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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 강림 (사도행전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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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설교를 준비하면서 기본으로 다시 돌아가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개인이든, 가정이든, 교회이든 기본이 약하면 주변 상황과 환경에 따라 쉽게 무너집니다. 내외부적으로 아무리 어려움이 닥쳐와도 무너지지 않고 굳건히 서서 주어진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려면 기초, 기본이 튼튼해야 합니다.

 

누가는 사도행전을 기록하면서 성령의 역사와 섭리에 따라 기록하였기 때문에 사도행전은 성령행전이라는 별칭으로 불리웁니다. 

이러한 성령의 역사는 초대 교회를 탄생시키고 확장시키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본문은 이런 성령 역사의 시작된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오순절에 있었던 성령 강림 사건은 역사의 물결을 뒤집어 놓았습니다.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를 잡으며 비린내나 풍기던 어부들이 역사의 주역으로 등장한 것입니다. 

그들에게 성령이 임하자 마게도냐의 알렉산더도, 중국의 진시황제도, 로마의 시저도 해결하지 못했던 죽음과 영생의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바리새인이나 사두개인이 아닌 그 무지랭이들이 교회시대, 성령시대의 문을 열었습니다. 다락방에 모여 방문을 걸어 잠그고 죽음이 무서워 두려워 떨던 갈릴리 촌부들이 방문을 걷어차고 나와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담대하게 외쳐대기 시작했습니다. 

자신들의 생명을 예수 앞에 초개와 같이 버릴 수 있었습니다. 

300년이 채 흐르기도 전에 세계를 지배했던 로마가 그 앞에 항복하고 말았습니다. 무엇이 갈릴리 촌부들을 이토록 능력 있는 사람으로 만들었습니까?

성령의 강림, 성부, 성자, 성령이 임하자 사람이 달라져.

성령이 임하면 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성령이 임하고도 달라.

마태복음 13장의 ‘씨뿌리는 비유’(18-23)를 보면 네 가지로 나옵니다.

길가, 돌밭, 가시떨기-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 좋은 땅

 

오늘날 우리들의 문제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는 것입니다. 그분의 능력을 제한합니다. 

자기 얄팍한 이성과 경험 안에서만 하나님을 인정합니다. 

“God is too small” - 하나님은 너무 작다! 

그러나 여기 성령의 능력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구약을 보면 한 할머니가 나이 90에 임신을 하게 되었습니다. 

신약을 보면 한 처녀가 잉태하게 되었습니다. 

어찌 이런 일이 가능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사자는 그들에게 대답했습니다.  

누가복음 1:37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Nothing is impossible with God.” 

기도하는 120문도들에게 성령으로 임하셨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교회라는 공동체가 탄생한 것입니다.

참다운 교회 공동체가 탄생하던 순간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십시다.

 

1절 다 같이 한 곳에 모여 있었다

성령의 역사는 그리스도인들이 모이는 곳에 나타납니다. 

우리가 힘써 모일 때 주님이 일하십니다. 셀모임. 수요낮예배.

교회생활에서 공동체의 중요성을 아시겠습니까? 

우리교회의 셀모임은 해도 좋고 안해도 좋은 그런 모임이 아닙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성령의 충만을 경험하고, 사랑을 경험합니다. 

나를 위해 기도해 주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셀모임을 천국 공동체로 만들어 가십시요. 서로 위해 기도하고 서로 연락하고 찾아보고 함께 사랑의 교제를 나누십시오. 

말이 통하고 마음이 통하고 사랑이 통하는 신앙 공동체의 경험!

세상과 싸워 이길 수 있는 힘이 거기서 나옵니다.

험한 세상을 승리하는 능력이 거기 있습니다.

여러분의 신앙을 살펴보십시오. 신앙이 살아있을 때 열심히 모입니다. 

모임의 자세가 나태해졌다면 문제가 생기고 있는 겁니다.

모임을 등한시 하는 사람은 은혜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사무엘 당시 미스바에서 모였을 때 성령이 임하여 회개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에스라 부흥운동도 백성들의 모임으로 시작이 되었습니다. 

오순절날 성령 강림도 120문도가 모인 그곳에서 일어났습니다.

단순히 공간적으로 한 곳에 모여 있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소위 생명공동체가 되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잡히면 죽을 줄 알고도 모임의 자리를 지켰습니다. 

