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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여호수아 14:9-15)

 

   여호수아 14:9-15,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347장.

 

사무엘상 22-28장

 

하나님의 능력을 이용하여 자신의 뜻과 욕심을 이루려고 하는 것을 기복신앙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뜻보다는 그저 자신의 뜻과 욕심만을 이루려고 교회를 나오는 그런 기복신앙은 유치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유치한 것으로 생각하고 오로지 영적인 것만이 신앙의 전부인 양 그것을 자랑하는 것 또한 교만한 것입니다. 

세상에서 잘 살고 복 받는 것을 유치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세상에서의 성공과 부요함 자체를 부정적인 것으로 생각하게 되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와 같은 것들을 죄악시하게 되어 있습니다.  

무조건 가난하고 낮은 것을 훌륭한 것으로 보고, 높고 부한 것을 악한 것으로 보는 것은 기독교의 바른 신학과 철학이 아닙니다. 

기독교는 가난하고 낮은 것을 무조건 실패한 것으로 보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난하고 낮은 것을 무조건 훌륭한 것으로 보지도 않습니다.

기독교의 기본 사상은 청부입니다. 깨끗한 부자.

정승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쓴다는 기독교의 기본사상은 우리 개신교 신앙의 토대를 만든 Calvin의 ‘직업소명설’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내가 지금 일하고 있는 것이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소명이다. calling.

예배드리는 장소만 거룩한 곳이 아니라 성도들이 일하는 곳도 하나님이 나에게 맡기신 거룩한 곳이다. 그리고 일하는 사람의 태도는 골로새서 3:23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오늘 우리는 기독교인들이 가져야 할 삶의 태도의 모범, 우리가 본받아야 할 갈렙에 대해서 이야기 해 보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참으로 아름다운 사람, 나이 85세에 헤브론 땅을 분배받은갈렙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실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큰 모험을 하지 않고 그저 편하게 살려고들 합니다.

그런데 갈렙은 달랐습니다. 나이 85세에 가나안 여러 땅들 가운데 가장 정복하기 어려운 헤브론 땅을 자기에게 달라고 요구합니다.  

이 헤브론은 산세가 워낙 험악한, 난공불락의 요새였습니다.  

게다가 이 헤브론 지역에는 아낙 자손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민수기 13장을 보면 일찍이 열두 정탐꾼들이 가나안 땅을 둘러보고 모세에게 보고한 내용이 나오는데 그 때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10명의 정탐꾼들이 이구동성으로 보고한 내용은 헤브론 지역의 거민은 아낙 자손들인데 얼마나 크고 거대한지 자기들은 메뚜기에 불과하다고 했습니다. 

갈렙은 바로 이런 땅을 자청해서 자기에게 달라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이란 쉬운 일을 하려고 하지 힘든 일은 하려고 들지 않는 법입니다. 그래서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일, 적은 노력으로 많은 수입을 올릴 수 있는 일들을 찾아다닙니다. 세상에 쉬운 일은 없는 법입니다.

행복에 지름길은 없는 법입니다. 

뉴스를 보면 실업자가 많다고 하는데 공장을 하시는 분들의 고민은 일할 사람들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한국 사람들이 힘든 일은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차라리 놀면 놀았지 그런 일은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궂은 일들은 외국인들이 다 도맡아서 한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항상 긍정적이고 진취적이어야 합니다. 

이것은 이래서 안되고 저것은 저래서 안되고, 무슨 무슨 핑계를 대고 나는 안 된다고 생각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면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필요합니다(12절). 적은 강하고 나는 늙고 약하지만 이 모든 조건들을 뛰어 넘을 수 있는 것은 임마누엘의 하나님, 즉 하나님만 함께 하시면 되는 것입니다. 

성공한 사람들에게 하는 사람들의 착각, 저 사람은 장애물이 없었겠지.

갈렙도 극복하여야 할 몇 가지 장애물들이 있었는데 먼저 갈렙이 헤브론 

지역을 정복하는데 어려운 장애물들을 살펴보기로 합니다.

