 태양볕 아래서 냄새나는 양떼의 뒷바라지를 하며 목동으로서 살아갑니다.  

게다가 이렇게 40년을 자기 양이 아닌 처가의 양을 돌보면서 지냈습니다. 

겉보리 서말만 있어도 안한다는 것이 처가살이입니다.  

처가살이, 부자집에 장가간다고 좋아했던 친구들 다 비참해졌습니다.

부자집에 시집갔다고 좋아하던 여성분들, 첩빼놓고는 거의 없어요.

 

이제 그의 나이 80입니다. 이제 더는 자기 존재도 없고 꿈도 환상도 

다 내버린, 실패와 좌절밖에 남겨진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간 너무 많은 실패를 경험했기에, 이제 더는 용기도 의지도 없습니다. 

바로 그 때에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십니다. 

오늘의 본문 말씀을 보면 모세가 양떼를 이끌고 호렙 산에 이르렀을 때에 떨기 나무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10절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하나님께서 그에게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을 맡기는 순간, 모세는 이렇게 고합니다. 11절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저는 UFC 종합격투기를 좋아합니다. 집사람 잠든 시간에 혼자 봅니다.

UFC에 조지아, 그루지아 계열 선수들이 들어오면서 재미가 반감되고 있습니다. 레슬링을 위주로 시합을 하기 때문에 누워만 있다가 끝나서 

태국에 여행가면은 무에타이 경기장을 갑니다.

바닷가에 있으면 무에타이 광고차가 다닙니다. 

champion of champion 무에타이 tonight 허락받고 혼자 보러 갑니다.

기억에 입장료가 꽤 비쌌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래도 저에게 최고의 운동은 권투입니다. 지금도 권투가 다시 살아났으면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해설 중에 이런 기억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기량이 상당히 뛰어난 선수가 나와서는 자꾸 물러서기만 하고 그러다가 얻어맞고 위험한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자 해설자가 이렇게 말하던 기억이 납니다. 

“저 선수 몇 달 전에 한번 잘못 맞아서 KO패 당한 적이 있습니다. 그 실패의 경험을 빨리 잊어버려야 하는데, 거기에 매어 있기 때문에 자기 실력 발휘를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링에 올라 갔을 때 과거에 실패했던 경험은 싹 잊어버려야 합니다. 링에 올라가서 며칠 전에 매맞은 경험, KO패 당한 경험을 떠올린다면 그는 훌륭한 선수가 될 수 없습니다.” 

 

과거에 매어 있는 사람, 실패의 쓰라린 경험에 매어 있는 사람은 결코 추진력을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어거스틴의 ‘고백록’을 보면 ‘시간을 과거, 현재, 미래로 구분하는 것은 타당치 못한 인식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과거에 속한 현재가 있고, 현재에 속한 현재가 있고, 미래를 지향하는 현재가 있을 뿐이다’

그렇습니다. 믿는 우리들에게는 현재가 있을 뿐입니다. 

기독교는 현재의 종교. 지금 내가 무엇을 하느냐가 나의 미래를 결정

 

모세는 과거의 그 실패를 한시바삐 잊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모세 자신으로는 결코 잊을 수 없는 엄청난 실패의 경험이었기에 

이렇듯 나약해지고 만 것입니다. 

바로 그 시각, 하나님께서 모세를 만나 주십니다. 

하나님의 부름을 받는 순간, 그는 전혀 다른 인간으로 거듭 태어납니다. 

과거의 자기 자신을 잊어버립니다. 

자기의 능력도 과거의 경험도 이제는 아무 상관없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사명 앞에 충실히 응답할 뿐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향하여 나간 모세가 하나님께 ‘내가 누구입니까?’하고 여쭙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그 순간 모세는 그 커다란 사명 안에서 자신의 지난 날을 돌이켜보고, 

재해석하게 됩니다. 

그러고 보니 태어난 지 석 달만에 갈대 상자에 담겨 나일강에 떠내려간 것도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바로의 궁전에서 살며 많은 지식을 배우고 애굽의 문물을 습득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던 것도 그렇습니다. 

이것은 모두 하나님의 놀라우신 섭리와 경륜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양성하고자 했던 시간이요, 사건이었습니다. 그리고 살인을 저지르고 광야로 도망가 40년 동안 양을 치면서 겸손해지고 낮아지고 진실해지는 이 경험도 결코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이 역시 하나님의 놀라우신 경륜 속에 있었던 일입니다. 

현재도 그렇지만, 내 과거의 일도 다 하나님의 오묘하신 섭리와 경륜 속에 있었음을 모세는 이제야 깨닫게 된 것입니다. 

지난 시간 모두가 소중한 과거였음을 비로소 깨닫게 된 것입니다. 

캘빈의 예정론.

 

여러분, 건강해야만 하나님께 쓰임 받는다고 생각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병든 사람도 당신의 사역에 쓰십니다. 

돈이 있어야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없으면 없는 대로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아니 오히려 없기 때문에 더 잘 할 수 있습니다.

키가 커야 하는 것도 아니요 작아야 하는 것도 아닌 것입니다. 

내 현실 이대로, 내 과거 그대로가 다 하나님의 손에 있었던, 소중한 의미를 가진 사건들이었음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나약함, 실패, 성공... 이 모두가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과 만나는 순간, 하나님과 confront하는 순간, 이 모든 일들이 

다 새로운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오늘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우리는 오로지 하나님의 부르심에 진실하게 응답하고 충성을 다할 뿐입니다. 

 

나의 등 뒤에서 

 

예수님은 구경만 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멀찍이 바라만 보는 분이 아니십니다. 언제나 내 곁에서 나와 함께 계시는 분이십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내 곁을 떠나는 그 순간에도 예수님은 내 곁에서 나를 붙들어 지켜 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 날 붙잡아 주시면 예수님 날 한번만 만져 주시면, 하나님이 한번만 도와주시면 바로 이 순간에 해결되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새하늘 교회에 오신 모든 분들이 지금도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직접 만남으로 해결되지 못하던 인생의 난제들이 해결받는 놀라운 

경험들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새하늘 교회 교우 여러분!

신앙인은 자기 자신에 의해서 자기를 보지 않습니다.

타인에 의해서 자기를 보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부르심 안에서만 자기를 봅니다.

나를 위하여 돌아가시고, 나와 함께 하시는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를 봅니다. 주님께서 지불하신 값을 보고 자기를 봅니다. 

그러므로 나는 소중한 존재입니다. 

우리는 지금도 묻고 있습니다. “내가 누구입니까?”

하나님께서 대답하십니다.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겠다”

다 같이 기도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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