 

사도행전 1:5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성령이 그들에게 당장 임할 수는 없었을까요? 

먼저 그들은 공동체 안에서 결속해야 했던 것입니다.

공동체가 형성되지 않고서는 성령이 임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믿는 우리들은 신앙인들의 모임을 최우선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일이 바빠서, 피곤해서. 신앙 생활이 최우선으로 가지 않으니까 피곤하고 짜증나고 일이 잘 안 풀리고. 같은 신앙 생활을 하면서도 생활이 나아지는 사람들이 있고, 그냥 그대로 사는 사람들의 차이, 

요한복음 16:33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환난을 당하는 게 일상. 

환난을 당하면 자꾸만 세상에서 해결하려고 하는데 해결이 됩니까?

하나님께 집중해야지 해결, 물론 힘써 노력해서 해결, 하나는 죽게.

목사님, 지금 골치 아픈 일 해결하고 신앙생활 열심히 하겠습니다. 

 

120명의 제자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언어가 다르고 습관이 다르고 문화가 다른 사람들입니다. 그 중엔 배운 사람, 못 배운 사람, 유대인과 이방인, 온유한 사람과 괴팍한 사람, 믿음이 큰 사람과 적은 사람, 심지어 가족 따라 끌려온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 의하면 그곳에 모인 사람 모두가 성령을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왜요? 그곳은 이미 은혜의 공동체가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잘 타는 장작불 속엔 생나무를 넣어도 잘 타듯이 은혜의 자리엔 믿음이 

약한 사람이 함께 있어도 쉽게 은혜를 받을 수 있게 됩니다. 

저는 우리 새하늘 교회가 은혜의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성령의 역사는 어떻게 나타났나? 소리와 보였다. 

본문 2절입니다.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헬라어나 히브리어에서 바람과 성령은 같은 단어로 쓰여집니다. 

바람이 불지만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바람은 만질 수도 없고 볼 수도 없으나 우리가 다 느낄 수는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이 바람 같은 소리가 급하고 강하게 일어났다고 말합니다. 

 

본문 3절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이처럼 성령은 눈을 열어 보게 하는 역사로 나타납니다.

사도행전 2:17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젊은이들의 눈을 열어 비전을 갖게 합니다. 

늙은이들의 눈을 열어 하나님 나라를 보게 합니다. 

눈이 열려야 교회의 비전이 보이고 하나님 나라의 비전이 보입니다.

일찌기 사도 바울은 섬겨야 할 교회가 보였고 그래서 터키에서 그리스로 건너가지 않았습니까? 유럽으로 기독교 전파.

성령 강림의 결과는 - 한 마디로 「말이 통했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천하 각국의 사람들, 무려 15개 나라 사람들이 거기 모여 있었다고 합니다. 그들 가운데 언어의 장벽, 문화의 장벽이 무너졌고 대화가 시작되고 교제가 이루어지고 사랑의 공동체가 형성되었습니다. 

 

놀라운 이야기입니다. 말씀을 전하는 자와 듣는 자 사이에 신령한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사도행전의 주제는 성령이 사람들의,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방인의 마음도 열었다는 것입니다. 

딱 한 번 만나서 말씀을 전했는데 듣는 사람이 예수를 영접합니다. 

빌립보에서 루디아도 그렇게 사도 바울을 통해서 주를 영접했습니다. 

성령이 마음 문을 열어서 낯선 사람을 만났어도 단 한 번 만나서 구원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됩니다. 그리고 자신의 집을 열어서 교회를 합니다. 

로마서 10장 17절에 보면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매우 귀중한 말씀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 이 듣는다는 관계가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들음에서부터 시작된다. 

 

사랑하는 새하늘 교회 교우 여러분!

저는 여기 모인 모든 분들이 변화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그 변화는 오직 성령님이 임하여지만 온전하게 이루어집니다. 

여러분들의 곤고한 그 심령에 성령이 찾아오시도록 간구, 갈구하시기를 바랍니다. 성령님! 메마른 나의 심령에 찾아와 주시옵소서.

그리고 성령 충만함으로 온전히 변화되어 각자들의 삶의 영역에서 

이 탈많고 상식적이지 않은 이 세상을 이겨 나가시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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