 

먼저 갈렙은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라 이방인이었습니다. 

6절 전반부에 보면 갈렙을 소개할 때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라고 했습니다. 본문 14절과 민 32장에서도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그니스 사람’ 혹은 ‘그나스 사람’은 창 15:19절에 처음 나타나는데 에돔 족속 중의 하나로 순수한 유대인은 아닌 것입니다.  

마치 기생 라합이나 다윗의 증조모인 룻과 마찬가지로 정통 이스라엘 출신이 아닌 이방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갈렙은 인종적인 장벽을 뛰어넘어 히브리 주류 사회에 진입한 사람이었습니다. 유난히 혈통의 순수성을 따지는 유대 사회에서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그는 워낙 적극적이고 열정적인 믿음의 사람이었기에 이방 소수 민족 출신이었지만 정통 유대 사회에서 두각을 나타낸 것입니다.  

애굽을 탈출한 제 1세대 사람들 중에 가나안 땅에 들어간 사람은 오직 여호수아와 갈렙 뿐이었습니다. 모세는 말할 것도 없고 모세의 형 아론과 누나인 미리암도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모세는 요단강 건너편 느보산에서 가나안 땅을 바라봤을 뿐 밟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후손이 아닌 그니스 사람 갈렙이 가나안 땅을 밟았습니다. 그의 탁월한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문제는 자기 자신에게 있지 남에게 있지 않습니다. 

실패하는 사람은 무슨 탓, 무슨 책임을 타인과 사회에 돌리지만 성공한 사람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적극적인 믿음의 사람 갈렙에게 인종적인 차이는 조금도 문제가 될 수 없었습니다.

저도 여러분들에게 환경이 문제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환경 탓을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문제는 환경을 두려워하는, 신앙 없는 나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갈렙은 심리적인 갈등의 문제를 극복했습니다. 

바늘 가는데 실 간다고 갈렙의 이름이 나오는 곳에는 반드시 여호수아의 이름도 함께 나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줍니까? 

갈렙 역시 여호수아 못지않게 중요한 지도자였다는 것입니다. 

여호수아와 쌍벽을 이루며 출애굽의 차세대 지도자로 각광을 받던 갈렙은 그러나 12지파 정탐 보고 이후에는 갑자기 자취를 감춥니다. 

그동안 갈렙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성경은 침묵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여호수아는 승승장구해서 모세를 뒤이어 이스라엘 민족의 차세대 영도자로 우뚝 섰습니다. 

45년이 지나서 오늘 말씀에 보면 가나안 땅을 분배받게 될 때 갈렙은 총사령관인 여호수아 앞에서 헤브론 산지를 달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한 때 자기와 나란히 가나안 정탐을 함께 했던 동료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의 최고 지도자가 되어 있습니다. 

갈렙도 인간이기에 경쟁심이나 시기심, 열등감이 없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갈렙은 이와 같은 심리적인 장벽을 이겨냈습니다. 

한 때 자신의 동료였던 여호수아에게 가장 정복하기 어려운 헤브론 산지를 달라고 부탁하는 일에 주저함이 없습니다. 

그리고 13절 말씀을 보면 여호수아의 축복까지도 겸손히 받고 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비슷한 친구들끼리 유독 질투심과 경쟁심이 더 강합니다. 공부를 1등하는 사람과 15등 하는 사람은 질투할 일이 별로 없습니다. 1등과 2등 사이가 심합니다. 14등과 15등 사이가 심합니다.

이치가 다 그렇습니다. 공부 잘하는 친구들끼리, 얼굴 잘생긴 친구들끼리, 권력이 높은 친구 사이일수록 경쟁심과 시기심은 훨씬 더 치열한 법입니다. 

서로 상하 관계가 되어서 차이가 많이 날 때에는 괜찮은데 서로 비슷하다 싶으면 서로 시기하고 헐뜯고 무섭게 경쟁하는 것입니다. 

 

어느 수도승이 수도원에 들어가서 도를 닦게 습니다. 모진 수련 생활 끝에 드디어 온 천하가 우러러 볼 성자가 되어갈 때 쯤 마귀들이 회의를 열었습니다. 이 수도승을 타락시켜보자는 것이었지요. 

