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서 1:2-4, 491장. 시험을 당하거든
창세기 27-33장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삶은 문제의 연속입니다. 잠시도 편할 날이 없습니다. 문제, 문제, 문제... 문제의 연속입니다.
하나의 문제를 해결할 때마다 또 다른 하나가 그 자리를 메꿉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문제를 만나셨습니까?
어떤 문제로 인하여 고민하고 눈물을 흘리고 계십니까?
그런데 놀랍게도 성경은 이러한 문제들을 만날 때마다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베드로전서 4:12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시험이 있게 마련입니다.
살아있는 사람에게는 어떤 문제이든지... 모양은 다르고 방법은 다를지 몰라도... 반드시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시험이 다가옵니다.
동방의 의인이었던 욥에게도 시험이 왔습니다.
아브라함에게도 시험이 왔고, 요셉에게도 시험이 왔습니다.
심지어 죄와는 상관이 없는 예수님도 마귀에게 시험을 당하셨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말하는 시험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마귀가 주는 시험과 하나님이 주시는 시험입니다.
우리나라 단어로 볼 때는 똑같습니다. 둘 다 시험이지만 마귀가 주는 시험은 영어로 말하자면 temptation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시험은 영어로 Test입니다.
이 시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한 것입니다. 우리를 훈련하고 연단하고 성장시키시기 위한 목적으로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험에 통과하면 큰 상급이 있습니다. 이 시험에 합격하면 놀라운 신앙의 인격자로 업그레이드 되고 성숙한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하나님이 주시는 이러한 시험을 만나거든 오히려 기뻐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 2절 말씀입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그랬습니다.
시험은 괴로운 것입니다.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우리 중에 시험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기쁘게 여길 수 있습니까?
그 기뻐할 수 있는 요령은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하나님의 성품에 대하여 더 아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29:11을 보니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또 로마서 8:28절에 뭐라고 말씀합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라는 것과 하나님은 늘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려고 예비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 믿음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나라와 일본이 축구 경기를 했는데 그 중요한 경기를 못 봤습니다. 나중에 뉴스에서 우리나라가 3:2로 역전승하며 이겼다고 나옵니다. 그래서 다음 날 재방송하는 걸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일본이 전반전에 한 골을 넣습니다. 연이어 한 골을 넣어서 2:0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가 이겼다는 결과를 다 알고 보기 때문에 조급하지 않고 느긋합니다. 어떻게 이겼는지 그 과정만 살펴볼 뿐이지 지금 졌다고 안절부절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우리의 상황이 어렵고 힘들고 짜증스런 문제들을 만났어도 하나님의 계획은 언제나 선하시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 문제를 만나도 여유가 있습니다. 비통해 하거나 절망하지 않습니다. 슬퍼하거나 낙담하지 않습니다.
고난이라는 이 산만 넘어가면 저 너머에는 지금 하나님께서 큰 복을 가져다 놓고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마음에 여유가 있는 것입니다.
오히려 고난을 즐길 수 있습니다. 오히려 담대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고난을 통과하고 나면 어떤 복을 주시려고 이러시나?”
그러면서 기뻐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로마서 5:3-4절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그랬습니다.
사실 인생의 고난이나 문제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고 더 그 분을 의지하게 만듭니다.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간절히 기도할 때가 언제였습니까? 아무런 문제가 없고 평안할 때 그랬습니까? 아니었습니다. 간절히 기도하고 예배를 드릴 때는 문제를 만났을 때 특히 어려운 문제에 직면했을 때 간절한 기도가 나왔습니다.
문제가 없었더라면 우리는 그렇게 간절하게 기도하지 않았을 겁니다.
철야기도를 하고 심지어는 금식하면서 부르짖어 기도한 것은 문제를 만났을 때였습니다. 문제를 만나게 되니 마음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모든 것이 산산조각으로 부서지는 것 같았습니다.
아무도 나를 도와줄 사람이 없고 어느 누구에게 얘기 조차 할 수 없습니다. 너무 고통이 심하여 신음소리 조차 낼 수가 없었습니다.
바로 그때가 우리가 하나님을 만날 때입니다.
문제를 만나고 나니. 비로소 주님을 바라보게 되었고, 문제를 만나게 되니 정직한 기도를 배우게 된 겁니다. 내 주변에 많은 사람들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고, 내가 정말 의뢰하고 바라볼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밖에 없다는 사실을 문제를 만났을 때 우리는 깨닫습니다.
만일 지금 여러분이 이해할 수 없는 문제를 만나 고통 중에 있다면, "왜 하필이면 나입니까?"라고 질문하지 말고... "하나님, 내가 이것을 통하여 무엇을 배우기를 원하십니까?" 라고 질문하시기 바랍니다.
더욱 감사한 것은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홀로 두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운동 경기를 구경하듯이 관람석에 앉아서, 저 멀리 하늘 나라에서 우리를 상투적인 말로 격려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주님은 우리의 고통 속에서 함께 일하십니다. 우리는 멀리 계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친히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히브리서 4:15절 말씀에 보면,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이러한 사랑의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제... 고통의 기간이 끝나고... 마침내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왔을 때... 우리는 한층 더 성숙한 믿음의 사람으로 바뀌어버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더욱 주님을 찬양하고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께 두 손 모아 비나니...
저는 한국 음식, 한식을 좋아 합니다. 그런데 한국 음식에 들어가는 양념들을 보면 그냥 먹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 하나 맛을 보면 맵고 짜고 해서 하나 하나는 도저히 먹을 수 없습니다. 마늘 하나만 먹을 수 있어요?
생강 하나만 먹을 수 있어요? 못 먹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서로 합쳐져서 조화가 되고 어우러져서... 맛있는 요리가 된 것입니다.
바로 이거예요...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아주 훌륭한 요리사이십니다.
인생에 달고 쓰고 맵고 짠 온갖 문제들을 통하여 우리 주님은 멋진 요리를 만들어 내십니다.
성경에 살아간 위대한 신앙의 인물들을 보면 한결같이 그들도 많은 고난의 세월을 보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랬습니다. 그는 늙어서까지 자녀가 없어서 늘 근심이 되었습니다. 가는 곳 마다 기근을 만나서 양식을 얻기 위해서 새로운 곳으로 이주해야만 했습니다.
요셉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가 없어서 아버지로부터 더 많은 사랑을 받은 요셉이 한 순간에 절망의 구렁텅이에 떨어지고 애굽에 노예로 끌려가서 고통스러운 세월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나 고난의 세월이 지났을 때 하나님은 그를 들어서 위대한 지도자로 사용하신 것입니다.
모세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루아침에 왕자의 직위를 박탈당하고 미디안 광야에서 양을 치는 목동의 신세로 40년을 살아가게 됩니다. 사람이 없는 곳에서 그는 고독을 되씹으며 살았을 것입니다. 그 시간이 지났을 때 하나님은 모세를 들어서 위대한 출애굽의 지도자로 사용하신 것입니다. 고난의 40년이 없었다면 영광의 40년도 없었을 것입니다.
다윗도 예외가 아닙니다. 다윗은 늘 생명의 위협 가운데 살아갔습니다. 자기를 죽이고자하는 사울 왕으로 인해서 한순간도 편할 날이 없었습니다.
때로는 생명을 부지하기 위해서 침을 흘리며 미치광이의 행동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때가 되니 하나님이 그를 들어서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왕으로 세워주셨습니다.
시험과 연단이 많을수록 그들은 위대한 삶을 살아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욥기 23장 10절에 보면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치 용광로 속에서 불순한 것들을 다 녹여내어 깨끗하고 정결한 금을 만들어 내듯이 하나님께서는 고난과 시련이라는 용광로를 통해서 우리 인생을 순수하게 만들어 가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지금 고난 중에 있고, 어려운 문제를 만났다면... 나를 훈련시키는 과정임을 깨닫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모든 불쾌하고 나쁜 경험들까지... 하나님께 맡기면 주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주변에 사랑스럽지 않은 사람들을 두셔서 우리에게 사랑을 가르치시고, 슬픔을 통하여 기쁨을 가르쳐 주시고, 혼란스럽고 당황스러운 문제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평안을 가르쳐 주십니다.
또 우리가 감당치 못할 시험을 주시는 법이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3절에 보니,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감당할 만한 시험을 주십니다. 어린 아이에게 대학생 문제는 내 주지 않으십니다. 고등학생에게 고등학생 정도의 문제를 내 주시는 것입니다. 감당할 만한 시험입니다. 그 다음에는 피할 길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감당할만한 시험을 주실 뿐 아니라 또 능히 감당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시험을 통해서 우리에게 유익을 주시는 것입니다.
시편 119:71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그런데 시험을 이기는 방법은 끝까지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인내하며 끝까지 버텨야 합니다.
오늘 본문 야고보서 1:3-4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우리의 신앙이 자라고 인격이 자라는 것은 하루 아침에 되어지는 일이 결코 아닙니다. 그 길은 길고도 느린 과정입니다. 지난한 과정
시험 앞에서 우리는 인내를 배워야 합니다. 연단을 통해 우리는 인내를 배워야 합니다. 참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교훈이 무엇입니까? 인내를 배우는 것입니다. 잘 참지 못하는 사람은 공부도 할 수 없습니다. 공부하다 지겨우면 덮어버리면 안되지요. 사업하다가 좀 힘들다고 내팽겨 쳐 버리면 사업이 끝납니다. 인간 관계가 좀 힘들다고 주저앉아 버리면 더 이상 발전하기 어렵습니다.
참고 인내하는 사람이 인생의 정상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신앙도 그렇습니다. "달려갈 길을 다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라고 디모데후서 4장에서 사도바울은 고백합니다. 달려갈 길을 마치기 위해서는 끝까지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인내입니다.
여러분, 삶의 현장에서 늘 인내하는 분들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인내하는 사람만이 승리자의 기쁨을 맛볼 수 있는 것입니다.
등산을 해도 그렇습니다. 정상에 선 그 기쁨은 실로 대단합니다. 그런데 중도에 포기하면 정상에 서는 기쁨과 감격을 맛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산 정상에 오르면 너무 좋아서 ‘야호!’ 하고 소리를 지릅니다.
그러나 이 기쁨을 산 아래 있는 사람은 느끼지 못하는 거지요.
마라톤 42.195 저 미친 사람들
미당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란 시가 있습니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시험이나 고난, 문제는 인격과 신앙을 성장시킬 수 있는 기회입니다.
“피할 수 없거든 그것을 즐겨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차피 문제는 오게 되어 있고, 문제를 만나게 되어 있습니다.
피할 수 없다면 그것을 즐길 줄 아는 여유를 가져야 합니다.
우리들에게 분명한 것은 시험에는 범위가 있고, 하나님만 의지하면 반드시 승리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시험을 통해 겪는 고난보다 더 큰 은혜, 더 큰 축복의 미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부디 이런 사실을 명심하시고 어떤 시험이 와도 낙심치 말고 꼭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