마귀들이 유혹을 시작했습니다. 금덩어리를 보냈으나 눈도 깜짝하지 않았습니다. 어여쁜 미녀를 보냈지만 돌을 보듯 무표정 했습니다. 의심과 공포의 씨앗을 심으려 했지만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모든 수법을 써 봤지만 도무지 요지부동이었습니다. 

고민하던 마귀 대장이 묘수를 내고는 그 수법을 쓰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부하 마귀 하나가 수도승의 귀에 대고 “당신의 친구가 방금 주교로 뽑혔다는 소식입니다” 했더니, 그 수도승이 벌떡 일어나 “아니 그런 친구가 어떻게?” 화를 내면서 수도원을 뛰쳐나갔다는 것입니다. 

 

갈렙은 여호수아와 함께 정탐꾼으로 출발했지만 몇 십 년 사이에 두 사람의 신분에는 많은 차이와 변동이 생겼습니다. 열등감과 시기심에 시달릴 법도 한데 갈렙은 이 모든 심리적인 갈등, 스트레스를 믿음으로 이겨냈습니다. 

우리나라는 인구는 많고 땅덩이는 좁기 때문에 경쟁심이 유달리 심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거대한 산지를 얻기 위해서는 

옹졸한 경쟁심과 시기심을 이겨내야만 합니다.

    

마지막으로 노령이라는 나이의 장벽을 극복했습니다. 

20대 30대가 헤브론 산지를 자기에게 달라고 요구하면 이해할 수 있지만 85세의 노인이 달라고 합니다. 

흔히 정신적인 나이와 육체적인 나이를 구분합니다. 

어떤 사람은 나이가 70이지만 정신 연령은 30대에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육체적인 나이는 30인데도 정신 연령은 80인 사람도 있습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것이고 우리의 정신과 태도가 훨씬 더 중요합니다. 

본문 7-12절 말씀을 보시면 갈렙은 45년 전에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자기에게 주셨던 약속의 말씀을 잊지 않았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시간표에 따라 때가 찼을 때 그 옛날에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여 헤브론 산지를 자기에게 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약속을 이루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45년 전 정탐꾼으로 활동할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건강하며 힘이 넘쳐서 얼마든지 전쟁을 치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꿈이 있는 백성은 망하지 않을뿐더러 결코 늙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육신은 날로 낡아지겠지만 속사람은 날로 날로 새로워 지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헤브론 산지가 아무리 험악하고 거기 사는 거민들이 아무리 사나운 거인족속들이라고 할지라도 능히 이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나화 함께 하시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그들을 쫓아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15절 맨 마지막 부분에 보면 그 땅에 전쟁이 그쳤다고 합니다. 

갈렙이 헤브론 산지를 정복했기에 전쟁이 그치고 평화가 찾아왔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 다음 장인  여호수아 15장을 보면 갈렙이 헤브론 땅에 살고 있던 가나안 족속들을 다 쫓아내고 그 산지를 다 점령합니다.  

약속의 말씀이 청년 노인 갈렙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항상 적극적이고 진취적이고 도전적이어야 합니다. 

85세의 노인 갈렙이 가나안 땅들 중에서도 가장 정복하기 힘든 헤브론 산지를 자기에게 달라고 했던 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청년 같은 능력으로 정복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여러분들도 편하고 쉬운 일만 달라고 주문하지 마시고, 

하나님이 하실 일이 없어요.

“어렵고 힘든 산지를 내게 주소서!”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새하늘 교회 교우 여러분!  

내 앞에 놓인 힘들고 어려운 일들을 정복하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헤브론 산지가 난공불락의 요새였던 것처럼 이 모든 산지를 얻는 일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장애물이 하나 둘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그분께서 반드시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90을 바라보는 노인 갈렙도 했는데 우리가 못할 리 없습니다! 

그 날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앞을 향해 나갑시다. 

“주여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라고 외치며 이 힘들고 거친 세상을 이겨나가시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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